산암잡록(山艤雜錄)

16. 허곡(虛谷)스님의 인연과 수행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22
 


 

16. 허곡(虛谷)스님의 인연과 수행


허곡(虛谷)스님은 무주(婺州) 사람이다. 정자사 석림(石林)스님 회하에 있으면서 내기(內記) 소임을 맡아보다가 기실(記室)로 승진되었는데 가난한 가운데서도 어렵게 공부하며 춥거나 덥거나 한결 같았다. 지난날 태백사(太白寺)에서 여름 안거를 하면서 동정료(東淨寮)의 수건을 훔쳐 속옷을 만들어 입은 적이 있었는데, 후일 세상에 나와 앙산사에 30년, 경산사에 6년 동안 주지를 지내면서도 동정료의 수건에 관하여 일체 시제(詩題)로 쓰지 않았으니 뜻은 그때의 가난한 생활을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젊은 시절 꿈을 꾸었는데 정자사 나한당(羅漢堂)에 들어가 동남쪽 모퉁이에 이르니 갑자기 존자 한 분이 나타나 대들보 사이의 시를 가리키면서 스님에게 보여주었다.


한 방은 고요한데 절정이 열리어

여러 봉우리는 그려놓은 듯 이끼보다도 푸르러라

한가히 패다엽경 펼쳐본 후에

백군데 기운 가사장삼 마음대로 재단하네.

一室寥寥絶頂開  數峰如畵碧練苔

等閒凶罷貝多葉  百衲袈娑自剪裁


처음에는 그 시에 담겨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으나 앙산․경산 두 사찰의 주지가 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앙산사에는 패다엽경이 보존되어 있고 경산사에는 양기스님의 법의가 보존되어 있었다.

아! 스님의 출처는 나한존자가 그의 전생에 이미 정해놓은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처럼 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