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록(林間錄)

10. 총림에 잘못 전해오는 이야기들 / 석두 희천(石頭希遷)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12. 18:28
 
 
 
10. 총림에 잘못 전해오는 이야기들 / 석두 희천(石頭希遷)스님 
 

   총림에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석두 희천(石頭希遷 : 700~790)스님이 자신을 범에게 보시하며 축원하기를, “우리 선종을 뒷날 세상에 크게 떨치게 하려면 내 발부터 먹어라”라고 하였더니, 그 말대로 범이 스님의 발부터 먹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은 적이 있었다.   소성(紹聖 : 1094~1098) 초에 나는 남대사(南臺寺)를 행각하다가 현태 포납(玄泰布納)스님이 석두 명(石頭明)스님에게 올린 제문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명스님이 범에게 자신을 보시한 사실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명백하게 알지 못하고 드디어 명스님의 일을 석두 희천스님의 일로 착각하게 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청량 법안(淸凉法眼 : 885~958)스님은 임종 때에 이국주(李國主)에게 서신을 보내어 이별을 고하니, 이국주가 스님의 거처로 찾아올 때까지도 죽지 않자 시자들이 쌀가마니로 그를 눌러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전기를 살펴보니 법안스님은 후주(後周) 현덕(顯德) 5년(958) 무오 7월 17일에 병을 앓아 윤월(閏月) 머리를 깎고 목욕한 후 대중과 결별을 하고 앉은 채로 입적하였으며, 이국주에게 서신을 보내어 죽음을 약속한 사실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한희재(韓希載)가 쓴 오공(悟空)스님의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스님은 임종시에 황제에게 서신을 보내어 결별을 하였는데, 황제는 한밤중에 범종소리를 듣고 승원각(昇元閣)에 몸소 올라 눈물을 흘리며 그를 떠나 보냈다.”

   또한 동산 오본(洞山悟本 : 807~869)스님은 그의 어머니가 길에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서도 모른 척하였는데 결국 어머니가 길바닥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보니 몇 홉의 쌀이 있었다.   이를 대중의 죽그릇에 던져넣고 명복을 천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본스님은 쓸쓸한 골짜기 암자에 혼자 살면서 오랫동안 누더기 하나만을 걸쳤다.   신풍산(新豊山)에 살고 있을 때는 이미 60이 넘었는데, 암두 전할(巖頭全豁 : 828~887), 설봉 의존(雪峯義存 : 822~908), 흠산(欽山) 세 스님이 잇달아 찾아왔고, 이에 대중은 거의 수천 명이나 되었으며, 그 당시 스님의 모친은 80세가 훨씬 넘었을 나이이다.   설령 어머니가 아들이 훌륭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여도 머나먼 동오(東吳) 지방에서 혼자 찾아온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또한 현사 사비(玄沙師備 : 835~908)스님은 출가하려 하였지만 부친이 허락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부친과 함께 물고기를 잡다가 배를 뒤집어 부친을 빠져죽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사스님은 타고난 자질이 고매한 스님이므로, 결코 이러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처럼 서슴없이 허튼 말을 지껄이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이는 진실하지 못한 자가 허위사실을 날조 기록하여 상대를 비방하고 자신을 옹호하려는 의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어찌하여 그들은 옛 큰스님을 무고(誣告) 훼담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그 잘못을 책임져야 할 자가 있을 것이니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