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장로자각색선사구경문 長蘆慈覺賾禪師龜鏡文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3:49
 

 

 

장로자각색선사구경문 長蘆慈覺賾禪師龜鏡文

 

① 龜鏡文[1]

夫兩桂垂蔭,[2] 一華現瑞,[3] 自爾叢林之設,[4] 要之本爲衆僧. 是以, 開示衆僧故, 有長老;[5] 表儀衆僧故, 有首座;[6] 荷負衆僧故, 有監院;[7] 調和衆僧故, 有維那;[8] 供養衆僧故, 有典座;[9] 爲衆僧作務故, 有直歲;[10] 爲衆僧出納故, 有庫頭;[11] 爲衆僧主典翰墨故, 有書狀;[12] 爲衆僧守護正敎故, 有藏主; 爲衆僧迎待檀越故, 有知客; 爲衆僧請召故, 有侍者; 爲衆僧看守衣鉢故, 有寮主; 爲衆僧供侍湯藥故, 有堂主; 爲衆僧洗濯故, 有浴主‧水頭; 爲衆僧禦寒故, 有炭頭‧爐頭; 爲衆僧乞丐故, 有街坊化主; 爲衆僧執勞故, 有園頭‧磨頭‧莊主; 爲衆僧滌除故, 有淨頭; 爲衆僧給侍故, 有淨人.[13] 所以, 行道之緣, 十分備足, 資身之具, 百色現成, 萬事無憂, 一心爲道, 世間尊貴, 物外優閑. 淸淨無爲, 衆僧爲最, 廻念多人之力, 寧不知恩報恩? 晨參暮請, 不捨寸陰, 所以報長老也; 尊卑有序, 擧止安詳, 所以報首座也; 外遵法令, 內守規繩, 所以報監院也; 六和[14]共聚, 水乳相參,[15] 所以報維那也; 爲成道故, 方受此食, 所以報典座也; 安處僧房, 護惜什物,[16] 所以報直歲也; 常住之物, 一毫無犯, 所以報庫頭也; 手不把筆, 如救頭燃, 所以報書狀也; 明窓淨案, 古敎照心, 所以報藏主也; 韜光晦跡, 不事追陪, 所以報知客也; 居必有常, 請必先到, 所以報侍者也; 一甁一鉢, 處衆如山, 所以報寮主也; 寧心病苦, 粥藥隨宜, 所以報堂主也; 輕徐靜黙, 不昧水因,[17] 所以報浴主‧水頭也; 緘言拱手, 退己讓人, 所以報炭頭‧爐頭也; 忖己德行, 全闕[18]應供, 所以報街坊化主也; 計功多少, 量彼來處,[19] 所以報園頭‧磨頭‧莊主也; 酌水運籌, 知慚識愧, 所以報淨頭也; 寬而易從, 簡而易事, 所以報淨人也. 所以, 叢林之下, 道業惟新, 上上之機, 一生取辦, 中流之士, 長養聖胎, 至如未悟心源, 時中亦不虛棄. 是眞僧寶, 爲世福田, 近爲末法之津梁, 畢證二嚴之極果.[20] 若或叢林不治, 法輪不轉, 非長老所以爲衆也; 三業不調, 四儀不肅, 非首座所以率衆也; 容衆之量不寬, 愛衆之心不厚, 非監院所以護衆也; 修行者不安, 敗群者不去,[21] 非維那所以悅衆也; 六味不精, 三德不給, 非典座所以奉衆也; 寮舍不修, 什物不備, 非直歲所以安衆也; 畜積常住, 減剋衆僧, 非庫頭所以贍衆也; 書狀不工, 文字滅裂,[22] 非書狀所以飾衆也; 几案不嚴, 喧煩不息, 非藏主所以待衆也; 憎貧愛富, 重俗輕僧, 非知客所以贊衆也; 禮貌不恭, 尊卑失序, 非侍者所以命衆也; 打疊不勤, 守護不謹, 非寮主所以居衆也; 不閒供侍, 惱亂病人, 非堂主所以恤衆也; 湯水不足, 寒煖失儀, 非浴主‧水頭所以浣衆也; 預備不前, 衆人動念, 非爐頭‧炭頭所以向衆也; 臨財不公, 宣力不盡, 非街坊化主所以供衆也; 地有遺利, 人無全功, 非園頭‧磨頭‧莊主所以代衆也; 懶惰倂除, 諸緣不具, 非淨頭所以事衆也; 禁之不止, 命之不行, 非淨人所以順衆也. 如其衆僧, 輕師慢法, 取性隨緣, 非所以報長老也; 坐臥參差, 去就乖角, 非所以報首座也; 意輕王法,[23] 不顧叢林, 非所以報監院也; 上下不和, 鬪諍堅固, 非所以報維那也; 貪婪[24]美膳, 毁訾麤飡, 非所以報典座也; 居處受用, 不思後人, 非所以報直歲也; 多貪利養,[25] 不恤[26]常住, 非所以報庫頭也; 事持筆硯, 馳騁文章, 非所以報書狀也; 慢易金文, 看尋外典, 非所以報藏主也; 追陪俗士, 交結貴人, 非所以報知客也; 遺忘召請, 久坐衆僧, 非所以報侍者也; 以己妨人, 慢藏誨盜,[27] 非所以報寮主也; 多嗔小喜, 不順病緣, 非所以報堂主也; 桶杓作聲, 用水無節, 非所以報浴主‧水頭也; 身利溫煖, 有妨衆人, 非所以報爐頭‧炭頭也; 不念修行, 安然受供, 非所以報街坊化主也; 飽食終日, 無所用心,[28] 非所以報園頭‧磨頭‧莊主也; 涕唾[29]墻壁, 狼藉東司, 非所以報淨頭也; 專尙威嚴, 宿無善敎, 非所以報淨人也. 盖以旋風千匝, 尙有不周,[30] 但知捨短從長,[31] 共辦出家之事. 所冀, 獅子窟中, 盡成獅子, 栴檀[32]林下, 純是栴檀, 令斯後五百年, 再覩靈山之會. 然則, 法門興廢, 係在僧徒, 僧是敬田,[33] 所應奉重, 僧重則法重, 僧輕則法輕. 內護旣嚴, 外護必謹. 設使粥飯主人,[34] 一期王化, 叢林執事, 偶爾當權, 常宜敬仰同袍, 不得妄自尊大. 若也貢高我慢, 私事公酬, 萬事無常, 豈能長保? 一朝歸衆, 何面相看? 因果無差, 恐難回避. 僧爲佛子, 應供無殊,[35] 天上人間, 咸所恭敬, 二時粥飯, 理合精豊, 四事供須, 無令闕少. 世尊二十年遺蔭, 盖覆兒孫, 白毫相一分功德, 受用不盡, 但知奉衆, 不可憂貧. 僧無凡聖, 通會十方, 旣曰招提,[36] 悉皆有分, 豈可妄生分別, 輕厭客僧? 旦過寮[37]三朝權住, 盡禮供承, 僧堂前暫爾求齋, 等心供養. 俗客尙猶照管, 僧家忍不逢迎? 若無有限之心, 自有無窮之福. 僧門和合, 上下同心, 互有長短, 遞相盖覆, 家中醜惡, 莫使外聞. 雖然於事無傷, 畢竟減人瞻仰, 如獅子身中蟲, 自食獅子肉, 非外道天魔, 所能壞也.[38] 若欲道風不墜, 佛日常明, 壯祖域之光輝, 補皇朝之聖化, 願以斯文, 爲龜鏡焉.

무릇 두 그루의 계수나무가 그늘을 드리우자 한 송이의 꽃이 상서러움을 드러내었으니 이러한 것으로부터 총림叢林이 개설된 것을 요약해 보건대 본디 대중스님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스님들에게 [불법의 방향과 내용을] 열어 보이는 까닭에 장로長老가 있고, 대중스님들에게 위의를 보여주는 까닭에 수좌首座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책망하고 감독하는 까닭에 감원監院이 있고, 대중스님들을 화합시키는 까닭에 유나維那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공양하는 까닭에 전좌典座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사무를 보는 까닭에 직세直歲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출납을 처리하는 까닭에 고두庫頭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글쓰는 일을 주관하는 까닭에 서장書狀이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경전을 수호하는 까닭에 장주藏主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시주들을 영접하고 응대하는 까닭에 지객知客이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심부름하는 까닭에 시자侍者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옷과 발우를 간수하는 까닭에 요주寮主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해 탕약을 받들어 공양하는 까닭에 당주堂主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세탁을 하는 까닭에 욕주浴主와 수두水頭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해 추위를 막는 까닭에 탄두炭頭와 노두爐頭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탁발하는 까닭에 가방화주街坊化主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노역을 맡는 까닭에 원두園頭와 마두磨頭와 장주莊主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소제하는 까닭에 정두淨頭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시봉하는 까닭에 정인淨人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도道를 수행하는 인연은 충분히 갖추어지고 몸을 유지하는 기구들은 여러모로 곧장 이루어짐에 만사에 아무런 근심 없이 일심으로 도道를 위하게 되는 것이니, 세간에서는 높고도 귀하며 세상 밖에서는 넉넉하고도 한가롭다.

청정하고도 작위가 없기(無爲)로는 대중스님들이 으뜸일 것이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어찌 은혜를 알고서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겠는가? 새벽에 찾아 뵙고 물으며 해 저물어 더욱 물음을 청하여 한 치의 시간도 버리지 않아야 장로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높고 낮음에 순서가 있고 행동거지가 침착하여야 수좌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밖으로 법령을 준수하고 안으로 규약을 지켜야 감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육화六和[를 숭상하는 무리]가 함께 모여 물과 젖처럼 서로 섞여야 유나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도道를 이루기 위하는 까닭에 바야흐로 이 음식을 받는다 하여야 전좌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승방에 편안히 거처하며 모든 생활의 도구들을 보호하고 아낄 줄 알아야 직세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상주常住의 물품은 털끝만큼도 범함이 없어야 고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손으로 붓을 잡지 않더라도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공부를 해야 서장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밝은 창가 맑은 책상에서 옛 사람의 가르침을 마음에 비춰 볼 줄 알아야 장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마음의 빛을 감추고 행적을 숨길 뿐 따라다니거나 모시고 다님을 일삼지 않아야 지객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기거함에 반드시 일정한 장소가 있고 부르면 반드시 먼저 도착해야 시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하나의 병甁과 하나의 발우鉢盂로써 대중 가운데 처신함에 마치 산과 같이 하여야 요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질병의 고통에도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미음과 약은 그 적절한 시기를 따라야 당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가볍고도 서서히 하고 조용하고도 묵묵히 함으로써 수인水因을 어리석게 탐하지 않아야 욕주와 수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입을 다물고 손을 맞잡은 채 자신은 물러 세우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탄두와 노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자신의 덕행이 공양을 받기에 온전한가 온전치 못한가를 헤아릴 줄 알아야 가방화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공양의 공덕이 얼마인지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헤아릴 줄 알아야 원두와 마두와 장주에게 보답하는 것이고, 물은 조금씩 떠내어 쓰고 산가지를 사용하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정두에게 보답하는 것이며, 관대하여 좇기 쉽게 하고 간략하여 섬기기 쉽게 하여야 정인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야 총림에서의 도업道業이 더욱 새로워질 것이니 뛰어난 근기라면 한 생(一生)으로 그 결과가 판별되고, 중간 무리의 선비라도 오래도록 성인의 씨앗을 기른다면 나아가 마음의 근원을 깨닫지는 못할지라도 한나절을 헛되이 버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이 진실된 승보僧寶이며 세상의 복밭이니 가깝게는 말법 시대의 나루터와 다리가 되고 결국에는 화신장엄化身莊嚴과 법신장엄法身莊嚴의 궁극적인 결과를 증득하게 될 것이다.

만약 총림이 다스려지지 않고 불법의 수레가 구르지 않는다면 장로로써 대중을 위하는 도리가 아니고,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순조롭지 않고 가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거동이 엄숙하지 못하면 수좌로써 대중을 통솔하는 도리가 아니며, 대중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너그럽지 못하고 대중을 사랑하는 마음이 두텁지 못하면 감원으로써 대중을 보호하는 도리가 아니고, 수행하는 자를 편안하게 하지 못하고 해를 끼치는 무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유나로써 대중을 기쁘게 하는 도리가 아니며, 음식의 여섯 가지 맛이 정결하지 못하고 음식의 세 가지 덕이 넉넉하지 못하면 전좌로써 대중을 받드는 도리가 아니고, 사는 집을 정돈하지 않고 일상용품을 갖추지 못하면 직세로써 대중을 편안하게 하는 도리가 아니며, 상주常住는 쌓아 축적하되 대중스님은 줄인다면 고두로써 대중을 넉넉하게 해주는 도리가 아니며, 글귀가 정교하지 못하고 문자가 짧으면 서장으로써 대중을 꾸미는 도리가 아니고, 책걸상이 엄밀하지 못하여 시끄럽고 번잡스러움이 그치지 않으면 장주로써 대중을 대우하는 도리가 아니며, 가난을 미워하고 부귀를 좋아하며 세속을 중히 여기고 승려를 경시한다면 지객으로써 대중을 돕는 도리가 아니고, 예절의 모습이 공손하지 못하고 높고 낮음에 그 순서를 잃으면 시자로써 대중이 편안하게 명령하도록 하는 도리가 아니며, 청소하고 정돈함에 근실하지 않고 지키고 보호함에 삼가하지 않으면 요주로써 대중이 편안하게 있도록 하는 도리가 아니고, 공급하고 시봉하기를 차분하게 하지 않아 병든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당주로써 대중을 위로하는 도리가 아니며, 더운물이 부족하거나 차고 더운 것이 정도를 잃으면 욕주와 수두로써 대중이 씻을 수 있도록 하는 도리가 아니고, 미리 앞세워 준비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일으키게 하면 노두와 탄두로써 대중들이 [불을] 쪼이게 하는 도리가 아니며, 재물에 관련해서 공정하지 못하고 힘껏 주선함을 다하지 않으면 가방화주로써 대중을 공양하는 도리가 아니고, 땅은 묵히는 것이 있고 사람은 공들임을 온전히 하지 않는다면 원두와 마두와 장주로써 대중을 대신하는 도리가 아니며, 게으른 마음에 몽땅 밀쳐 둔 채 모든 관련 물품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정두로써 대중을 섬기는 도리가 아니고, 금지한 것을 그치지 않고 명령한 것을 시행하지 않으면 정인으로써 대중을 따르는 도리가 아니다.

만일 대중스님들이 스승을 가벼이 여기거나 법에 대해 교만하여 성질이 나는대로 하고 되는대로 한다면 장로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앉고 누움에 들쭉날쭉하게 하고 물러나고 나아감에 행동이 어그러지면 수좌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뜻에 국왕의 법을 가벼이 여기고 총림을 돌아보지 않으면 감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위아래가 화목하지 못하여 다툼을 심하게 하면 유나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맛깔진 음식만을 탐내고 거친 음식을 헐뜯으면 전좌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거처하는 자리와 함께 쓰는 물건에 대해 뒷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 직세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이익과 그 즐거움만 지나치게 탐하고 상주물을 아끼지 않으면 고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붓과 벼루를 지니고서 문장을 짓거나 다듬는 일에만 전념한다면 서장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불경을 업신여겨 가벼이 보고 외전外典만 보고 뜻을 찾는다면 장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세속의 선비를 좇아 모시고 귀인들과 교류를 맺는다면 지객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불러 청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대중스님들과 오래도록 앉아 있으면 시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몸소 남을 방해하고 갈무리를 게을리 함으로써 도적질을 가르치면 요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성을 많이 내고 기쁜 마음은 적게 가져 질병의 올바른 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당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물통과 표주박으로 소리를 내고 물을 씀에 절제가 없으면 욕주와 수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자기 한 몸 데우기에 유리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방해되는 바가 있으면 노두와 탄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수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편안히 공양만 받는다면 가방화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종일토록 배불리 먹으며 마음 쓰는 바가 없으면 원두와 마두와 장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담과 벽에 코 풀고 침 뱉으며 변소를 어수선하게 쓰면 정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오로지 위엄만 숭상하고 평소에 올바른 가르침이 없으면 정인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다. 대저 회오리 바람이 천 번을 돌아 불어도 오히려 두루 미치지 못한 곳이 있는 법이니, 다만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좇아서 출가의 일을 다함께 끝낼 것만을 생각할지어다.

바라는 바는, 사자굴 안에서는 모두 사자가 되고 전단나무 숲 아래로는 순전히 전단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니, 이로부터 5백년 후에 다시 영산靈山의 모임을 볼 수 있도록 하자. 그러한 즉 법문의 흥폐는 승려 무리에게 달려 있기에 승려는 공경해야 될 밭(敬田)이므로 응당 받들고 소중히 여겨야 할 바이니, 승려가 막중하면 법도 막중하고 승려가 가벼우면 법도 가볍기 마련이다. 안에서 보호함이 이미 엄하고서야 밖에서 보호함이 필시 조심하게 될 것이다. 비록 죽과 밥만 먹고 지내던 사람이라도 한 차례 왕의 덕화를 입어 총림의 집사로써 뜻하지 않게 권력을 맡게 되면 마땅히 같이 있던 도반들을 항상 공경하고 숭앙해야 할 것이니, 망령되게 스스로를 존대하여 높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나를 높여 거만히 하고 사사로운 일을 공적으로 갚는다면 만사는 무상하니 어찌 능히 길이 보전할 것이며, 하루아침에 대중으로 돌아오면 무슨 면목으로 마주 보겠는가? 인과는 어김이 없으니 아마도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승려는 부처님의 아들로서 응공應供과 더불어 다를 바 없으므로 천상이나 인간이나 모두 공경하는 바이니, 두 끼니의 죽과 밥도 이치에 맞추어 정갈하고 풍족하게 해야 하며 네 가지 일로 공양함에 조금의 빠트림도 없게 하라. 석가세존이 남기신 20년의 음덕이 무릇 그 자손을 덮어 주고 있는 것이니 백호상白毫相의 일분 공덕도 다 받아쓰지 못할 것임에 다만 대중을 받들 줄만 알아야 할 것이요 가난은 근심할 것이 없다. 승려는 범부나 성인이나 할 것 없이 온 세상에 두루 통할 수 있기에 이미 초제招提라고 일컬으면 모두에게 다 몫이 있는데 어찌 망령되게 분별심을 내어 객승이라 업신여기고 싫어할 수 있겠는가? 객실에서 사흘은 권리로써 묶는 것이니 예절을 다하여 받들어 모실 것이며, 승당僧堂 앞에서 잠깐 동안 먹을 것을 구하더라도 평등한 마음으로 공양하라. 세속의 손님도 오히려 보살피거늘 승가僧家를 차마 영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유한한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무궁한 복록이 있을 것이다.

승려 문중의 화합은 위아래가 같은 마음이 되어 서로간에 장단점이 있을지라도 번갈아 서로 덮어 주어 집안의 추하고 흉한 일은 바깥으로 들리지 않게 하라. 비록 그러하더라도 큰 일에는 해됨이 없을 것이라 하지만 결국에는 우러러 숭앙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기에 마치 사자의 몸에서 생긴 벌레가 스스로 사자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으니 외도外道나 하늘의 마귀가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만약 도풍道風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고 부처님의 광명이 항상 밝아서 조사들의 영역에 빛이 왕성하게 하고 황제와 조정의 성스러운 덕화를 돕고자 한다면 이 글로써 귀감과 거울을 삼기 바란다.

【1】龜, 所以決猶豫; 鏡, 所以辨姸醜. 猶豫者, 猶卽鼬也, 善登木, 性多疑慮, 常居山中, 忽聞人聲, 豫先上樹, 久之無人, 其後敢下, 須臾又上, 如此非一故, 人之不決疑者, 以比之.

【2】兩桂者, 嵩山.少林窟前有二株桂樹故, 自謂之少林.《應聖讖》云「二株嫩桂久昌昌」, 密記此也. 又臨濟‧曹洞二宗, 聯芳不絶故, 云二株久昌昌. 垂蔭者, 初祖九載面壁于此, 得可大士, 以傳心印, 此乃禪宗之始. 自此, 布于天下, 豈非垂蔭也!

【3】一華者優曇鉢羅, 此云靈瑞花. 葉似梨而果大, 無花而結子, 亦有花而難値故, 經中以喩希有.《泥洹經》云: 「閻浮提內, 有尊樹王, 名優曇鉢羅. 有實無花, 若金花生者, 佛乃現世.」 今百丈開法出世, 亦如此花之希有故, 云現瑞也.

【4】自達磨來梁, 隱居魏地, 六代相繼, 至于大寂, 二百五十年間未有禪刹, 百丈刱意別立禪居, 禪衆行道資身禪宴食息之資, 一一備具, 各有司存.

【5】禪宗住持, 必呼爲長老者,《阿含》有三長老; 一, 耆年長老, 年臘多者; 二, 法長老, 了達法性, 內有智德; 三, 作長老, 假號之者, 今取第二. 又德高爲長, 年多爲老.

【6】卽古之上座也. 今禪門, 所謂首座者, 必擇其己事已辦‧衆所服從‧德業兼備者充之.

【7】卽監寺也.《僧史》曰: 「知寺三綱者, 若綱罟之巨繩也, 提之則百目正矣. 詳其, 寺主起於東漢.白馬寺, 寺旣爰處, 人必主之.」 今禪門, 有內外知事, 以監寺爲首.《大集經》云: 「僧物難掌, 佛法無主, 我聽二種人掌三寶物, 一知業報者, 二知慙愧者.」 今禪門, 必擇心通法道‧身忘利養者, 以掌僧務, 此先德之遺意也.

【8】《寄歸傳》云: 「華‧梵兼擧. 維是綱維, 那是略梵語, 刪去羯磨陀三字, 此云悅衆.」《十誦》云: 「以僧坊中, 無人知時灑掃, 衆亂時, 無人彈指等, 佛令立維那.」 今禪門, 令掌僧籍及表白等事, 必選當材也.

【9】《僧史》謂典主牀座, 九事, 今擧一以攝之, 乃通典雜事也. 今禪門, 相沿以立此名焉爾.

【10】《僧史》謂直一年之務故, 立此職. 今禪門, 雖不止定歲時立名, 亦法於古制.

【11】出納者, 出而用之, 納而藏之.

【12】執掌文翰. 山門, 牓疏‧書簡‧祈禱‧語詞, 悉皆屬之.

【13】《毘奈耶》云: 「由作淨業故, 名淨人.」

【14】戒和同修, 身和同住, 口和無諍, 意和同悅, 見和同解, 利和同均. 什師云: 「如衆不和, 非敬順之道也.」

【15】明公云: 「水與乳, 本性和合, 加水於乳, 色不變也.」

【16】什, 衆也雜也. 會數之名, 資生之物, 非一故, 謂之什物. 關尹曰: 「凡有貌相形色者, 皆曰物.」

【17】《楞嚴經》「跋多波羅浴時, 忽悟水因.」 注: 水爲所觸之因, 悟其了不可得也.

【18】闕則不宜也, 全乃可受.

【19】功多少者, 一鉢飯出於作夫一鉢汗血; 量來處者, 施者欲邀福免禍.

【20】五度, 莊嚴化身; 慧度, 莊嚴法身.

【21】卜式, 牧羊肥息曰, 非獨羊也, 治民亦猶是也. 惡者輒去, 毋令敗群. 注: 息謂蕃息也, 又盛多也.

【22】短也, 不熟也.

【23】王去聲, 下同.

【24】《左傳》「貪婪無饜」, 注: 愛財曰貪, 愛食曰婪.

【25】財之所欲曰利, 利之所樂曰養.

【26】恤憂也.

【27】《係辭》「慢藏誨盜, 冶容誨淫.」 言慢易守藏則示誨盜賊也.

【28】孔子曰: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奕者乎? 爲之, 猶賢乎已.」 註: 已, 止也.

【29】從目出者爲涕, 從口出者爲唾.

【30】廻旋之風, 雖吹之千匝, 必有所未至處, 言人雖飾行措躬, 豈可盡善而無過咎哉!

【31】什公偈云: 「譬如淤泥中而生靑蓮華, 智者取蓮華, 勿取於淤泥.」

【32】栴檀, 此云與藥. 白檀能治熱病, 赤檀能去風腫, 皆除疾安身之藥, 故名與藥.

【33】福田有二, 衆生是悲田, 三寶是敬田.

【34】《智論》云: 「佛制比丘一日一食. 後, 羅睺羅幼少出家, 飢而啼之, 佛爲止啼, 且許朝粥, 後世比丘, 見此開門, 朝粥中食, 以爲恒式.」《博物志》云: 「雜食, 百疾妖邪之所鍾, 食逾少‧心逾明, 食逾多‧心逾損.」 又: 「野干心念十善, 七日不食, 得生天上.」

【35】應供, 卽佛十號之一, 言與佛無異也.

【36】《音義》云: 「梵語招鬪提奢, 唐言四方僧物, 又飜別房施. 後魏.太武.始光元年, 建伽藍, 創立招提之名.」

【37】卽客堂也. 旅客遞相宿食而行過, 猶夜旦之更代故, 云旦過也.

【38】《蓮華面經》「佛告阿難: 譬如獅子, 命終身死, 所有衆生, 不敢食肉, 惟獅子身, 自生諸虫, 還自食盡獅子之肉. 阿難! 我佛法中, 非餘破壞, 是諸比丘, 破我三大阿僧祇法.」《七夢經》亦同此說.

【1】거북은 그것으로써 예측을 결정하며 거울은 그것으로써 예쁘고 추함을 판단한다. 猶豫의 猶는 곧 족제비이니, 나무를 잘 타고 성격에 의심이 많아서 항상 산 속에 머묾에 홀연히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미리 앞서 나무에 올랐다가 오래되어 사람이 없으면 그 후에 감히 내려왔다가는 잠깐 사이에 또 올라가는데, 이 같이 함이 한두 번이 아닌 까닭에 사람들이 무엇을 의심하여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이것에 비유한 것이다.

【2】두 그루의 계수나무란, 숭산의 소림굴 앞에 두 그루의 계수나무가 있는 까닭에 자연히 소림을 일컫는다.《응성참》에 이르기를 「두 그루의 어린 계수나무 오래도록 푸르고 푸르도다」 한 것은 이것을 은밀히 기록한 것이다. 또 임제와 조동의 두 종파가 잇달아 그 향훈이 끊이지 않는 까닭에 「두 그루는 오래도록 푸르고 푸르도다」라 하였다. 그늘을 드리운다는 것은 달마가 여기에서 9년을 면벽하고는 가대사를 얻어 그에게 心印을 전하니 이것이 선종의 시초가 되었으며, 이로부터 천하에 널리 퍼지게 되었으니 어찌 그늘을 드리운 것이 아니겠는가.

【3】한 송이의 꽃이란 優曇鉢羅이니 이곳 말로는 靈瑞花이다. 잎사귀는 배나무와 흡사하나 열매는 크고 꽃이 없이 열매를 맺으며, 또한 꽃이 피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만나기 어려운 까닭에 경전에서는 그것을 희유한 일에 비유하고 있다.《니원경》에 이르기를 「염부제 안에 존수왕이 있으니 이름은 우담바라이다. 과실은 있으되 꽃은 없으나 만약 금빛 꽃이 피면 부처님이 곧 세상에 나타나신다」 하였다. 이제 백장께서 법을 열어 세상에 나오셨으니 또한 이러한 꽃이 희유한 것과 같은 까닭에 상서러움을 드러내었다고 말하였다.

【4】달마가 양나라에 와서 위나라 땅에 은거하면서부터 6대 동안 이어져 내려와 대적에 이르기까지 2백5십년 동안에는 선종의 사찰이 없었는데, 백장이 새로이 뜻을 내어 참선의 거처를 따로 설립하니 참선하는 대중에 行道와 資身과 禪宴과 食息 등의 자격이 하나하나 구비되어 각각에 소임자가 있게 되었다.

【5】선종의 주지는 반드시 호칭하기를 장로라 하는데《아함경》에 세 가지 장로가 있으니, 첫째는 기년장로로서 승랍이 많은 자요, 둘째는 법장로로서 불법의 성품을 속들이 통달하고 안으로 지혜와 덕행을 지닌 자이며, 셋째는 작장로이니 임시 그렇게 호칭할 뿐인 자인데, 지금은 그 두 번째를 취한 것이다. 또 덕이 높으면 長이 되고 승랍이 많으면 老가 된다.

【6】즉 예전의 上座이다. 지금의 선문에서는 소위 首座라 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일을 이미 모두 끝내 놓은 자로서 대중들이 복종하는 바 덕행과 선업을 겸비한 자를 택하여 소임을 맡긴다.

【7】즉 監寺이다.《승사》에 이르기를 「사찰을 맡고 있는 三綱은 마치 그물의 굵은 줄과도 같이 그것을 들추면 곧 전체 그물의 눈이 바르게 되는 것과도 같다. 그것을 더욱 상세히 고찰하면, 寺主는 동한 때의 백마사에서 시작되었는데 사찰이 도처에 퍼지게 되자 사람들이 반드시 사찰을 관리하게 되었다」라 하였다. 지금의 禪門에 안팎으로 사판(知事)들이 있는데 監寺로써 우두머리를 삼는다.《대집경》에 이르기를 「僧物은 장악하기 어렵고 佛法은 주인이 없으나 내가 두 종류의 사람에게 삼보의 물건을 장악하도록 허락하여주노니, 첫째는 업보를 아는 자요 둘째는 제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을 아는 자이다」 하였다. 지금의 선문에서는 반드시 마음으로 법도를 통달하고 몸으로는 이익 배양함을 잊은 자를 선택하여 승려의 사무를 관장하게 하고 있으니, 이는 앞선 대덕께서 남긴 뜻이다.

【8】《기귀전》에 이르기를 「중화의 말과 범어를 함께 열거한 것이다. 維는 벼리의 밧줄(綱維)이요 那는 범어를 간략하게 한 것으로 羯磨陀 3자를 떼어버린 것이니, 이곳 말로 하면 悅衆이다」라 하였으며,《십송》에 이르기를 「승려가 거처하는 절에 때를 알아서 물 뿌리고 청소하는 사람이 없으며 대중이 시끄럽게 할 때 그것을 지적하여 나무라는 사람이 없는 등의 이유로 부처님께서 維那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지금의 선문에서는 僧籍 및 表白(선종에서 제문이나 회향문 등을 읽는 일 또는 그 소임) 등의 일을 관장하게 하고자 반드시 마땅한 인재를 선출한다.

【9】《승사》에서 일컫는 ‘牀座의 소임을 맡아 주재함’을 말하는데, 9가지 소임 가운데 이제 한 가지 소임의 이름을 들어 그 전체의 의미를 포함시키고 있으며, 잡다한 일을 통틀어 맡음을 말한다. 지금의 선문에서는 오랫동안 해 오던 관례에 따라 이 이름을 둔 것일 뿐이다.

【10】《승사》에서 일컫기를, 1년 동안 직무를 맡는 까닭에 이 직명을 두었다고 하였다. 지금의 선문에서는 비록 때와 시기를 한정 짓는 것으로 이름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옛 제도를 본받은 것이다.

【11】出納이란 꺼내어 쓰고 넣어 두어 간직함이다.

【12】문장이나 서한을 관장함이니, 山門에서의 방이나 상소문 및 서간문과 기도문과 일반글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13】《곤나야》에 이르기를 「깨끗한 업을 짓는 까닭으로 말미암아 淨人이라 이름한다」 하였다.

【14】戒和는 함께 수행함이요, 身和는 함께 거주함이요, 口和는 다툼이 없음이요, 意和는 함께 기뻐함이요, 見和는 함께 이해함이요, 利和는 함께 이익을 균등히 함이다. 집사가 이르기를 「만약 대중이 화목하지 않으면 공경하고 순종하는 도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15】명공이 말하였다. 「물은 우유와 더불어 자못 근본 성질이 화합하니, 우유에 물을 더하면 색이 변하지 않는다.」

【16】什은 무더기이며 잡다한 것이다. 모아서 셈하는 법의 이름과 삶에 필요한 물건이 하나가 아닌 까닭에 그것을 일컬어 什物이라 한다. 관윤이 이르기를 「무릇 모양이나 형색이 있는 것은 모두 物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17】《능엄경》에 「발다바라가 목욕할 때 홀연히 水因을 깨달았다」 하고는 주석에서, 물은 접촉하는 바의 원인이 되기에 이해하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 하였다.

【18】[자신의 덕행이] 부족하면 곧 [공양을 받기에] 마땅히 않으며, 온전하면 이에 받을 자격이 있다.

【19】‘공덕이 얼마인가’란 한 발우의 밥이 그것을 일군 농부의 한 발우에 해당하는 땀과 피에서 나왔음을 말하고, ‘그것이 온 곳’이란 시주하는 자가 복을 구하고 화를 면하고자 함을 말한다.

【20】五度로 化身을 장엄하고 慧度로 法身을 장엄한다.

【21】卜式의 牧羊肥息에 이르기를 비단 羊 뿐만이 아니라 백성을 다스림에도 역시 그러하니, 악한 자는 그때마다 제거하여 무리를 해치지 못하게 해야한다 하였다. 주석에 이르기를, 息은 불어남을 일컬으며 또한 번성하여 많아짐을 말한다고 하였다.

【22】[실력이] 짧음이요 익숙하지 못함이다.

【23】王은 去聲이니, 아래도 같다.

【24】《좌전》에 「탐하고 탐함에 물림이 없다」 하고는 주석에 이르기를, 재물을 좋아하는 것을 貪이라 말하고 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婪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25】재물에 대해 욕심 부리는 바를 利라 하고 그 利를 즐기는 바를 養이라 한다.

【26】恤은 근심함이다.

【27】《계사》에 「갈무리를 게을리 함은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이요 용모를 꾸미는 것은 음탕질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였으니, 지키고 갈무리함을 게을리 하거나 건성으로 함은 곧 드러내어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임을 말한다.

【28】공자가 이르기를 「종일토록 배불리 먹으며 마음 쓰는 바가 없으면 어렵도다. 도박하는 이가 있지 않은가? 그것은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만 두는 것이 현명하다」 하고는 주석에 이르기를, 已는 그만둠이라 하였다.

【29】눈에서 나오는 것은 涕가 되고 입에서 나오는 것은 唾가 된다.

【30】회오리 치는 바람이 비록 천 번을 돌아 불더라도 반드시 미치지 못한 곳이 있으니, 사람이 비록 행위를 좋은 일로 꾸미며 몸소 행할지라도 어찌 선행을 남김없이 다하여 과오나 허물이 없겠는가를 말한 것이다.

【31】십공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컨대 진흙 중에 푸른 연꽃이 생겨나는 것과 같으니, 지혜로운 자는 연꽃을 취할 뿐 진흙을 취하지는 않는다.」

【32】栴檀은 이곳 말로 하면 ‘약을 주다’는 뜻이다. 흰 전단은 열병을 능히 치료하고 붉은 전단은 風腫을 능히 제거하니 모두 질병을 제거하여 몸을 편안케 해주는 약인 까닭에 與藥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33】복밭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은 자비의 복밭이요 삼보는 공경의 복밭이다.

【34】《지론》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비구는 하루에 한 끼의 식사를 하도록 제정하셨다. 후에 라후라가 어려서 출가하여 배고픔에 우니 부처님께서 울음을 그치게 하고는 아침에 죽 먹는 것을 하락하셨는데, 후세의 비구들이 이것을 시작으로 보아 아침에는 죽을 먹고 점심때는 밥을 먹었으니 그것을 언제나 변치 않는 규칙으로 삼았다」 하였으며,《박물지》에 이르기를 「잡스러운 음식은 백 가지 질병의 요사함이 모인 것이니, 음식은 적게 먹을수록 마음은 더욱 밝아지고 많이 먹을수록 마음에 손해가 된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野干이 열 가지 선을 마음으로 생각하며 7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더니 천상에 태어남을 얻었다」고 하였다.

【35】應供은 곧 부처님의 10가지 명호 가운데 하나이니 부처님과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36】《음의》에 말하였다. 「범어로 ‘초투제사’는 당나라 말로 ‘四方僧物(사방의 모든 승려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며 또는 別房施로 번역한다. 후위의 태무제 시광 원년에 가람을 건축하고는 처음으로 ‘초제’라는 이름을 세웠다.」

【37】즉 객실이다. 나그네가 번갈아 숙식하며 거쳐가는 것이 마치 밤낮이 거듭 번갈아드는 것과 같은 까닭에 旦過라 말하였다.

【38】《연화면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하였다: 비유컨대 사자가 명이 다하여 죽음에 모든 중생들이 감히 그 고기를 먹지 못하였으나 오직 사자의 몸에서 저절로 여러 벌레가 생겨나서 도리어 사자의 고기를 모두 먹어 버렸다. 아난아! 나의 불법 가운데는 파괴될 여지가 없으나 곧 모든 비구가 나의 3대 아승지겁의 법을 파괴하리다.」《칠몽경》에도 이와 같은 얘기가 있다.

② 自 警 文

神心洞照, 聖黙爲宗,[1] 旣啓三緘,[2] 宜遵四實.[3] 事關聖說, 理合金文, 方能輔翼敎乘‧光揚祖道, 利他自利, 功不浪施. 若乃竊議朝廷政事,[4] 私評郡縣官僚, 講[5]國土之豊凶, 論風俗之美惡,[6] 以至工商細務‧市井閑談‧邊鄙[7]兵戈‧中原寇賊[8]‧文章技藝[9]‧衣食貨財, 自恃己長, 隱他好事, 揄揚顯過, 指摘[10]微瑕, 旣乖福業, 無益道心. 如此游言, 並傷實德, 坐消信施, 仰愧龍天. 罪始濫觴,[11] 禍終滅頂, 何也? 衆生苦火, 四面俱焚, 豈可晏然, 坐談無義![12]

신비스러운 마음을 속속들이 비추는데는 성스러운 침묵이 으뜸이지만 이미 세 겹이나 꿰매 두었던 입을 열었으면 마땅히 네 가지의 성실함을 좇아야 한다. 일은 성인의 말씀에 관계되고 이치는 경전에 합치해야만 비로소 능히 교승敎乘을 돕고 조사님들의 도를 빛내어 드날림으로써 타인을 이롭게 하고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니 공덕을 헛되이 베푸는 것이 되지 않는다. 만약 조정의 정사를 몰래 논의하거나 군현의 관료들을 사사로이 비평하고 국토의 풍흉을 얘기하거나 풍속의 좋고 나쁨을 논하며, 또는 공상工商의 세세로운 일과 저자거리의 한가로운 얘기와 변방의 전쟁과 나라 안의 도적과 문장의 기예와 옷가지 먹거리 및 재물에 대해서 논하며, 스스로 자기의 장점만을 믿으며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은 숨기고 드러난 과실만을 끌어내어 퍼트리며 작은 허물을 지적한다면 이미 복된 업에 어긋나는 것이니 도를 닦는 마음에 도움될 것이 없다. 이와 같이 떠도는 말은 참된 덕을 상하게 하고 아울러 앉아서 신도의 시주를 녹이는 것이니 우러러 용중龍衆과 천중天衆에 부끄러울 뿐이다. 죄악은 작은 술잔을 넘치는 정도에서 시작되나 그 재앙은 정수리까지 마멸시킬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중생의 괴로운 불길은 사면에서 함께 타고 있는데 어찌 편안하게 의미 없는 좌담이나 늘어놓을 것인가.

【1】聖黙: 佛於摩竭, 掩關七日; 淨名, 杜口毘耶; 達摩, 少林面壁九載之類也.

【2】《家語》「孔子觀周, 遂入太祖.后稷之廟, 堂右階之前, 有金人焉, 三緘其口, 而銘其背曰????古之愼言人也????」.

【3】如語, 實語, 不妄語, 不異語也.

【4】紀綱法度曰政, 動作云爲曰事. 又在君爲政, 在臣爲事. 又大曰政, 小曰事.

【5】論也.

【6】上所說曰風, 下所習曰俗.

【7】《周紀》「四里爲酇, 五酇爲鄙, 五百家也.」 又邊也, 或云都鄙. 都者, 君子之居; 鄙者, 野人之居. 故, 古者謂野爲鄙, 謂都爲美.

【8】劫奪曰寇, 殺人曰賊.

【9】杜詩: 文章, 一小技.

【10】挑發也.

【11】《書》「三江濫觴.」 註言: 泉始流, 不過杯水, 泛溢而漸, 至于橫流也.

【12】身則生老病死, 心則生住異滅, 此無常苦火, 一時而四面俱起也. 全篇切戒口業也.

【1】성스러운 침묵이란, 부처님이 마갈에서 7일 동안 빗장을 걸어 닫고, 정명이 곤야에서 입을 다물고, 달마가 소림에서 9년 동안 면벽한 것과 같은 것들이다.

【2】《공자가어》에 「공자께서 주나라를 살펴보며 마침내 태조 후직의 묘에 들어감에 묘당의 오른쪽 계단 앞에 金人이 있었는데, 그 입이 세 겹이나 꿰매어져 있었으며 그 등에 명문이 새겨져 있기를 ????예전에 말을 삼가던 사람이다????라고 되어 있었다.」

【3】사실과 똑 같은 말과 진실된 말과 거짓되지 않는 말과 다르게 하지 않는 말 등이다.

【4】기강이 있고 법도가 있음을 일컬어 政이라 하고 동작하고 언행함을 일컬어 事라 한다. 또 임금에 있어서는 政이 되고 신하에 있어서는 事가 된다. 또 큰 것을 일컬어 政이라 하고 작은 것을 일컬어 事라 한다.

【5】論함이다.

【6】윗사람이 말한 바를 일컬어 風이라 하고 아랫사람이 익힌 바를 일컬어 俗이라 한다.

【7】《주기》에 「4里가 酇이 되며 5酇이 鄙가 되니 5백家이다」라 하였으며, 또는 변두리이며 혹은 都鄙라 한다. 都는 군자의 거처요 鄙는 야만인의 거처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野라 일컬으면 천한 것으로 여겼고 都라 일컬으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겼다.

【8】물건을 빼앗는 것을 도적질(寇)이라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노략질(賊)이라 한다.

【9】두보의 시에 ‘文章은 하나의 작은 技藝’라 하였다.

【10】도발이다.

【11】《서경》에 「세 강이 작은 술잔에서 넘실거린다」 하고는 주석에서 말하기를, 샘이 처음으로 흐를 때는 한 잔의 물에 불과하다가 불어나며 점점 나아가서는 [거대한 강둑도] 넘쳐흐르기에 이른다.

【12】몸은 곧 태어나고 늙어서 병들어 죽으며 마음은 곧 생겨나서 머물다가 달라지고는 소멸되니, 이는 무상한 괴로움의 불길로서 일시에 사면에서 함께 일어난다. 전체 문장에서 口業을 간절히 경계하고 있다.

???? 永明智覺壽禪師垂誡 및 八溢聖解脫門

① 垂誡[1]

學道之門, 別無奇特, 只要洗滌根塵下無量劫來業識種子. 汝等, 但能消除情念, 斷絶妄緣, 對世間一切愛欲境界, 心如木石相似, 直饒未明道眼, 自然成就淨身.[2] 若逢眞正導師, 切須勤心親近! 假使參而未徹‧學而未成, 歷在耳根, 永爲道種, 世世不落惡趣, 生生不失人身, 纔出頭來, 一聞千悟. 須信道! 眞善知識,[3] 爲人中最大因緣, 能化衆生, 得見佛性. 深嗟! 末世誑說一禪, 只學虛頭, 全無實解, 步步行有, 口口談空, 自不責業力所牽, 更敎人撥無因果, 便說飮酒食肉不礙菩提‧行盜行婬無妨般若, 生遭王法,[4] 死陷阿鼻, 受得地獄業消, 又入畜生[5]‧餓鬼, 百千萬劫, 無有出期. 除非一念回光, 立卽翻邪爲正, 若不自懺自悔‧[6]自度自修, 諸佛出來也無救你處. 若割心肝, 如木石相似, 便可食肉; 若喫酒, 如喫屎尿相似, 便可飮酒; 若見端正男女, 如死尸相似, 便可行婬; 若見己財他財, 如糞土相似, 便可侵盜. 饒你鍊得到此田地, 亦未可順汝意在, 直待證無量聖身, 始可行世間逆順事. 古聖施設, 豈有他心! 只爲末法僧尼, 少持禁戒, 恐賺他向善俗子, 多退道心, 所以廣行遮護. 千經所說‧萬論所陳: 若不去婬, 斷一切淸淨種; 若不去酒, 斷一切智慧種; 若不去盜, 斷一切福德種; 若不去肉, 斷一切慈悲種. 三世諸佛, 同口敷宣, 天下禪宗, 一音演暢, 如何後學, 略不聽從, 自毁正因, 反行魔說? 只爲宿熏業種, 生遇邪師, 善力易消, 惡根難拔. 豈不見? 古聖道: 「見一魔事, 如萬箭攢心, 聞一魔聲, 如千錐箚耳.」 速須遠離, 不可見聞, 各自究心, 愼莫容易.

도道를 배우는 문門에는 별로 기이하거나 특별난 것이 없으니, 다만 육근六根과 육진六塵 아래에서 한량없는 겁劫 동안 길러 온 업식業識의 종자를 씻어 내기 바랄 뿐이다. 너희들이 단지 정에 어린 생각을 소제하고 허망한 인연을 단절할 수 있으며 세상 일체의 애욕 경계에 대해 마음이 마치 목석과 같아질 수 있다면 설사 도안道眼을 밝히지는 못하더라도 자연스레 청정한 몸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진정한 마음으로 이끌어 주는 스승을 만나면 모름지기 근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해야 할 것이다. 가령 참구하였으나 철저하지 못하고 배웠으나 이루지 못하였더라도 귀를 스쳐 가기만 하면 영원히 불도佛道의 종자가 될 것이니, 세세생생 악취惡趣에 떨어지거나 사람의 몸을 잃지 않을 것이며 태어나자마자 하나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우칠 것이다. 모름지기 이르는 말을 믿으라! 참된 선지식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거룩한 인연이 되며 능히 중생을 교화하여 불성을 얻어 보게 할 것이다.

심히 애달다! 말세에 기만의 말을 일삼는 한 부류 선객들이 단지 허황된 화두만을 배울 뿐 실다운 이해는 전혀 없이 걸음걸음마다 유위有爲를 행하되 입과 입으로는 공空을 얘기하여 스스로 업력業力에 끌려 다니는 바를 따져 밝히지 않고, 다시 사람들에게 인과가 없다고 가르치며 술 마시고 고기 먹는 일이 보리에 장애가 되지 않고 도적질하고 음행하는 것이 반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말하고 있으니, 살아서는 왕의 법에 저촉이 되고 죽어서는 아비지옥에 빠질 것이며, 지옥의 모든 업을 받아서 소멸되면 또 축생과 아귀로 떨어져 백천만겁 동안 빠져 나올 기약이 없을 것이다. 오로지 한 생각으로 빛을 돌이키면 그 자리에서 곧 삿된 것을 뒤집어 올바른 것이 되게 할 것이니와 만약 스스로 참회하고 제도하여 수행하지 않는다면 모든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더라도 너를 구제할 근거가 없을 것이다.

만일 심장과 간을 도려내더라도 마치 목석과 같이 그렇게 여긴다면 곧 고기를 먹어도 좋을 것이며, 만일 술을 마시더라도 마치 똥오줌을 마시듯이 그렇게 여긴다면 곧 술을 마셔도 좋을 것이며, 만일 단정한 남녀를 보더라도 마치 시체와 같이 그렇게 여긴다면 곧 음행을 해도 좋을 것이며, 만일 자신의 재물이나 남의 재물을 보아도 마치 똥덩어리 같이 그렇게 여긴다면 곧 도적질을 해도 좋을 것이다. 설령 네가 연마하여 이 경지에 이르더라도 또한 네 뜻에 있는 대로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니 곧장 한량없는 성스러운 몸을 증득하기 기다려야 비로소 세간의 거꾸로 되고 바로 된 일들을 모두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성인들이 베푼 설교에 어찌 별다른 마음이 있겠는가! 단지 말법의 승려가 되어 금지의 계율도 얼마 지니지 않은 채 저 선한 법을 향하는 속인들을 속임으로써 도심道心이 많이 물러설까 두려운 까닭에 삿된 것을 막고 참된 것을 보호하는 행위를 널리 펼친 것일 뿐이다.

천 가지의 경전에서 말하고 만 가지의 논설에서 진술하되, 만일 음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일체의 청정종자(淸淨種)를 끊는다 하시고, 만일 음주를 버리지 않는다면 일체의 지혜종자(智慧種)를 끊는다 하시고, 만일 도둑질을 버리지 않는다면 일체의 복덕종자(福德種)를 끊는다 하시고, 만일 육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일체의 자비종자(慈悲種)를 끊는다 하였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한 입으로 널리 선양하셨고 천하 선문의 종사들이 한 목소리로 널리 진술하였는데 어찌하여 후학들은 조금도 들어 따르지 않고 스스로 바른 인연을 헐어버리고 도리어 마귀의 말을 행하는 것인가. 단지 오래도록 묵힌 업의 종자가 되어 세상에 태어나서 삿된 스승을 만나니 착한 힘은 쉽게 삭아들고 악의 뿌리는 뽑아 버리기 어려울 뿐일 것이다.

어찌 보지 못했는가! 옛 성인이 말하기를 「한 가지 마군이의 일을 보면 마치 만 개의 화살이 심장을 뚫는 것과 같이 여기고, 한 마디 마군이의 소리를 들으면 마치 천 개의 송곳니 귀를 찌르는 것과 같이 여기라」 하였으니, 모름지기 신속하게 멀리 여의어 보지도 듣지도 말 것이며 각자 스스로 마음을 공부함에 삼가 쉽게 여기지 말 것이다.

【1】抗州.永明.智覺禪師, 諱延壽, 餘杭.王氏子. 七歲誦《法華》, 群羊跪聽. 年二十八歲出家, 嗣天台.德韶國師, 世傳阿彌陀佛後身.

【2】有說淨身, 淸淨法身者, 非也. 豈有未明道眼而先能成就法身也? 但自淨身業之謂也.

【3】善知識有三: 一, 外護.《止觀》云「不揀黑白, 但能如母養兒, 調理得所.」《輔行》「自己身心爲內, 望他身心爲外, 爲外所護, 名外護善知識.」 二, 同行.《止觀》云「更相策發, 不昏不散, 日有其新.」《輔行》云「己他遞相策發, 人異行同, 名同行善知識.」 三, 敎授.《止觀》云「內外通塞, 皆能決了, 善巧說法.」《輔行》云「宣傳聖言, 名之爲敎, 訓誨於我, 名之爲授, 名敎授善知識.」

【4】佛告比丘: 「若人作賊, 偸盜他物, 爲主所繫縛, 送付於王, 治其盜罪. 王卽遣人, 閉着牢獄, 或截手足, 或時鋸解, 如是種種, 苦切殺之. 命終之後, 生地獄中, 受無量苦, 地獄罪畢, 生畜生中象馬牛羊等, 經百千歲, 以償他力, 飢渴苦勞, 不可具言, 經百千歲, 受如是苦也.」

【5】《婆沙論》云: 「謂彼橫生, 稟性愚痴, 不能自立, 爲人畜養而生故, 曰畜生.」

【6】自懺自悔者, 華.梵兩存. 懺名白法, 悔名黑法, 白法須尙, 黑法須捨. 又懺名披陳衆失, 悔名斷相續念.

【1】항주 영명 지각선사의 휘는 연수이며 여항 왕씨의 아들이다. 7세 때 법화경을 외우니 羊의 무리가 무릎을 꿇고 들었다. 18세 때 출가하여 천태 덕소국사의 법을 이으니 세간에서는 아미타불의 후신이라고 전해졌다.

【2】어떤 이가 淨身을 淸淨法身이라 말하는데 틀린 말이다. 어찌 아직 道眼도 밝히지 못한 채 앞서서 능히 법신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다만 몸의 업을 스스로 맑게함을 말함일 뿐이다.

【3】선지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外護이니,《지관》에 이르기를 「흑백을 가리지 않고 단지 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하듯이 이치를 조절하여 마땅한 바를 얻는다」 하였으며,《보행》에 「자기의 몸과 마음을 안으로 여기고 다른 이의 몸과 마음을 밖으로 여기니 바깥 사람에 의해 보호받는 바가 되는 까닭에 外護선지식이라 이름한다」 하였다. 두 번째는 同行이니,《지관》에 이르기를 「거듭 서로를 채찍질로 분발하여 혼미하지 않게 하고 산란하지 않게 하니 날로 그 새로움이 있다」 하였으며,《보행》에 이르기를 「자신과 남이 번갈아 서로 채찍질하여 분발함에 사람은 다를지라도 행하는 바는 같기에 同行선지식이라 이름한다」 하였다. 세 번째는 敎授이니,《지관》에 이르기를 「안팎으로 통하고 막혔던 것을 모두 능히 마무리하여 정당하고도 공교함으로 설법한다」 하였으며,《보행》에 이르기를 「성인의 말을 널리 전하는 것을 敎라 이름하고 나 자신을 훈계하여 가르치는 것을 授라 이름하니 敎授선지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하였다.

【4】부처님이 비구에게 알려 주었다. 「만약 사람이 도적질하여 다른 이의 물건을 훔쳤다면 주인에 의해 결박되어 왕에게 보내져서 그 도적질한 죄를 다스리게 할 것이며, 왕은 곧 사람을 파견하여 잡아다 감옥에 가두고 손발을 절단시키거나 톱으로 쓰는 등 이와 같은 가지가지의 고통으로 그를 죽일 것이다. 죽은 후에는 지옥에 태어나 무량한 고통을 받을 것이며, 지옥의 벌이 끝나면 축생 가운데 코끼리나 말 또는 소나 양 등으로 태어나 백천세를 지나도록 다른 이의 힘든 일을 대신함에 飢渴의 고통과 수고로움은 갖추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니, 백천세가 지나도록 이와 같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5】《파사론》에 말하였다. 「저 橫生들은 품성이 어리석어 능히 자립할 수 없으므로 사람에 의해 사육되어 살아가는 까닭에 畜生이라 일컫는다.」

【6】自懺自悔란 중화의 말과 범어를 같이 쓴 것이다.[→義淨의《有部毘奈耶》卷15 注에, 懺은 가벼운 의미로서 단지 용서를 구하는 것을 말하고, 悔는 범어 āpatti-pratideśana에 해당하며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여 죄를 없애는 說罪로서 의미가 무겁다.] 懺은 白法을 이름하고 悔은 黑法을 이름하니 백법은 모름지기 숭상해야 하고 흑법은 모름지기 버려야 한다. 또 懺은 대중의 실수를 나누어 벌려 놓음을 이름한 것이고 悔는 연이어지는 생각을 끊음을 이름한 것이다.



② 八溢聖解脫門[1]

禮佛者, 敬佛之德也; 念佛者, 感佛之恩也; 持戒者, 行佛之行也; 看經者, 明佛之理也; 坐禪者, 達佛之境也; 參禪者, 合佛之心也; 得悟者, 證佛之道也; 說法者, 滿佛之願也. 實際理地, 不受一塵, 佛事門中, 不捨一法. 然此八事, 猶如四方四隅, 闕一不可. 前聖後聖, 其揆一也, 六波羅蜜, 亦須兼行. 六祖云: 「執空之人, 滯在一隅, 謂不立文字. 自迷猶可, 又謗佛經, 罪障深重, 可不戒哉!」

부처님께 예하는 것(禮佛)은 부처님의 덕을 공경하는 것이고, 부처님을 생각한다는 것(念佛)은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며, 계를 지닌다는 것(持戒)은 부처님의 행위를 따라 행한다는 것이고, 경전을 본다는 것(看經)은 부처님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며, 앉아서 선을 닦는다는 것(坐禪)은 부처님의 경계에 도달하는 것이고, 선을 참구한다는 것(參禪)은 부처님의 마음에 합치하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得悟)은 부처님의 도를 증득하는 것이고, 법을 말한다는 것(說法)은 부처님의 바램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의 영역과 진리의 경지에는 한 톨의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부처님의 일을 하는 문안에는 한 가지의 법도 버리지 않는다. 그러한 까닭에 이 여덟 가지 일은 마치 네 방위 및 네 모서리와 같아서 하나라도 빠트릴 수 없다. 예전의 성인과 이후의 성인도 그 법도는 한 가지이며, 육바라밀 또한 겸하여 수행해야 한다.

육조가 이르기를 「공空에 집착한 사람은 한 구석에 머물러 있으면서 일컬어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한다. 제 자신 미혹한 것은 그래도 괜찮으나 불경을 비방함에 그 죄의 업장業障이 깊고도 무거우니 어찌 경계하지 않겠는가」라 하였다.

【1】溢, 滿也. 若八事滿足, 則得解脫聖道.

【1】溢은 가득함이다. 만일 여덟 가지 일을 만족히 하면 곧 해탈의 성스러운 도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