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선림사기전서경사서명사석현칙찬 禪林妙記前序 京師西明寺釋玄則撰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7:11
 

 

선림사기전서경사서명사석현칙찬 禪林妙記前序 京師西明寺釋玄則撰[1]

 

一切諸佛, 皆有三身: 一者法身, 謂圓心所證; 二者報身, 謂萬善所感; 三者化身, 謂隨緣所現. 今釋迦牟尼佛者, 法身久證, 報身久成, 今之出現, 盖化身耳. 謂於過去釋迦佛所, 發菩提心, 願同其號, 故今成佛, 亦號釋迦.[2] 三無數劫, 修菩薩行, 一一劫中, 事無量佛, 中間續遇錠光如來,[3] 以髮布泥, 金華奉上, 尋蒙授記,[4] 得無生忍. 然, 一切佛將成佛時, 必經百劫, 修相好業, 其釋迦發心, 在彌勒後, 當以逢遇弗沙如來, 七日翹仰, 新新偈讚, 遂超九劫, 在前成道.[5] 將欲成時, 生兜率天, 號普明菩薩, 盡彼天壽, 下閻浮提, 現乘白象, 入母右脅. 其母摩耶, 夢懷白象,[6] 梵仙占曰: 「若夢日月, 當生國王; 若夢白象, 必生聖子.」 母從此後, 調靜安泰, 慈辯日異. 菩薩初生, 大地震動, 身紫金色, 三十二相, 八十種好, 圓光一尋. 生已, 四方各行七步, 爲降魔梵, 發誠實語: 「天上天下, 唯我獨尊.」 抱入天祠, 天像悉起,[7] 阿私陀仙合掌歎曰: 「相好明了, 必爲法王. 自恨當死, 不得見佛.」[8] 斯則淨飯國王之太子也, 字悉達多, 祖號師子頰, 父名淨飯, 母曰摩耶. 代代爲輪王, 姓瞿曇氏,[9] 復因能事, 別姓釋迦.[10] 朗悟自然, 藝術天備, 雖居五欲, 不受欲塵. 遊國四門, 見老病死及一沙門, 還入宮中, 深生厭離. 忽於夜半, 天神扶警, 遂騰寶馬, 踰城出家. 苦行六年,[11] 知其非道, 便依正觀, 以取菩提. 時有牧牛女人, 煮乳作糜, 其沸高涌, 牧女驚異, 以奉菩薩, 菩薩食之, 氣力充實. 入河洗浴,[12] 將登岸時, 樹自低枝, 引菩薩上. 菩薩從此, 受吉祥草, 坐菩提樹,[13] 惡魔見已,[14] 生嗔惱心云: 「此人者, 欲空我界.」 卽率官屬十八億萬, 持諸苦具, 來怖菩薩, 促令急起, 受五欲樂. 又遣妙意天女三人,[15] 來惑菩薩. 爾時, 入勝意慈定, 生憐愍心, 魔軍自然墮落退散, 三妙天女化爲癭鬼.[16] 降魔軍已, 於二月八日明相出時, 而成正覺.[17] 旣成佛已, 觀衆生根, 知其樂小, 未堪大法, 卽趣波羅奈國, 度憍陳如等五人, 轉四諦法輪, 此則三寶出現之始也. 其後說法度人之數, 大集菩薩之會, 甚深無相之談, 神通示現之力, 經文具之矣. 又於一時, 昇忉利天,[18] 九旬安居, 爲母說法. 時, 優闐國王波斯匿王, 思慕佛德, 刻檀畵氎, 以寫佛形. 於後, 佛從忉利天下, 其所造像, 皆起避席, 佛摩其頂曰: 「汝於未來, 善爲佛事.」 佛像之興, 始於此矣. 化緣將畢, 時從厭怠,[19] 佛便告衆: 「却後三月, 吾當涅槃.」 復記後事, 如經具說. 然如來實身, 常在不滅故,《法華云: 「常在靈鷲山[20]及餘諸住處.」 今生滅者, 是佛化身, 爲欲汲引, 現同其類, 所以受生; 復欲令知有爲必遷, 所以示滅; 又衆生根熟, 所以現生; 衆生感盡, 所以現滅. 佛涅槃後, 人天供養, 起諸寶塔. 又大迦葉召千羅漢, 結集經藏, 阿難從鎖隙入, 誦出佛經, 一無遺漏, 如甁瀉水, 置之異器. 一百年外, 有鐵輪王, 字阿輸迦, 亦名阿育, 役御神鬼, 於一日中, 天上‧人間, 造八萬四千舍利寶塔.[21] 其佛遺物衣鉢杖等及諸舍利, 神變非一. 逮., 感夢金軀日佩丈六之容, 一如釋迦本狀. 又孫權, 燒椎舍利, 無所變壞.[22] 爰及浮江石像,[23] 泛海瑞容,[24] 般若冥力,[25] 觀音密驗,[26] 別記具之, 事多不錄.

弗沙佛偈: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世間所有我盡見, 一切無有如佛者.

일체의 모든 부처님은 모두 세 가지 몸이 있음에 그 첫 번째가 법신法身이니 원만한 마음으로 증득한 바를 일컬으며, 두 번째는 보신報身이니 만 가지의 착함으로 감응하는 바를 일컬으며, 세 번째는 화신化身이니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바를 일컫는다.

지금의 석가모니불은 법신을 오래 전에 증득하였고 보신도 오래 전에 이루었으니 지금에 출현하신 것은 대개 화신일 뿐이다. 말하기를, 과거 석가불의 처소에서 보리심을 내어 그 칭호와 같기를 원하였던 까닭에 지금 성불하여 역시 ‘석가’라 호칭한 것이라 하였다. 삼아승지겁 동안 보살의 행을 닦으시고 낱낱의 겁마다 무량한 부처님을 섬겼는데, 그 중간에 연이어 정광여래를 만나 머리칼을 진창에 펴고 황금의 꽃을 받들어 올리고는 얼마지 않아 수기를 받으사 무생인無生忍을 얻으셨다. 그러나 일체의 부처님께서 막 성불하려 할 때는 반드시 백 겁을 지나며 상호업相好業을 닦으셔야 하는데, 석가께서 발심한 것은 미륵보다 뒤였으나 불사여래를 만나서 7일 동안 간절히 우러러보며 새롭고 새로운 게송으로 찬탄하여 마침내 아홉 겁을 뛰어 넘어서 앞서 불도를 이루었다.

장차 불도를 이루고자 할 때에 도솔천에 태어나 보명보살이라 호칭하며 그곳 하늘의 수명이 다하고는 염부제로 내려와 흰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감을 나타내었다. 어머니 마야부인이 꿈에서 흰 코끼리를 품자 범선이 점을 쳐서 이르기를 「만약 해나 달의 꿈을 꾸었으면 응당 국왕을 생산하실 것이며 만약 흰 코끼리의 꿈을 꾸었으면 반드시 성인을 생산하실 것입니다」 하였는데, 어머니는 그 후로부터 고르고 고요하며 편안하고 태연하였으며 자애로운 말씨가 날로 달라졌다.

보살께서 처음으로 태어나자 대지가 진동하고 몸은 자줏빛의 금색이었으며 서른 두 가지 모습과 여든 종호種好를 갖추고 둥근 빛이 한 길이나 벋쳤다.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거닐어 악마와 범천의 항복을 받았으며, 성실한 말씀을 드러내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하셨다. 품에 안고 천신의 사당에 들어가자 천신의 형상들이 모두 일어섰으며, 아사타선인이 합장하고 찬탄하여 말하기를 「상호가 명료하시니 필시 법왕이 될 것입니다. 저는 죽음에 임박하였기에 부처님을 뵈올 수 없는 것이 스스로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하였다.

이가 곧 정반국왕의 태자이니 이름은 ‘실달다’요 조부의 이름은 ‘사자협’이며 부친의 이름은 ‘정반’이고 모친은 ‘마야’이다. 대대로 윤왕輪王이 되어서 성이 ‘구담’씨이며 또한 장한 일의 인연으로 따로이 성씨를 ‘석가’라 하였다. 명랑한 깨달음이 자연히 갖추어져 있고 예술을 천부적으로 갖추고 있었으며 비록 오욕에 거처하여도 욕된 세속의 티끌을 받지 않았다.

나라 안의 네 문을 구경 다니며 늙고 병들고 죽는 일과 한 사문을 보고는 궁중으로 돌아와 세속이 싫어 떠나고자는 마음이 깊이 생겼으며, 홀연히 야밤에 천신이 붙들어 경책하기에 마침내 아끼던 말을 타고 성을 넘어 출가하였다.

6년 동안 고행하다 그것이 올바른 도가 아님을 알고는 문득 바르게 들여다보는 힘에 의지하여 그로써 보리를 취하고자 하였다. 이 때 소를 치는 여인이 우유를 끓여 미음을 만듦에 그것이 끓다가 높이 솟아오르자 소 치는 여인이 놀랍고도 이상하게 여기고 그것을 받들어 보살에게 바치자 보살이 그것을 먹고는 기력을 차렸다. 강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는 막 언덕에 오르려 할 때 나무가 저절로 가지를 낮추어 보살을 위로 끌어 올렸다. 보살은 이로부터 길상초를 받아 보리수 밑에 앉으니 악마가 보고는 성내고 번뇌하는 마음을 일으켜 말하기를 「이 사람이 나의 세계를 텅 비게 하려고 한다」라고 하며 곧 관속 18억만을 거느리고 모든 고문의 도구를 가지고 와서 보살을 위협하며 재촉하기를 급히 일어나서 오욕의 즐거움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또 묘의천녀 세 명을 보내 와서 보살을 유혹하였다. 이 때에 수승한 뜻을 지닌 자비의 선정(勝意慈定)에 들어 연민의 마음을 내니 마군은 자연스레 몰락하여 물러나 흩어지고 세 명의 묘의천녀는 혹 달린 귀신이 되었다. 마군을 항복시킨 뒤 2월 8일 새벽 먼동이 틀 때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

이미 성불을 하고 나서는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여 그들이 작을 것을 즐기고 대법을 아직 감당하지 못함을 아시고 곧 바라나국으로 나아가 교진여 등 5명을 제도하고 사성제四聖諦의 법바퀴를 굴리시니 이것이 곧 삼보가 출현하게 된 그 처음이다. 그 후 설법으로 제도한 사람의 숫자와, 보살들을 크게 모은 회상會上과, 매우 깊고도 모습이 없는 말씀과, 신통이 드러나 보인 힘 등은 경전에 갖추어져 있다.

또 한 때는 도리천에 올라가 9순旬 동안 안거하며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였다. 그 때 우전국왕과 파사닉왕이 부처님의 덕을 사모하여 박달나무에 새기고 모직물에 그려 부처님의 형상을 묘사하였다. 뒤에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내려오자 조성한 형상들이 모두 일어나 자리를 피하거늘 부처님께서 그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너희들은 미래에 불사를 잘하여라」 하였으니 불상의 발흥이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교화의 인연이 장차 다하려 하자 때로 싫증 내고 게으름을 부리기에 부처님께서 곧 대중에게 이르기를 「3개월 후에 내 마땅히 열반에 들 것이다」 하고 다시 뒷일을 수기授記하니 경전에 갖추어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여래의 법신法身은 항상 존재하여 멸하지 않는 까닭에《법화경에 이르기를 「항상 영취산 및 여타의 모든 머무르는 곳에 계신다」 하였으니 지금에 나고 멸하는 것은 부처님의 화신化身으로, 끌어들여 인도하고자 하여 그들과 같은 무리로 몸을 드러내는 까닭에 생生을 받는 것이요, 다시 유위법有爲法은 반드시 변천함을 알게 하고자는 까닭에 멸함을 보이신 것이며, 또 중생들의 근기가 무르익은 까닭에 생生을 드러내 보인 것이요, 중생들의 감응이 다한 까닭에 입멸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인계와 천계에서 함께 공양하며 뭇 보탑들을 일으켰다. 또 대가섭이 천 명의 나한을 불러들여 경장經藏을 결집함에 아난이 닫혀진 문틈으로 들어가 부처님의 경전을 암송해 내었는데 하나도 빠트리지 않음이 마치 병의 물을 부어 다른 그릇으로 옮기는 것과 같았다. 1백년 후에 자는 아륜가이며 아육이라고도 이름하는 철륜왕이 있었는데 귀신들을 부려 하루 사이에 천상과 인계에 8만4천의 사리보탑을 조성하였다. 부처님께서 남긴 의발과 석장 및 모든 사리들은 그 신통변화가 한둘이 아니었다. 한 나라 명제 때 이르러 금색 몸에 햇빛을 두른 16척의 모습을 꿈에 감응하였는데 석가의 본 모습과 하나같이 같았다. 또 오 나라 주인인 손권이 사리를 불태우고 방망이로 쳤으나 아무런 변화나 부서짐이 없었다. 이에 강으로 떠내려온 석상과 바다로 떠내려온 관음보살의 상서러운 모습과 반야경의 그윽한 힘과 관음보살의 비밀스런 영험 등은 따로 기록하여 그 내용을 갖추고 여기서는 일이 번잡하여 수록하지 않는다.

불사불을 찬탄하는 게송에,

하늘위나 하늘아래 부처같음 없을지니,

시방세계 그무엇도 견줄것이 없더이다.

이세간에 있는것을 내가모두 보았건만,

부처님과 같은것은 아무것도 없더이다.

【1】師亦有後序.

【2《大論云: 「釋迦先世作瓦師, 名大光明. 時有佛, 名釋迦文, 弟子名舍利佛目連阿難, 與弟子俱到瓦師舍一宿. 爾時, 瓦師布施草座燈明蜜漿, 便發願言: ������我於當來作佛, 如今佛名, 弟子名亦如今時������.」 《婆娑論云: 「過去有佛出世, 號釋迦. 彼佛化導有情, 恒涉道路, 爲風所薄, 肩背有疾, 令阿難: ������往陶師家, 求胡麻油及以煖水, 爲吾塗洗.������ 侍者往求. 時彼陶師名曰廣識, 辦油及香水, 爲佛灌洗, 風疾除愈. 佛爲說法, 彼聞發願云云也.」

【3《大論云: 「太子生時, 一切身邊, 光如燈故, 云燃燈. 以至成佛, 亦名燃燈.」 亦云錠光, 有足名錠, 無足名燈.

【4】佛因地, 作善慧仙人, 遇燃燈佛降怨王請, 布髮掩泥, 佛履而過之, 又上金蓮華七枝, 佛與記曰: 「汝當得佛, 號釋迦.」

【5《本生經云: 「過去有佛, 名曰弗沙, 有二菩薩, 一名釋迦, 一名彌勒. 是佛觀釋迦, 心未成熟, 其諸弟子, 心皆純熟, 如是思惟: ������一人之心, 易可速化, 衆人之心, 難可疾治.������ 卽上雪山, 入寶窟中, 入火禪定. 時, 釋迦菩薩作外道仙人, 上山採藥, 見佛歡喜, 翹一足立, 叉手向佛, 一心而觀, 目未曾眴, 七日七夜, 以偈讚佛. 於是, 超過去九劫, 九十一劫得阿耨菩提.」

【6《普曜經云: 「菩薩當作白象入胎, 何以故? 三獸渡河, 象窮底故.」

【7《因果經云: 「置太子七寶象輿入城時, 王及種, 未識三寶, 卽將太子, 往詣天祠, 太子旣入, 梵天形像, 皆從座起, 禮太子足.」 餘經, 與此小異.

【8】阿斯陀仙在香山中, 自彼飛來, 詣太子所, 相太子已, 忽然悲泣. 王問: 「有何不祥, 涕泣如是?」 仙言: 「假使天雨金剛泰山, 不能動其一毛, 必當作佛. 我今年暮, 當生無色天上, 不得見佛, 不聞其法故, 自悲耳.」

【9】瞿曇, 或云瞿曇彌, 或喬答摩, 皆訛也. 南山云: 「瞿曇星名, 從星立稱.」 應法師翻爲「地最勝」, 謂人中此族最勝.《十二遊經明: 「阿僧祇初, 大茅草王捨位付臣, 師波羅門, 遂受其姓, 名小瞿曇.」 仁賢劫初, 識神託生, 立瞿曇姓故, 知瞿曇遠從過去, 近自民主云.

【10】「釋迦」此翻「能仁」.《長阿含云: 「昔有輪王, 姓甘蔗氏. 聽次妃之譖, 擯四太子, 至雪山北, 自築城居, 以德歸人, 不數年間, 蔚爲强國. 父王悔憶, 遣使往召, 四子辭過不還, 父王三歎: ������我子釋迦!������ 因命氏.」

【11】逾春城於八夜, 捿雪嶺於六年.

【12《華嚴經云: 「菩薩浴時, 諸天競取此水, 將還天宮, 池中水族, 飮此水已, 得生天上. 菩薩爲利益故, 度脫水族, 示現洗浴.」

【13《西域紀云: 「泥蓮河西南十里有樹, 名畢波羅.」 是爲菩提樹也.

【14】魔王波旬, 於前世, 但作一寺主, 受一日八戒, 布施辟支弗一鉢之食故, 生第六天, 作天魔王; 佛, 於無量劫, 廣修功德, 供養無量諸佛, 亦復供養聲聞緣覺之人不可數計, 豈波旬所能動耶? 宜乎惡魔軍衆退散而降.《大乘方便經云: 「若非佛力, 彼等惡魔, 豈得近佛. 魔爲欲界尊勝, 勝旣先降, 餘皆伏故.」

【15】皆波旬女也.

【16】癭, 頸瘤也, 言癭項瘤之鬼, 東坡詩: 濶領先裁盖癭衣.《博物志云: 「山居多癭, 飮泉水之不流者也.」

【17】以子月爲歲首, 之二月卽今之獵月也.

【18】時, 如來年七十八歲.《瑞應經云: 「摩耶産太子後七日, 命終, 以懷菩薩功德大故, 生忉利.」 又: 「太子自知福德威重, 無有女人堪受禮者, 因其將終託之而生.」

【19】於時, 有緣衆生, 皆已度訖, 唯餘無緣難化者故, 而生厭怠.

【20】如來因時, 嘗爲鷲鳥, 於此山中, 養育父母, 由此得名. 又城南有屍多林, 鷲鳥居之, 多食死人, 人欲死者, 鷲翔其家, 悲鳴作聲, 人以預知, 故名靈鷲.

【21《育王傳云: 「王詣鷄頭摩寺, 至上座耶舍前言: ������我今於閻浮提內, 欲立八萬四千寶塔.������ 耶舍曰: ������王若欲一時作塔, 我於大王作塔時, 以手障日, 可遍勅國界, 手障日時, 盡起立塔.������ 王造八萬四千寶篋, 各盛一舍利, 以一舍利付一夜叉, 使遍閻浮, 共有一億人處, 起一寶塔.」

【22】.赤烏四年, 康居國, 行至建康, 說像行道, 人初見, 謂之妖異, 有司聞之. 王詔問之, 曰: 「如來化已千年, 靈骨舍利, 神應無方.」 主曰: 「可得舍利, 當爲塔之.」 暇請七日, 懇求無驗. 乃至三七日五鼓時, 鏗然有聲, 曰: 「果吾願矣.」 以進之. 與公卿聚觀之, 歎曰: 「希世之瑞也.」 使力士椎之, 砧碎而光明自若. 於時, 建塔, 立建初寺, 使居之.

【23】西晋.建興元年, 有維衛迦葉二佛石像泛海而至松江.滬瀆口, 吳縣.朱膺素奉正法, 同數人共迎, 石像於是, 乘流自至, 背有銘志, 一名維衛, 一名迦葉, 登舟, 其輕如羽, 安于通玄寺供養.

【24《高僧傳云: 「.咸和中, 丹陽高悝, 於張候橋浦得一金像, 無光趺而製造甚工, 前有書云育王第四女所造, 奉安于張干寺. 後一年許, 漁人張係世, 於海口得銅蓮華趺浮在水上, 卽取送縣, 表上, 勅使安像足下, 符合無差. 後有僧五人, 詣云: ������昔於天竺育王像, 至遭難, 藏在河邊, 亂後尋失所在, 近感夢云爲高悝所得, 欲一見禮拜.������ 引至長干, 五人見像拜泣, 像卽放光. 五人云: ������本有圓光, 卽在遠處, 亦尋至矣.������ 合浦蕫宗之得一佛光, 刺史表上, 簡文勅施像, 孔穴懸同, 光色一種. 凡四十餘年, 東西祥感, 光趺方具. 其於靈異, 可勝道哉!」

【25】智藏開善寺, 聰慧鋒銳. 有相者占曰: 「師雖慧悟, 乃報年可至三十一矣.」 師時年方二十九, 師乃營室設像, 《般若經, 常晝夜不輟. 至期, 忽有空中聲曰: 「汝以般若功, 得倍報年.」 師聞之喜躍, 功倍於前. 後遇相者, 驚曰: 「師何尙存?」 卽具述其由, 相者歎曰: 「佛法之靈, 非世智之所擬議.」

【26】時, 求那跋陁, 五明呪述無不該精, 譙王欲請《華嚴經, 自知未善語, 旦夕有憂, 常誦《觀音陀羅尼, 以求冥應, 忽夢白衣人, 持劒擎一人頭來言: 「何事有憂?」 以事具告, 神曰: 「無憂!」 卽以刀易首, 更安新頭, 語令回轉曰: 「得無痛否?」 答曰: 「無傷.」 覺心快然, 備曉言, 於是開講大弘佛法.

【1】선사가 쓴 後序가 또 있다.

【2《대론에 이르기를 「석가께서 전생에 와사였을 때 대광명이라 이름하였다. 그 당시 부처님이 있어서 석가문이라 이름하였으며 제자들은 사리불‧목련‧아난이라 이름하였는데, 제자들과 함께 와사의 집에 와서 하루를 묵었다. 이 때 와사가 풀로 엮은 자리와 밝은 등불 및 꿀을 보시하며 문득 서원을 내어 말하기를 ������제가 나중에 부처가 되면 지금의 부처님 이름과 같게 할 것이며 제자들의 이름 또한 지금과 같게 하고자 합니다������라 했다」고 하였다.《파사론에 이르기를 「과거에 어떤 부처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 호를 석가라 하였다. 그 부처님이 有情物을 교화하여 인도함에 항상 길을 나다니게 되어 바람결에 [피부가] 메말라 어깨와 등 쪽으로 질병이 생기게 되었기에 아난을 시켜 ������도사의 집에 가서 호마기름과 따뜻한 물을 구해 와서 나를 씻겨 달라������ 하므로 시자가 가서 그것들을 구하였다. 당시 그 도사는 이름을 광식이라 하였는데, 기름과 향내 나는 물을 마련하여 부처님에게 끼얹어 씻어주니 풍질이 말끔히 나았다. 부처님이 그를 위해 법을 설하여 주자 그가 듣고는 발원하여……」라 하였다.

【3《대론에 이르기를 「태자가 태어날 때 몸 주변이 온통 마치 등불과도 같이 빛이 났기에 ‘燃燈’이라 일컬은 것이다. 성불함에 이르러서도 또한 ‘연등’이라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또는 ‘錠光’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등 가운데] 발이 있는 것을 錠이라 이름하고 발이 없는 것을 燈이라 이름한다.

【4】부처님이 그 땅에 인연하여 선혜선인이 되었을 때 항원왕의 [법문] 요청에 나아가던 연등불을 만나 머리칼을 벌려 진흙길을 덮으니 연등불이 그것을 밝고 지나갔으며 또 금연화 7가지를 바쳤더니 연등불이 授記하며 말하기를 「너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 ‘석가’라 부를 것이다」라 하였다.

【5《본생경에서 말하였다. 「과거에 ‘불사’라고 이름하는 부처가 있었는데 두 보살이 있었으니 한 분은 석가라 이름하였고 한 분은 미륵이라 이름하였다. 이 부처님이 석가를 살펴보니 그 마음이 아직은 성숙되지 않았으나 그의 모든 제자들은 마음이 모두 농익어 있었는데, 그와 같음에 생각하기를 ������한 사람의 마음은 속히 교화하기 쉬우나 대중들의 마음은 재빨리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다������라 하고는 곧 설산에 올라서 보굴 안으로 들어가 火禪定에 들었다. 이 때 석가보살이 외도의 선인이 되어 산을 올라와 약을 캐다가 부처님을 보고는 환희심을 내어 한 발로 발돋움하여 서서 부처님을 향해 叉手한 채 한결같은 마음으로 觀함에 눈도 깜짝이지 않으며 7일 밤낮을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하여 과거 9겁을 초월하여 91겁만에 아뇩보리를 증득하게 되었다.」

【6《보요경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응당 흰 코끼리를 타고 胎中에 드는데 어인 까닭인가? 세 짐승이 물을 건넘에 코끼리가 그 바닥까지 철저히 딛고 건너는 까닭이다.」

【7《인과경에서 이르기를 「태자를 칠보로 장식한 코끼리 수레에 안치하여 성으로 들어감에 왕과 釋氏들이 [태자가] 三寶 가운데 으뜸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곧장 태자를 데리고 가서 하늘신을 모시는 사당에 이르니 범천의 형상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태자의 발에 경배하였다」라 하였는데, 다른 경전은 이러한 내용과 조금 다르다.

【8】아사타선인이 향산에 있다가 그곳으로부터 날아와 태자가 있는 곳에 이르러 태자의 관상을 보고는 홀연히 슬퍼하며 울었다. 왕이 묻기를 「어떤 불길한 일이 있길래 이와 같이 눈물을 흘리며 우는가?」 하니 선인이 말하기를 「설령 하늘에서 금강으로 된 태산을 비내리듯 하여도 그 털끝 하나도 능히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저는 이제 연로하여 응당 무색천상에서 태어날 것이기에 부처님을 뵐 수 없으므로 그 법을 듣지 못하는 까닭에 스스로 슬퍼할 뿐입니다」 하였다.

【9】‘구담’을 혹은 ‘구담미’라 하며 혹은 ‘교답마’라 하는데 모두 잘못 전해진 것이다. 남산이 말하기를 「구담은 별 이름인데 그 별을 좇아 명칭을 세웠다」 하였으며, 응법사는 ‘지최승’이라 번역하였으니 사람 가운데 이 종족이 가장 뛰어남을 말하였다.《십이유경에 밝혀 놓기를 「아승지겁 초에 대모초왕이 보위를 버려 신하에게 주고 바라문을 섬김에 마침내 그의 성씨를 받아 ‘소구담’이라 이름했다」고 하였다. 인현겁 초에 識神이 삶을 받아 태어나서 구담의 성씨를 세웠던 까닭에 구담의 성씨가 멀리는 오랜 과거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가까이는 백성의 지도자 되는 이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석가’는 이 곳 말로 번역하면 ‘能仁’이다.《장아함에 이르기를 「예전에 성씨가 ‘감자’인 輪王이 있었는데 계비의 참소를 듣고는 네 명의 태자를 배척하니 [태자들이] 설산의 북쪽에 이르러 스스로 성을 쌓고 기거함에 그들의 덕행으로 사람들이 귀의하게 되자 몇 년 되지 않아 번성하여 강국이 되었다. 부왕이 후회하는 마음에 사신을 보내 불러들였으나 네 아들이 사양하며 돌아가지 않으니 부왕이 세 번씩이나 탄식하며 ������나의 아들은 ‘석가’로다!������ 하고는 그로 인해 성씨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11】春城을 깊은 밤중에 넘고 雪嶺에서 6년 동안 머물었다.

【12《화엄경에서 말하였다. 「보살이 목욕할 때면 모든 천신들이 다투어 그 물을 길러 하늘궁전으로 가지고 갔으며, 못 속의 어류들은 그 물을 마심으로써 천상에 태어남을 얻는다. 보살은 이익이 되는 까닭에 어류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고자 목욕을 示現하는 것이다.」

【13《서역기에 이르기를 「니련하의 서남쪽 10리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이 필파라이다」 하였으니 그것이 보리수일 것이다.

【14】마왕 파순은 전생에 단지 한 사찰의 주인이 되어 한 나절 동안 8계를 받았으며 벽지불에게 한 발우의 음식을 공양한 까닭으로 제6천에 태어나 천마왕이 되었는데, 부처님은 무량겁 동안 공덕을 널리 닦고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을 하였으며 또한 다시 성문과 연각 등의 사람에게도 셀 수 없는 공양을 하였으니 어찌 파순이 능히 동요시킬 수 있겠는가? 사악한 마군의 무리들이 물러나 흩어지고 항복함이 마땅하다.《대승방편경에 이르기를 「만약 부처님의 힘이 아니면 저들 사악한 마군이 어찌 부처님에게 가까이 갈 수 있으리요. 마군은 욕계에서 존귀하고도 뛰어난 존재인 까닭에 뛰어난 존재가 먼저 항복하면 나머지는 모두 항복할 것이기 때문[에 마군이 부처님에게 근접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하였다.

【15】모두 파순의 딸이다.

【16】癭은 목에 난 혹이니 목에 혹이 난 귀신을 말하는데, 소동파의 시에 「옷깃 틀 때는 먼저 목혹을 덮는 옷을 마름질한다」 하였다.《박물지에 이르기를 「산에 살다 보면 목혹이 많이 생기는데 흐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기 때문이다」 하였다.

【17】주나라는 음력 11월(子月)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으니 주나라의 2월은 지금의 12월이다.

【18】이는 여래의 나이 78세 때이다.《서응경에 이르기를 「마야부인이 태자를 생산한 지 7일 만에 임종하였는데 보살을 회임한 공덕이 큰 까닭에 도리천에 태어났다」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태자께서 [자신의] 복덕이 막중하여 여인으로서 그 禮를 감히 받아들일 자가 있지 않음을 스스로 아시고는 그 까닭으로 곧 임종하는 몸에 의탁하여 태어나신 것이다」 하였다.

【19】이 때에는 인연이 있는 중생들을 이미 모두 제도하여 마쳤고 오직 인연이 없어 교화하기 힘든 자들 만 남았기에 싫증과 게으름을 부린다는 것이다.

【20】여래가 수행하고 있던 때에 일찌기 독수리가 되어 이 산중에서 부모를 봉양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게 되었다. 또 성의 남쪽에 주검이 많은 숲이 있는데 독수리들이 그곳에 모여 살며 대체로 죽은 사람을 먹고, 사람이 죽을 것 같으면 독수리가 그 집을 빙빙 돌아 날며 슬피 우는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그로써 미리 아는지라 그러한 까닭에 ‘신령스런 독수리(靈鷲)’라 이름하게 되었다.

【21《육왕전에서 말하였다. 「왕이 계두마사에 이르러 상좌 야사의 앞으로 가서 말하기를 ������내가 이제 염부제 안에 8만4천의 보탑을 건립하고자 한다������ 하니 야사가 이르기를 ������왕께서 만약 일시에 탑을 짓고자 한다면 내가 대왕께서 탑을 지을 때에 손으로 해를 가릴 것이니, 나라 안에 두루 칙령을 내려서 손으로 해를 가리고 있을 때에 다함께 일어나 탑을 건립하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8만4천개의 보물함을 만들고 그 각각에 사리 한 개를 담아 하나의 사리함을 한 명의 야차에게 주고는 염부제에 고루 나아가게 하여 모두 1억 명이 있는 곳마다 보탑 하나씩을 일으키게 하였다.」

【22】오나라 적오 4년에 강거국의 승려 회가 교화하러 다니다 건강에 이르러 불상을 모셔 놓고 불도를 행하니 오나라 사람들이 처음 보고는 그것을 요망하고 괴이하다 일컫기에 담당관리가 그것을 왕에게 보고하였다. 왕이 조서를 내려 물으니 회가 이르기를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지 이미 천년이 되었으나 신령스러운 뼈인 사리도 신비스런 감응이 끝이 없습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사리를 얻을 수 있다면 응당 탑을 만들리다」 하였다. 회가 여가를 7일 청하여 간곡히 구하였으나 영험이 없었다. 그러다 21일째 새벽녘에 쇳소리가 나니 회가 말하기를 「내가 원하던 바를 이루었다」 하고는 그것을 진상하였다. 손권은 공경대부와 더불어 모여서 그것을 보고는 탄식하여 이르기를 「세상에 드문 상서러움이다」 하고는 역사를 시켜 그것을 부수게 하였더니 깨뜨려졌으나 밝은 빛은 여전하였다. 이에 탑을 세우고 건초사를 건립하여 회로 하여금 머물게 하였다.

【23】서진 건흥 원년에 유위와 가섭의 두 석불상이 바다를 건너 송강 호독구에 닿았는데, 오현의 주응이 평소에 정법을 받들었기에 몇 사람과 함께 맞아들이려 하자 석상이 흐름을 타고 저절로 도착하였으며, 그 등에 명문이 있어 한 尊에는 유위라 이름되어 있고 한 尊에는 가섭이라 이름되어 있었으며, 배에 올릴 때에는 그 가볍기가 마치 깃털 같았으니, 통현사에 봉안하여 공양하였다.

【24《고승전에 말하였다. 「진나라 함화 연간에 단양 땅 군수 고회가 장후교포에서 한 존의 금불상을 얻었는데 광배와 받침이 없었으나 아주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으며 그 앞에 梵文으로 아육왕의 네 번째 딸이 조성한 것이라 되어 있기에 고회가 장간사에 봉안하였다. 그 후 1년 여 쯤에 어부 장계세가 바다어구에서 동으로 된 연화좌가 물위에 떠 있는 것을 곧장 가져다 현으로 보내오자 표를 올렸더니 칙서로써 불상의 발 아래에 안치시키게 하니 마침맞아 차이가 없었다. 후에 천축 승려 다섯 명이 고회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예전에 천축에서 아육왕의 불상을 봉안하여 업에 이르러 난을 만났기에 강가에 감춰두었다가 난이 끝난 후에 얼마지 않아 그 두었던 곳을 잊었는데 근자에 꿈에 감응하여 고회라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졌다고 하기에 [이렇게 와서] 한 차례 예배드리고자 합니다������ 하므로 고회가 인도하여 장간사에 이르니 다섯 사람이 불상을 보고는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림에 불상이 곧 빛을 발하였다. 다섯 사람이 이르기를 ������본디 원만한 광배가 있었는데 곧 먼 곳에 있으니 그것 역시 얼마지 않아 도착할 것입니다������ 하였다. 합포 사람 동종지가 부처님의 광배 하나를 얻음에 자사가 표를 올리자 간문제가 칙서로써 불상에 시설케 하였더니 걸어 맞추는 구멍이 같고 빛의 색깔이 한 종류였다. 무릇 40여년 만에 동서가 상서럽게 감응하여 광배와 연화좌가 바야흐로 갖추어졌다. 그 영묘함과 기이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25】오나라 승려 지장은 개선사에 거처하고 있었는데 총명한 지혜가 칼날 같이 예리하였다. 어떤 관상을 보는 이가 점을 쳐서 말하기를 「스님은 비록 지혜롭게 깨달았다고 하나 과보로 받은 수명은 31년에 이를 뿐입니다」 하였는데 스님의 나이는 바야흐로 29세였으므로 스님은 이에 방을 꾸미고 불상을 시설하여《반야경을 읽음에 항상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기한에 이르러 홀연히 공중에서 소리가 있어 말하기를 「너는《반야경을 독송한 공덕으로 곱절의 과보나이를 얻게 되었다」 하므로 스님이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공덕을 전보다 곱절로 하였다. 후에 점장이를 만나자 놀라며 이르기를 「스님이 어찌 여전히 살아 계십니까?」 하므로 곧 그 연유를 일러주니 점장이가 탄식하여 이르기를 「불법의 신령스러움은 세간의 지혜로 추측할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26】송나라 때 구나발타는 五明의 주술에 대해 갖추어 정미롭지 않음이 없었는데 초왕이《화엄경의 강의를 청하고자 하였더니 구나발타가 스스로 송나라 말을 잘하지 못함을 알고는 아침저녁으로 근심에 쌓여 항상《관음다라니를 외우며 그윽한 감응을 구하였는데, 홀연히 꿈에 흰옷을 입은 사람이 칼을 지닌 채 사람의 머리 하나를 들고 와서 말하기를 「무슨 일로 근심하는가?」 하므로 구나발타가 사실대로 갖추어 고하였더니 신이 말하기를 「걱정하지 말라!」 하고는 곧 칼로써 머리를 떼내고 다시 새 머리를 안치시키고는 돌려보게 하며 이르기를 「통증이 있느냐 없느냐?」 함에 답하여 「상처가 없습니다」 하였다. 깬 뒤에는 마음이 상쾌하고 송나라 말을 모두 깨우쳤기에 이에 강좌를 열어 크게 불법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