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석문등과기서 釋門登科記序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17:14
 

 

 

석문등과기서 釋門登科記序

 

三代[1]僧史, 十科取人,[2] 讀誦一門, 功業尤重. 皇朝著令, 帝王誕辰, 天下度僧, 用延聖祚,[3] 尊崇吾敎, 宣布眞風, 自古皆然, 於玆尤盛, 方今州縣, 淨侍寔繁.[4] 每歲選人, 必量經業,[5] 開場考試, 合格精通, 公榜星羅, 獎平生之勤苦, 綸恩露墜,[6] 許畢世以安閑. 外被田衣, 內懷戒寶, 爲法王子, 作人天師, 不事耕桑, 端受信施, 棲心物外, 旅泊寰中,[7] 釋子之榮, 豈復過此? 近世出俗, 多無正因, 反欲他營, 不崇本業, 唯圖進納, 濫預法流, 或倚恃宗親, 或督迫師長, 至有巡街打化, 袖疏干求, 送惠追陪, 强顔趨謁, 頻遭毁辱, 備歷艱辛, 爲者百千, 成無數十, 豈信有榮身良策, 安樂法門? 斯由當者, 昧出家心, 抑亦爲人, 無丈夫志. 《蓮華妙典, 鷲嶺極談, 大事因緣, 開佛知見, 是諸佛降靈本致, 實群生悟入津途. 無量國中, 不知名字, 幸而聞見, 那不誦持? 豈獨孤恩, 誠爲忘本. 奉勉! 未度者, 宜加精至, 早冀變通; 已達者, 莫廢溫尋, 終爲道業, 百金供施, 實亦能消, 四輩瞻依, 諒無慙德. 幻軀有盡, 實行不亡. 故, 有舌相粲[8]若紅蕖,[9] 身骨碎如珠顆,[10] 具書傳錄, 識者備聞. 况!《般若有經耳之緣,《法華校隨喜之福.[11] 幸依聖訓, 勿棄時陰, 近期於削髮爲僧, 遠冀於破魔成佛. 若能如此, 夫復何言. 所患, 爲僧不應於十科, 事佛徒消於百載. 古賢深誡, 寧不動心哉!

세 왕조의 승가 역사는 열 가지 과목으로 나누어 그에 합당한 인물을 골라 수록하였는데 경전을 독송하는 부문의 공덕을 더욱 중요시하였다. 황제의 조정에서 영을 내려 제왕의 탄신에 즈음하여 천하에 널리 승려들을 득도시킴으로써 성인의 복록을 오래가게 하였으니, 우리 불교를 존중하고 숭앙하여 참된 교화의 바람을 널리 펴는 것은 예로부터 모두 그러하였지만 지금에 더욱 번성하여 바야흐로 오늘날 주와 현에 청정비구가 참으로 많다. 매년마다 사람을 선발함에 반드시 경전의 수업을 재량하니, 과거장을 열어 시험을 치르고 정통한 이를 합격시켜 공고하는 방에 별처럼 나열하여 평생의 수고로움을 장려하고 천자의 은혜를 이슬처럼 내려주어 생을 마칠 때까지 편안하고 한가히 지내는 것을 허락하였다. 밖으로 가사를 입고 안으로 계율의 보검을 품은 채 법왕의 아들이 되고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어 밭 갈거나 누에 먹이지 않고 단정히 신도의 시주만을 받으며 마음을 사물밖에 깃들인 채 사람들 사이에서 매임이 없이 머무르니 석가의 영화로움이 어찌 여기에 지나치겠는가.

근세에 세속을 떠나 출가함에 대체로 바른 인연이 없이 도리어 다른 것을 경영하고자 본래의 업을 숭상하지 않고 오로지 나아가 바치는 일만을 도모함으로써 외람되이 법을 지키는 무리에 참예하고 있는데, 혹은 종친을 의지하여 믿고 혹은 스승과 어른을 독촉하여 다그치며, 심지어 거리를 돌아다니며 화주를 하고, 소매 속에 소문疏文을 넣어 다니며 바라는 바를 구하며, 물품을 보내고 혜택을 베풀며 따르고 모시며, 두꺼운 얼굴을 하고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배알하며, 빈번히 험담과 욕을 만나고 간난艱難과 신고辛苦를 두루 겪으면서까지 하고자 하는 자는 수백수천이나 정작 이루는 자는 수십 명이 되지 못하니 몸을 영화롭게 하는 좋은 책략과 안락한 법문이 있음을 어찌 믿겠는가! 이것은 당사자의 우매한 출가심으로 말미암은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됨에 장부의 뜻이 없기 때문이다.

항차 오묘한《법화경은 영축산에서의 지극한 말씀으로서 대사인연大事因緣으로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 보인 것이니 이는 부처님께서 강령한 근본 취지이며 진실로 중생의 무리가 깨우쳐 들어가는 나룻길이다. 수많은 나라에서는 그 이름도 모르거늘 다행히 듣고 보았으니 어찌 암송하여 지니지 않겠는가. 어찌 다만 은혜를 저버릴 뿐이겠는가, 진실로 근본을 잊는 게 될 것이니 받들어 힘쓸지어다. 아직 득도하지 못한 자는 마땅히 정성과 지극함을 더하여 일찍 변통하기를 바라며, 이미 다다른 자는 거듭 익히기를 폐하지 않음으로서 마침내 도업을 이룬다면 1백금이나 되는 공양과 시주물이라도 실로 능히 녹여 낼 것이요 사부대중들이 우러르고 의지하더라도 덕이 미흡하여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은 진실로 없을 것이다.

덧없는 몸뚱이는 다함이 있으나 실다운 행行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혀의 모양이 맑고도 밝은 것이 마치 붉은 연잎과 같은 자가 있었고 몸의 뼈가 부수어져 마치 구슬의 낱알 같이 된 자가 있었으니 모두 책에 전해지므로 식자들은 갖추어 들었으리다. 하물며《반야경에는 귀에 스치는 인연이 있고《법화경에는 따라 기뻐함의 복록을 비교하고 있음에랴!

다행히 성스러운 가르침에 의지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말기를 바라고, 가까이는 삭발하여 승려가 되기를 바라며, 멀리로는 마군을 격파하고 불도를 이루기를 바라노라. 만약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무릇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근심하는 바는, 승려가 되어 십과十科에 참여하지 못하면 부처님을 섬김에 헛되이 백년을 소비하는 것이리다. 옛 성현들이 깊이 경계하였으니 어찌 마음이 움직이지 않겠는가.

【1】.

【2】.慧攸作《高僧傳, .宣律師《續高僧傳, .通慧大師《大宋高僧傳, 咸分十科, 以取高僧, 是僧史也.

【3】主廢佛寺三萬三百所, 毁鎭州大悲像鑄錢, 世宗親秉鉞, 洞其膺, 不四年, 痕潰于膺. 宋祖擊其事故, 卽位元年, 廣建佛寺, 歲度僧八千, 又誕聖節, 於天下命僧陞座, 祝天算爲準, 祝聖始此.

【4】凡削染爲僧者, 通謂「淨侍」.《西域記云: 「講一部則免知事, 講二部則加土房資具, 講三部則差侍者祗承, 講四部則給淨人, 講五部則許乘輿.」 謂爲僧者爲淸淨給侍故, 云淨侍.

【5】建隆三年, 詔每年試童行, 《蓮經七軸者, 給祠部牒披剃. 太宗.太平興國元年, 詔天下僧尼, 復試經科.

【6《禮記》「王言如系, 其出如綸.」 注: 綸, 如宛轉繩也. 試以科經精通而應選則, 王澤之及身如露下而霑草木.

【7】旅如客店暫住, 豈可久居? 泊如舟行夜纜, 天曉復放. 寰, 人寰也, 寰中, 猶言人間也, 言無滯累於人間也.

【8】鮮好貌. 獸三爲群, 人三爲衆, 女三爲粲.

【9】臨訴.王梵行, 少瞽, 其母慈念, 口《法華, 布衣蔬食, 禪誦無缺, 計誦經一萬七千部. 後, 跏趺而逝, 遺言露屍林野. 久之, 皮肉旣盡, 惟舌不壞, 色如蓮華. 又遺俗, 《法華千遍, 因疾告友曰: 「某平生誦經, 意希有驗, 若生善道, 舌根不壞, 可埋十年, 發視.」 言訖而寂. 後十年啓視, 舌果不壞. 《法華而舌根不壞者, 前後甚衆.

【10】神悟幼嬰惡疾, 爇指懺悔, 所苦頓愈, 因出家. 每入法華道場, 九旬禮念, 逝後闍維得舍利, 累累粲然可數, 如是者古今無數也.

【11】隨他修習善因, 喜他感得善果.

【1】양나라, 당나라, 송나라.

【2】양나라 혜유는《고승전을 지었으며, 당나라 선율사는《속고승전을 지었으며, 송나라 통혜대사는《대송고승전을 지었는데, 모두 10科로 나누어 고승들의 이야기를 골라 취했으니 곧 승려의 역사이다.

【3】주나라의 군주가 불교사찰 3만3백 곳을 폐사시켰는데, 진주의 大悲像을 헐어 돈을 주조할 때는 세종이 친히 도끼를 잡고 그 가슴을 꿰뚫어 부수었더니 4년이 채 되지 않아 가슴에 종기가 나서 문드러졌다. 송나라 태조는 그 일을 목격했던 까닭에 즉위한 첫 해에 널리 불교사찰을 건립하고 해마다 승려 8천명을 득도시켰으며, 또 불탄일에는 온 천하의 승려들에게 명하여 설법의 자리에 올라 天壽를 축원하는 것을 법도로 삼았으니 성인을 축원하는 것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4】무릇 삭발하고 물들인 옷을 입어 승려가 된 자를 통칭 ‘淨侍’라 일컫는다.《서역기에 이르기를 「1部를 강설한 즉 知事를 면제하고, 2部를 강설한 즉 토방과 가구를 더해 주며, 3部를 강설한 즉 시자를 보내어 공경히 받들게 하고, 4部를 강설한 즉 淨人을 보내 주며, 5部를 강설한 즉 가마 타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하였으니 승려가 되면 청정을 위하여 시중을 들어주는 까닭에 淨侍라 일컬었음을 말한 것이다.

【5】건륭 3년에 조서를 내려 매년 童行(行者)들을 시험 치르게 하였는데,《법화경》7軸을 능통하게 하는 자는 祠部에서 도첩을 주고 머리를 깎게 하였다. 태종 태평흥국 원년에 조서를 내려 천하의 승니들에게 다시 經科에 응시하게 하였다.

【6《예기에 「왕의 말은 마치 가는 실과 같아서 흡사 인끈과도 같이 나온다」 하고는 그 주석에, 인끈(綸)은 꼬아서 만든 줄 같은 것이라 하였다. 과목별 경전에 정통한지를 시험하여 그 선별에 적응하면 왕의 은택이 그 몸에 미침이 마치 이슬이 흘러내려 초목을 적시는 것과도 같게 된다.

【7】나그네란 그저 객점에 잠시 머무르는 자 일 뿐이니 어찌 오래도록 기거할 수 있겠는가? 정박한다는 것은 그저 배가 지나가다 밤에 닻을 내린 것일 뿐이기에 날이 밝으면 다시 닻을 풀 것이다. 寰은 사람이 사는 장소이며 寰中이란 人間이라 말함과 같으니, 인간세에 막혀서 묶여 있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8】곱고도 좋은 모양이다. 짐승이 세 마리 모이면 무리(群)가 되고 사람이 세 명 모이면 대중(衆)이 되며 여자가 세 명 모이면 粲(세 사람의 미녀)이 된다.

【9】임소의 왕범행은 젊어서 소경이 되었는데 그 에미가 자애로운 생각에서《법화경을 읊어서 전해 주었더니 베옷을 입고 나물음식을 먹으며 참선한 채 경전을 외우는데 틀린 곳이 없었으며 외운 경전이 모두 1만7천부나 되었다. 후에 가부좌를 틀고 임종을 맞으며 시신을 들녘에 내어놓으라 유언하였다. 오래 지나서 거죽과 살점은 이윽고 다 없어졌는데 오직 혀 만 그대로 남아서 색깔이 마치 연꽃과도 같았다. 또 당나라 승려 유속이《법화경을 1천 번을 외우더니, 질병으로 인해 [임종을 맞아] 친구에게 이르기를 「내가 평생에 경전을 외우며 영험이 있기를 마음으로 바랬었는데, 만약 살아서 착한 도업을 이루었다면 혀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니 매장한지 10년 만에 발굴하여 보면 될 것이다」 하고는 말을 마치자 곧 적멸에 들었다. 그 뒤 10년 만에 열어 보니 혀가 과연 허물어지지 않았었다.《법화경을 외워 혀가 허물어지지 않은 자는 전후로 매우 많았다.

【10】당나라 승려 신오가 어려서 악질에 걸렸는데 손가락을 사르며 참회하였더니 그 고통이 순식간에 치유되었기에 그로 인연하여 출가하였다. 매번 법화도량에 들어가면 90일 동안 예불을 올렸는데, 죽은 후에 다비하여 사리를 얻음에 겹겹으로 찬연한 것이 제법 되었으니, 이와 같았던 이들이 고금에 무수하였다.

【11】다른 이들이 착한 인연을 닦고 익히는 것을 따르고 다른 이들이 착한 과보를 받아 가지는 것을 기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