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緇門警訓)

주지삼보 住持三寶

通達無我法者 2008. 3. 17. 20:45
 

 

 

주지삼보 住持三寶[1]

 

住持三寶者, 人能弘道, 萬載之所流慈, 道假人弘, 三法於斯開位, 遂使代代興樹, 處處傳弘. 匪假僧揚, 佛法潛沒. 至如漢.武崇盛,[2] 初聞佛名,[3] 旣絶僧傳, 開緖斯竭. 及顯宗[4]開法, 遠訪身毒,[5] 致有迦‧竺來儀,[6] 演布聲敎,[7] 開物成務,[8] 發信歸心, 實假敷說之勞,[9] 誠資相狀之力,[10] 名僧寶也. 所說名句, 表理爲先, 理非文言, 無由取悟. 故得名敎, 說聽之緣, 名法寶也. 此理幽奧, 非聖莫知, 聖雖云亡, 影像斯立, 名佛寶也. 但以群生福淺, 不及化源, 薄有餘資, 猶逢遺法, 此之三寶, 軆是有爲, 具足漏染, 不足陳敬, 然是理寶之所依持, 有能遵重, 相從出有,[11] 如俗王使, 巡歷方隅, 不以形徵, 故敬齊一.[12] 經云: 「如世有銀, 金爲上寶, 無銀有鍮, 亦稱無價.」 故, 末三寶, 敬亦齊眞, 今不加敬, 更無尊重之方, 投心何所, 起歸何寄? 故當形敬靈儀, 心存眞理, 導緣設化, 義極於斯. 經云: 「造像如麥, 獲福無量.」[13] 以是法身之器也.《論》云: 「金木土石, 軆是非情, 以造像故, 敬毁之人, 自獲罪福.」 莫不表顯法身, 致令功用無極. 故, 使有心行者, 對此靈儀, 莫不涕泣橫流, 不覺加敬; 但以眞形已謝, 唯見遺蹤, 如臨淸廟,[14] 自然悲肅, 擧目摧感, 如在不疑,[15] 今我亦爾. 慈尊久謝, 唯留影像, 導我慢幢, 是須傾屈接足而行禮敬, 如對眞儀而爲說法. 今不見聞,[16] 心由無信. 何以知耶? 但用心所擬, 三界尙成, 豈此一堂, 頑痴不動.[17]《大論》云: 「諸佛常放光說法, 衆生罪故, 對面不見.」 是須一像旣爾, 餘像例然, 樹石山林, 隨相標立, 導我心路, 無越聖儀.

[세상에 불법이] 머물러 유지하게 하는 삼보란, 사람은 능히 도를 넓히니 만년토록 자비를 흐르게 하는 바이며, 도는 사람에 의지하여 넓혀짐에 세 가지 법은 여기에서 지위를 여니 마침내 대대로 일으켜 세우게 하고 곳곳마다 전하여 넓혀지게 하는구나. 승려에 의지하여 선양된 것이 아니면 불법은 마침내 잠기어 가라앉을 것이다.

한나라 무제 때 국운이 융성하게 됨에 처음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듣게 되었으나 이미 승려를 통해 전해짐이 끊어졌기에 열리려던 실마리가 이로서 고갈되었다. 현종이 교법을 열게 되면서 멀리 신독을 방문하여 가섭마등과 축법란을 오게 하고는 불법을 널리 퍼트려서 만물을 열어주는 것으로 임무를 삼으며 믿음을 발하여 마음으로 돌아오게 하였으니, 진실로 불법을 펴서 연설하는 수고로움에 의지한 것이요 진실로 모습과 형상의 힘에 도움 받은 것이기에 이름하여 ‘승보’라 한다.

말씀한 바의 명구名句는 진리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우선을 삼으니 진리는 글이나 말이 아니면 깨달음을 취할 연유가 없다. 그러므로 가르침(敎)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니 말하고 듣는 반연을 이름하여 ‘법보’라 한다.

이 이치는 그윽하고도 오묘하여 성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지라, 성인이 비록 돌아가셨다지만 진영眞影과 형상이 이에 세워졌으니 이름하여 ‘불보’라 한다.

다만 중생들이 복이 얕아 교화의 근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엷으나마 남아있는 밑천이 있기에 그래도 남겨주신 법을 만났으며, 이 삼보는 그 바탕이 유위有爲이기에 유루有漏와 염법染法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공경을 베풀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는 진리의 삼보가 의지하여 지탱하는 바이므로 능히 존중함이 있으면 서로 좇아 유위有爲에서 벗어나나니, 마치 세속에서 왕의 사신이 변두리 지방을 순찰하며 돌 때 그 형상으로써 따지지 않는 까닭에 공경하기를 하나 같이 가지런하게 함과 같다.

경전에 이르기를 「만약 세상에 은이 있더라도 [금이 있으면] 금을 최고의 보물로 여기지만 [금과] 은이 없이 놋쇠만 있다면 [그 놋쇠를] 역시 무상의 가치를 지닌 보배라 일컬을 것이다」라 하였으므로 말삼보(住持三寶)는 공경하기를 더욱이 참된 것(實相三寶)과 가지런히 해야하는 것이니, 이제 공경을 더하지 않고 게다가 존중할 곳이 없다면 마음을 어디에 의탁할 것이며 귀의할 마음을 일으켜서는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그러므로 응당 형상은 신령스러운 위의를 공경하고 마음은 진리에 둘 것이니, 인연을 이끌어 교화를 베푸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뜻이 지극한 것이다.

경전에 이르기를 「불상 조성하기를 마치 보리알 만하게 하더라도 얻어지는 복락은 무량하리다」 하였으니 이는 바로 법신의 그릇이기 때문이다.《논》에 이르기를 「쇠와 나무와 흙과 돌은 그 바탕이 정情은 아니지만 그것으로써 불상을 조성하는 까닭에 공경하거나 훼손하는 사람이 스스로 죄업과 복락을 얻게 된다」 하였으니, 법신을 표현하지 않음이 없기에 그 효능이 끝이 없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행하는 바가 있는 자로 하여금 이 신령스러운 불상에 대해 눈물이 좌우로 흘러내려 자신도 모르게 더욱 공경하게 하는 것이니, 다만 참된 모습은 이미 떠나가고 오직 남겨진 자취만 보는 것이지만 마치 청정한 묘역에 임하자 자연히 슬프고도 숙연하여 눈을 들고 감정을 억누르며 신명이 와 있는 듯 함을 의심치 않는 것과도 같으니, 지금의 나 또한 그럴 따름이다.

자애로운 세존께서는 오래 전에 떠나시고 오직 진영과 형상만을 남겨 내 자신의 교만의 깃대를 이끌어 교화하시니, 이에 모름지기 몸을 기울이고 구부려 발에 접촉함으로써 예의와 공경을 행하기를 마치 참된 위의로 설법하심을 대하듯 해야 한다. 지금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함은 마음에 믿음이 없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어찌 그것을 아는가? 단지 마음을 써서 헤아리는 바에 의해 삼계도 오히려 이루어지거늘 어찌 이 한 무리만이 완고하고 어리석게 움직이지 않겠는가.

《대론》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이 항시 밝은 빛을 발하며 법을 설하지만 중생은 그 죄업 때문에 마주 대하고도 보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는 모름지기 하나의 상像에도 이미 그러할 뿐만 아니라 여타의 상像에도 예외 없이 그러하므로 산의 숲 속에 돌을 세우고 그 모습을 따라 표식을 세울 것이니 나의 마음 길을 이끄는 것으로는 성스러운 불상보다 낳을 것이 없다.

【1】泥塑木造爲佛, 黃卷赤軸爲法, 剃髮染衣爲僧, 是名住持三寶.

【2】治業之盛.

【3】《三寶記》「漢.武帝.元狩元年, 霍去病伐匈奴, 過延山, 擒休屠王獲金人十二來, 長丈餘, 以爲大神, 列甘泉宮, 燒香禮拜. 後, 張騫使大夏還後, 始知有身毒國.」

【4】後漢.明帝, 廟號顯宗.

【5】身音干.《西域記》云: 「天竺之稱, 舊云身毒, 或云賢豆, 今云印度.」 唐言, 月, 以其土聖賢相繼御物, 如月照臨故.

【6】迦葉摩騰‧竺法蘭二開士也. 帝夢金人, 遣使求之, 遇二人於月支國, 偕來. 來儀,《書》云: 「韶簫九成, 鳳凰來儀.」

【7】振擧於此, 遠者聞焉, 故謂之聲; 軌範於此, 近者效焉, 故謂之敎. 又佛以說法音聲, 敎化衆生故, 謂佛經爲聲敎也.

【8】開物者, 人所未知者, 發開之; 成務者, 人之欲爲者, 成全之也.

【9】敷宣敎說以流通也.

【10】像佛儀容以住持也.

【11】從理性, 出生住持三寶也.

【12】帝王不能親自巡狩, 只以使者御命而去, 民吏畏懼, 奔走承命, 與王無異.

【13】經云: 「若人臨終, 發言造像乃至如麥麥廣, 能除三世八十億劫生死之罪.」 麥廣音廣, 大麥也.

【14】淸廟, 文王之廟, 事神之道, 尙潔, 故曰淸廟, 謂淸淨之廟. 廟者, 貌也, 死者不可得見故, 立宮室, 所以彷彿先人之容貌也.

【15】言: 周公臨廟, 悲感肅恭, 猶若生時, 儼然不疑也.

【16】今不見佛‧不聞說法.

【17】今此一堂之僧, 頑然無知而不能起心感佛耶?

【1】진흙의 소상이나 나무로 조성한 것이 佛이요 누른 두루말이에 붉은 축으로 된 것이 法이며 깎은 머리에 물들인 옷을 입은 것이 僧이니, 이것을 住持三寶라 이름한다.

【2】다스림의 업적이 융성함이다.

【3】《삼보기》에 「한 무제 원수 원년에 곽거병이 흉노를 치며 연산은 지나다 휴도왕을 사로잡고 쇠로 만든 사람(金人) 20을 획득하여 왔는데, 길이가 1장 남짓으로 큰 신으로 여겨서 감천궁에 늘여 세워 놓고 향을 사르며 배례하였다. 후에 장건이 대하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身毒國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4】후한 명제의 廟號가 현종이다.

【5】身의 음은 간(干)이다.《서유기》에 이르기를 「‘천축’의 명칭은 옛날에는 ‘간독’ 혹은 ‘현두’라 하였는데 지금은 ‘인도’라 한다」 하였다. 당나라 말로는 月이니, 그 땅에서는 성현들이 연이어 사물을 다스림이 마치 달빛이 비추어 주는 것과도 같은 까닭이기 때문이다.

【6】가섭마등과 축법란 두 開士(고승의 칭호)이다. 황제가 꿈에서 金人을 보고는 사신을 파견하여 구하였는데 사신이 월지국에서 두 사람을 우연히 만나 함께 왔다. 來儀는,《서경》에 이르기를 「아름다운 퉁소 소리 아홉 차례 울리니 봉황이 훌륭한 모습을 하고 오는구나」 하였다.

【7】여기에서 떨치고 일어나니 멀리에 있는 자가 들으므로 그것을 聲이라 일컬으며, 여기에서 본보기를 보이니 가까이 있는 자가 본받으므로 그것을 敎라 일컫는다. 또한 부처님께서 설법하는 음성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셨던 까닭에 불경을 일컬어 聲敎라 한다.

【8】開物이란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개발해 가는 것이요, 成務란 사람들이 하고자 하거나 되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것이다.

【9】敎說을 널리 보급시킴으로써 유통하게 함이다.

【10】부처님의 위의와 모습을 닮음으로써 불법이 지속되어 나가게 함이다.

【11】理性을 좇아 주지삼보를 드러내 놓음이다.

【12】제왕은 제후의 나라를 친히 순회하며 시찰할 수 없으므로 단지 사자가 명을 받들고 가지만 백성과 관리들이 두려워하며 명을 받들기에 분주한 것은 제왕에 견주어 다름이 없다.

【13】경전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죽음에 임하여 심지어 보리거죽 같이 하더라도 불상을 조성하라고 발언하면 삼세 80억겁 동안 나고 죽으며 지은 죄도 능히 소멸할 수 있다」 하였다. 음은 광(廣)이며 큰 보리이다.

【14】청묘는 문왕의 묘인데 귀신을 섬기는 도리는 청결을 숭상하는 까닭에 淸廟라 하였으니 청정한 묘라는 말이다. 廟는 ‘용모’이니, 죽은 자는 뵐 수 가 없으므로 궁실을 세움에 죽은 이의 용모와 방불케 하는 까닭이다.

【15】주공이 묘역에서 비통해 하고도 엄숙해 함이 오히려 살아 있을 때처럼 하였으며 그 근엄함으로 인해 의심스럽지 않았음을 말한다.

【16】이제 부처님을 보지 못하고 설법을 듣지 못함이다.

【17】이제 이 한 무리의 승려들이 완고하고도 무지하여 능히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을 감응하지 못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