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위빠사나

5. 사성제

通達無我法者 2008. 4. 2. 15:32
 

 

 

5. 사성제


여신 우뽀사타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저는 절제와 관용으로 이 궁전에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절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도 여러분들이 소비생활을 함에 있어서 절제가 없다면 가난해 질 것입니다. 행동할 때 절제하지 못한다면, 병에 걸리고 범죄에 가담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생을 위해서는 절제가 마음을 정화시키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관용이 사람을 천상으로 인도한다는 것은 불자들 사이에서는 상식입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사성제를 압니다.' 사성제는 고귀한 분들 즉 성자들이 아는 진리, 성자들이 알게 된 진리입니다. 일단 수행자가 스스로 이 사성제를 이해하면 성자가 됩니다. 그것들은 고통의 진리, 고통의 멈춤의 진리, 고통의 원인의 진리와 고통의 종식으로 인도하는 길의 진리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성제를 아는 것'은 소문을 듣고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그것을 잘 이해하여야 하고, 포기되어야 할 것을 포기하고, (끝을) 체험해야 하고, (길이) 자신 안에 나타나게 하여야 합니다. 주석서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오취온이 고통의 진리의 구성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오취온을 주시하고 이해하는 것이 고통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주시하면 수행자는 오취온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어떻게 그것들이 고통을 구성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명상하는 동안 그렇게 이해합니다. 성자의 길에 도달했을 때 고통의 끝인 닙바나를 보고, 숙고해 보면, 일어난 것은 무엇이든지 사라지는 것이며, 종식에 도달하지 않은 것은 고통이라고 이해합니다. 수행자는 도(道)의 순간에 그렇게 이해합니다. 그것은 대상을 주목해서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기능으로 아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명상할 때, 명상하는 대상에 대한 갈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몰두함에 의한 이해입니다. 숙고해 보면, 수행자가 무상 고 무아라고 본 대상에 대해서 갈애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갈애는 소멸되었습니다. 이것이 수행자가 명상하는 동안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성자의 도(道)와 닙바나를 체험할 때, 도에 관해서 갈애가 일어날 리 없습니다. 수다원의 도에서 사악도에 빠지게 하는 거친 갈애는 제거됩니다. 아나함의 도에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가 제거되며, 아라한의 도에서 남아 있는 모든 형태의 갈애가 제거됩니다.


수행자가 주시할 때는 언제나, 주시되는 대상과 관련해서는 번뇌나 업, 그리고 고통이 생기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소멸됩니다. 주시할 때마다 매번 그러한 고통의 소멸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수행자가 소멸의 진리를 체험하는 방법입니다. 성자의 도의 순간에 수행자는 닙바나를 체험합니다. 이제 그것이 명백합니다.


수행자가 명상할 때마다 마음과 물질의 본성에 대한 바른 견해가 떠오릅니다. 일단 올바른 견해가 있으면 그에 부수되는 바른 생각 같은 것도 떠오릅니다. 이에 대해서 앞서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팔정도의 여덟 개의 요소가 생기게 하는 것은 팔정도를 계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명상하는 동안 수행자가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성자의 도의 순간에 여덟 개의 요소가 떠오르고 닙바나가 체험됩니다. 도(道)와 과(果)에 도달한 수행자가 회광반조해 보면 어떻게 해서 성자의 도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봅니다. 그는 압니다. 이것도 또한 이해입니다.


그리하여, 수행자가 마음과 물질이 왜 고통인지 이해한다면, 고통의 원인인 갈애를 없애버렸다면, 고통의 끝을 체험했다면, 팔정도의 여덟 개의 요소가 수행자의 내부에서 일어났다면, 수행자가 사성제를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신 우뽀사타가 자기가 사성제를 안다고 말했다는 것은 그녀가 위빠싸나의 도(道)와 성자의 도(道)를 자신의 경험으로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녀가 수다원이었다는 뜻입니다.


일단 사성제를 알면 성자의 법도 아는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 교육받은 성스러운 제자란 성자를 아는 사람이며, 성자의 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여러분이 성자가 아니라면, 성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바른 지혜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비구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비구가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는지 자신의 경험으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집중수행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수행자가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는지 모를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성자일 때 비로소 성자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 것입니다.


주석서에 의하면, 성자의 법[三十七助道品]은,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숭고한 노력[四正勤], 네 가지 삼매의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팔정도, 모두 일곱 가지 범주입니다. 수행자가 이 일곱 범주 중에서 한 가지를 안다면, 다른 것 여섯 가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사성제를 안다면 성자의 법을 아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성자의 법 가운데 하나인 팔정도가 사성제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을 확립하는 것과 같은 일곱 가지 범주 중에서 어느 것이든 자신의 마음 속에 생기게 하려고 노력할 때, 수행자는 자기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그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이해입니다. 소문으로 들어서 아는 것은 그렇지 못 할 것입니다.


'비구가 걸을 때 '나는 걷고 있다'라고 안다.' 그러므로 성자가 되고자 하는 수행자는 걸으면서 '걷고 있음, 걷고 있음' 혹은 '발을 들어서, 앞으로, 놓음'을 주시하면서 걷습니다. 그가 그렇게 걸을 때, 그가 주시할 때마다 알아차림이 일어나고, 주시된 대상을 인지하는 앎이 일어납니다. 수행자는 걷고자 하는 의도와 걷는 물질과 앎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압니다. 수행자가 주시할 때마다 일어나는 알아차림과 앎은, 몸에 대해 명상함에 의한 알아차림의 확립을 구성합니다.


'그가 고통스런 느낌을 느낄 때 '나는 고통스런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압니다.' 수행자는 뜨거운 고통이 생기길 때마다 '뜨거움, 뜨거움'이나 '통증, 통증'을 주시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느낌이 어떻게 생기고 사라지는지 알아차려서 압니다. 이것이 느낌에 대해 명상함에 의한 알아차림의 확립입니다.


'그는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안다' 그러한 생각이나 관념이 일어날 때마다 수행자는 '집착하고 있음, 기뻐하고 있음'을 주시합니다. 그는 그렇게 그것들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알아차려서 압니다. 이것이 마음에 대해 명상함에 의한 알아차림의 확립입니다.


'자기자신의 내부에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내 안에 감각적 욕망이 있다'라고 안다.' '욕망, 기쁨' 등을 주시하는 수행자는 감각적 욕망 같은 성향이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는지 알아차려서 압니다. 이것이 마음의 대상(장애 등)에 대한 명상에 의한 알아차림의 확립입니다.


여기서 훈련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명상을 계속하고 있으며 자신의 경험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성자의 법 즉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에 익숙해졌습니다. 동시에 네 가지 숭고한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시할 때, 일어난 악업을 버리려고 노력하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업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빠싸나 지혜와 팔정도의 선업을 계발하고, 이미 일어난 위빠싸나 지혜는 증대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네 가지 삼매의 성취수단도 포함됩니다. 수행할 때 여러분들은 의욕, 노력, 마음 혹은 검증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믿음, 노력, 알아차림, 집중과 지혜의 다섯 가지 기능도 거기에 있습니다. 다섯 가지 힘은 다섯 가지 기능과 마찬가지입니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도 또한 거기 있습니다. 주시할 때, 여러분들에게는 알아차림, 법에 대한 고찰, 노력, 희열, 편안함, 집중과 평온이 있습니다. 그리고 팔정도도 포함되어 있음을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여신 우뽀사타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그녀는 '저는 오계를 지켰습니다. 저는 고따마 부처님의 여자 재가불자였습니다. 저는 난다와나(Nandavana) 이야기를 자주 들었으며 거기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그 결과 저는 여기 난다와나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난다와나는 천상에 있는 정원의 이름입니다. 마치 요새 사람들이 미국과 유럽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과 같이, 그 시절에는 난다와나 이야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우뽀사타는 사람들이 천상의 정원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거기서 태어나기를 염원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행운을 불만스러워 합니다. 그녀는 목갈라나 존자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부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을 이 저급한 세계로 돌렸기에 지금은 몹시 후회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형태이든 간에 삶은 좋은 것이 못된다고 우리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고통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수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뽀사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천상에서의 삶을 동경했습니다. 이제야 그녀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렇다면 천상에서 고통의 종식을 위해 수행하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서는 명상하기 어렵습니다. 천인들은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면서 흥겹게 즐기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인간 세계처럼 조용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지금 인간계에 사는 여러분들도 집으로 돌아가면 명상하기 어렵죠? 그러니 지금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목갈라나 존자는 그녀에게 이렇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우뽀사타여, 걱정하지 마십시오. 완전히 깨달으신 분께서 그대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수다원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대는 좋지 못한 세계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젊은 여신은 아직도 삼십삼천에 있습니다. 그녀는 천상의 계산으로는 거기에 오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의 100년은 거기의 하루입니다. 부처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2,500년이 흘렀으니, 삼십삼천의 달력으로는 25일밖에 안 됩니다. 그녀는 아직 한 달도 안 됐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40년 후, 50년 후 혹은 60년 후에 깨달음을 얻는다면, 천상에 태어날 것이며, 이 여신을 만나서 그녀와 같은 수준에서 법담을 나눌 것입니다. 깨달음의 단계를 얻지 못한다고 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적어도 천상에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성자인 천인에게 법을 묻고, 그들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그들이 가르치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은 도과(道果)를 얻을 것입니다. 천인들의 몸은 매우 순수합니다. 이 순수한 물질로부터 생기는 의식은 날카롭고 민첩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인간 세상에 있을 때 명상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마음과 물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이해하여 금방 성자의 도과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가 거기서 행복할 때, 그가 전에 경험한 법들이 그에게 흘러나온다. 비구들이여, 그 회상은 천천히 일어난다. 그러나 빨라지면, 도와 과와 닙바나를 획득하게 된다.'


수다원이었던 고삐까(Gopikaa)라는 사끼얀(Sakyan) 여인은, 죽은 다음 삼십삼천의 왕인 제석천의 아들인 고빠까(Gopaka)로 태어났습니다. 거기서 그는 자기 아버지의 궁전으로 춤추러 온 세 명의 간답바(Gandhabba) 신들을 보았습니다. 고빠까가 전생을 회상해 보니 그 신들은 그가 숭배하던 비구들이었습니다. 그 신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자, 그들 중 두 명은 그들이 수행했던 법을 기억해 내고 그것에 대해서 명상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거기서 선정에 들어서 아나함이 되어 범보천(梵輔天, Brahmapurohita world)으로 올라갔습니다.


부처님 시절에 수행을 했고 지금은 천상에 살고 있는 우뽀사타와 같은 신과 여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자였지만 신으로 태어난 고빠까 같은 신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단지 여러분들처럼 수행을 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고무적인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옛길입니다. 이 길은 성자들이 걸어간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들이 이 길을 따라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주시할 때마다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그네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목적지에 가까이 가는 것처럼, 한 번 주시할 때마다 여러분들은 닙바나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10,000번 주시해야 도과를 얻는다고 가정합시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제 1,000번 주시했다면, 9,000번을 더 주시하면 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9,000번 주시했다면, 1,000번만 더 하면 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미 9,999번 주시했다면, 바로 다음 번 주시가 도(道)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더 많이 주시할수록 여러분들은 그만큼 더 도에 가까이 갑니다.


여러분들이 육문에서 오취온이

일어날 때마다 주시할 수 있기를.

여러분들이 오취온의 본성이

무상 고 무아임을 깨닫기를.

여러분들의 위빠싸나 지혜가 발전을 거듭하여

모든 고통이 소멸한 닙바나를 체험하기를.


'經典 > 위빠사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하시 수행법과 대념처경 / 목차  (0) 2008.04.02
부록 - 용어집(Appendix/Glossary)  (0) 2008.04.02
4. 여신 우뽀사타  (0) 2008.04.02
3. 사리뿟따 존자의 제자  (0) 2008.04.02
2. 아둔한 젊은 비구  (0) 2008.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