話頭·參禪

참선 수행의 요체 - 고봉원묘

通達無我法者 2008. 4. 11. 20:03
 

 

 

참선 수행의 요체 - 고봉원묘


일념(一念)으로 공부하라.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祖師)가 남기신 말은, 비록 일언반구라 하더라도 중생이 삼계(三界)를 초월하여 생사(生死)의 유전에서 벗어나도록 힘쓰신 것이다.

그러므로『법화경(法華經)』에 “모든 부처님은 생사의 인연 때문에 세상에 오셨다.” 한 것이다.

만약 생사를 논한다면 마치 번갯불의 그림자 속에서 바늘에 실을 꿰는 것과 같아서 너의 생각으로는 분별할 곳이 없다. 이 때문에 이 법은 생각과 분별로는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부처님이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백만 대중이 둘러싼 가운데서 이 법을 보였으나 알아차린 사람은 오직 가섭(迦葉)뿐이었으니 진실로 이 일은 경솔히 할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 법을 증득하고자 원한다면 먼저 대장부로서의 뜻을 세워라.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쁜 지혜와 보고 들은 것, 얻고 잃은 것, 옳고 그른 것, 뚫고 뚫지 못한 것을 털어 버려야 한다.

그런 다음 분발심을 내어 금강의 날카로운 칼을 빼어 마치 한 가닥 실오라기를 베어 버리듯 모든 것을 베어 버린 뒤에는 다시는 이어지지 않게 하라.

그리하여 마음을 텅 비게 하여 터럭만한 것에도 구애됨이 없게 하라.

만약 갓난아이와 같이 차를 마셔도 차를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을 모르며, 가도 가는 것을 알지 못하며, 앉아도 앉는 것을 알지 못하며, 모든 생각과 분별을 떠나 마음이 깨끗해지면 마치 밝은 거울 속에 만상이 비치듯이 일시에 깨달음을 이룰 것이다.

깨달음을 이루게 되면 생사의 일이 밝혀질 뿐만 아니라 일체의 차별 인연을 꿰뚫어보아 불법이니 세간법이니 하는 것을 한꺼번에 쳐부수는 진짜 도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대장부로서의 평생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뜻이 미약하고 용맹스럽지 못하여 허송세월만 한다면 20년, 30년을 공부한다 해도 물 속에 잠긴 돌멩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사람이 고봉 문하(高峰門下)에 있다면 다 쳐죽인들 무슨 죄가 되겠는가?


참선의 요체

참선의 가장 요긴한 것은 간절한 생각이다.

순간순간 간절하기만 하면 곧 큰 의심이 일어날 것이니, 아침부터 밤까지 빈틈없이 해나가면 마침내 공부하는 마음이 한결 같아져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고 쫓아내어도 나가지 않고 항상 밝고 뚜렷하게 눈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때가 바로 힘을 얻는 시기이니 이러한 때에 마음을 확고히 잡고 부디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나중에는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을 모르며, 추운 것도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도 모두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이때가 곧 집에 돌아온 소식이니, 이러한 경계를 놓치지 말고 잘 지켜 계속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기다려라.

이런 말을 듣고 오히려 한 생각이라도 내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거나 생각을 내어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거나 또는 되는 대로 마음을 놓아 지내면 안 된다.

부디 굳게 마음을 지켜 마침내 깨치는 것을 법칙으로 삼아야 한다.

공부가 막 익을 무렵에는 팔만사천의 마군들이 네 앞에서 엿보다가 너의 생각에 맞춰 온갖 선악(善惡)의 경계를 나타낼 것이다.

네가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눈앞에 나타나는 경계를 인정하거나 집착심을 내면 곧 마군의 올가미에 얽히게 되어 그의 지휘대로 살게 된다.

입으로는 마군의 말을 하고, 몸으로는 마군의 일을 하게 되어 반야(般若)의 씨앗이 이로부터 끊어지고 보리(菩提)의 종자가 다시 싹트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경지에 이르거든 절대로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무심으로 지켜오고 지켜가면 갑자기 의심이 ‘탁’ 터져서 천지가 놀라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의 수행기

나는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중이 되자 곧바로 3년 동안 선을 배웠다.

처음 단교(斷橋) 화상을 찾아뵈니 ‘태어날 때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를 공부하라고 하였으나 생각이 두 갈래로 갈려 도무지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 뒤에 설암(雪巖) 화상을 뵈니 '무(無)’자를 공부하라 하면서 “사람이 길을 갈 때는 하루에 갈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하듯이 너는 매일 나에게 와서 한 마디씩 말해라.” 하였다.

그 뒤로 공부에 진전이 있는 것을 알고는 다른 것은 묻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무슨 물건이 이 송장을 끌고 왔느냐?” 하고는 발도 채 들여 놓기 전에 때리며 나를 쫓아내었다.

그 뒤에 경산(徑山)에 와서 지내는데 어느날 꿈에서 문득 전에 단교 화상의 방에서 보았던 글귀, 즉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萬法歸一 一歸何處)’라는 글이 떠올랐다.

그때부터 ‘그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의심이 크게 일어나 ‘그 의심’을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동서남북도 분별하지 못했는데 6일째 되는 날, 대중을 따라 누각에 올라가 경을 읊다가 문득 머리를 드니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을 찬(讚)해 놓은 글이 보였다.

모양을 가지고 모양을 취하니 모두가 꿈이로다.

진실을 가지고 진실을 구하니 더욱더 멀어지네.

화두가 환히 앞에 나타나면 분별하지 못할 일 없으리.

백년이라 삼만육천 날에 온갖 조화 부린 것이

돌이켜보니 바로 이놈이였구나.

나는 마지막 구절인 ‘백년이라 삼만육천 날에 온갖 조화 부린 것이, 돌이켜보니 바로 이놈이었구나’ 하는 대목에서 너무 큰 기쁨에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났는데, 이러한 경지를 어찌 1백 20근의 짐을 벗어 버린 것에 비교하랴.

그때 내 나이 24세요, 참선한 지 만 3년이 차던 해였다.

그 뒤 화상께서 이렇게 물었다.

“번잡하고 바쁠 때에도 중심이 잡히느냐?”

“그렇습니다.”

“꿈속에서도 그러하냐?”

“그러합니다.”

화상께서 다시 물었다.

“잠이 깊이 들어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보고 듣는 것도 없을 때 너의 주인공은 어느 곳에 있느냐?”

나는 이 말에 아무 대답할 말도 없고 내어 보일 이치도 없었다.

이에 화상께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제부터 부처도 법도 배울 것 없으며 옛과 지금을 공부할 것도 없다.

다만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곤하면 잠을 자거라.

만약 잠이 깨거든 정신을 가다듬고 ‘나의 주인공이 끝내는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라.”

그때 나는 맹세하기를 ‘차라리 평생을 버리고 바보가 될지언정 이 도리를 명백히 하고야 말리라.’ 하고는 5년을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역시 화상이 일러준 말을 생각하며 있었는데 함께 잠자던 벗이 잠결에 목침을 밀어낸 것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동시에 내가 품고 있던 의심덩이가 깨어져 버렸다.

마치 그물에 걸렸다가 빠져나온 듯하고 저 부처와 조사의 어렵기만 하던 모든 공안(公案)과 고금의 차별 인연이 환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이로부터 온 나라가 편안하고 천하가 태평하였다.


백척간두에 선 것처럼 공부하라

만일 결단코 마음을 밝히고자 한다면 먼저 평소의 마음에 오고간 일체의 선악이라는 물건을 몽땅 버려라.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앉아 달마 대사가 서쪽에서 온 비밀한 뜻을 간절히 연구하되 털끝만큼도 끊어짐이 없게 하라.

시끄럽다, 고요하다는 생각에 치우침이 없이 점점 깊고 먼데로 들어가 더는 갈 데가 없이 하라.

마치 어떤 사람이 타향에서 떠돌다가 마음을 돌이켜 자기 집에 도착하는 것같이 하고 또 도적을 잡아 범행 사실을 다 고백받듯이 일체 의심이 없게 하라.

또 만 길 벼랑 위에 앉아 한 순간이라도 생각을 놓치면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되는 것처럼 하라.  


*고봉원묘(高峰原妙) : 원나라 때의 고승. 15세에 출가하여 17세때 구족계를 받았으며, 41세때 천목산(天目山)에 들어가 16년 동안 문턱을 넘지 않다가 57세에 입적했다. 저서에 참선하는 이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선요(禪要』와『고봉록(高峰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