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함께 하면서 초연하다[塵異] 1
탁한 것은 스스로 탁하고 맑은 것 역시 스스로 맑다.
보리와 번뇌가 다 같이 텅 비어 평등한데
누가 변화씨의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용의 턱 밑의 구슬은 어디를 가나 밝게 빛난다 하리.
濁者自濁淸者淸 菩提煩惱等空平
탁자자탁청자청 보리번뇌등공평
誰言卞璧無人鑒 我道驪珠到處晶
수언변벽무인감 아도려주도처정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十玄談)」4-1
불교의 가르침을 꽃으로 표현할 때 흔히 연꽃으로 나타낸다. 연꽃이 갖는 의미가 불교의 정신과 같다고 해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불교적 삶은 세상과 함께하면서도 세상의 온갖 혼탁한 문제에 물들지 않고 사는 것을 지향한다.
십현담의 진이(塵異)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불교적 삶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 초연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진여심(眞如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일상의 마음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뒤범벅되어 있지만 그 본성인 진여심은 항상 청정하고 영원하다.
이와 같은 본성의 이치에서 본다면 혼탁한 것은 혼탁한 대로 청정한 것은 청정한 대로 모두가 평등하게 텅 비어 공적한 것이다. 중생이니 부처니 하는 것도 단지 그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혼탁과 청정, 중생과 부처는 어디에도 그 실체를 찾을 수 없는 허명(虛名)이기 때문이다.
동안상찰(同安常察, ?~961) 선사는 십현담에서 한비자의 변화편에 나오는 변화씨(卞和氏)의 옥과 몸빛이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다는 진주를 그 예로 든다. 모두가 천하의 명옥(名玉)이며 유명한 구슬이다.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변화씨라는 사람이 형산(荊山)에서 봉황이 돌 위에 깃들이는 것을 보고 그 옥의 원석을 발견하였다. 자신이 가질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곧바로 여왕(厲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감정가에게 감정을 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고 아였다. 화가 난 여왕은 월형(刖刑)이라는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주어 변화씨는 왼쪽 발을 잘렸다.
여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그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남은 오른쪽 발꿈치마저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초산 기슭에서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피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문왕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 까닭을 물었다. “세상에 죄를 짓고 발뒤꿈치를 잘리는 형벌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그대만이 그처럼 슬퍼하며 통곡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자 변화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발뒤꿈치가 잘렸다고 통곡한 것이 아닙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보옥(寶玉)인데도 평범한 돌덩이로 단정하고, 그것을 바친 저를 사기꾼으로 취급한 것이 슬퍼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문왕은 즉시 훌륭한 세공인을 찾아 변화씨의 옥돌을 갈고 닦게 했다. 그러자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문왕은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고 명명하였다.
검은 용의 턱 밑에 있다는 여주(驪珠) 곧 여의주(如意珠) 또한 세상에 둘도 없이 진귀한 보물이다. 그 가치와 빛이 언제 어디서나 같다는 의미에서 사람의 진여자성을 상징적으로 비유한 것이다.
동안상찰 선사가 이 옥을 비유로 든 것과 같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도 그 내면에는 청정무구한 진여심이 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다 평등하게 갖추어져 있다. 마치 화씨지벽이 겉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돌이지만 그 속은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인 것과 같다. 세상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지만 세상에 초연할 수 있는 이유와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마치 진흙 속에서 피지만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연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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