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명구·무비스님

세상과 함께 하면서 초연하다[塵異] 2

通達無我法者 2008. 8. 13. 22:10

 

 

 

세상과 함께 하면서 초연하다[塵異] 2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전체가 드러나나니

삼승(三乘)이라는 분별은 억지로 이름을 만든 것일세.

대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를 뜻이 있어서

여래가 간 곳을 향해 가지 않는다.

萬法泯時全體現  三乘分別强安名

 만법민시전체현    삼승분별강안명

丈夫自有衝天志  莫向如來行處行

 장부자유충천지    막향여래행처행

- 동안상찰 선사 「십현담(十玄談)」4-2

 

 

   동안상찰(同安常察, ?~961) 선사의 십현담(十玄談)은 대단히 빼어난 선시(禪詩) 중의 하나다. 열 가지 제목으로 부처님의 팔만대장경과 역대 조사스님들의 어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세상과 함께하면서도 세상에 초연하다[塵異]’라는 것은 동안 스님 자신의 경계에서는 세상의 온갖 삼라만상들이 보이고 들리는 대로 어수선하게 펼쳐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만약 모든 것을 보이고 들리는 대로 다 펼쳐놓고 살다 보면 자연히 사람들의 잡다한 근기들을 쫓아다니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수많은 말을 조목조목 일러주고 그 말을 통해 하나하나 깨우쳐 가게 하는 성문승(聲聞乘)의 가르침을 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연기(緣起)로 얽혀 있다는 이치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연각승(緣覺乘)의 가르침도 설해야 한다. 연기에도 아뢰야(阿賴耶)연기, 진여(眞如)연기, 법계(法界)연기 등이 있으니 그 이치가 복잡하다. 세상에서 초탈한 선사로서 어찌 이런 복잡한 교설에 머리를 쓸 수 있겠는가. 훌륭한 선지식이 되어 난세를 구제하고 중생의 온갖 불행을 다 건진다 하더라도 역시 세상에서 아득히 빼어난 선사로서는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선사들의 선기(禪氣)를 높이 사는 뜻은 무엇인가. 마음을 펼치면 온갖 만법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 한 마음을 거둬들이면 일체가 사라진다. 일체가 사라진 그 자리에 진정 대기대용(大機大用)과 전체작용(全體作用)이 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을 누가 있어 알랴만 진정한 선사의 높은 기개는 일방통행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펼쳐 놓은 삼승의 분별들은 알고 보면 중생들의 잡다한 근기에 수순하는 억지소리[强安名]에 불과하다.

   대장부에게는 하늘을 찌를 뜻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대장부란 누구인가? 원시(原始)불교와 부파(部派)불교를 부정하고 새로운 불교, 즉 대승(大乘)불교 운동을 일으킨 마명(馬鳴) 보살과 용수(龍樹) 보살 같은 이들이 대장부이다.

   그로부터 수세기가 흐른 뒤, 대승불교도 더 이상의 새로운 시대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일체의 대소승 경전들을 모두 폐기처분[不立文字]하고 또 새로운 불교 운동을 일으킨 달마와 같은 분들이 또한 대장부이다.

   이와 같이 과거의 불교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를 선도하는 이들을 대장부라 한다. 대장부에게는 스스로 하늘을 찌를 뜻이 있으므로 과거의 여래가 간 곳을 따라 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러한 점을 표현한 것이다.

   과거 모든 시대에는 각각 그 시대에 맞는 불교 운동이 있었다. 동안상찰 스님의 말씀대로 오늘날의 불교 또한 이 시대에 적합한 새 옷으로 과감하게 갈아입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세상과 함께하면서 세상에 초연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