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法語)

세존

通達無我法者 2008. 8. 18. 08:58


불기. 2459년. 5월. 29일/무비스님



     世尊이 未出母胎에 度人已畢하시다.



   오늘부터 인연 따라서 선문법어를 조금씩 해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소개 하려고 합니다.

   선문법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불교를 通稱(통칭) 禪佛敎(선불교)라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지요. 그렇습니다.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고, 또 한국에 전해지고, 일본에 전해지면서, 經學(경학)이 먼저 들어와서 이론적인 것이 상당히 많이 알려진 뒤에, 중국의 경우를 우리가 치자면 한 200 여년이 훨씬 지난 뒤에, 달마스님이 동토에 오셨다고 그랬지요.


조사서래의 라고 해서, 불교역사서에서 아주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 그 사건!

   달마스님께서 중국에 오신 그 사건으로 인해서 비로소 선법이, 동토에 전해졌다고 표현을 흔히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선이 퍼지기 시작해서, 한국에도 그 영향을 받아서 한국 불교가, 사실은 선불교의 宗主國(종주국)이라고 자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선문을 나름대로 본다고 보았고, 또 선방에도 10 여년 이상 그렇게 다니느라고 다녔고, 또 당대의 조실스님들. 방장스님들. 이런 당대의 선지식들 회상에서 한 철이나 두 철 내지, 인연 있는 만치 꼭 그렇게 가서 살고 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을 그대로 사장시키기는 지금쯤 와서 생각하면 아깝고요. 설사 큰 깨달음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저는, 최선을 다 해서 정진을 했고, 또 그 나름의 성과가 있었고, 그런 것들을 선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우리 한국불교에서, 그 선문법어가 좀 보면 선문법어답지 못한, 그런 내용이 많은 것들이, 마음에 좀 유감으로 남기도 하는 등등의 생각에서...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저의 공부가 좀더 깊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에서 선문법어를 좀 생각나는 대로, 인연 닿는 대로 해서 여러 분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내용은 우리나라 진각국사의 편찬인데, 선문염송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저서 입니다.

   부처님의 행적과, 그리고 경전과, 그리고 뛰어난 선지식들의 말씀. 또는 法擧量(법거량). 또 어떤 깨달음에 대한 機緣(기연)들을 모아 놓은 책인데요. 아주 참 중량이 있고 내용이 그 어떤 불교경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아주 깊이 있는 책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선문염송을 그대로 다 이야기할 것은 아니고, 거기에, 제 마음에 들고, 또 제가 소개하고 싶은 것들을 선별해 가면서, 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선문염송의 내용은, 선법문의 원형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선문법어 라고 제가 이름을 붙였습니다. 오늘은 선문법어 의 첫 시간이 되겠습니다.


   첫째, 세존!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가 선문염송에도 첫 항에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도솔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화엄경 이세간 품, 십종미세 취산문 이라고 하는 내용을 간추려서 서술한 것인데, 어쨌건 근거는 화엄경 입니다.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왕궁에 태어 나셨으며,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셨다. 이 내용입니다.


   아주 기상천외한 이야기이지요? 아주 格(격) 밖의 소식입니다. 보통 우리의 상식으로선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보통 부처님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부처님은 과거생 에 도솔천에 계시다가 왕궁으로 정신이 하강하셔서, ←도솔 내의상. 부처님의 팔상성도를 이야기할 때, 당연히 도솔천에서 내려오셔서, 모태에 들어가서 태어나시고 그리고 성장하시고, 태자생활을 하시다가 그 다음에 출가 하셔서, 6년 고행하고 49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설법을 많이 하셔서, 중생들을 제도 하신 것으로 상식적으로는 그렇게 되어있고, 모든 부처님의 전기나, 생애를 기록한 내용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화엄경의 이세간 품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화엄경이지만, 선문이라고 하는 것이고, 선문에서 이것을 높이평가 하는 글이기 때문에, 선문법어를 하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지요.

   다시 말씀드리면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왕궁에 태어 나셨다.

   사실은 도솔천에서 내려와 가지고 왕궁에 태어났는데, 아니 도솔천에 그대로 계시면서 왕궁에 태어났다. 이렇게 말씀하셨고, 또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했다.


어머니의 모태에서 출생해서 성장해서 출가 하고 6년 고행하고, 그리고 성도를 하고 나서 중생들을 제도했지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어머니 모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어머니 뱃속에 있으면서 이미 모든 사람들을 다 제도했다.

아~! 이것 참 기상천외한 일이고 정말 격 밖의 소식이고, 상식으로선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문에는 버젓이 나와 있지요. 이것이 경학에 있는 것이면서 또, 선문으로선 높이평가 받을만한 그런 내용이기 때문에, 옛날에 그 훌륭한 선지식들이 이것을 이렇게 거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공산원 이라고 하는 스님이, 게송을 했어요. 많은 스님들이 게송을 하기도 하고 또, 그것을 더 드러내기도 하고, 좀더 이해의 폭을 넓히기도 하고, 찬탄도 하고, 이렇게 공양도 올리고, 그래서 여러 사람들에게 드러내서 어떻게 하더라도 제대로 이해시키려고 하는, 이런 선지식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물론 다 소개 하지는 않지마는, 몇 몇 소개되어 있는 글들을 우리가 살펴보며는, 첫째 공산원 스님이라고 하는 이가, 이런 게송을 하셨어요.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벌써 국왕의 왕궁에 태어 나셨고, 중생을 다 제도 하셨었도다. 아직도 어머니 뱃속에 계신다 하나, 참으로 묘한 재주가 아니요, 또한 신통도 아니다.

   이렇게 했습니다. 묘한 재주도 아니요, 또한 신통도 아니 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 얼마나 묘한 재주 입니까? 도솔천에 있으면서 왕궁에 태어났고, 어머니 뱃속에 있으면서 사람들을 다 제도 했으니, 이 보다 더 뛰어난 재주가 어디 있으며, 이 보다 더 뛰어난 신통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공산스님은 이것은 묘한 재주도 아니고, 또 신통도 아니다. 그러니 공연한 법도를 세우지 말고, 말속의 宗旨(종지)를 알도록 하라. 이렇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재주도 아니고, 신통도 아니다. 그럼 뭐냐? 이런 것은 사실은 선문을 설파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왕 이제 說禪(설선). 선을 이야기하기로 하고, 법으로서 표현해 보기로 한 이런 마당이니까, 조금 푼다면,


왜? 재주도 아니고, 신통도 아니냐? 본래로 다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시간과 공간에 근거를 해서 이루어져 가는 것 같이 되어 있지만, 사실은 시간과 공간을 다 초월해서 이미 갖춰져 있는 일이다. 다른 눈으로 이해한 것이지요. 

   보통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고, 정말 다른 눈으로 이해한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재주도 아니고 신통도 아니고, 아주 평범한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다 가능 한 일이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살아온 일이고, 앞으로도 살아갈 그런 일이다.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또 한분을소개하면요. 그러니까 원문이,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기 전에 이미 왕궁에 태어 나셨고, 또 어머니 모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했다. 라고 하는 여기에,


원오스님이라고 하는 아주 훌륭한 선지식이 계셨지요. 그 분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큰 형상은 본래부터 형체가 없으며, 지극히 비어야 만물을 포함한다. 그리고 꼴찌가 그대로 1등이고, 남쪽으로얼굴을 돌려 북두칠성을 본다.

그랬지요. 이것은 이야기가 未出母胎(미출모태). 나오기 전에, 사람들을 다 제도했다. 라고 하는 것을 그대로 찬탄하고 순응 해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왕궁과 도솔천과 중생 제도와 태어나서 나옴이, 시종일관 하여 애초부터 가고 옴이 없으니, 자취를 쓸어 없애고 뿌리를 뽑아 버려야, 불속의 연꽃이 곳곳에 피어나리라. 이렇게 아주 근사한 禪時(선시)를 남겼는데, 이 내용은 그렇습니다.


   첫 구절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해답이 다 있어요. 말하자면 큰 형상은 본래부터 형체가 없다. 그리고 지극히 비어야, 터~엉 비어야 만물을 포함한다.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쉬운 이해의 방식을 빌리자면, 우리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지요.

   우리마음은 정말 형체가 없지요. 그리고 마음만치 큰 것이 없습니다.

큰 형상은 본래부터 형체가 없다. 그랬습니다. 지구가 아무리 크고 지구의 몇 만 배가 된다고 하는, 오리온의 제일성좌 같은 것들도, 결국은 형체가 있는 것입니다.


형체가 없어야 그게 진짜 큰 형상이다. 그리고 이 허공이 모든 별들을, 모든 세계를 다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극히 비었기 때문에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마음자리가 본래로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거기서 어떤 격 안의 소식이라든지, 격 밖의 소식이라든지, 이런데 구애 받도록 되어있지 않습니다.


    마음도리를 제대로 알고 보면, 다시 말해서 선지식들은요. 부처님을 위시해서, 이 공부에 뛰어난 선지식들은 이 마음공부. 모든 존재의 실상에 대한 어떤 전문가라고 하면, 괜찮을 거예요.

   그런 전문가적인 안목에서 보면, 사실은 얼마든지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표현을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기전에 이미 왕궁에 태어 나셨고, 어머니 모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제도하셨다. 아주 근사 하지요?


   선문은 그렇습니다. 이것은 비록 화엄경의 이야기이지만, 이미 선문으로 취급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문에 올라있고, 그리고 이 말씀을 선지식들이 아주 즐겁게 그것을 읊조리고, 또 거기에 대해서 당신의 소견을 붙이고, 그것을 드러내고 찬양하는 어록들이 아주 많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을 선문이라고, 여기에서 우리가 또 뭔가 한 생각이 돌아가야 됩니다.


   눈을 뜨면 더욱 좋고, 마음에 뭔가 집히는 데가 있으면 더욱 좋고요, 뭔가 느끼는 것이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이런 이치를 한 번쯤 사유해 보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선문법어 첫 말씀을 여기서 맺겠습니다.


근래에 우리나라에 선불교가 상당히 대중화 되면서, 선 법문이 여기서 저기서 많이 행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조계사에서도 전국 선원 장 들을 모시고 선 법문 을 했고, 또 동화사에서는 담선 법회 라 해서, 선 논강 형식으로 또 이야기가 있었고, 또 얼마 전에 범어사에서도 십대선사. 글쎄 전국 십대선사인지 아니면, 범어사 십대선사인지, 어쨌거나 십대선사 라는 명목으로 선 법문을 해서 마쳤는데, 그래서 이 선 법문 이라고 우리가 말을 붙였을 때, 진정 선의 종주국 이라고 한국불교를 그렇게 말하면서, 그런 것들도 좀 제대로 격식이 좀 갖춰지고, 체계가 좀 서 있어야 되겠다 싶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일반 신도들을 위해서 교양법문 이라든지, 생활법문 이라든지, 아니면 불교 교리법문 이라든지, 이런 것을 하는 데는, 어떤 이야기를 하던지 상대에 따라서, 또 상황에 따라서 관음제일이면 관음제일에 맞추고, 지장제일이면 지장제일에 맞추고, 이렇게 하니까 상관은 없는데, 우리가 명색이 선의 종주국이라고 하고 또, 십대선사. 또는 각 선원의 선원 장. 그러니까 선의 대표자 들을 모셔놓고 선 법문을 하는 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기대들을 하고 있거든요. 저도 물론 기대하고...


   그래서 이제 이 선 법문이 무엇인지 우리가 좀 알고 했으면 좋지 않는가 하는, 그런 좀 유감스러운 점 들을 근래에 많이 느꼈어요.      제가 첫 시간 선문법어라 해서, 조금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 시간도 역시 한번 이야기해볼 그런 문제라서, 지난 시간에 제기한 그 문제를 이 시간에 또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오늘마침 지월스님도 동참을 했고 해서, 더 아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나네요.


   염송 제 일조에 보며는, 그러니까 첫 항이지요.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기 전에, 이미 왕궁에 태어났고, 어머니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 해 마쳤다.

   이것이 아주 우리 선문에서는 참 여러 선사들의 입에 회자되는 아주 유명한 말이거든요.

   우리 상식에는 부처님께서 도솔천에서 내려오셔 가지고 모태에 들어가서, 어린시절을 궁중에서 살다가 성장을 해서 출가하고, 6년 고행하고 성도하고,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것으로 전기라든지 팔상록 에 다 이야기가 되어 있는데요.


   그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것인데, 이것이 화엄경 이세간 품에 있는 것을 취약한 것인데, 아 이렇게 경전에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선문으로서 상당히 높이 평가받는 구절이다 합니다. 그래 도솔천에서 떠나기 전에 이미, 왕궁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또 어머니 모태에 있는 채, 중생들을다 제도 해 마쳤다. 이것이 아주 대단한 경지거든요.


우리가 의리선 으로 풀면은, 이것은 本分事(본분사)의 문제다. 본래면목의 입장이라고 풀 수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다른 스님들의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대종고 스님은 여기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썼어요.

匕首(비수) 끝에 발린 꿀, 핥지를 말라. 또 비상 파는 집에서 물맛을 보지 말라.

   비수 끝에 발린 꿀을 핥지도 않고, 또 비상 파는 집에 물맛을 보지도 않을 것 같으면, 분명히 비단옷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출세해서 금의환향 하리라. 이렇게 표현을 했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未出母胎(미출모태) 度人已畢(도인이필).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중생들을 제도해 마쳤다. 라고하는 그 본분도리는 그야말로 비수 끝에 발린 꿀입니다.

거기에는 함부로 입대고 건들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마치 비상 파는 집에서 물 과 같은 것입니다.

먹었다 하면 치명상이라, 죽는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우리가 건들지 않고 그대로, 그 본분도리를 정말 추호만치도 흠집을 내지 않고, 우리가 설명 한다고 이런 저런 군더더기를 많이 붙이면 그것은 그야말로, 傷身失命(상신실명), ←지 죽는 일이라고요.


   그야말로, 대스님  말씀처럼 꿀을 핥으려고 비수 끝을 입으로 무는 것과 마찬가지죠. 혀만 짤리 는 거죠.

   그리고 목마르다고 비상 파는 집의 물을 함부로 먹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럼 치명상으로 죽는다 이 말 이예요.

   그러니까 그 정말 본분사의 그 도리는 우리가 건들 수 없는 것인데, 이러쿵저러쿵 군더더기를 붙여 가면서, 너무 많이 설파를 하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렇기도 하고, 알고도 또 자비가 너무해서 그렇기도 하고 그래요.

   대스님 말씀은 그런 짓거리 하지 아니 할 것 같으면, 금의환향한다. 출세한다. 그야말로 본분종사가 돼서, 두 다리 쭈~욱 뻗고 편히 낮잠 잘 수 있다고 표현 했습니다. 아주 멋진 표현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취암스님의 이야기가 있는데, 말하자면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사람들을 다 제도 해 마쳤다.

이것이 사실은 일견에 제일 감 으로 바둑 두는데 그런 표현을 하지요. 제일 감 으로 후닥 딱 알아맞히고, 답이 나와야 됩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깊은 사유를 통해서라도, 뭔가 근접하려고 하는, 그런 어떤 노력을 통해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취암스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법문이 이 지경에 이르러서는 입이 있어도 쓸모가 없구나! 그렇지요. 이 법이, 아니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중생 제도 다 해 마쳤다. 니 거기에 도대체 어떻게 해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법문이 이쯤 되면은, 입이 있어도 말 한마디 붙일 수가 없어요. 開口卽着(개구즉착). 입만 벌렸다 하면 곧 그르치는 그런 도리라고요.


   그러면서 만일 잘 알 수 있다면, 이 도리를 그야말로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중생 제도를 다 해 마쳤다. 면 이것은 천하노화상들의 콧구멍이 몽땅 그대들의 손아귀에 있다. 이래요.

이건무슨 말이 인가하면, 천하 선지식들의 목숨이 바로 당신 손에 있다. 이거죠. 그 도리만 잘 알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중생 제도를 다 해 마쳤다. 고 하는, 이 소식을 알 것 같으면, 그야말로 천하 선지식들의 목숨이 바로 당신 손에 있다.


그 말이 무슨 뜻인가하면 표현을 격하게 해서 그렇지, 바로 당신도 천하 노화상에 들어간다. 천하의 일대 선지식에 들어간다. 이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같이 선지식들과 놀 수 있다는 거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그걸 좀더 지나친 표현을 하자면, 천하 노화상들의 콧구멍이 몽땅 그대의 손아귀에 있다. 이렇게 했어요.

   만일 그런 도리를 모른다면, 피를 토하도록 울어도, 소용없으니 입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내는 것만 같지 못하리라.


   이것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詩句(시구)인데, 諸得血淚無用處(제득혈루무용처)하니 不如緘口過餘春(불여함구과여춘) ←이것은 말하자면, 두견새가 봄에 피를 토하면서 운다는 겁니다.

   두견새라고도 하고, 소쩍새라고도 하고, 자귀새 라고도 하고,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그 새는 피를 토하면서 까지 운다는 겁니다. 피를 토하면서 까지 울어도 소용없으니, 차라리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내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불교를 이해하고, 불교를 설명 한다고 하는 것도, 이 선문법어의 차원이 되면은, 부처님이 모태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중생제도 다 해 마친 것을 알아야 되고, 또 그 도리를 모르고, 뭐 교리가 어떻고, 뭐 삼승이 어떻고, 무슨 경이 어떻고, 무슨 경이 어떻고, 그렇게 해 봐도,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일이고, 그야말로 여기 두견새처럼 피를 토하면서 울어 봐도, 쓸모없는 일이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 남은 세월이나 잘 보내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뭐 向上一路(향상일로)지요. 그야말로 向上一路는 千聖道不傳(천성도부전)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아주 최상의 경지인데, 이것은 모든 성인도 전해줄 수도 없고, 전해 받을  수도 없는 그런 경지입니다.

   다른 것이야 이야기를 하면 다 이해를 하고, 무슨 뜻인지 알지요. 그런데 이 경지는 성인들끼리도 서로 전해줄 수 없는 그런 경지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불교가 갖는, 특히 선이 갖는 최상의 경지이고, 선 도리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선 법문이지요.


   그런데 거기에 혀를 될 수 없다면, 아무리 무슨 소리를 장황하게, 그야말로 蘇秦張儀(소진장의)처럼 멋진 구변을 늘어놓는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격이 대단한거죠. 그것이, 선의 긍지와 자부심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무슨 제법에 대한 가상을 이야기한다던지, 제법공상을 이야기한다 해도, 공이니 연기니 이런 것을 이야기 한다 해도, 그것은 그야말로 피를 토하면서, 쓸데없이 울어대는 두견새와 같은 것이지요.


   두견새라고 하는 것은 본래 歸蜀道(귀촉도)라고도 합니다. 촉나라의 왕자가, 다음 왕위를 이어받을 입장이었는데, 정치적 모함에 의해서 자기가 폐위가 되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고요. 결국 국왕으로부터 쫓겨난 거죠.

   이 정치라고 하는 것은, 그런 간신배들의 자기 이해득실을 위해서, 별별 음모가 벌어지니까요.

   지금 민주사회정치도 그렇지만, 옛날 궁중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죠.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런 것들이 더 하다고요. 그래서 참으로 불행 하게도, 이 왕위를 계승할 왕자가 쫓겨났어요.


   쫓겨나서 그 한을 품고 죽어서 새가 되었는데, 그 원한을 품고 죽어서 새가 되었으니까, “귀촉도. 귀촉도" ←나는 촉나라에 돌아가리라. 촉나라에 돌아가리라.

   얼마나 한이 많이 쌓였으면 그렇게 울겠어요? 또 不如歸(불여귀)라. ←돌아가는 것만 같지 못하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이런 표현으로도 되고 있는데, 그 새가 피를 토하면서, 한번 그렇게 소쩌~억하고 울면 그 피가, 보통 풀잎에 떨어져도 그 풀잎이 빠~알갛게 변한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것이 온 산에 나중에 퍼져서, 다음해 봄이 되면 그 새가 한번 울기만 하면, 여기서 한 무더기 빠~알갛게 피어나고, 저쪽에서 또 빠~알갛게 피어나고, 이렇게 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진달래예요. 사실은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하잖아요. 진달래의 전설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거 뭐 선 법문을 한다고 하다가 전설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것은 제법가상 이야기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것은 제득혈루무용처 라는 이 멋진 시를 좀더 이해시키기 위해서, 전설을 삽입한 것입니다.

사실 이 선 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 경지! 그 도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거예요.


未出母胎(미출모태)에 度人已畢(도인이필)이라.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이전에, 이미 사람들을 제도해 마친 그 소식! 바로 그 도리!

   그 도리에 뭔가 이렇게 집히는 데가 있어야 된다고요. 집히는 데가 있어야 된다는 말을, 이건 제가 백보 양보해서 하는 말이지, 사실 거기에 눈을 떠야 되고, 거기에 뭔가 미소를 해야 될 그런 입장이 선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좀 해서 남겨두고 싶고, 선문법어 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하는 것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그런 마음에서, 이런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청중이 여럿이 있어서 이야기할 맛이 납니다.


 

 

 


'법어(法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世尊而 見明星 悟道  (0) 2008.08.18
天上天下 唯我獨尊  (0) 2008.08.18
어려움이 오면  (0) 2008.08.15
야부스님  (0) 2008.08.12
承春高下盡鮮姸 雨過橋林叫杜鵑  (0) 2008.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