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30. 소실산의 석굴(石窟)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11:14

 

 

소실산의 석굴(石窟)

‘밝은 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깨달음’이다

소실산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반야다라가 암시한 땅인데
섣불리 떠날 수 있겠는가



당시 중국 땅에서는 대승과 소승의 파벌다툼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었다. 천축에서조차 이런 다툼은 빈번하게 일어났고, 싸움은 점차 격렬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아는 달마는 소림사 주지 혜광이 소승을 고집하고 대승을 거부하는 까닭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문득 천축의 대승공종(大乘空宗)의 비조(鼻祖)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생각났다.

용수보살은 기원전 2세기 전후의 인물이다. 천축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경전을 익혔고, 학문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천문지리(天文地理)에서 도위비참(圖緯秘讖), 제가(諸家)의 도술(道術)에 이르기까지 훤히 꿰뚫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성격까지 호방했던 그는 점차 세상을 깔보기 시작했고, 이는 방탕한 생활로 이어졌다. 그는 벗들과 어울려 주색에 빠져 지냈다. 마침내 왕궁의 궁녀에게까지 손을 뻗친 그와 벗들은 궁녀와 정을 통하다 발각되고 말았다. 두 벗은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는 간신히 몸을 피해 달아났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그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그는 곧 출가하여 공문(空門)으로 들어가 정진을 거듭했다. 여기에서 그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선양하는 수많은 논저(論著)를 저술했다. 어느덧 수많은 승려와 신도들의 존경심이 그의 한 몸에 쏠렸다. 자연스럽게 그는 대승불교의 공종(空宗)을 창립하여 그 시조(始祖)가 되었다.

용수가 말하는 ‘일체개공’은 흔히 ‘공(空)’을 최고로 삼는 사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중론(中論)>이라는 저서에서 “얻는 것도 없으며 이르는 것도 없다. 또한 영원한 것도 없으며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도 없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涅槃)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열반’조차도 ‘공(空)’이라고 여겼다.

용수의 이러한 ‘일체개공’ 사상은 당시 천축의 소승파 불도들로부터 맹렬한 비난과 반대를 받았다. “소승파들은, 듣고 나면 마침내 모두가 공(空)인 것 같아 마치 칼로 베인 것처럼 상심했다”고 당시의 기록은 적시하고 있다.

선학(禪學)의 관점에서 볼 때 소승파의 주장은 ‘유(有)’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아공(我空)’을 승인할 뿐 ‘법공(法空)’은 인정하지 않았다. 주체적인 ‘아(我)’만이 ‘공(空)’일 뿐 그 밖의 객체는 모두 ‘유(有)’라는 이야기이다. 용수에 대한 소수파의 반대와 공격은 날이 갈수록 드세졌다. 용수는 어쩔 수 없이 조용한 곳으로 몸을 피해 세상을 등지고 살 수밖에 없었다.

달마는 용수와 자기 신세를 비교하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애써 용수보다는 낙관적인 처지에 있다고 자위했다. 달마는 머리 속에 용수의 제자 제바(提婆)를 떠올렸다. 제바도 역시 바라문 출신이었다. 그는 스승 용수와 마찬가지로 많은 책을 읽어 박식했으며 재변(才辯)이 절륜(絶倫)하여 천축에서 그 이름을 떨쳤다. 용수보살이 세상을 떠난 후 그는 대승공종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는 <백론(百論)>이란 저서를 남겼는데 이것은 스승 용수가 지은 <중론>, <십이문론(十二門論)>과 함께 ‘삼론(三論)’으로 꼽힌다. 이 ‘삼론’이야말로 대승공종의 기본 경전이다.

제바의 신행(信行)은 마침내 남천축 왕의 눈에까지 띄게 되었다. 왕은 제바를 불러 들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왕의 물음에 제바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빈승은 일체지인(一切智人)이올시다.”
감히 왕 앞에서 모든 것을 안다고 장담하다니. 남천축 왕은 행여 잘못 듣지나 않았나 싶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갖가지 일로 시험해 보니 과연 세상사에 모르는 것이 없었다.

왕은 영(令)을 내려 나라 안의 모든 승려를 불러모아 제바와 대론(對論)하게 했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적수가 되지 못했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제바의 제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 그 가운데는 물론 소승파의 승려들도 들어 있었다. 소승파의 한 제자는 그의 스승이 패했다는 사실에 심한 치욕을 느꼈다. 그는 복수할 마음으로 칼을 갈았다. 제바가 ‘공’이라는 칼로 스승을 곤경에 빠뜨렸으니 자신은 ‘진짜 칼’로 제바를 쓰러뜨리겠다고 다짐했다.

우연히도 제바는 경행(經行)하는 중 그 제자를 만났다. 제자는 비호같이 달려들어 제바의 배를 한칼에 베었다. 피가 터지면서 오장(五臟)이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제바는 오연(悟然)하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내가 전생(前生)에 죽인 것이 바로 너였구나!”
달마는 이런 고사(故事)를 생각할수록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이들이 서로 파벌을 갈라 싸움을 하고, 게다가 살인까지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냉랭한 눈으로 혜광을 쏘아보았다. 혜광도 작심한 듯 달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달마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붓을 집어들었다. 먹물을 흠뻑 찍어 북쪽 벽 앞으로 다가가더니, 숨도 쉬지 않고 일필휘지로 열 자의 글을 써 내려갔다.

“이 곳에서 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此地不容僧) 중을 받아들일 곳은 절로 있을 것이다(自有容僧地).”글을 다 쓰자 붓을 던지고는 근엄한 목소리로 ‘아미타불!’을 외쳤다. 소매바람을 일으키며 방문을 나선 달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문 밖으로 사라졌다.

달마는 소림사를 나서긴 했지만 소실산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반야다라 사존(師尊)께서 게송에서 암시하신 땅인데 어찌 섣불리 떠날 수 있겠는가? 그는 산문 밖에 서 있는 두 그루의 계수나무를 다시 한 번 올려다보면서 창성할 창(昌)자를 몇 번이나 입 속에서 되뇌었다. 이 곳이 스승이 지적한 불연의 땅이 맞다면, 반드시 창성할 길을 찾아야 하고 또 창성을 이루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청정한 곳을 찾아야 했다. 그 곳에 머물면서 정신을 집중하여 번뇌를 제거하고 맑은 마음으로 좌선에 임함으로써 선정(禪定)의 법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첩경이라고 생각했다.

달마는 선정의 법이야말로 성불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어왔다. 달마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6년 고행 끝에 좌선으로 얻은 깨달음의 경지가 무엇인지 분명 알고 있었다. 그의 스승 반야다라는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 좌정하여 새벽녘에 본 명성(明星)의 실상을 달마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가르침을 일컬어 불립문자(不立文字) 또는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성, 즉 밝은 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번쩍 하는 ‘깨달음’이다. 머리 속에서 빛나는 별이 보이지 않고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一)의 진법(眞法)이 다다르는 최고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진법을 바로 알면 사람의 관념이나 의식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관념이나 의식을 바꾸지 않고는 진법을 배울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달마는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했다. 애당초 달마 자신도 소승이 아니었던가. 스승을 만나 대승으로 옮겨가 진법을 배운 일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달마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혜광을 비롯한 소림사의 승려들이 비록 지금은 소승에 사로잡혀 있지만 일단 고집과 편견의 멍에에서 벗어나 깨닫게 되면 소승을 버리고 대승으로 옮기는 것도 어려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들이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도모하게 되면 나 달마에게 찾아와 법우(法雨), 곧 진리의 비를 걸(乞)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 아니겠는가.

달마는 생각이 이에 미치자 소림사가 마치 자가 품안에 든 듯 마음에 들었다. 반야다라 존자께서 지시하신 불연을 이루어 동쪽 땅에서 진법이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절로 마음과 몸에 상쾌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는 신바람이 난 듯 소실산의 깎아지른 듯한 석벽 사이를 누비면서 바위를 타기 시작했다. 그가 찾는 청정한 터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싶어 쉬지 않고 산을 오르내렸다.

그는 기(旗) 고(鼓) 검(劍) 인(印) 종봉(鍾峰) 등 오대 산봉을 모조리 답사했다. 그동안 무려 수십 개에 이르는 바위굴과 토굴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가 찾고 있는 터가 아니었다. 단지 비바람만 피할 수 있다든지 아늑하다는 것만으로는 선정의 터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찾아다닌 지가 벌써 3일이 지났다. 수없이 돌고 돌아도 결과는 여전히 허사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언제나 종착지점은 한 곳이었다. 소림사 뒤쪽 가파른 산등성이에서 발이 멈췄다. 나흘째 되는 날 자시(子時), 달마는 무릎을 꿇은 궤좌의 자세로 좌정에 들었다. 그는 나를 잊은 채 무한의 시공 속으로 빠져들었다. 섬광 같은 빛이 내려꽂혔다. 그 빛을 타고 스승 반야다라 존자가 나타났다. 스승은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 신선을 모시고 있었다. 반야다라는 그 신선을 치우천황(蚩尤天皇)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분이 득도한 동굴이 바로 산등성이 밑에 있으니 그 곳을 찾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달마는 눈을 번쩍 떴다. 빛은 잔영을 남긴 채 사라졌다. 달마는 빛이 내려꽂혔던 절벽 밑에서 신비한 기운을 느꼈다. 그 곳에서 빛의 여울이 넘실거리는 듯싶었다. 달마는 어둠을 가르고 산등성이를 내려왔다. 몇 개의 바위를 타고 넘으며 서기가 감도는 절벽 밑에 당도했다.

열 길쯤 되어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는 기이하게도 온갖 나무와 풀로 덮여 있었다. 동굴이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달마는 동굴이 있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그만치 확고했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 스승과 치우가 한 몸이 된 모습으로 어른거렸다. 그 모습은 뒤덮인 관목을 뚫고 이내 바위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달마는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어 정신 없이 바위 쪽으로 달려갔다.

관목으로 덮여 있는 쪽을 헤쳐보니 과연 동굴이 그 곳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동굴에선 따뜻한 기운이 새어나왔다. 마치 신선의 체온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달마는 기뻐서 미칠 것만 같았다. 빠른 손놀림으로 나무를 헤치고 풀을 뽑아 길을 냈다. 그는 동굴 안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동굴의 크기는 한 칸 남짓 방만했다.

멀리 동이 트면서 한 줄기 햇빛이 동굴 안으로 스며들었다. 동굴 안은 그 빛으로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어둠으로 감싸인 굴 안은 마치 태초의 혼돈에서 새 생명이 탄생하듯 빛과 어울려 둥실거렸다. 달마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하나가 되었다. 해가 솟아오르자 빛의 각도가 바뀌었다. 굴 안도 그에 따라 조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속에 우주의 변화 전체가 깃들여 있는 듯싶었다. 달마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염주를 굴리기 시작했다. 우주의 순환과 변화를 염주알 속에서 짚어보기라도 하듯 열중했다. 그는 낭랑하게 ‘아미타불’을 연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