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46. 삼귀수행(三歸修行)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18:46

 

 

삼귀수행(三歸修行)

“본래면목과 無字眞經을 깨쳐야 하느니” 부귀와 세속의 풍조 결코 탐하지 말고 남이 나를 해칠지라도 범연하게 경의 표하라.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삼화취정(三花聚頂)이 되어야 하고 그 전제조건은 삼염(三厭)을 제청(除淸)하는 것이라는 스승의 설법에 혜가는 귀가 번쩍 열렸다. 무릎을 세워 한 걸음 나아가 엎드려 경의를 표했다.

“스승님이시여, 미혹한 제자는 삼염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나이다. 부디 가르침으로 밝혀 주시옵소서.”달마는 웃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우선 염(厭)이라는 글자의 뜻부터 알아야 하느니라. 이 글자는 옛날 배달의 성인(聖人) 창힐(倉 )이 창조한 표의문자 곧 한자의 하나인데 ‘염’이란 글자꼴의 한가운데에 해(日)를 놓고 그 주변을 사음(四陰)으로 감싸 만든 글자이니라. ‘염’에서 위로 비낀 ‘一’은 음이고 해(日) 밑에 놓은 달(月)도 음이며 왼편에 삐친 ‘ ’도 음이요, 바른쪽의 개(犬)도 음 기운을 나타내는 것이니라. 여기에서의 개는 천구(天狗)이니 해와 달을 먹어 버리느니라.

 

이른바 삼염(三厭)은 삼화(三花)를 해치는 것이므로 그것이 제거되지 않고선 수행이 이루어질 수 없는 법이다. 대개 삼염에는 세 부류가 있으니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새는 천염(天厭)이요, 땅을 가로질러 달리는 짐승은 지염(地厭)이요, 물 속을 가로질러 헤엄치는 고기는 수염(水厭)이라고 하느니라. 수행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순양체(純陽體)를 닦아야 하므로 음기(陰氣)를 범해서는 안 되느니라. 우리가 먹는 오곡(五穀)은 땅에서 하늘로 몸을 곧고 길게 뻗으니 순양체이니라. 그러나 삼염은 변환체(變幻體)에 속하니 그것은 먹는 것조차 비참한 일이니라. 그러므로 ‘삼화’를 올곧게 닦고 삼귀(三歸)를 바로 지켜야 비로소 진전(眞傳)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할지어다.”혜가는 고개를 들어 우러러 달마 조사에게 물었다.

“어리석은 제자는 삼귀의 이치에 대해 대강은 아오나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있나이다. 스승님의 자세한 가르침을 원하옵니다.”달마는 게송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부처님께 귀의하려면 자비를 일으키고 늘 청정해야 하느니, 힘써 본래의 면목(面目)과 무자진경(無字眞經)을 깨쳐야 하느니라. 부귀(富貴)와 세속에 물든 풍조를 탐하지 말아야 하느니, 은혜(恩)와 사랑(愛) 같은 세속 홍진(紅塵)의 미정(美情)에 연연해서는 안 되느니라. 주색(酒色)과 재기(財氣)를 한칼로 베어 버리고 대장부답게 티끌 같은 세상을 박차고 뛰어넘을지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때리면 대항하지 말고 염불하며 마음을 잡을지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면 입으로 대거리하지 말고 허허 웃어 넘길지어다. 남이 나를 해칠지라도 범연하게 경의(敬意)를 표하고, 나를 질투할지라도 그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지어다. 나를 비방하더라도 좋은 말로 그를 상대하고 나를 기피하고 싫어하면, 그럴수록 그에게 존경의 뜻을 표할지어다. 사람을 만나면 좋은 말로 정성껏 가르쳐 주도록 하여라.

 

사람의 어질고 어리석음을 가려서 알맞게 가르쳐야 하며 기회를 보아 정까지도 베풀도록 하여라. 고선불(古仙佛)이 동(動)과 정(靜)을 어떻게 지켰는지를 항상 살펴 연구할지어다. 부처님의 행실을 배우지 않고 어찌 삶을 뛰어넘을 수 있으리. 부처, 부처 하지만 부처님은 원래 속세인연을 완전히 버리신 분이시니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나 흙으로 빚은 유상(有像) 유형(有形)의 불상은 아니니라. 형상(形像)있는 것은 곧 후천(後天)의 것으로 언젠가는 부서져 없어질 것이니, 무위(無爲)의 본체(本體)와 태허(太虛)에 부합하지 않고선 생사를 벗어날 수 없느니라.

 

행주좌와(行住坐臥) 곧 행하고, 서고, 앉고, 누워서 선을 닦을 때 한시도 현관을 떠나서는 안 되느니라. 관자재(觀自在)로 행심(行深)하여 반야(般若)를 이루면 법륜(法輪)이 돌게 되느니라. 정(精)은 기(氣)로 화(化)하고 기는 신(神)으로 화하나니, 그 묘의(妙意)는 말로 설명할 수 없도다. 신이 허(虛)로 돌아가고(還) 허가 무(無)로 돌아가면 성광(性光) 영통(靈通)이 이루어지리라. 진(眞) 가운데 가(假)가 있고 ‘가’ 가운데 ‘진’이 있으니 진여(眞如)가 스스로 정(靜)을 찾으면 비로소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되느니라. 이것이 곧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임을 그대는 알지어다.”달마는 숨을 돌리면서 잠시 말을 멈췄다. 혜가는 스승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스승님, 법(法)에 귀의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옵소서.”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법에 귀의하기 위해서는 규율을 지키고 법칙을 문란케 해서는 안 되느니라. 불규를 따르고 예의를 지키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야 하느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자비를 베풀고 규율에 따라 가르쳐야 하며,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간(諫)할 때는 예의에 벗어나지 않고 법도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느니라.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행동하는 동안에는 품격을 세워야 하며 의관(衣冠)을 단정하게 하여야 하느니라. 한가로이 앉아 있을 때도 태산처럼 좌정하여 황정(黃庭)을 지켜야 하느니라. 신성한 불당을 깨끗하게 해야 모든 부처님이 즐거이 거동하시느니라. 자묘오유(子卯午酉)의 사시(四時)에 향(香)을 정성껏 올려야 본성과 신명이 통하느니라.

 

진경(眞經)을 외우며 잡념을 없애면 신기(神氣)와 함께 있게 되느니라. 현량(賢良)을 모아 법을 설하고 제도하면 마음에 절로 지혜가 생기느니라. 도반(道伴)을 만나면 겸손과 화기(和氣)로 대하고 예의를 다하여 공경할지어다. 마음을 낮추고 기를 낮추어 스스로 아랫사람으로 자처해야 하느니라. 도를 말할 때 함부로 웃지 말고 다투지도 말지어다. 선천(先天)의 도리는 무궁하여 깊은 것이 있는가 하면 얕은 것도 있느니라.

 

교만한 마음, 거짓으로 가득 찬 마음은 모조리 없애야 하고, 간사한 마음, 탐욕스런 마음, 삿된 마음은 먼 하늘 구름 밖으로 던져버릴지어다. 인색한 마음, 각박한 마음은 깨끗하게 씻어 버리고, 질투하는 마음, 시비하는 마음은 조금도 남겨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명리(名利)의 마음, 은애(恩愛)의 마음은 티끌만치도 쌓아둬서는 안 되며, 주색(酒色)의 마음, 재기(財氣)의 마음은 모조리 뿌리부터 제거해야 하느니라.

 

뽐내고 싶어하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데도 주저하지 말지어다. 수행을 함에 있어 인상, 아상을 없애면 천하의 제일인자가 되느니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차게 전진하여 철석같은 마음으로 수행하여 무리 가운데서 뛰어나게 되어야 하느니. 많은 법칙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성인(聖人)이 되는 심전(心傳)의 법은 분명히 밝혀 가르쳐 주리라. 심법이라고 하지만 우레를 부르고 신통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니라.

 

비와 바람을 불러 장수와 병졸로 삼는 술법은 더더욱 아니니라. 법이라 하는 법은 본래가 무법(無法)의 법이니 그 법은 곧 자성(自性)이니라. 공(空)이라 하는 공은 공으로 떨어지는 공이니 그 공은 진공(眞空)이니라. 단(丹)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을 죽이고 진식(眞息)의 숨고르기를 해야 하느니라. 이때 자(子)와 오(午) 곧 아랫배 하단전(下丹田)과 머릿골 정수리는 아래위로 대칭을 이루고 기의 흐름은 등골로 상승하고 몸통 앞쪽으로 하강하느니라.

 

이것을 일컬어 납(鉛)을 수은(汞)에 던지고 감괘(坎卦)와 이괘(離卦)가 교합하고 금목(金木)이 병합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리하여 삼화(三花)가 모이고 오기(五氣)가 양육되느니라. 좁쌀만한 구슬이 결성되면 범속(凡俗)을 벗어나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니, 진사리가 이루어짐으로써 모든 근심과 놀라움이 없어지느니라. 이것이 바로 진법이니 법에 귀의하는 핵심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지어다.”혜가는 앉은 자세를 바로하면서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스승의 이어지는 강설을 기다렸다.

“귀의승(歸依僧) 곧 승(僧)에 귀의한다는 것은 속세의 정경(情景)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마음을 바로하고 뜻에 성의를 담아 수행에 임해야 하느니라. 사나이 대장부로 고뇌를 두려워하지 말지니, 세속의 때를 깨끗이 씻어 내어, 낳고 죽는 이치를 깨달아야 하리라. 도를 깨달은 사람은 참과 거짓의 길을 분명히 식별할 수 있으니, 시(是)와 비(非), 사(邪)와 정(正), 호(好)와 오(惡)를 스스로 밝힐지어다.

 

근기없는 사람은 불법을 받아도 마음에 잡히는 것이 없으니, 도를 만나도 뜻이 한결같지 않아 허명(虛名)만 추구하느니라. 어떤 사람은 이익을 생각하여 돈벌이에 아귀다툼을 하고, 생활의 편안함을 생각하여 기한(飢寒)을 두려워하며, 심지어는 꾸어준 돈이 회수되지 않을까 걱정을 일삼느니라. 날마다 밤늦게까지 바삐 돌아 안정이 없으니, 늙은이나 젊은이, 그리고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제정신이 아니구나.

 

매일 애써 일해도 마음이 불안하면 수행을 하려 해도 되지 않고 좌선과 염불도 되지 않으니, 이런 사람은 참으로 멍청하여 꿈틀거리는 벌레나 진배없느니라. 기왕에 습(濕)한 곳을 싫어했거늘 낮은 곳에 머무르려고 하는 까닭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이더냐. 귀의승이 무엇인지 아는 자가 어찌 은애에 연연하고 집과 재물을 탐하는고. 귀의승을 논(論)하는 처지라면 티끌 속에 있더라도 마음 티끌 속에는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며, 속세에 살더라도 세속에 때묻지 않아야 하느니라. 온종일 바쁘더라도 틈을 내고,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고요(靜)를 구하면 몸은 비록 속세에 있을지라도 마음은 하늘 가운데 있으니, 조금도 속정(俗情)이 없으리라. 승과 속의 두 갈래 길은 경계가 분명히 있으니 청(淸)과 탁(濁)을 구분하지 않고 어찌 공(功)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 있으리.

 

그대에게 특별히 당부하노니 속히 밝게 깨달아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스스로에게 물어볼지어다. 어떻게 하면 고해(苦海)의 깊은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찾아볼지어다. 내공(內功)으로 논(論)하면 중(僧)이란 곧 진인(眞人)을 이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애써 참선하여 깨달음을 구할지어다. 그리하면 부처님의 묘음(妙音)을 반드시 얻어서 알게 될 것이니라. 호흡을 운용하여 진식(眞息)을 가다듬고 고르면 현(玄)에서 나와 빈(牝)으로 들어가리라. 감로수(甘露水)가 온몸에 감돌고 단약(丹藥)이 움직여 삼관(三關)을 통과하고 오원(五元)에 이르리라. 황파(黃婆)의 중매로 영아( 兒)와 타녀( 女)가 혼인을 하게 되리니, 그 면밀한 묘(妙)는 말로 다할 수 없고 그 낙(樂)의 정경은 끝이 없으리라.

 

한 톨의 좁쌀알이 구곡주(九曲珠)를 맺으니 빛줄기가 머리 위로 등등하게 솟아오르는구나. 삼귀수행(三歸修行)하려는 사람은 이것을 표준으로 삼아 반드시 받들어 지킬지어다. 진정으로 삼보(三寶)를 한 묶음으로 닦아서 ‘하나(一)’의 금단(金丹)을 이루도록 할지어다.”달마의 진법 강설은 하늘과 땅에 가득히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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