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야기·지묵스님

“선이란 무엇입니까?”/지묵스님

通達無我法者 2009. 4. 29. 01:48

 

 

“선이란 무엇입니까?”

조주어록 보기35


조주스님이 법상에서 대중에게 이르셨다. “한 마음을 내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한 마음을 거두면 갖가지 법이 사라지느니라.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은요?”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산승은 이런 질문은 이-번-만- 허-용-하-겠-어-!”

강설 / 생멸의 근원을 묻는데 말을 바꾸어서 불생불멸은요? 하고 대답하는 학인은 강설자처럼 눈치가 없다. 그 정도 대답에서 그쳐!



조주스님이 법문하실 때에 이르셨다. “밝음과 밝지 않음이지, 황혼의 어둠인가 하면 그새 새벽의 밝음이야.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어떤 스님이 일렀다. “두 끝 어디에도 있지 않은데요.”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럼 중간이군!”

어떤 스님이 말하였다. “만약 중간이라고 해도 두 끝에 있습니다.”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이 중이 얼마동안에 늙은 중의 회상에서 지내더니만 이런 말을 하네! 하지만 삼구 (三句, 有 無 中間)안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렇게 족히 벗어났다고 하는 경우라도 역시 삼구 안에 들어있는 거야! 넌 어떻게 생각해?”

어떤 스님이 일렀다. “전 삼구(三句)를 부립니다.”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왜 먼저 말-하-지- 않-았-지-?”

강설 / 차라리 묵언으로 입을 다무는 게 최상의 답일 수 있다. 혀끝을 움직여서 법을 말하려면 혓바닥을 용광로에 녹인 후라야 가능 하는 줄 모르는 학인.

  

“한 마음을 내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한 마음을 거두면

갖가지 법이 사라지느니라”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무엇이 통방(通方, 사방팔방으로 통함)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금-강-선-(金剛禪, 틀에 매인 굳은 공부)을- 떠-나-라-!”

강설 / 사통팔달! 대자유인의 경지이다.



조주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셨다. “납승이라면 곧바로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야 해!”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곧바로 보신불과 화신불의 머리 꼭대기 위에 앉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그-대- 경-계-(境界, 일거리)가- 아-니-네-!”

강설 / 법명에 선(禪)자가 들어간, 참선을 한다는 한 보살님이 절에 참배와서 대화를 나누다가 떠나갔다. 산승이 물었다.

“선이란 무엇입니까?”보살님이 대답하였다.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산승이 일렀다. “말로 선이라고 하면 이미 선이 아닌 도리를 모르십니까?”



조주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셨다. “대도(大道)는 바로 목전(目前)이야! 단지 보지 못 한거지!”

어떤 스님이 이에 여쭈었다. “목전에 무슨 모양이 있길래 학인더러 보라고 하세요?”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강북이면 강북, 강남이면 강남, 네 마음대로 해!”

학인이 일렀다. “화상께서는 어찌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방편(方便, 자비로 수준을 낮추어서 베푸는 가르침)이 없습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조금 전에 와서 무-얼- 물-었-지-?”

강설 / 눈에 보이는 모두가 드러난 대도(大道). 그리하여 유정 무정이 다 법을 설하고 있다는 상총 스님의 법문이 있다.



어떤 스님이 여쭈었다. “법계(法界, 진리의 세계)에 들어오면 유(有, 있음)를 압니까?”

조주스님이 이르셨다. “누가 법계에 들어와 있어?”

학인이 일렀다. “그렇다면 법계에는 들어왔으나 나갈 줄을 모르는 거지요.”

조주스님이 일렀다. “차디찬 재나 죽은 나무가 아니여! 꽃비단이 백가지 나타나느니라.”

학인이 일렀다. “법계에 들어간 데의 작용이 아닌가요?”

조주스님이 일렀다. “뭣으로 어찌 법계와 교-섭-(交涉)하-는- 바-가- 있-어-?”

강설 / 부처님은 시방 법계에 충만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진정 불자. 조석 예불문의 늘상 외우는 내용이지만 이런 것 하나만도 깨우치기가 쉽지 않다.

지묵스님 / 장흥 보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