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의 강의·혜거스님

〈4〉 참선의 길잡이 ‘좌선의’/좌선하는 법칙을 가르친 책

通達無我法者 2009. 6. 13. 04:40

 

 

좌선하는 법칙을 가르친 책

〈4〉 참선의 길잡이 ‘좌선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보시하는 공덕보다 경전 한 구절이라도 외워 남에게 가르치는 공덕이 수승하다”고 하셨다. 그것은 물질세계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정신세계의 가치관으로 들어오게 해주신 소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세계의 지성인들은 자연과학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인간세계의 가치관을 모색하기에 여념이 없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대다수 지성인들이 불교의 참선수행은 불교인들의 종교행위로 여겨 관심조차 없다가 최근 참선수행과 그 방법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문명의 향상과 물질의 묘용은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하지만, 인간의 심성은 통제하기가 어렵다.

또 다양한 사람 속에서 각기 다른 가치관이 화합을 이루면 안락국토가 되지만, 만약에 가치관이 상충되면 이루어 놓은 물질문명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조화인 것이다.

참선을 통해 뜻을 이루고자 하면 먼저 참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 바른 수행법을 알아야 한다. 참선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바른 수행법에 대해서는 여러 경전과 어록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잘 요약된 것이 바로 <좌선의(坐禪儀)>이다. 오로지 참선만을 수행하는 역대 선원에서 수행인의 수칙이자, 귀감으로 삼아온 <좌선의>는 분명 참선수행을 바로 할 수 있는 열쇠가 되어, 밝은 미래세계를 열게 할 것이다.


선서에 해당되는 모든 어록이

한결같이 사상만 중시하고

좌선의칙이 배제되어 있어

좌선의 오류가 범람하는 것을 막고자 찬술됐다


마음을 닦아 인격완성을 이루고 구경성불(究竟成佛)을 목적으로 하는 불교의 수행은 염불.간경.참선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참선 수행을 으뜸으로 여긴다. 참선에서도 좌선으로부터 와선(臥禪).행선(行禪) 등의 수행법이 있으나, 정신을 순일하게 하여 혼침과 산란심을 여의고 한 경계에 집중하고 몰입하여, 삼매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예로부터 좌선이 최상의 방법이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불교 사상은 경전을 통해서 유입되었으나, 실참 수행법은 당시만 해도 일상적으로 구전이나 직접 지도만으로 전승되었다. 천태지의(天台智, 538~597)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천태소지관(天台小止觀)>과 <마하지관(摩訶止觀)>을 찬술하였으며, 이것이 수행법의 지침서가 되었다.

이어서 <천태소지관>을 계승한 것이기는 하나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의 ‘도신장(道信章)’에 좌선 수행법이 기술되어 있고, 5조 홍인(弘忍)의 <수심요론(修心要論)>에서는 “처음 좌선을 배우려는 자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의존한다”고 했으니 이는 곧, 염불선(念佛禪)을 권장하여 좌선과 동일시했음을 알 수 있다.

참선의 지침서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연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아닐 수 없다. <금강경(金剛經)>의 해설서라고도 할 수 있는 <육조단경>은 중국 선종의 오종가풍(五宗家風)을 진작시킨 핵심 사상이고, 조사선풍이 일어나게 된 원동력이다.

또 6조의 제자인 영가현각(永嘉玄覺) 선사의 <영가집(永嘉集)>은 불교 기초교리에 해당되면서도 <천태지관>을 사상적으로 승계한 선서(禪書)이다. 이와 같은 사상이 계속 승계되면서 <좌선잠(坐禪箴)> <좌선명(坐禪銘)> 등 좌선에 관계되는 선서들이 나오고, 우리나라 서산(西山) 대사의 <선가구감(禪家龜鑑)> 역시 참선수행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좌선의>가 찬술된 것은, 선서에 해당되는 모든 어록이 한결같이 사상만을 중시하고 좌선의칙(坐禪儀則)이 배제되어 있어, 구전만으로 좌선을 지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좌선의 오류가 범람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까닭이라 생각된다.

<좌선의>는 말 그대로 좌선하는 법칙을 가르친 책이다. 그러한 <좌선의>가 숭녕(崇寧) 2년(1103) 최초로 편성된 <선원청규(禪苑淸規)>에는 보이지 않고, 고려본 <선원청규>에도 빠져 있다가 가태(嘉泰) 2년(1202)에 편성한 <선원청규>에 수록되기 시작하여, 지원년간(至元年間, 1335~1340)에 성립된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 에 계승되어서, 완전히 청규의 한 부분이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규란 선종교단의 규율이다. 청규라고 한 것은 선을 수행하는 선승(禪僧)을 청중(淸衆)이라 한 것과, 총림(叢林)의 대중을 청정대해중(淸淨大海衆)이라 한데서의 청(淸)과 수행자가 지켜야 할 규칙 즉, 규구준승(規矩準繩)의 규(規)를 합성하여, 참선 수행하는 청정 대중의 규칙이라는 뜻으로써 붙여진 것이다. 청규는 선종교단의 규칙으로써 율법에 해당되고 내용은 대체로 처벌 규정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선원청규가 처음 편성될 때는 좌선의 법칙은 거의 일반화되어 있어 청규에 포함시킬 의사가 없었는지, 아니면 좌선의 법칙이 정리되어 있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수록되지 않았고, 중조보주(重雕補註)된 <선원청규> 8권에 <좌선의>가 수록되어 계승된 것은 2가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좌선의>의 선수행법을 선원청규와 같이 선종교단의 수칙으로 삼았다는 점과, 하나는 선종교단의 율법 수칙의 이념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선종교단이 형성된 까닭이 좌선 수행을 위해서이고, 선원의 모든 규율이 좌선수행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좌선의>는 당연히 선원청규의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교단에 규칙만 있고 이념이 없다면 교단의 규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좌선의>에서 선정을 닦아 불도를 이루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은 분명 선원청규의 이념인 것이다.

혜거스님 / 서울 금강선원장


[불교신문 2498호/ 2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