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의 강의·혜거스님

〈27〉 마경(魔境) ③/道가 높을수록 魔가 치성한다

通達無我法者 2009. 7. 30. 11:52

 

 

道가 높을수록 魔가 치성한다

〈27〉 마경(魔境) ③

 

본문에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치성하여 역과 순이 끝이 없다’고 하였는데, 마는 어떤 때는 마음에 거슬리는 일 곧, 역경계(逆境界)를 나타내서 수행자를 괴롭히고, 어떤 때는 마음에 맞는 일 곧, 순경계(順境界)를 나타내서 수행자에게 혼란을 일으켜 수행을 방해하고 불도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

<소지관>과 <기신론소>에서는 세 가지의 경계로 사람의 착한 마음을 깨뜨리나니, 첫째는 감정을 거슬리는 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고, 둘째는 감정에 순응하는 일을 만들어 사람들이 마음으로 집착하게 하며, 셋째는 감정에 거슬리지도 순응하지도 않는 일을 만들어 수행자의 마음을 무기력하게 하여 선정을 잃게 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감정을 거슬리는 일을 만들어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은 역경계이며, 감정에 순응하는 일을 만들어 사람들이 마음으로 집착하게 하는 것은 순경계이며, 감정에 거슬리지도 순응하지도 않는 일을 만들어 수행자의 마음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은 역경계도 순경계도 아닌 상태이다.

수행할 때 혼침이나 산란심 등으로 자신의 수행에 진전이 없으면 자신에게 이롭지 못한 경계인 역경계라고 생각하고 좌절하여 수행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때론 수행 도중 범상치 않은 체험을 한다든지 흥분, 환희, 기쁨 등이 생기면 자신에게 이로운 경계인 순경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지나치게 자신의 수행을 과신하면 평정심을 잃게 되어 수행에 진전이 생기지 않게 된다. 수행하는 이들은 대부분 선경계는 탐착하고 악경계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만 순경계든 역경계든 모두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좋고 싫음, 선과 악 등 모든 것을 극복해야만 진정한 수행의 맛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이러한 경계에 집착하지 말고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역경계와 순경계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그 본질은 하나이지만 자신의 무지(無知)와 미혹(迷惑)에서 역경계와 순경계로 나누어질 뿐이다. 단지 경계에 동요되지 않으면 마가 되지 않지만 경계에 동요되어 싫어하고 좋아하여 집착하는 것은 모두 마가 된다.

본문에서 ‘다만 정념이 현전한다면 일체에 걸릴 것이 없다’고 한 것은 마에 대응하는 방법을 밝힌 것이다. 마경은 자신의 무지와 미혹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본래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역경계를 비관하지도 순경계를 기뻐하지도 않아야 하고, 오직 ‘정념이 현전’하도록 해야 한다.

수행하는 이들은 대부분 선경계는 탐착하고

악경계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만

경계에 집착하지 말고 끊임없이 정진해야

<기신론>에서도 “수행하는 이는 언제나 응당 지혜로써 관찰하여 이 마음을 삿된 그물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마땅히 정념을 지녀야 한다”고 했고, <서장>에서도 “뜻으로 집착하지 않고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선이 선이 아니고 악이 악이 아닌지라, 만약 이와 같이 깨달아 안다면 생사의 마구니가 어느 곳을 더듬어 찾으리요?”라고 하였으니, 사(邪)와 정(正)의 나뉨은 집착하는 것과 집착하지 않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집착하지 않는 이는 어떠한 장애든 멀리 여읠 수 있다.

다만 마음을 단정히 하고 정념을 굳게 지켜 신명을 아끼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 마는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는 정을 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정념은 마를 대치(對治)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대치는 ‘대응하여 끊어 없앤다’는 뜻으로 곧 깨달음의 지혜로써 번뇌의 미망을 끊는 것이다.

이외에도 마에 대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지(止)와 관(觀)으로써 마를 대응하는 방법을 살펴보도록 한다. <소지관>에서는 ‘지(止)’를 사용하여 물리친다고 하였으니, “일체 외부의 모든 악마의 경계를 보고서, 모두가 다 거짓이고 속이는 것임을 알고 근심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으며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아서 망령되이 계탁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쉬어 고요하게 되면 마는 저절로 소멸하고야 만다’고 하였다.

<수능엄삼매경>에서도 ‘모든 견(見)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니, 만일 있다 없다 분별하지 않으면 곧 마의 속박에서 해탈함을 얻으리라’고 하였으니, 마음을 정지(停止).부동(不動)하여 분별하지 않으면 마사를 대치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모든 경계가 오직 자기 마음의 분별로 지은 것이어서 자기 마음 밖에 별다른 경계가 없는 줄 안다면 경계상이 바로 없어질 것이다. 이것은 모든 마구니와 귀신을 내보내는 방법이다. 결국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분별을 지어 생기는 것이므로 자기 마음만 깨달아 쉬어지면 마를 물리칠 수가 있다.

관은 지의 방법으로도 마를 물리칠 수 없을 경우 마음의 당체를 자세히 관찰함으로써 물리치는 방법이다. <마하지관>에서도 마가 침입하기 전에는 지의 방법을 써서 막고, 만약 이미 마사를 받았다면 다음과 같이 관의 방법을 쓰면 마를 대치할 수 있다고 하였다. 관법에는 외관법(外觀法)과 내관법(內觀法)으로 나누어 이해해야 한다.

외관법이란 “‘마는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고 또한 마음도 찾을 수 없는데, 마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어떤 것들을 괴롭히려고 한단 말인가’ 라고 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환하게 관하여야 한다. 이것은 집에 들어온 악인을 찾는 것과 같이 곳곳을 다 비추어 살펴서 머무를 수가 없게 하는 것과 같이 마장이 붙어 있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관하여도 마가 떠나지 않는다면 마음을 강하고 굳세게 저항해서 죽더라도 그대와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고 하면 물러날 것이다”라고 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석공관(析空觀)이라 한다. 석공관이란 집에 들어온 도둑을 도둑인 줄 알면 도둑을 자식인 줄 착각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이 밖에서 오는 두두물물 만상삼라가 한 티끌도 실(實)이 없는 줄 관찰하여 깨닫는 것이다.

내관법이란 “관심으로 다스리는 것이니, 곧 마음을 직관하는 것이다. 안과 밖으로 추구해 보아도 마음은 찾아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니 병이 와도 어느 곳에서 오는 것이며, 누가 병을 받는 자인가?”라고 관하는 것으로, 이를 체공관(體空觀)이라 한다. 체공관이란 몸과 마음이 본래 공이며, 몸과 마음이 공일진대 마 또한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마를 대치하는 관법이다. 이와 같이 공관으로 마를 물리치는 것 역시 수행자가 청정하여 도를 이루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원력이 사무쳐야 가능한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혜거스님 / 서울 금강선원장 

출처 :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