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에 귀의하옵고, 삼가 삼계에 계신 모든 스님의 행복을 위해 삼배 올립니다. _()_ _()_ _()_
아래의 글은 각묵스님께서 역경하신 것인데, 스님의 허락없이 올림을 용서를 빕니다. _()_ _()_ _()_
제목 : 낌빌라 경
- 출처 : 상윳따 니까야(각묵스님 옮김) 제54주제 10번째 경에서
- 내용 : 들숨날숨(호흡)의 수행으로써, 타인이 아닌 자기의 신(身),수(受),심(心),법(法)의 네가지를 대상으로 삼아
마음챙기며 수행하는 방법을, 부처님께서 낌빌라 대나무 숲에서 낌빌라 존자에게 설하신 가르침입니다.
1.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낌빌라에서 대나무 숲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낌빌라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3. "낌빌라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
☞[마음챙김]이란 수행의 핵심이며 본 카페의 <초기불교 교학과수행 동영상>에서 각묵스님의 마음챙김의 동영상을 참고
또한 본 카페의 <초기불교 산책>에서 사념처 수행 등을 참고. 본 카페에서 "마음챙김" 혹은 "사념처" 혹은 "사띠"를 검색
☞마음챙김은 마음과 부수적으로 함께 일어나는 52가지 심소법들(마음부수들) 가운데 29번째 심소법이며
아름다운 심소에 해당하며, 선한마음에만 함께 일어나는 심소이며, 불선(不善)한 마음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챙김은, 마음이 어떤 하나의 대상을 강력하게 거머쥐어야 합니다.
즉, 온갖 졸음, 나태함, 망상 등 심리현상의 태풍과 비바람의 시달림에도, 거머쥔 대상을 놓지 않고 꽉 쥐어
그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며, 이렇게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챙김을 하면서, 한 대상에 집중하면 삼매를 닦는 수행이 되고, 삼매로써 초선~4선의 선정에 도달합니다.
제4선은 평온과 마음의 하나됨을 가지는데 이는 무색계4정의 각지와 같아서 제4선은 무색계 선까지 포괄하여 쓰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지 선(禪)이라고 하면, 때로는 4선, 8정을 포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정에 있을 때만 마음이 해탈하고 선정에서 나오면 그 오염원들은 다시 일어섭니다. 그래서, 선정을 일시적 해탈이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선정으로 집중력을 계발하는 동시에, 선정에서 출정하면 위빳사나 수행을 하여 완전한 해탈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즉, 위빳사나(통찰지,慧,반야) 수행은, 마음챙김을 하면서, 대상을 법으로 해체하여, 그 법(法)의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빳사나 수행을 하다가 언젠가는 근접, 수순에 들고, 급기야 열반을 대상으로 종성에 들고,그 다음 찰나 드디어 道/果에 들어
아라한과를 실현하여 완전한 해탈을 이루게 됩니다. 또한, 스스로도 반조하여 해탈지견으로써,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겨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낌비라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4. 두번째로 ... 세번째로 세존께서는 낌빌라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낌빌라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는가 ?"
세번째에도 낌빌라 존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5.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은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는 것에
대해서 설해 주실 바로 적절한 시기입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호지할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6.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오로지 마음챙기면서 숨을 들이쉬고 오로지 마음챙기면서 숨을 내쉰다.
☞ 수행지침서인 청정도론에 의하면, 여름,겨울,우기의 세 계절과 가래,쓸개즙,바람의 세 체액과
무지한 기질, 성내는 기질, 탐하는 기질의 세 기질에 자기에게 적절하게 수행장소를 택해야 한다고 함.
이에 대해서는 청정도론을 참조하기 바람.
①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 청정도론에 의하면, 길고 짧음은 시간으로써 알아야 한다고 하며,
마음의 시선은 코끝(들숨과 날숨이 가장 강하게 부딪히는 지점)이며,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리라고 함.
그래서, "비구들이여, 나는 마음챙김을 잊어버리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자에게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수행을 설하지 않는다."라고 설하심
②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 이렇게 길고 짧게 내쉬는지 구체적으로 열의,기쁨 등을 통한 9단계로 나오는 청정도론을 참조
③'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온몸은 들숨과 날숨 자체를 말한다고 스승들은 청정도론에서 말씀하고 계심.
즉, 외도의 수행처럼 자기 몸 전체의 기(氣)나 숨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보는 기공이나 단전호흡이 결코 아님.
니까야의 경서만 가지고 수행을 하고 자기식 해석이 끼어든다면 많은 위험이 있는 것이니,
꼭 아비담마의 이론과 청정도론의 수행지침을 참고하기 바람.
④'몸의 작용(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역시 여기서 '몸의 작용'이란 들숨날숨을 말함. 자세한 것은 청정도론을 참고바람.
이상의 ①~④의 이 첫번째 네개조는 초심자에게 초선~4선의 禪(선정)을 얻는 방법을 설하셨음.
또한, 첫번째 네개조에서, 몸(들숨날숨)에 대한 관찰(신수관身隨觀)을 설하신 것임.
즉, 첫번째 네개조가 초선만을 설했다거나 어떤 특정 선을 설했다거나, 위빳사나 까지도 설했다는 것은 아니므로 오해를 해서는 안됨.
☞ 나머지 12개조(⑤~16번째)는 이 첫번째 네개조(①~④)에서 禪(선)을 얻은 자에게, 느낌(수受), 마음(심心), 법(法)의 관찰(수관隨觀)로 설했음
즉, 두번째 네개조(⑤~⑧)는 수수관(受隨觀), 세번째 네개조(⑨~⑫)는 심수관(心隨觀), 네번째 네개조(⑬~16번째)는 법수관(法隨觀)을 설하셨음.
☞ 주의할 것은 신수심법을 대상으로 한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四念處)이라고 해서 무조건 삼매수행은 없고, 위빳사나 수행만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됨.
☞ 2번째 네개조(⑤~⑧)와 세번째 네개조(⑨~⑫)는
첫번째 네개조(①~④)에서 얻은 禪을 토대로하여, 삼매로 또는 위빳사나로도 닦아 나갈 수 있도록 설하신 것임에 주의해야 함.
☞ 종합하면, 들숨날숨에 마음챙기는 공부를 통해서(알아차림 포함)
첫번째 네개조(①~④)는 삼매를 해서 네가지 禪(禪)을 얻는 삼매수행방법을,
두번째~세번째 네개조(⑤~⑫)는, 첫번째 네개조에서 삼매로써 증득한 禪과 그 禪에서 출정하여 위빳사나를 닦는, 삼매와 위빳사나의 수행방법을,
네번째 네개조(⑬~16번째)는 순수위빳사나를 닦는 수행방법을 설하신 것임.
⑤'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아래와 같이 삼매와 위빳사나 두가지 모두를 설하심.
삼매에서는, 초선과 제2선에 드는 순간 희열을 경험하고
위빳사나에서는, 희열이 있는 두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나와서) 희열이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위빳사나)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무상,고,무아)을 경험하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음을 통해서 희열(위빳사나의 경계가 아님)을 경험한다고 함.
* 앞으로 위처럼 ⑤~⑫까지,
삼매로써 禪에 들어서 공부짓고, 다시 출정하여 위빳사나로써 희열, 행복 등등의 특상(무상,고,무아)의 관찰로 공부지음
☞희열은 느낌이 아니라, 상카라(行)들에 속하는 희열임에 주의. (청정도론 8장§230 참조. 아비담마 길라잡이 참조)
⑥'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삼매의 禪에서는, 초선~3선까지 세가지 禪으로 행복을 경험함.
위빳사나에서는, 행복은 육체적인 행복과 정신적인 행복임. 행복은 느낌의 무더기(수온)에 속함. (청정도론 8장§229 참조)
⑦'마음의 작용(心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삼매의 禪에서는, 초선~4선까지 네가지 禪으로 마음의 작용을 경험함.
위빳사나에서는, 마음의 작용은 느낌의 무더기(수온受蘊)와 인식의 무더기(상온想蘊)임. (청정도론 8장§229 참조)
⑧'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편안히'라는 것은, 거친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거친 마음의 작용을 소멸하면서라는 뜻임. (청정도론 참조)
⑨'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⑨~⑫까지 세번째 네개조에서, 마음의 경험은 모두 초선~4선까지 네가지 禪들로 마음을 경험함을 가리킴 (청정도론 8장§231 참조)
⑩'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삼매에서는, 희열이 있는 초선과 2선에 들어 그 증득의 순간에 禪과 함께하는 희열로 마음을 반갑게하고 기쁘게 함
위빳사나에서는, 위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희열에 대해서, 그 희열이란 것은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이렇게 위빳사나하는 순간에, 그 禪과 함께했던 희열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반갑게 하고 기쁘게 한다.(청정도론 8장§231 참조)
⑪'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청정도론 8장§232 참조) 여기서 [집중]이란 무엇인가 ?
삼매에서는, 초선~4선 등으로 대상에 마음을 고르게 놓는다. 고르게 둠.
위빳사나에서는, 그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마음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할 때
그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무상,고,무아)을 통찰하는 것을 통해 순간적인 마음의 하나됨(찰나심일경, 찰나삼매)이
수행자에게 일어난다. 이처럼 순간적인 마음의 하나됨(찰나삼매)을 통해, 대상에 마음을 고르게 놓고, 고르게 둠.
☞ (청정도론 8장§232,의 77번 주해 참조)
찰나삼매란, 한 순간만 지속되는 삼매이다. 왜냐하면, 그것도 대상에 간단없이 하나의 형태로 일어나면서 반대되는 법에 의해
억압되지 않고 마치 본삼매에 든 것처럼 마음을 흔들림 없이 고정시키기 때문이다.(Pm.236)
☞ (저의 사족)
위빳사나 수행자는 평소의 자신의 [찰나집중]을 그냥 찰나집중으로 이해해야지, 그것을 마치 [찰나삼매의 경지]라고 오해하면 안된다고 생각됨.
찰나삼매는 근접삼매의 경지와 같다는 각묵스님의 글을 참조. 또한, 이것은 위빳사나의 경계가 절대 아님에 유의해야 함.
함부로 아무곳에나 [삼매]라는 단어를 섞어서 사용하면 큰 혼란을 초래하며,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수행자 본인 스스로에게 오랜세월 손해가 됨.
⑫'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면서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삼매에서, 초선을 통해서, 5가지 장애을 포함한 모든 불선법으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케 하면서
2선을 통해서, 일으킨 생각(심尋)과 지속적인 고찰(사伺)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케 하면서
3선을 통해서, 희열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케 하면서
4선을 통해서, 행복과 고통(양 극단 !!!)으로부터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고 내쉰다.
위빳사나에서, 그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마음은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무상의 관찰로 영원하나는 인식으로부터, 괴로움의 관찰로 행복하다는 인식으로부터,
무아의 관찰로 자아라는 인식으로부터, 역겨움의 관찰로 즐김으로부터, 탐욕이 빛바램의 관찰로 탐욕으로부터,
소멸의 관찰로 일어남으로부터, 놓아버림의 관찰로 가짐으로부터 ...
마음을 벗어나게 하고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고 내쉰다. (청정도론 8장§233, 참조)
☞(저의 사족) 이처럼 위빳사나는, [무상,고,무아]의 [수관]과 [통찰]이 없는, 단순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만 가지고 위빳사나라고 오해하면,
부처님께서만 알아내신 위빳사나를 가지고, 자칫 외도의 수행을 가지고 외도에도 위빳사나가 있다고 오해할 수 있고,
외도들이 자신들의 종교나 자신들의 도나 불교나 다 그게 그거고 모두 같다는 주장에 본분을 잃고 걸려넘어질 수 있음.
⑬'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며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이제 4번째 네개조(⑬~16번까지)는 순수위빳사나(마른 위빳사나)만을 위해 설하셨음.
무상(無常항상함이 없음. 항상함이 空함)이란 오온(五蘊)을 말함. - (청정도론 8장§234 참조)
⑭'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며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탐욕의 빛바램이란, (i)[파괴로서의 탐욕의 빛바램]이 있는데, 이는 상카라(行열반이 아닌 모든 유위법)들이 순간적으로 무너짐이다.
즉, 파괴로서의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함으로써 위빳사나가 일어나는데, 위빳사나의 순간에 일어나는 탐욕의 빛바램을 말한다.
(ii)[절대적인 탐욕의 빛바램]이 있다. 이는 열반을 말한다.
즉, 절대적인 탐욕의 빛바램을 관찰함으로써, 道가 일어난다.(Pm.236) 즉, 道의 순간에 일어나는 탐욕의 빛바램을 말한다.
(청정도론 8장§235의 , 78번, 79번 주해를 참조)
⑮'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며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6)'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청정도론 8장§236, 참조) 놓아버림이란, [버림으로서의 놓아버림]과 [들어감으로서의 놓아버림]의 두 가지가 있다.
놓아버림의 관찰이란 놓아버림 그 자체가 관찰이다. 이것은 위빳사나와 道의 동의어이다.
자세한 설명은 위빳사나를 닦는 방법으로서 매우 중요한데 청정도론8장§236과 제3권에서 위빳사나를 닦는 방법을 외우고 익혀서 수행해보시기 바람.
이렇게, 위빳사나의 지혜와 도의 지혜로써, 각각 이전의 지혜를 계속해서 따라 보기 때문에, [계속해서 따라서 관찰](수관隨觀)이라 함.
이러한 두가지 놓아버림의 관찰을 구족한 채 내쉬고 들이쉴 때,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 내쉬리라고 공부짓는다'는 뜻임.
아난다여, 이와같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고 이와같이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i) 몸의 관찰(신수관身隨觀)
7. "아난다여, 비구는 ①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②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③'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④'몸의 작용(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아난다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신수관身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아난다여, 이 들숨날숨이라는 것은 몸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 몸이라고 나는 말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때에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무는 것이다."
☞ 한가지 형태의 몸이란 바람의 몸이며, 혹은, 들숨날숨은 감촉의 감각장소에 포함되기 때문에 몸의 한 형태이라고 함 (137번 주해)
(ii) 느낌의 관찰(수수관受隨觀)
8. "아난다여, 비구는 ⑤'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⑥'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⑦'마음의 작용(心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⑧'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아난다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受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아난다여, 이 들숨날숨을 잘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은 느낌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 느낌이라고 나는 말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때에 느낌에 느낌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무는 것이다."
☞ 한가지 형태의 느낌이란, 즐거운 느낌(낙수樂受, 수카-웨다나)를 두고 설한 것이다.
즉, 비록 희열은 상카라에 속하고, 마음의 작용에 인식도 포함되지만, 단지 그들의 [이름으로써] 느낌을 설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제외하고 마음과 연결된 모든 법들은
마음의 작용에 포함된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이라는 이름으로써 느낌을 설했다.
마음의 잡도리함이라는 이름으로써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설하셨다. (139번 주해 참조)
(iii) 마음의 관찰(심수관心隨觀)
9. 아난다여, 비구는 ⑨'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⑩'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⑪'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⑫'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면서 공부짓고 '마음을 해탈하게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아난다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心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아난다여,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분명히 알지 못하는 자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때에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무는 것이다."
(iv) 법의 관찰(법수관法隨觀)
10. "아난다여, 비구는 ⑬'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무상을 관찰하며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⑭'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며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⑮'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소멸을 관찰하며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6)'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아난다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法隨觀)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그는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린 것을 통찰지로써 보고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때에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무는 것이다.
☞ 위 네번째 네개조는 위빳사나로써 설하셨다. (141번 주해 참조)
이처럼 위빳사나에 무상,고,무아가 핵심어임을 유의해야함. 마치 마음챙김과 알차차림만 있으면 위빳사나라고
생각하고 외도를 판단하면, 마치 외도나 불교나 비슷하다고 여기게 되고
불교는 더이상 불교가 되지 못하고, 외도들에게 걸려 넘어지는 것임.
11. "아난다여, 예를들면 사거리에 큰 흙더미가 있다 하자.
만일 동족으로 수레나 마차가 오면 그 흙더미를 눌러서 평평하게 할 것이다. 만일 서쪽으로부터...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부터 수레나 마차가 오면 그 흙더미를 눌러서 평평하게 할 것이다.
아난다여, 그와같이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서 머물면 삿되고 해로운 법들을 눌러서 평평하게 할 것이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 머물면...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물면...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물면, 삿되고 해로운 법들을 눌러서 평평하게 할 것이다."
☞ 여기서 사거리=(여섯가지 감각장소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감각장소)임
큰 흙더미=여섯 감각장소에 있는 오염원들임.
동서남북의 4방에서 오는 수레나 마차 =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임
- 이상 낌빌라 경이 끝났습니다. - _()_ _()_ _()_
(마지막 사족의 글)
기타 자세한 사항은 상윳따 니까야 54번째 주제인 "들숨날숨 상윳따"를 모두 읽어보시면, 명지와 해탈을 완성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질문하신 초월지(신통)의 수행법에 대해서는 분량이 너무 크고, 또 저자이신 대림스님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청정도론을 구입하셔서 공부해보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우선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숙독하여 초기불교의 기초이론을 공부하시고나서
그다음, 청정도론으로 온,처,계,근,제,연의 6가지 초기불교의 교학주제들을 익히시기 바랍니다.
그다음, 청정도론에 나오는 수행방법(37조도품=8정도로 요약됨)을 익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초월지는 4선정에 들고나서 그것을 토대로한 가르침이며, 4선정은 삼매를 닦아야 하기에 삼매를 배워야하며
삼매를 닦기 위해서는, 삼매에 정통하고 삼매에 드신 스승을 찾아뵙고 스승에 대한 도리와 의무를 다한 뒤
스승으로부터 자기의 기질에 맞는 명상주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계로써 안이비설신의를 단속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청정도론 1장에서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또한,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4부 니까야를 자주 읽으셔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청정도론에 나오는 수념의 수행법을 통해서 수념을 자주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삼매를 닦아 나가시는 것도 훌륭하지만, 너무 한가지에만 치중하지 마시고,
진정한 불자라면 부처님께서 간곡히 당부하신 위빳사나를 평소에 동시에 닦아 나가야 합니다.
즉, 바른견해, 바른사유, 바른말(계율), 바른행위(계율), 바른생계(직업), 바른정진, 바른마음챙김, 바른삼매의 8가지 성스러운 도를
조화있게 닦아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위 8가지는 모두 괴로움의 소멸(열반)로 인도하는 성스러운 도닦음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느하나 소홀해서는 아니된다고 각묵스님께 배웠습니다. 즉, 8가지는 각각 모두가 다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저 또한 어느하나에만 치우치면 안된다고 이해하고 실천하려 노력중입니다.
긴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도산 배상. _()_
출처 : http://cafe.daum.net/chobul
초기불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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