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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36

通達無我法者 2010. 12. 26. 22:52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수행은 관념을 대상으로 하는 사마타 수행과

실재를 대상으로 하는 위빠사나 수행 두 가지가 있습니다.

 

대상의 모양과 명칭을 알아차리면 사마타 수행이고

실재하는 느낌을 알아차리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그래서 사마타 수행은 대상의 고유한 특성이 없고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이래서 대상은 항상 관념과 실제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서로가 합쳐지지 않습니다.

관념이 강하면 실재가 숨어버리고 실재가 강하면 관념이 숨어버립니다.

 

처음에는 공손하게 마음을 모아서 모양을 집중하여 놓치지 않으면

차츰 숨어는 있는 실재의 느낌이 나타납니다.

다시 이 느낌을 공손하게 집중하면 숨어있는 지혜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느낌을 알아차리는 힘이 악해지면 다시 모양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요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항상 붙어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제가 마하시명상원에서 수행을 할 때는 배의 움직임에 집중했지만

나중에 쉐우민 명상원에 가서 수행할 때는 배를 포함하여 가슴과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풍대를 대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특히 쉐우민 명상원에서는 마음과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화가 날 때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음에 화가 난 마음으로 인해 생긴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렸습니다.

다시 이 느낌이 약해지면 그 자리에 호흡이 일어나서 그 호흡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강한 느낌이 사라진 가슴에서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을 지속했습니다.

 

이렇게 한국명상원에서는 배나 가슴이나 또는 몸 전체의 어디엔가

움직임이 있을 때는 그곳에서 있는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이때 이것이 호흡일수도 있고 풍대일수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알아차리는가 하면 집중이 되면

호흡이 미세해져서 코나 가슴이나 배에서 알아차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집중이 되면 호흡이 전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사실 어느 특정한 장소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다시 4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수화풍이라는 4대는 이중에 하나만 작용하지 않고 모두 함께 작용하며

끊임없이 서로 부딪히고 조화를 이룹니다.

풍대하나, 그리고 화대하나, 수대하나 이렇게 따로따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4대가 모두 함께 결함하여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작용합니다.

그리고 4대는 어떤 요소를 하나만 가지고 있지 않고 같은 요소를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4대는 그 자체로서도 하나의 요소를 가지지 않고 상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단단함에는 부드러움이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뜨거움에는 차가움이 항상 함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대의 부조화는 병이 되고 사대의 조화는 건강을 말합니다.

수행할 때는 이런 모든 요소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몸에 병이 났다는 것도 부드럽다가 단단해졌다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근육이나 내장기관이 덩어리로 뭉쳐서 단단해지면 그것이 바로 암이 됩니다.

부드럽던 근육에 단단해지면 몸에 노폐물이 축적되어 병을 일으키고 우리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거나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드러움만 있으면 물고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부드러움 안에 단단함이 있어서 앞으로 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꼬리와 몸을 흔들며 단단함을 차고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물에 속도가 붙으면 엄청나게 단단한 힘을 일으켜서 전기를 일으키는

발전(發電)의 역할도 합니다.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부딪힙니다.

너무 뜨거우면 열이 나서 죽으며 뇌세포가 손상을 입습니다.

몸이 약간 차가워지면 감기가 걸립니다.

병이 나면 몸이 다시 열을 내서 병원균을 죽입니다.

이처럼 우리 몸은 우리도 모르게 뜨겁고 차갑고 한 것이 계속 부딪히면서 상충하거나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활활 타는 장작불에 차가운 물을 한 바가지 끼얹졌다고 합시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만난 것입니다.

그러면 요란한 소리가 나고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우리의 몸도 이처럼 뜨겁고 차가운 화대의 상대적 요소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몸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때 이러한 현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풍대도 역시 기의 흐름입니다.

기의 흐름이 막히면 신체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해서 병이 납니다.

그래서 기가 막하면 갑갑하므로 손이나 다리 발을 계속 떠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목이나 상체를 앞뒤로 뒤트는 것도 기의 흐름이 막혀서 나타나는 신체적 현상입니다.

유독 욕구불만이 많은 사람은 몸을 좌우로 많아 흔듭니다.

그래서 욕구불만으로 인해서 막힌 기의 흐름을 스스로 뚫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심히 하는 것도 몸의 이러한 요소를 스스로 극복하고자 행동하는 것들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나 진동합니다.

진동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병이 난 것과 같습니다.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이 나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뜨거움만 소화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창자 안에서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것도 연동운동으로 하는 진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공기는 부드럽지만 단단함이 함께 있습니다.

새가 하늘을 날 때 부드러움만 있고 단단함이 없으면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공기 안에 단단함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차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비행기가 빠르게 날 때 소리가 나는 것도 단단함과 부딪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몸에 이와 같은 4대가 활발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라고 살아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바로 4대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또한 이 지수화풍 4대의 느낌에서 파생된 28가지의 다른 느낌들도 많이 있습니다.

 

수행자여러분!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지수화풍이라는 4대의 작용이 바뀐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부드럽다가 단단해지고, 피가 흐르다가 정지한 것이고,

따뜻하다가 차가워진 것이고, 움직이다가 움직이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죽음은 풍대의 호흡이 멈춤과 동시에 나머지 요소도 함께 바뀌는 것입니다.

죽음은 오직 4대의 작용일 뿐이지 결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몸의 변화일 뿐이고 마음은 이미 다른 몸으로 재생되어서 다시 태어남을 거듭합니다.

 

수행자여러분!

이와 같이 지수화풍 4대의 변화가 살아 있느냐 죽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죽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셔야 하겠습니다.

죽음은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단지 사대의 변화일 뿐입니다.

그 사대의 변화가 멈추었다가 새로 일어났다가, 멈추었다가 새로 일어났다 하는 것들이 윤회입니다.

 

수행 중에 처음에는 모양을 알아차리지만 나중에는 이 사대의 성품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실재를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실제를 빨리어로는 빠라마타 담마라고 합니다.

결국 위빠사나 수행자가 수행을 할 때 몸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바로 이 빠라마타인 실재를 안다는 것입니다.

 

수행자여러분!

누구나 과거의 원인으로 현재의 결과인 태어남이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태어난 것이 아니고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생긴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날 때 업에 의해 몸이 만들어 집니다.

 

이러한 몸은 지수화풍이란 4대의 요소가 있어서 몸을 성장하게 하고 유지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쇠퇴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성장의 요소가 되었던 4대가 이제는 죽음의 요소로 우리를 내몰기도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누구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죽음을 피해서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죽음은 어느 날 한 번에 오지만 사실은 서서히 준비했다가 결정적일 때 나타납니다.

이 죽음의 준비가 바로 4대의 요소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구성하는 몸에 요소가 바로 4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4대의 작용을 관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대는 실재하는 현상으로 지금도 우리 몸을 구성하고 강력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행자여러분!

누가 나를 죽이는가요?

나를 죽이는 살인자는 바로 지수화풍이라는 4대의 변화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4대라는 살인자와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는 나는 4대라는 은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4대가 나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사대는 이런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조건이 성숙됐느냐에 따라서 그에 합당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지대라는 살인자는 몸을 단단하게 하여 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죽음을 맞게 합니다. 부드러운 몸이 단단하고 딱딱해지면 죽습니다.

 

수대라는 살인자는 자신의 몸을 나쁜 요소로 바꿉니다. 그래서 병을 일으킵니다.

나중에는 대변과 소변을 가릴 수 없게 되어 결국 죽습니다.

 

화대는 차가움과 뜨거움입니다.

차가움으로 인하여 병이 생기고 뜨거움으로 인하여 병이 생깁니다.

화대의 요소가 작용하지 못해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병균을 태워서 이겨내지 못합니다.

결국 몸이 식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화대는 나를 죽이는 살인자입니다.

 

풍대는 진동, 호흡입니다.

몸의 진동이 원활하지 못하면 병의 요인이 되며 몸의 활력이 떨어집니다.

호흡을 하다가 호흡을 멈추면 죽습니다.

움직이다가 움직이지 않으면 죽습니다.

 

이런 4대가 나를 죽이는데 정작 자신은 이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죽음의 비밀을 다른 곳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몸에서 4대가 조화 이룰 때 건강하며, 4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병이 생깁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4대의 요소로 인해서 즉음을 향해서 갑니다.

이것이 원인과 결과로 태어나서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과 함께 마음도 있습니다.

다시 몸과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 건강한 것이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병에 걸립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면 반드시 몸의 지수화풍이라는 4대를 말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처음 수행을 시작하면 수행자에게는 4대라는 말이 별로 공감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흥미를 잃습니다.

 

그러나 교학적인 측면에서 몸을 설명할 때는 4대의 요소를 알아야

비로소 몸을 바르게 인식하는 견해가 생깁니다.

그래서 수행을 하면 할수록 몸의 4대의 중요성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몸을 32가지의 물질로 분류하셨고

다시 몸을 인식할 수 있는 요소는 4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의 결합으로 몸이 있고 몸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나의 몸이 아니라는 지혜가 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분석하신 이러한 내용은

궁극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할 사항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앎은 치유에 목적을 둔 것이라고 우리가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정신세계는 사소한 것 같은 것이라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관념을 가지고 거창한 것을 찾지만 진실은 매우 단순하고 사소한 것처럼 여겨지는

몸과 마음의 실재에 있습니다. 바로 이 사대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수행자들이 수행할 때 4대의 요소라는 것을 바르게 이해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수행 중에 몸의 단단한 느낌이 일어났을 때 이것을 지대라고 하거나

몸의 부드러움을 느꼈을 때 ‘이것은 지대다’ 하고 알아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몸의 뜨거움이 있을 때‘이것은 화대다’하고,

차가움이 있을 때 ‘이것은 화대다’ 하고 알아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몸의 풍대에 관해서도 진동이 일어날 때 ‘이것은 풍대다’라고 하거나

호흡을 알아차릴 때도 ‘이것은 풍대다’하고 알아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이런 모든 것들은 느낌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유익합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