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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65

通達無我法者 2010. 12. 27. 01:09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과 함께

알아차림을 지속하는 수행입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될 때 위빠사나라고 말합니다.

 

알아차리면 수행을 하는 것이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수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아차림에는 특별한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면 무엇이나 대상이 됩니다.

 

대상을 알아차릴 때 대상과 하나가 되어서 알아차리면 선정수행이고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면 위빠사나 수행이 됩니다.

선정수행의 대상은 관념이고,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일정한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빠사나의 대상은 실재이며, 분리해서 알아차리고,

바람이 없이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바람 없이 알아차릴 때만이 비로소 대상의 성품을 볼 수 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볼 때만이 깨달음을 얻습니다.

 

바라지 않고 알아차리는 방법을 실천하지 않으면

누구나 결코 도과를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마음의 작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정신과 물질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 기능들이 작용 하는 것을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몸과 마음이 있어서 사는지를 압니다.

 

이때 몸은 마음이 머무는 장소이고

마음은 단순하게 대상을 아는 기능밖에 갖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내가 산다는 것의 상당 부분은

바로 마음의 작용인 수(受), 상(想), 행(行)이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 수, 상, 행이 어떻게 작용해서 살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어떻게 사는가를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사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온(五蘊)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사는지 잘 모릅니다.

이제 내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인 동굴을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수행자 여러분들의 자신의 내면에 있는 동굴을 탐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과 연관된 마음의 작용 13가지 중에서

모든 마음에 연관된 마음의 작용은 7가지입니다.

감각접촉, 느낌, 인식, 의도, 집중, 생명력, 숙고, 이상 7가지입니다.

이상 7가지가 모든 마음에 연관된 마음의 작용입니다.

이 말은 이상 7가지 마음작용이 마음과 항상 함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기능이 대상을 아는 것이라고 했는데, 마음이 대상을 알기 위해서는

이들 7가지의 마음의 기능이 작용을 해야 아는 것이 성립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 하나만 가지고는 대상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모든 마음에 연관된 마음의 작용 7가지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번 접촉입니다.

접촉은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부딪히는 것을 말합니다.

접촉은 마음이 대상을 알 때 반드시 감각대상과 접촉을 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접촉은 마음의 작용인 수, 상, 행중에서 행에 속합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색,성,향,미,촉,법(色,聲,響,味,觸,法)과 접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을 6입(六入)과 6경(六境)이 부딪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로 여기서부터 사는 것이 시작됩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6입, 6문, 6근이라고도 합니다.

접촉을 또 다른 말로는 부딪힘, 닿음, 촉이라고도 합니다.

12연기에서 6입이 6경과 부딪힐 때 접촉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감각접촉입니다.

 

이때 접촉이라고 하는 것은 감각기관에 대상이 부딪힌다고 해서 접촉이라고 합니다.

이때 접촉한다는 것은 물질적 현상을 의미하지 않고 마음이 부딪히는 것을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감각적 욕망이라고 할 때도 욕망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므로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상을 아는 것이란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혀서

아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조건이 성숙되어야 합니다.

이때 이상 세 가지 외에 보조적인 것도 필요합니다.

눈으로 대상을 볼 때는 빛이 있어야 대상을 볼 수 있으므로

네 가지 조건이 성숙되어야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원인과 결과이자 조건입니다.

 

귀가 소리를, 바람의 방향에 의해서 아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바로 네 가지 조건이 성숙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안다고 할 때 그냥 아는 것이 아니고

이런 조건들이 성숙되어서 아는 것입니다.

여기 내가 있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고 아셔야겠습니다.

 

주석서에서는 접촉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지금부터 계속해서 말씀드리는 주석서의 내용은 모두 청정도론에 근거한 것입니다.

 

‘닿는다고 해서 접촉이라고 한다.

이것은 닿는 특징이 있고 부딪히는 역할을 하며 동시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영역으로 들어온 대상이 가까운 원인이다.

비록 이것이 정신이지만 대상에 닿는 형태로써 생긴다.

 

비록 이것이 어느 한 쪽에 달라붙지 않지만, 마치 형상에 눈이 부딪히고,

소리가 귀에 부딪히듯이 마음과 마음의 대상을 부딪치게 한다.

이처럼 동시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세 가지인 눈과 대상과 안식(眼識)의 동시 발생이라고 하는

자기 자신의 조건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는 마음이 적절하게 전향하고 감각기관을 통해서 대상이 나타났을 때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영역에 들어온 대상이 가까운 원인이라고 했다.

이것은 느낌의 근원이므로 마치 가죽이 벗겨진 소처럼 알아야한다.’

 

이상의 주석서의 내용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상을 분석할 때는 특징, 역할, 나타남, 가까운 원인을 들어서 설명합니다.

이것이 주석서에서 대상을 밝히는 일관된 내용입니다.

 

이처럼 대상을 분석하는 모든 목적은

이것이 모두 원인과 결과로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모든 것이 자아가 있어서 진행시키는 것이 아니고

조건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분석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무아의 지혜가 나도록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경전의 모든 내용과 방편은,

모두 궁극에는 무상, 고, 무아를 알게 하기 위한 숨은 뜻이 있습니다.

 

다음 두 번째 마음의 작용입니다. 두 번째 마음의 작용은 느낌입니다.

느낌은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힐 때마다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마음이 대상을 알 때는 반드시 감각대상과 접촉을 해야 하고 이때 반드시 느낌이 일어납니다.

마음의 작용인 느낌이 없으면 대상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모든 것을 느낌으로 알기 때문에 사실 안다는 것이 모두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는 마음은 항상 느낌과 함께 있기 때문에 아는 마음과 느낌을 같은 뜻으로 보아도 됩니다.

그래서 느낌 따로 아는 마음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오온은 항상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합니다.

 

마음의 작용 52가지 중에서 느낌은 한 가지입니다. 그래서 오온 중에서 수온에 해당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느낌은 워낙 종류가 많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에서는 단지 하나로 분류합니다.

 

12연기에서 정신과 물질을 원인으로 6입이 일어나고, 6입을 원인으로 접촉이 일어나고,

접촉을 원인으로 느낌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이때 느낌이 일어나는 것과 함께 아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포함됩니다.

 

느낌이 대상을 아는 마음과 함께 있다고 했을 때,

대상을 아는 기능이 느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각도 있고 표상도 있습니다.

여기서 느낌으로 안다는 것은 지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느낌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느낌으로 안다고 했을 때도 몸으로 느껴서 알 수도 있고, 마음으로 느껴서 알 수도 있습니다.

느낌은 육체적인 느낌이 있고 정신적인 느낌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들이 느낌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말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수행을 할 때 즐거움도 많지만 사실은 괴로움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라서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위빠사나의 지혜로 바뀌는 과정에서 온갖 괴로움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며 그만큼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느낌은 즐거울 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서 느낌인지 잘 모르지만,

괴로울 때는 느낌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괴로운 느낌이 많습니다.

또 느낌을 알아차리면 빠르게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자연스럽게 괴로움의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변한다는 것은 두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행을 해서 괴로움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오히려 지혜가 성숙한 것이라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괴로움이란, 지혜가 나서 원래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써

매우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경장에서 느낌을 세 가지로 분류하시고

논장에서는 다섯 가지로 분류하셨습니다.

이것뿐이 아니고 다른 경우에도 경장과 논장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경장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것이고,

논장은 지혜가 있는 대중을 위해서 좀 더 자세하게 분석한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논장은 일반 대중들에게 설하지 않고

천인과 사리뿟다 존자에게만 설해서 우리에게 전해지게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숫자는 중요하지 않고 어떤 것이나 그 내용이 중요합니다.

대중들을 위해서 설하신 경전에서는 느낌이 세 가지인데,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과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말합니다.

 

그러나 논장에서는 다섯 가지로 설명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 두 가지로 분류하고,

다시 정신적으로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 두 가지로 분류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평정한 느낌입니다.

이 평정한 느낌은 육체적으로 평정한 느낌과

정신적으로 평정한 느낌 두 가지가 모두 해당합니다.

 

경전에서 말하는 세 가지는

느낌에서 즐거운 느낌을 행복한 느낌이라고도 하며

괴로운 느낌을 고통스러운 느낌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한문으로는 불고불락(不苦不樂)의 느낌이라고 합니다.

 

논장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느낌은

육체적으로 즐거운 느낌과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이 있으며

슬픈 느낌과 정신적으로 즐거운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정한 느낌이 있는데 이 느낌은 육체적인 느낌과 정신적인 느낌,

두 곳에서 동일하게 쓰입니다.

 

지금 경전과 논장에서 분류한 느낌을 다시 한 번 살펴 본 것은

경전에서 사용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불고불락의 느낌을

논장에서 사용할 때는 다른 용어인 평정의 느낌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경전에서 말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불고불락(不苦不樂)의 느낌을

빨리어로 ‘아둑캄아수카(adukkham-asukha)’라고 합니다.

이는 괴로움이라는 ‘둑카(dukkha)’의 앞에 부정관사 ‘아(a)’를 붙여서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즐거움이라는 ‘수카(sukha)’ 앞에 부정관사 ‘아(a)’를 붙여서

‘아수카(asukha)’라고 한 것은,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라고 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두 가지 느낌을 합성어로 말한 것입니다.

이런 느낌이 육체적 느낌과 정신적 느낌으로 가서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라 하지 않고, 평정의 느낌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때 평정의 느낌을 빨리어로 ‘우뻬카-웨다나’(upekkhā-vedanā)라고 합니다.

이때 우뻬까는 평정, 중립, 무관심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경전에서는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으로

단순하게 표현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느낌과 정신적인 느낌으로 분류할 때는

감각기관이 대상을 느끼는 것이라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두 가지 느낌을

함께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