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화두 공부법(17)

通達無我法者 2007. 5. 5. 16:51

부록1.  公案의 명칭과 기능,

 

문 : 佛祖의 機緣을 공안이라고 하는 이유와 그 기능은 무엇입니까?

답 : 공안이라는 말은 관청의 문서에 비유한 것으로서,

"公"이라 한 것은 훌륭한 道를 깨달아 세상 사람들에게 그 길을 모두 함께 가도록하는

지극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며, "案"이라 한 것은 성현들께서 그 道를 수행하는 바른 방법을 기록한 것이란 뜻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라면 먼저 관청을 설치하지 않을 수 없으며, 관청을 세웠다면 그것을 운영할

법령이 없을 수 없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른 이치를 받들어서 법령을 만듦으로써 바르지

못한 것을 박멸시켜서 천하의 기강을 바로 잡아 왕도정치가 제대로 실현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불조의 기연을 공안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와같은 것으로써,

이는 한사람의 억지 주장이 아니라 신령스러운 根源에 꼭 들어 맞고

妙旨에 계합하며 생사의 굴레를 부숴 버리는 것으로서,

언어나 문자로 따질 수 없되 十方三世의 수많은 보살들과 더불어 똑 같이 지니고 있는

아주 지극한 도리라는 뜻이다.

 

또한 "公"이란 개개인의 주관적인 주장을 개입시키지 않았다는 뜻이며,

"案"이란 기필코 불조의 깨달음과 동일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靈山會上에서 말한 "敎外別傳"이란 바로 이 道理를 전한 것이며,

달마스님의 "곧바로 가리키는 禪"도 이를 가리킨 것이다.

 

예를 들어 "뜰 앞의 측백나무" "마 세근" "똥 묻은 막대기"등과 같은 공안은 전혀 궁리해 볼

길이 없는 것이 마치 은산철벽을 뚫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다만 마음을 깨친 눈밝은 사람만이 언어문자 밖에서 뜻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나 이치로 알 수 없고, 말로써 전 할 수도 없고,

문자로 설명명할 수 없으며, 알음알이로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

마치 途毒鼓를 울리면 듣는 이는 모두 그 자리에서 죽는 것과 같으며,

큰 불구덩이에 들어가 즉시 타 죽는 것과 같다.

 

 

세상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다가 불공평한 일이 생기면 반듯이 관청에 가서 공정하게 재판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이때 吏曺에서는 공포된 법조문을 근거로 해서 재판해 주듯이,

참선하는 이가 깨달은 것이 있으나 스스로 확신을 못해서 스승에게 질문하는 경우, 스승은 공안을 근거로 해서 의심을 풀어준다.

 

또한 공안은, 범부의 妄情과 分別識이란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햇불이며,

보고 들음이란 창문 카텐을 걷어 올리는 줄이며, 生死의 命根을 끊어 버리는 예리한 도끼이며,

성인과 범부의 면목을 비춰보는 신령스러운 거울이다.

 

조사들의 뜻이 이공안에 의해 확연히 밝혀지고,

부처님의 마음이 이 공안에 의해 開顯된다.

따라서 완전히 초월하여 멀리 벗어나며, 크게 통달하여 똑같이 증득하는 데는,

이 공안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

이른바 공안이란 법을 아는 자만이 두려워 할 뿐이니,

만약 그러한 사람이 아니면 그 비슷한 것도 엿보지 못한다.

 

문 : 어떤 이들은 공안의 깊이에 따라 서열을 매기기도 하는데 과연 공안에 깊이의 차이가

있읍니까? 또한 어째서 한 공안에 대해 깊다 얕다 하는 평가가 다릅니까?

 

답 : 모든 공안은 그에 맞는 분명한 한 가지 도리를 갖고 있음에도,

공안에 대한 평가에 차이가 있는 경우는,

참구한 이가 그 공안의 道理를 극진히 깨치지 못하고 자신의 所見에 빠졌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하늘에 떠 있는 달의 움직임은 보는 사람의 행동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또한 사람이 바다에 들어 갈때,

들어가면 들어 갈 수록 바다가 깊어지는 것과 같이,

공안도 깊히 참구할 수록 그 도리는 더욱 깊어진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들어가서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해서

홀연히 머리를 들어 보면 일찍이 별도의 바다가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몸소 한번 도달하지 못했다면,

가슴 속에서 의심을 없애지 마라.

그러면 저절로 지극한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고 마조스님께 묻자,

마조스님은 "마음이 부처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서는 전에 참선한 적이 없는 사람도 알았다고 그냥 넘어가지만,

그 지극한 뜻은 오랫동안 참선한 사람조차도 대부분 잘못 알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참으로 진정한 道流라면 결코 공안을 언어나 문자로써 따지거나 알음알이로써

뜻을 풀어 보려고 하지 않고,

다만 마치 눈앞에 수만 길이나 되는 장벽이 서 있는 것처럼 하고

오래도록 참구하다가 홀연히 의심덩어리를 타파하나니,

그렇게 되면 百千萬가지 공안의 甚淺, 難易, 同別을 한꺼번에 뚫어 버려서 자연히 남에게

물을 필요가 없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자기자신에게 되물어서 參究하지는 않고,

남들이 그뜻을 열어 보여 주기나 바란다면, 설사 석가나 달마가 (자신들의) 속마음을 다 보여 준다해도 오히려 본인의 눈만 멀게 할 뿐이다.

 

                                                                  -天目中峰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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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목중봉선사는 중국에서 1263-1323년에 살았던 스님으로 "禪要"라는 책자저자로 유명한 고봉원묘스님의 제자입니다. 달마스님의 29세 법계승자이며, 임제스님의 15세 법손이고요.

저서로서 천목중봉화상광록이 전해내려 오며,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山房夜話"라는 실제선수행요령에 대한 지침이 대화체로서 편찬되었읍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산방야화라는 글도 부분적으로 계재해 볼 예정으로 있읍니다만,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