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능엄경(楞嚴經)

능엄경 제2권

通達無我法者 2007. 7. 6. 13:16
LONG
ARTICLE

-참된 생각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때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몸과 마음이 평안해져서 가만히 생각했다.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본심은 잃어버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물질만을 분별하는
   그림자 같은 일만을 부질없이 인정해 오다가 오늘에야 비로서 깨달은 것이,
   마치 어머니를 잃었던 젖먹이가 홀연히 어머니를 찾은 것과 같구나.'

그리하여 대중들은 모두 합장하여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부처님께서 몸과 마음의 진실하고 거짓된 것과 허망하고 진실한 것을 나타내 보이신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생기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두 가지 성품에 대하여
분명하게 들려주기를 원하였다.

그때 바사닉왕이 일어서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지난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을 때에
   가전연과 비라지자를 만났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이 몸이 죽은 뒤에 아주 끊겨 없어지는 것[斷滅]을
   열반이라 한다'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록 부처님을 만났사오나
   아직도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사오니,  
   어떻게 설명해야 나고 멸함이 없는 마음의 경지를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대중들 속에는 번뇌를 채 여의지 못한 이가 있으니
   그들도 모두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몸이 현존하므로 지금 그대에게 묻겠는데,
   그대의 육신이 금강과 같아서 항상 머물러 있고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여깁니까?
   아니면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지리라고 여깁니까?"

  "세존이시여, 저의 이 육신은 언젠가는 변하여 없어질 것입니다."

  "그대가 아직 죽지 않았거늘 어떻게 죽을 것을 아십니까?"

  "세존이시여, 이 무상하게 변하는 제 몸이 비록 아직은 죽은 것이 아니오나
   지금 저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생각마다 변해가고 새록새록 달라져서
   마치 불에 타버린 재처럼 끊임없이 점점 늙어가고 있으므로   
   기필코 이 몸이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아나이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그대는 지금 이미 늙었으나
   얼굴 모습이 동자 때와 비교하여 어떠합니까?"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 어렸을 적에는 피부와 살결이 윤택하였고,
   점점 성장함에 따라 혈기가 충만하더니  
   이제는 나이가 들어 쇠모함에 임박해지니 형색은 초췌하고
   정신은 혼미하여 머리털은 희어지고 얼굴은 쭈글쭈글 해져서  
   오래 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한창 젊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대왕이여, 그대의 얼굴은 갑자기 늙은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하므로 제가 진실로 깨닫지 못했습니다만
   추위와 더위가 흘러감에 따라 점점 이 지경에 이르렀나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오면 제 나이 스무 살 때에는
   비록 젊었다고는 하나 얼굴은 이미 열살 때보다는 늙었고,
   서른 살 때에는 또 스무 살 때보다 더 늙었으며,   
   지금 예순에 또 둘을 더하고 보니  
   쉰 살 때가 지금보다 훨씬 강장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자주자주 변해 가는 것을 보고서
   비록 이렇게 쇠락하는 세월을 십 년씩 한정하여 말하였습니다만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면
   어찌 그 변해 가는 것이 일기(一紀). 이기(二紀)뿐이겠습니까?
   실은 해마다 변한 것입니다.
   또 어찌 해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달마다 변한 것이며 어찌 달마다 변하였을 뿐이겠습니까?
   또한 날마다 변한 것이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찰나마다 생각하는 사이조차에도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몸이 마침내 변화해 없어질 줄을 아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그대가 변천하여 머물지 않는 변화를 보고
   죽어 없어질 것을 알았노라고 했는데,
   역시 죽어 없어질 때에
   그대의 몸 속에는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아십니까?"

  "저는 진실로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 그대에게 나고 죽음이 없는 성품을 보여 주겠습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나이 몇 살 때에 항하강 물을 보았습니까?"

  "제 나이 세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기바천에 참배하러 갔을 때
   그 강을 건넜었는데 그때 항하강임을 알았습니다."

  "대왕이여, 그대의 말과 같아서 스무 살 때엔 열 살 때보다 늙었으며,
   예순이 되도록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한 생각마다 변천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대가 세 살 때에 보던 그 강물과 열세 살 때 보던 그 강물은
   어떻게 다르더이까?"

  "세 살 때와 완전히 같아서 강물은 조금도 달라짐이 없었으며,
   지금 예순두 살이 되었사오나 역시 강물은 달라짐이 없습니다."

  "그대는 지금 머리털이 희어지고 얼굴이 쭈그러짐을 애달파 하나니,  
   그 얼굴은 틀림없이 어렸을 적보다 쭈그러졌겠지만,
   그대가 지금 항하강 물을 보는 것과
   지난날 어렸을 적에 항하강물을 보던 것에는
   어리고 늙음의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왕이여, 그대의 얼굴은 비록 쭈그러졌으나
   그대의 보는 정기만은 본래의 성품 그대로이며 쭈그러진 것이 아닙니다.

   쭈그러지는 것은 변하는 것이겠지만
   쭈그러지지 않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하는 것은 없어지게 되겠지만
   저 변하지 않는 것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거늘  
   어떻게 그 가운데에서 그대가 나고 죽음을 받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저 말가리등의 말을 인용하여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아주 없어진다고 합니까?"

대왕이 그 말을 듣고는 진실로 이 몸이 죽은 뒤에 이 생을 버리고 다른 생에 태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대중들과 함께 아직까지 없었던 법문을 들었다고 기뻐하였다.
     
-참된 성품은 없어지지 않는다.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합장하여 예를 올리고 꿇어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보고 듣는 것이 정말로 나고 죽음이 없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참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행동을 한다고 하셨습니까?
   원컨대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우리의 찌든 때를 씻어주시옵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금빛의 팔을 드리우시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켜 보이시며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나의 모다라 손을 보아라 . 바로 되었느냐, 거꾸로 되었느냐?”

“세상의 중생들은 이것을 거꾸로 라고 하겠지만
   저는 어느 것이 바로이고 어느 것이 거꾸로 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난아, 만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 라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또 어떤 것을 바른 것이라고 하겠느냐?”

  부처님께서 팔을 세우시고 도라면 같은 손으로 위로 허공을 가리키시면 바른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렇게 뒤바뀜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한 배(倍)나 더 거꾸로 보는구나.
  
   그러니 알아야 한다.
   너의 몸을 모든 부처님의 깨끗한 법신과 비교해서 밝혀 본다면,
   여래의 몸은 ‘바르게 두루 앎[正遍知]' 이라 이름하고
   너희들의 몸은 '뒤바뀐 성품[性顚倒]’이라 부른다.

   그러니 너는 자세히 살펴보아라.
   네 몸을 부처님의 몸과 비교하여 뒤바뀌었다고 한다면
   어느 곳을 이름하여 ‘뒤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냐? “

그때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눈을 크게 뜨고 깜박거리지도 않은 채 부처님을 보았으나
몸과 마음의 뒤바뀐 곳을 알지 못하였다.

부처님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아난과 모든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어김없이 찾아드는 조수와 같은 음성[海潮音]으로 같은 회상에 모인 대중들에게 널리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내가 늘 말하기를 ‘물질과 마음의 모든 인연과 마음에
   끌려 다니는 것과 반연되는 모든 현상들은
   오직 마음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였느니라.
   너의 몸과 마음이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되며
   정밀한 마음속에서 나타난 것이거늘,
   너희들은 어찌하여 본래부터 오묘하고 원만하고
   밝은 마음과 보배롭고 밝고 오묘한 성품을 잃어버린 채
   혼미해진 것만을 인정하는가?

   밝은 성품을 잘못 아는 어두움 때문에 허공이 되고
   그 허공과 어두움 속에서 어두움이 뭉쳐져 물질이 되었나니,
   그 물질의 부질없는 생각과 뒤섞여서 생각과 모양을 지닌 것을 몸이라 하고,
   연을 쌓아 안에서 흔들리며 밖으로 달려 나가려는
   혼미하고 어지러운 모양을 심성이라고 한다.

   한 번 잘못 알아 마음이라 인정하고는
   이 마음이 결코 내 몸속에 있는 줄로 착각하여
   이 몸이나 밖에 있는 산과 강, 허공과 대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오묘하게 밝고 참된 마음속의 물건임을 알지 못하나니,
   비유하면 맑고 깨끗한 백 천의 큰 바다는 버리고,
   오직 하나의 들뜬 물거품만을 바다 전체인 양 잘못 인식하여
   눈앞의 조수를 보고 바다 전체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곧 미혹한 가운데서도 배나 더 미혹한 사람이니
   마치 내가 손을 드리운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가엾은 사람이라고 하였느니라.“

-참된 성품은 되돌아가는 곳이 없다.

아난이 부처님께서 자비로 구원해 주시는 깊은 가르침을 받자옵고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비록 부처님의 이와 같이 오묘한 음성을 듣자옵고,
   오묘하고 밝은 마음이 본래 원만하게 항상 머무는 자리를 깨달았으나
   제가 지금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음성을 깨달은 것도 곧 반연하는 마음이며,
   진실로 우러러보는 것도 다만 이 마음에서 생긴 것이기에
   감히 본래의 마음자리라고 인정하지 못하겠사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 가엾게 여기시어 원만한 법음을 베풀어
   저의 의혹의 뿌리를 뽑아서 최상의 도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아직까지도 반연으로 생긴 마음으로 법을 듣고 있으니
   그 법도 반연일 뿐이라서 법성을 얻은 것이 아니니라.

   가령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에게 보일 경우,
   그 사람은 손가락으로 인하여 달을 보아야 마땅할 것인데,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다만 달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 잃어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가리키는 손가락을 가지고 밝은 달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손가락만 잃을 뿐이겠는가?
   밝고 어두운 것도 알지 못하리니,
   왜냐하면 곧 손가락을 달의 밝은 성품이라고 생각하여
   밝고 어두운 두 성품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 또한 그러하니라.

   만약 나의 설법하는 음성을 분별하는 것으로 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이 마땅히 음성을 분별하는 일을 여의고서도
   따로 분별하는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나그네가 객사에 기숙하기 위하여
   잠시 머물렀다가 문득 떠나버리면 이는 항상 머무는 것이 아니지만,
   객사의 주인은 떠나지 않으므로 주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또한 그와 같아서 만약 진실한 너의 마음이라면 갈 곳이 없을 터이니
   어찌 소리를 여의었다고 해서 분별하는 성품이 없겠느냐?

   그러니 어찌 소리로 분별하는 마음뿐이겠는가?
   내 얼굴을 분별하는 것도
   모든 물질의 모양을 여의고서는 분별하는 성품이 없으리니,
   이와 같이 분별함이 전혀 없는 데에까지 이르러서는 물질도 아니고
   '공'도 아니므로 구사리등이 이 진리에 어두워서 명제(冥諦)라고 주장하느니라.

   모든 법의 반연을 여의었으므로 분별하는 성품이 없다면
   곧 너의 심성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을 터이니 어찌 주인이라고 하겠느냐?"
      

-참된 성품은 물들지 않는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저의 심성이 각각 돌아갈 곳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오묘하고 밝은 본래의 마음은
   어찌하여 돌아갈 곳이 없습니까?
   바라옵건대 가엾게 여기셔서 저희들을 위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볼 적에 그 정기의 밝은 근원이
   비록 오묘하고 정밀하게 밝은 마음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는 마치 제2의 달 인지라 달 그림자가 아닌 것과 같으니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들으라.
   지금 너에게 돌아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리라.

   아난아, 이 큰 강당의 동쪽이 환하게 트여서
   둥근 해가 떠오르면 곧 밝게 빛나고,
   달도 없는 한밤중에 구름과 안개마저 자욱하면 더욱 어두우며,
   문틈으로는 다시 통함을 보고 담장을 대해서는 막힘을 보며,
   분별하는 곳에서는 반연함을 보고 완벽한 허공 속은 모두가 비었으며,
   흙비의 현상은 티끌이 얽힌 것이고
   맑게 개여 안개가 걷히면 또다시 맑음을 보게 되느니라.

   아난아, 너는 이 여러 가지 변화하는 모양들을 살펴보아라.
   내가 지금 각각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무엇을 '본래의 원인이 있는 곳'이라 하는가?

   아난아, 이 모든 변화 중에서 밝은 것은 둥근 해로 돌아가나니.
   이는 해가 없으면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밝은 것의 원인은 해에 속하게 된다.
   이렇듯 밝음은 해로 돌아가는 것이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 데로 돌아가고,
   막힘은 담장으로 돌아가며,
   통함은 문으로 돌아가고, 반연은 분별로 돌아가며,
   완벽한 허공은 허공으로 돌아가고, 흙비는 티끌로 돌아가며,
   맑음은 개인 데로 돌아가나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이러한 종류에 지나지 않느니라.

   그런데 너는 이 여덟 가지를 보는 정기의 밝은 성품을 어디로 돌아가게 하려느냐?
   왜냐하면 만약 밝은 데로 돌아간다면 밝지 아니할 적에는 어두움을 보지 못하리니,
   비록 밝은 것과 어두운 것들이야 여러 가지로 차별한다 하더라도
   보는 주체는 차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돌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은 자연 네가 아니겠지만
   네게서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은 네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러니 깨닫도록 하여라.
   너의 마음이 본래 오묘하고 밝고 깨끗한 것인데,
   네가 스스로 혼미하여 근본을 잃고 윤회하면서
   생사 속에서 항상 표류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가련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비록 보는 성품이 돌아갈 데가 없음은 알았습니다만
   어떻게 그것이 저의 참 성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지금 네가 일체 번뇌를 여윈 깨끗한 경지에는 이르니 못하였으나
   부처님의 신비한 힘을 받들어 저 초선천을 보는 데 장애가 없었으며,  
   아나율은 염부제 보기를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라 열매를 보듯 하였으며,
   모든 보살들은 백천의 세계를 보며,
   시방의 부처님께서는
   티끌처럼 많은 깨끗한 국토를 통틀어서 보지 못하는 곳이 없지만,
   중생들이 보는 것은 푼촌에 지나지 않느니라.

   아난아, 장차 내가 너와 함께 사천왕이 거주하는 궁전을 볼 것이니라.
   그 중간에 물과 육지와 허공에 다니는 것을 두루 볼텐데
   비록 어둡고 밝은 갖가지 형상들이 있으나
   모두가 앞에 나타난 물질을 분별하는 마음이 있으리니
   너는 마땅히 여기에서 나와 남을 분별해 보아라.

   지금 내가 너를 데리고 보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것이 너의 몸이고 어느 것이 다른 물체인지를 가려주리라.

   아난아, 네가 보는 주체의 근원을 끝까지 추구하여 보아라.
   해와 달의 궁전까지도 모두가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칠금산에 이르도록 두루두루 자세히 관찰하여 보아라.
   비록 갖가지 빛이 있어도 그것은 역시 물상이지 네가 아니며,
   그 밖의 것도 잘 관찰해 보아라.
   구름이 뜨고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먼지가 날리는 것과
   나무와 산, 냇물과 풀, 사람과 축생이 모두 물상이지 너는 아니니라.

   아난아. 이 가깝고 먼 데 있는 모든 물질의 성질이
   비록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이 모두가 너의 깨끗하게 보는 주체의 정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니,
   여러 가지 물상은 자연 차별이 있을지언정 보는 주체의 성품은 다름이 없다.
   이 보는 정기의 오묘하고 밝은 것이 진실로 너의 보는 주체의 성품이니라.

   만약 보는 주체 그 자체가 물상이라면
   너는 또한 나의 보는 주체의 성품을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함께 보는 것을 가지고 나의 보는 성품을 본다고 한다면,
   내가 보지 않을 때에는 어찌하여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너도 보지 못하느냐?"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본다면
   자연 저것은 볼 수 없는 모양이 아니니라.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곳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자연 물질이 아닌데 어찌 네가 아니라고 하겠느냐?

   또한 네가 지금 물질을 볼 적에
   네가 이미 물질을 보았거든 물질도 또한 너를 볼 것이므로
   실체와 그 성품이 어지럽게 섞여 너와 나, 그리고 모든 세간이
   편안하게 정립하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만약 네가 볼 때엔,
   이것은 너의 보는 주체이지 내가 아니거늘
   보는 주체의 성품이 두루 있는데 네가 아니고 누구이겠느냐?
   어찌하여 너의 참다운 성품을
   너에게서는 참되지 못한 성품인 양 스스로 의심해서
   나에게 물어 진실을 구하려고 하느냐?"

-참된 성품은 무량하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주체의 성품이 반드시 제 자신이지 남이 아니라면
   제가 부처님과 함께 사천왕의 뛰어나고 장엄한 보배의 궁전과 일월궁을 볼 때에는,
   그 보는 주체가 두루 원만해서 사바국에 골고루 퍼졌다가
   정사에 돌아오면 다만 가람만 보이고 도량에서는 오직 처마만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저 보는 주체가 이와 같아서
   그 본체가 본래는 온 세계에 고루 퍼졌다가
   지금 방안에 있을 적에는 오직 온 방 안에만 가득하게 되는데,
   그럴 적에 저 보는 주체는 큰 것이 축소되어 작아진 것입니까?
   아니면 담과 지붕에 막혀서 좁아지고 끊어진 것입니까?
   지금 저는 그 이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큰 자비를 베푸셔서 저를 위해 설명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온 세상의 크고 작은 것과 안이나 밖,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이
   각각 앞에 나타나는 물질에 속하는 것이니,
   보는 주체가 퍼지거나 움츠러드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느니라.

   비유하면 그것은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빈 공간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내가 다시 너에게 묻겠는데
   이 모난 그릇 속에서 보인 모난 빈 공간이 모나게 정해진 것이냐,
   아니면 모나게 정해진 것이 아니냐?

   만약 모나게 정해진 것이라면
   따로 둥근 그릇 속에서도 그 빈 공간은 둥글게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약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모난 그릇 속에서도 모난 빈 공간이 아니어야 할 것이니,
   네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한 그 이치가
   이와 같거늘 어떻게 따질 수 있겠느냐?

   아난아, 만약 모나고 둥근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자 한다면
   다만 모난 그릇을 없앨지언정 빈 공간 그 자체는 모난 것이 아니니
   또다시 빈 공간의 모난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네가 물은 것처럼 방에 들어갔을 적에
   보는 주체가 축소되어 작아진 것이라면
   해를 쳐다볼 적에는 네가 어떻게 보는 주체를 늘려서 해에 닿게 하였으며,
   만약 담과 지붕이 막혀서 보는 주체가 끊어진 것이라면
   작은 구멍을 뚫었을 적에는 왜 이은 흔적이 없느냐?
   그 이치는 그런 게 아니니라.

   모든 중생이 시작이 없는 아득한 옛적부터 지금까지
   혼미한 자신을 물질이라 생각해서 본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물질에 지배를 받게 되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에 크고 작은 것을 보지만,
   만약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면 부처님과 같이 곧 마음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도 한 개의 털끝에 시방의 국토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참된 성품은 차별이 없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보는 주체의 정기가 반드시 나의 오묘한 성품이라면,
   지금 이 오묘한 성품이 제 앞에 있어야 하리니,
   보는 주체가 반드시 저의 참다운 마음이라면
   지금 저의 몸과 마음은 또다시 어떤 물건입니까?
   지금 이 몸과 마음은 분별하는 실제가 있거니와
   저 보는 주체는 분별함이 없어서 저의 몸과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참으로 내 마음이어서 나로 하여금 지금 보게 한다면
   보는 주체의 성품은 진정한 나 이겠지만 몸은 내가 아닐 것이니,
   부처님께서 앞에서 힐난하여 말씀하신 '물질이 나를 보리라'고 하신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컨 자비심을 베푸시어 깨닫지 못한 부분을 깨우쳐 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네가 '보는 주체가 내 앞에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그 이치가 옳지 않느니라.

   만약 참으로 네 앞에 있기 때문에 네가 진정 보는 것이라면
   이 보는 주체의 정기가 있어야 할 장소가 있을 것이니
   가리켜 보이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또 지금 너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숲과 냇물과 정당을 두루 보고,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며 앞에는 항하를 대하였으니,
   지금 네가 나의 사자좌 앞에서 손을 들어 가리켜 보아라.

   이 갖가지 모양들이 그늘진 것은 숲이고 밝은 것은 태양이며,
   막힌 것은 벽이고 통한 것은 허공이니,
   이렇게 풀과 나무, 그리고 실오라기와 터럭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것은 비록 다르지만
   다만 형상이 있는 것들은 가리키지 못할 것이 없다.

   만일 그 보이는 대상이 반드시 현재 네 앞에 있다면
   네가 마땅히 손으로 확실하게 가리켜 보아라. 어느 것이 보는 주체이냐?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허공이 보는 주체라면
   이미 보는 주체가 되어 버렸으니 어느 것이 허공이며,
   만약 물체가 보는 주체라면
   이미 보는 주체가 되어 버렸으니 어느 것이 물체이겠느냐?

   너는 세밀하게 온갖 물상을 분석하여
   정밀하고 밝으며, 맑고 오묘하게 보는 주체의 근원을 지적하고 가려내어
   나에게 보여주되 저 물질과 같이 분명하여 의혹이 없게 하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지금 이곳의 여러 층으로 된 강당에서 멀리는 항하강까지,
   위로는 해와 달까지 보지만
   손을 들어 가리키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들은 모두가 물질이라서
   '보는 주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아직 번뇌를 여의지 못한,
   처음으로 배움의 길에 들어선 성문이거니와 나아가 보살이라 하더라도
   온갖 물상 앞에서 정밀하게 보는 주체를 가려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나야만 별도로 자성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그렇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 것처럼 보는 주체를 가려낼 수 없고
   일체의 물상에서 벗어나야만 별도로 정밀하게 보는 주체가 있다고 한다면,
   네가 가리키는 이 물상 속에는 보는 주체가 없겠구나.

   지금 다시 너에게 말하겠는데 너는 여래와 함께 기타림에 앉아서
   저 숲과 동산, 나아가 해와 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을 보아라.
   갖가지 물상이 각기 다르지만
   반드시 네가 지적한 보는 주체의 정기가 없을진댄,
   너는 다시 밝혀 보아라. 이 모든 물상 중에 어느 것이 보는 주체가 아니더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제가 사실 이 기타림을 두루 보았으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보는 주체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나무가 보는 주체가 아니라면 어떻게 나무를 본다고 하겠으며,
   만약 나무가 보는 주체라면 어떻게 나무라고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만약 허공까지도 보는 주체가 아니라면 어떻게 허공을 보며,
   만약 허공이 보는 주체라면 어떻게 허공이라고 하겠습니까?
   또 제가 생각해 보니 이 온갖 물상 중에서 정밀하고 자세하게 밝혀 보건대
   보는 주체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러하니라."

그때 대중 가운데에서 아라한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그 이치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한 채
멍하니 한동안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마치 간직하고 있던 물건을 잃은 듯하였다.

부처님께서 그들이 어리둥절해 함을 아시고는 가엾은 마음을 내시어 아난과 여러 대중을 위안하며 말씀하셨다.

  "모든 선남자들아,
   이는 가장 높으신 법왕의 진실한 말씀이며 여여한 말씀이기에
   속이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아니니라.

   저 말가리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네 가지 거짓으로 혼란하게 하는 논리와는
   결코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자세히 생각하고 애모하여 욕되게 하지 말라."

그때 법왕자이신 문수사리보살이 여러 사부대중을 가엾게 여기어 대중 가운데 계시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공손히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기 모인 모든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밝혀 주신 두 가지의 것,
   즉 정밀하게 보는 것과 물질이나 허공에 대하여
   어느 것이 보는 주체이고 보는 주체가 아닌지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앞에 나타나 있는 대상인 물질과 허공의 형상이
   보는 주체라면 마땅히 가리킬 것이 있어야 하며,
   만약 보는 주체가 아니라면 마땅히 보지 못해야 할 터이니,
   지금 그 이치의 본뜻을 알지 못하여 놀랍고 두렵기는 할지언정,
   그렇다고 옛날보다 선근이 적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는 큰 자비를 베푸시어 이를 밝혀 주시옵소서.
   이 모든 물상과 보는 주체의 정기가 본래 무엇이기에
   그 중간에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문수와 여러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시방의 여래와 큰 보살들이 그 스스로 머무는 삼마지에서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 물질, 그리고 생각하는 모양은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이 보는 주체와 그 대상 물질은
   본래가 보리의 오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실체인데
   어찌 그 가운데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있겠느냐?

   문수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진정한 문수인데 또 달리 문수라고 할 다른 문수가 있느냐, 없느냐?"

문수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진실한 문수이므로 또 다른 문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런 일이 성립된다면 이것은 두 문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바로 저 문수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실제로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할 두 가지 모양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묘하고 밝게 보는 성품과 허공과 물질도 이와 같아서
   본래 오묘하고 밝으며 가장 높은 보리의 깨끗하고 원만한 참마음 이거늘,
   이것을 허망하게 허공과 물질과 듣고 보는 주체라고 여기는 것이
   마치 제2의 달과 같으니
   어느 것이 달이고 어느 것이 달이 아니라고 하겠느냐?

   문수야, 하나의 달만이 참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는 자연 '달이다. 달이 아니다'라고 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지금 네가 보는 주체와 그 대상 물질을 보고서
   여러 가지로 밝혀냄을 허망한 분별이라고 하나니,
   그 가운데서는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벗어날 수 없겠지만,
   참되고 순수하고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성품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너로 하여금 가리키고 가리키지 않고 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니라."
      
-참된 성품은 헤아려 알 수 없는 것.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진실로 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각연(覺緣)이 시방세계에 가득하고 맑고 고요하게 늘 머물러서,
   그 성품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아닐진대
   전에 범지인 사비라가가 말한 '명제(冥諦)와 투회(投灰)등 여러 외도종자가
   말한 '참다운 내가 시방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세존께서도 일찍이 능가산에서 대혜보살등을 위하여
   이 이치에 대하여 말씀하실 적에 '저 외도들은 항상 자연이라고 말하였는데
   제가 말한 인연은 저들이 말하는 경계와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관찰해 보건대 깨닫는 성품은 자연 그대로여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허망하게 뒤바뀐 모든 것을 멀리 벗어나니 아마도 인연이 아닌 것 같아
   마치 저들이 주장하는 자연과 같사옵니다.
   그런데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만 우리들이 모든 삿된 소견에 빠지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오묘하게 깨닫는 밝은 성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이렇게 방편을 열어 보여서 진실하게 말하였는데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자연인가 하고 의혹을 품느냐?

   아난아, 만약 반드시 자연이라고 한다면
   그 자연을 분명히 밝힐 수 있는 자연의 본체가 따로 있어야 할 것이다.

   너는 또 이를 관찰해 보아라. 오묘하고 밝게 보는 주체 가운데
   무엇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밝음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어두움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아니면 허공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막힌 것을 '자연[自]'이라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밝은 것을 '자연[自]'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어두운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허공을 자연의 본체라 한다면 마땅히 막힌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이와 같이 다른 어두운 현상에 이르는 것을 자연이라 한다면
   밝을 때에는 보는 성품이 아주 없어져야 할 것인데 어떻게 밝음을 보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반드시 이 오묘하게 보는 주체의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저는 지금 이것은 인연으로 생긴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마음에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못하여 부처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찌하여야 인연의 성품에 맞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인연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네가 지금 보이는 대상으로 인하여 보는 주체의 성품이 앞에 나타나나니
   이렇게 보는 주체는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
   막힘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있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마땅히 어두운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허공과 막힘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느니라.

   아난아, 이 보는 주체가 밝은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어두운 것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느냐?

   만약 허공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막힌 것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요,
   만약 막힘을 따라서 보는 것이 있다면 허공은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밝음과 어두움으로 인한 것도 이와 같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렇게 정밀한 깨달음의 오묘하고 밝은 것은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며,
   자연도 아니고 자연이 아닌 것도 아니며,
   아닌 것과 아님이 아닌 것도 없고 이것과 이것이 아닌 것도 없어서
   일체의 모양에서 벗어나 일체의 법에 나아가느니라.

   네가 지금 그 가운데서 어떤 마음을 가지기에
   모든 세간에서 부질없는 다른 논리[戱論]과 명상(名相)으로 분별하려 하느냐?
   이는 마치 손으로 허공을 만지려는 것과 같아서
   다만 애만 쓸 뿐이지 허공이 어떻게 네게 잡히겠느냐?"

-참된 성품은 볼 수 없는 것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기필코 이 오묘한 깨닫는 성품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 어찌하여 늘 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는 성품이 네 가지 연을 갖추어야 하니,
   이른바 허공을 원인으로 삼고 밝음을 원인으로 삼으며,
   마음을 원인으로 삼고 눈을 원인으로 삼는다'고 하셨으며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에 있는 인연의 모양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第一義)를 말한 것은 아니니라.

   아난아, 내가 또 네게 묻겠는데,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며,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면 본다고 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난아, 만약 밝지 못한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어두운 것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며,
   만약 반드시 어두운 것을 본다고 한다면,
   이는 다만 밝지 않을 뿐이지 어떻게 보는 것이 없다고 하겠느냐?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는 밝은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지금 밝을 때에 어두운 모양을 보지 못하는 것도 보지 못한다고 해야겠구나.
   그렇다면 두 모양을 모두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두 모양이 서로 빼앗는다고 할지언정
   너의 보는 주체의 성품은 그 가운데 잠시라도 없어진 것이 아니니,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를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하여 보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밝은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밝은 것은 아니며,
   어두운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어두운 것은 아니며,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허공은 아니며,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것이 막힌 것이 아니니라.

   네 가지 이치가 성립되었으니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보는 주체를 볼 때에 보는 것은 보는 주체가 아니니라.

   보는 주체의 성품은 오묘하여
   그것이 오히려 보는 주체를 벗어났으니
   보는 주체로도 미칠 수가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인연이다, 자연이다, 어울려 조화된 모양이다,라고 말하겠는가?
   너희 성문들은 용렬하고 지식이 없어서 깨끗한 실상을 통달하지 못하였으니,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겠노라.
   마땅히 잘 생각해서 오묘한 보리의 길에서 고민하거나 게을리 하지 말아라."

 

 

허망한 생각에서 참된 생각을 보이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오직 저희들을 위하여 인연과 자연과 서로 합하여
   조화된 현상과 합하여 조화되지 못한 것을 설명해 주셨으나
   마음은 아직 열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는 주체를 보는 것은 보는 주체가 아니다'라고
   하심을 듣고서는 더욱 의혹이 짙어집니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큰 자비로써 지혜의 눈을 베푸시어
   저희들의 깨닫는 마음이 밝고 맑다는 것을 열어 보여 주소서."

아난이 말을 마치고는 슬피 울며 이마가 땅에 닿도록 예를 올리고 성인으이 가르침을 받으려 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큰 다라니와 모든 삼마제의 오묘한 수행 방법을
다시 설명하시기 위하여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비록 기억력은 강하나 다만 많이 듣는 것에만 힘썼고,
   사마타를 미묘하고 정밀하게 비추어 보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아직까지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없으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으라.
   내가 너를 위하여 이를 분별하여 보여줄 것이며,
   또한 장래에 번뇌를 끊지 못한 여러 사람들에게도 보리의 과업을 얻게 하리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세간을 윤회하는 것은
   두 가지 뒤바뀐 분별하는 망견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그것이 장소에 따라 발생하며 업보에 따라 흘러 전전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일러 두 가지 망견이라 하는가?
   첫째는 중생의 서로 다른 업인[別業]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고,
   둘째는 중생의 동분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서로 다른 업인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아난아, 세상 사람들이 눈병이 생겨 눈이 붉어지면
   밤에 등불을 볼 적에 또 다른 둥근 그림자가 생겨서
   다섯 가지 색깔이 중첩으로 나타나 보이느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밤에 등불을 밝힘에 따라 나타나는 둥근 그림자는
   이것이 등불의 빛이냐, 아니면 보는 사람의 빛이냐?

   아난아, 이것이 만약 등불의 빛이라면
   눈병이 없는 사람은 어째서 그와 같은 현상을 보지 못하고,
   그 둥근 그림자는 오직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느냐?
   만약 그것이 보는 주체의 빛이라면 보는 주체는 이미 빛을 이루었으니
   저 눈병 걸린 사람만이 둥근 그림자를 보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하겠느냐?

   또 아난아, 만약 이 둥근 그림자가 등불을 여의고서 따로 있다면
   마땅히 곁에 있는 병풍과 휘장과 의자와 자리를 볼 적에도
   둥근 그림자가 생겨야 하며,
   보는 주체를 떠나서 또 따로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눈병 걸린 사람에게만 둥근 그림자가 보이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빛깔은 사실 등불에 있는 것인데,
   보는 주체가 병으로 인하여 둥근 그림자가 생긴 것이니라.

   그림자와 보는 주체가 모두 눈병으로 생긴 것이지만
   눈병을 보는 것은 병들지 아니했느니라.
   그러니 이것은 '등불의 탓이다, 보는 주체의 탓이다'라고 할 것이 못 되며,
   또 그 가운데에서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주체의 탓이 아니다'라고도 할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제2의 달'은 본체도 아니요, 그림자도 아닌 것과 같다.

   왜냐하면 '제2의 달'을 보는 것은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는 눈을 비벼서 생긴 것을 가리켜
   '달의 형체다, 달의 형체가 아니다'라고 한다거나,
   '보는 주체이니, 보는 주체가 아니니'하는 등의 말을 하지 않느니라.

   이것도 그와 같아서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지금 무엇을 이름하여
   '등불의 탓이다, 보는 주체의 탓이다'라고 하려느냐?
   더구나 '등불의 탓이 아니다, 보는 주체의 탓이다'라고 분별하는 것이겠느냐?

   어떤 것을 '같은 분수에 의하여 허망하게 보는 것'이라고 하느냐 하면,
   아난아, 이 염부제에서 큰 바닷물을 제외하고 그 중간에 삼천 개의 섬이 있으니
   그 한복판에 있는 큰 섬을 동쪽과 서쪽으로 헤아려 보면
   큰 나라가 이천삼백 개가 있고, 그 나머지 작은 섬이 바다 가운데 있는데
   그 가운데에 혹은 삼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고
   혹은 이백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며,
   혹은 한두 나라에서 삼십, 사십, 오십 개의 나라가 있기도 하느니라.

   아난아, 그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에 두 나라가 있으니
   오직 한 나라 사람만이 악한 인연을 함께 만나게 되어
   그 작은 섬에 사는 중생들은 상서롭지 못한 모든 세계를 보는데 있어
   더러는 두 개의 해를 보기도 하고 혹은 두 개의 달을 보기도 하며,
   그 가운데 달무리나 해무리. 해의 귀걸이. 혜성. 패성. 흐르는 별똥.
   부이. 무지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나쁜 모양을
   오직 이 나라 사람들만 볼 뿐, 저쪽 나라 중생들은 본래 보지도 못하고
   또한 듣지도 못하느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를 위하여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앞뒤로 맞춰가면서 밝혀 주리라.

   아난아, 저 중생들이 따로 지은 업장의 허망하게 보는 것 때문에
   등불 주위에 둥근 그림자가 비록 대상의 물체처럼 나타나지만
   마침내 보는 이의 눈병으로 생긴 것이니,
   눈병은 곧 보는 주체의 피로 때문에 생긴 것이지
   물질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눈병을 보는 것도 마침내 보는 주체의 허물은 없느니라.

   예컨대 네가 지금 눈으로 산과 강, 그리고 국토와 여러 중생들을 보는 것이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주체가 병듦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은 마치 눈앞의 경계로 나타나지만
   본래는 나의 깨닫는 것이 대상인 물체를 보다가 생긴 병이다.
   그러니 깨닫는 것과 보는 주체가 병든 것이지
   본래부터 있어온 깨달음의 밝은 마음으로
   대상인 물체를 깨닫는 것은 병들지 않았느니라.

   분별할 대상을 분별하는 것은 눈병이고,
   분별하는 본체는 눈병 속에서 생긴 것이 아니니라.
   이는 사실 보는 주체를 보는 것인데
   어찌하여 또다시 '깨닫는다, 듣는다, 안다, 본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나와 너와 그리고 모든 세간과 열 가지 중생을 보는데
   그것은 모두 보는 주체가 눈병을 앓고 있는 것이지 눈병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저 보는 주체의 정밀하고 참된 성품은 병들지 않았기 때문이니
   보는 주체라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아난아, 저 중생의 같은 분수로서 허망하게 보는 것과 따로 지은 업장으로써
   허망하게 보는 한 사람을 예를 들어 말하면,
   눈병이 생긴 한 사람은 한 나라와 같고
   그가 보는 둥근 그림자는 눈병으로 생긴 것과 같아서,  
   상서롭지 못하게 보는 것은 같은 업장 가운데 장악으로 생긴 것이니
   모두가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보는 것의 허망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다.

   염부제 삼천 개의 섬과 사방의 큰 바다와 사바세계와
   그리고 시방의 번뇌가 있는 모든 나라들과 모든 중생들을 예로 들면
   이 모두가 알고 분별하는 번뇌가 끊어진
   오묘한 마음이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허망한 인연과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서 허망하게 나고 죽느니라.

   만약 화합하는 것과 화합하지 않는 모든 인연을 멀리 여의면
   곧 나고 죽는 여러 가지 원인을 없앨 수 있어서
   나고 죽지 아니하는 보리의 성품을 원만하게 이루어
   깨끗한 본래 마음의 본각에 늘 머무르게 되리라.

   아난아, 네가 비록 본각의 오묘하고 밝은 성품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러한 깨달음의 근원은 서로 어울려 조화되어 생긴 것도 아니며
   서로 어울려 조화되니 않는 것으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지 못하는구나.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나타나는 경계로써 너에게 묻겠는데,
   너는 지금 오히려 모든 세간의 허망한 생각으로,
   화합하는 인연의 성품을 스스로 의혹하여
   보리를 증득하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다고 여기는구나.

   너의 지금 오묘하고 깨끗하게 보는 주체의 정기는
   밝은 것과 화합된 것이냐, 어두운 것과 화합된 것이냐,
   통한 것과 화합된 것이냐, 막힌 것과 화합된 것이냐?

   만약 밝은 것과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적에는 마땅히 밝은 것이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곳에 보는 주체가 섞여 있느냐?
   보이는 대상과 물질은 분별할 수 있지만 섞인 것은 어떠한 형상이냐?

   만약 보는 주체가 아니라면 어떻게 밝은 것을 보며,
   만약 보는 주체라면 어떻게 보는 주체를 본다고 하겠느냐?

   반드시 보는 주체가 원만하다면 어느 곳에서 밝은 것과 화합할 것이며,
   만약 밝은 것이 원만하다면 보는 주체가 화합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보는 주체는 반드시 밝은 것과는 다르므로 섞였다면,
   저 성품이 밝다는 명분을 잃으리니
   섞임으로 해서 밝은 성품을 잃어버린 것이라서
   밝음과 화합을 이루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하는 것과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이와 같느니라.

   또 아난아, 너의 오묘하고 깨끗한 보는 주체의 정기는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냐, 어두운 것과 합해진 것이냐,
   통한 것과 합해진 것이냐, 막힌 것과 합해진 것이냐?

   만약 밝음과 합해진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밝은 모양이 이미 없어졌을 것이니,
   저 보는 주체가 어두움과는 합하지 못할 터인데
   어떻게 어두움을 본다고 하겠느냐?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였다면
   밝음과 합했을 적에도 밝음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밝음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것이며
   밝은 것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오묘한 깨달음의 근본은
   상대되는 모든 물질과
   그리고 마음과 생각이 더불어 화합한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또 말하기를 깨달음은 화합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다시 네게 묻겠다.
   이 오묘한 보는 주체의 정기가 화합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화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화합한 것이라면
   보는 주체와 밝은 것이 반드시 경계선이 있어야 하리니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밝은 것이며 어디까지가 보는 주체이냐?
   보는 주체와 밝은 것 사이에 어떤 것이 경계가 되느냐?

   아난아, 만일 밝은 것 중에 반드시 보는 주체가 없다면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스스로 밝은 모양이 있는 데를 알지 못할 것인데
   경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또 오묘한 보는 주체의 정기가 합한 것이 아니라면
   밝은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어두운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한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힌 것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만약 밝은 것과 합해진 것이 아니라면
   곧 보는 주체와 밝음의 성격이 서로 어긋남이
   마치 귀와 눈이 서로 접촉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보아도 밝은 모양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할 것인데
   어떻게 합하는 것과 합하지 않는 것의 이치를 밝게 분별하겠느냐?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오음. 육입. 십이처. 십팔계가 모두 여래장이다.

아난아, 너는 아직도 모든 허망한 물질인 허깨비같이 변화하는 모양이,
   장소를 따라 생기며 장소를 따라 없어짐을 알지 못하는구나.
   허깨비같이 허망한 것을 물질이라고 하지만
   그 성품은 참으로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본체이다.

   이와 같이 오음. 유입. 십이처. 십팔계도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며,
   인연이 흩어져서 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본래 여래장이어서 항상 머루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은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며
   두루 원만하고 오묘하고 참답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성품의 참되고 항상한 가운데에서는
   가고 옴과 미혹되고 깨달음과 나고 죽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느니라.

 

오음이 본래 진여

아난아, 어찌하여 오음이 본래 여래장인 오묘한 진여의 성품이라고 하느냐?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깨끗한 눈으로 맑게 개인 하늘을 볼 적엔
   오직 맑은 하늘만 보일 뿐, 멀리 아무것도 없거늘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서
   오래도록 똑바로 보다가 피로해지면 곧 허공에서 또 다른 헛꽃이 보이며
   또다시 몹시 어지러워 아무 모양도 없는 듯하니
   색음도 그러한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 헛보이는 꽃은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눈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생긴 것이라면
   이미 허공에서 생겼으니 다시 허공으로 들어가야 할 것인데,
   가령 나오고 들어감이 있다면 그것은 곧 허공이 아니며,
   허공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 그 꽃 모양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리니
   마치 아난의 몸에 다른 아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만약 눈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미 눈을 좇아 나왔으므로 다시 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니
   이 헛꽃의 성품이 눈으로부터 나왔으므로 마땅히 보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인데,
   만약 보는 주체가 있다면
   나갈 적에 이미 허공에 꽃이 있으므로
   돌아올 적에는 마당히 눈을 보아야 할 것이며,
   만약 보는 주체가 없다면
   나갈 때에 이미 허공을 가렸으므로
   돌아올 적에도 마땅히 눈을 가려야 할 것이다.
   또 헛꽃을 볼 적에 눈에는 마땅히 가리는 것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맑은 허공을 볼 적에만 깨끗하고 밝은 눈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색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손발이 편안하고 모든 뼈마디가 적절히 조화되었을 때는
   홀연히 살아 있음을 잊은 듯하여 성품이 어긋나거나 순함이 없다가
   그 사람이 까닭 없이 두 손바닥을 허공에서 서로 비비면
   두 손바닥에서 허망하게 껄끄럽거나 미끄럽거나 차거나 뜨거운
   여러 가지 현상이 생기는 것과 같으니,
   수음도 역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아난아, 이 여러 가지 허깨비같이 허망한 접촉은
   허공에서 온 것도 아니며 손바닥에서 나온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에서 왔다면 이미 손바닥과 접촉하였는데
   어찌 몸에는 접촉하지 않느냐?
   마땅히 허공이 이를 선택하여 와서 접촉하지는 않은 것이다.
   만약 손바닥으로부터 나왔다면
   손바닥이 합해야만 비로서 나타나는 그런 현상은 없어야만 할 것이다.

   또 손바닥에서 나왔으므로 합할 적에 손바닥이 느낀다면
   뗄 적에는 접촉이 들어가서
   팔과 손목과 골수들이 마땅히 들어갈 때 어떤 느낌이 있어야 할 것이니라.
   반드시 느끼는 마음이 있어서 들어가고 나감을 안다면
   자연 한 물건이 몸 가운데 오갈것인데
   어찌 손바닥과 합해져야만 느끼는 것을 접촉이라고 하느냐?

   그러므로 수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신 매화 열미를 말하면 입 안에서 침이 생기고,
   까마득한 벼랑에 있는 것을 상상하면 발바닥이 저려오는 듯하니,
   상음(想陰)도 역시 이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라.

   아난아, 이러한 매실 이야기는 매실에서 생긴 것도 아니며
   입을 좇아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매실에서 생긴 것이라면
   매실이 마땅히 스스로 말을 해야 할 것이거늘
   어찌 사람이 말하기를 기다리며,
   만약 입을 좇아 들어갔다면 마땅히 입으로 들어야 하리니
   어찌 귀를 통해서만 듣느냐?
   만약 유독 귀만이 듣는다면, 침은 어째서 귓속에서 나오지 않느냐?

   높은 언덕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매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느니라.

   그러므로 상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급히 흐르는 물결이
   서로 연속되어 앞과 뒤가 차례를 뛰어넘지 않는 것과 같으니
   행음도 역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흐르는 성품이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며,
   물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물의 성품도 아니며,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하다. 아난아, 만약 허공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라면
   곧 시방의 끝없는 흐름이 생겨서 세계가 자연히 모두 물에 잠겨야 할 것이며,
   만약 물로 인해 있는 것이라면
   이 급히 흐르는 물의 성품은 마땅히 물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능유(能有, 물)와 소유(所有, 급히 흐름)의 모양이
   지금 당연히 앞에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만약 곧 물의 성품이라면 맑을 때에는 마땅히 물의 본체가 아닐 것이며,
   만약 허공과 물을 떠나서 있는 것이라면 허공은 밖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물 밖에는 흐름이 없어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행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빈가병의 두 구멍을 막고
   가운데는 허공을 가득히 채워 가지고
   천 리나 되는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용하는 것과 같으니,
   식음(識陰)도 역시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 이러한 허공은 저쪽에서 온 것도 아니며
   이쪽에서 들어간 것도 아니니라.

   그러하니라. 아난아,
   만약 저쪽에서 온 것이라면
   본래 병 가운데에 이미 허공을 담아 가지고 갔으므로
   본래의 병이 있던 곳에는 마땅히 허공이 조금 줄었어야 할 것이며,
   만약 이곳으로 들어갔다면 구멍을 열고 병을 기울일 적에는
   마땅히 허공이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식음은 허망한 것이어서 본래 인연도 아니며 자연도 아닌
   성품이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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