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주해19

通達無我法者 2007. 8. 21. 10:03

감변〈36〉

≪주해≫

* 1) 용아(龍牙) : 호남(湖南)의 용아산묘제선원(龍牙山妙濟禪院)에 주석한 거둔(居遁 835~923). 동산양개(洞山良介)를 사법(嗣法)한 사람. 증공(證空) 선사라 칭한다.《조당집》8,《송고승전》13,《전등록》17에 그의 전기가 전해진다.

* 2) 여아과선판래(我過禪版來) :「나에게 선판을 갖다주게.」래(來)는 명령의 뜻. 선판은 좌선하다가 피로해졌을 때 몸을 기대어 쉬는 도구(道具).

* 3) 접득(接得) : 받아 가지다.

* 4) 타즉임타(打卽任打) 운운 : 치는 것은 자유이지만 결국 조사의 뜻은 없다는 뜻. 요차(要且)는「결국」,「요컨대」의 뜻이다. 조사의 뜻은 이 이야기의 중심문제이긴 하지만 상대방의 행동과 조사의 뜻은 상관이 없다는 것.

* 5) 취미(翠微) : 장안(長安)의 종남산취미(終南山翠微)에 주석한 무학(無學). 단하천연을 사법(嗣法)한 사람. 광조 대사(廣照大師)라고 칭한다.《조당집》5,《전등록》14에 그의 장(章)이 있으나 상세한 전기는 불명(不明).

* 6) 포단(蒲團) : 좌선을 하기 위한 방석.

* 7) 주원(住院) : 왕공(王公)이나 신자의 초청에 의해 특정한 사원에 주석하는 것.

* 8) 입실청익(入室請益) : 참선수행상의 개인지도를 받는다는 것.《전등록》6의 선문규식(禪門規式)에서는 입실청익을 선문의 본무(本務)라고 한다.

* 9) 인연(因緣) : 이야기. 선가의 이야기는 대개 고인(古人)의 개오(開悟) 사실과 관계되는 것으로서, 그것은 제자의 내인(內因)과 스승의 외연(外緣)이 계합(契合)함으로써 연출되는 해탈(解脫) 지향적인 대화상황(對話狀況)이다.

* 용아는 동산양개의 법을 이은 사람이다. 조동(曹同)의 정계(正系)는 아니지만 항상 동산의 영향을 받고 있다. 취미(翠微)도 또한 석두(石頭)계의 사람으로서 동산, 용아와 법계를 같이한다. 이 일단은 법계가 다른 임제의 가풍이 다른 가풍에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읽게 하는 감변이다. 조사께서 오신 뜻은 임제, 조동이라는 가풍 이전의 것이라는 것이다. 선판과 포단을 갖다달라는 즉물적(卽物的)인 행동과 물리적인 방(棒)의 활동에서 조사의 뜻의 유(有無)를 찾는 것은 비평의 문제일 뿐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임제 자신도「어떤 것이 조사께서 오신 뜻」이냐는 질문에「만약 뜻이 있었다면 스스로도 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14-34〉참조.


〈37〉

≪주해≫

* 1) 경산(徑山) : 절강성(浙江省) 항주부(杭州府)에 있다. 중당(中唐) 무렵 우두종(牛頭宗) 계통의 대각선사 도흠(大覺禪師 道欽 715~793)이 개창하였으며, 송대(宋代)에는 능인(能仁) 흥성만수선사(興聖萬壽禪寺)라고 칭하는 오산(五山)의 하나였다. 대혜(大慧), 허당(虛堂), 불감(佛鑑) 등이 주석하였으며 임제선 발전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황벽, 임제 당시에는 누가 주석하고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 2) 참청(參請) : 참선(參禪). 아침저녁으로 조실 스님께 법문을 청함.

〈36〉참조. 청익(請益)과 같다.

* 3) 장요상법당(裝腰上法堂) : 여장(旅裝)을 풀지 않은 채 그대로 법당에 들어감. 법당은 조실이 설법하는 선원의 중심 건물. 선문규식(禪門規式)에는, 「불전(佛殿)을 세우지 않고 법당만을 두는 것은 불조(佛祖)의 전등(傳燈)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 4) 불수편행(拂袖便行) : 소매를 뿌리치고 갑자기 나가 버림.

* 5) 유마언구(有言句) 운운 : 스님께서 무어라고 하셨기에 그 스님이 할을 했습니까?

* 6) 회리(會裡) : 문하(門下), 회하(會下). 행록〈39-1〉을 보라.

* 7) 이요지마(儞要知麽) 운운 :「그 사람의 정체를 알려거든 스스로 알아 보아라」라는 의미. 문취(問取)는 묻는 것. 취(取)는 조사.

* 이 일단(一段)은 마조계(馬祖系)의 우두선(牛頭禪) 비판이다. 당시 경산은 우두선의 근본도량이었다.


〈38〉

≪주해≫

* 1) 직철(直裰) : 승의(僧衣). 윗옷〔上衣〕과 아래옷〔袴〕을 직접 이어서 만든 것.

* 2) 보화구불요(普化俱不要) : 모두 주어도 필요치 않다고 받지 않음.

* 3) 득개직철료야(做得箇直裰了也) : 법복을 만들어 놓았음. ()는 작(作)의 속자(俗字).

* 4) 천화(遷化) : 죽음. 다른 차원의 공간, 다른 세계로 옮겨서 화(化)함.

* 5) 아금일미(我今日未) : 오늘은 죽지 않겠다는 뜻.《전등록》에는,「오늘은 장사(葬事)에 좋지 않은 날〔今日葬不合靑鳥〕」이라고 되어 있다.

* 6) 전신탈거(全身脫去) : 온몸 그대로, 그림자도 형태도 없이 떠나가 버림. 행록(行錄)〈46-2〉에는 앙산의 예언으로,「보화 이 사람은 머리는 있으나 꼬리는 없고 ,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 7) 은은(隱隱) :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느끼는 것. 본래는 시어(詩語)이다.

* 만약《임제록》에 광승(狂僧) 보화가 등장하지 않았다면《임제록》의 매력은 반으로 줄어든다. 임제는 인간의 개념적 인식과 전통의 철학적 권위를 두들겨 부수는 고함소라와 몽둥이질 속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이었지만 보화에게는 그런 그림자조차 없다. 보화는 임제가 등장시킨 자유인(自由人)의 전형이다. 보화 쪽에서 보면 임제는, 「겨우 한쪽 눈을 갖춘 마굿간지기 소년」일 뿐이다.

  보화 입멸의 장면은 그대로 한 편의 시(詩)이며 드라마이다. 관을 짊어지고 거리를 누비며 자신의 입적을 예고한 다음, 모여드는 사람들에게「오늘은 죽기에 좋지 않은 날」이라고 한다. 이러기를 사흘, 실망한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자 보화는 마침내 전신(全身)의 해탈을 강행한다. 항상 해학적인 그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일종의 팬클럽(fan club)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그의 자살 예고를 믿지 않고 그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만든 다음 그는 구경거리에 실망한 인간의 마음을 비웃으면서 떠나가는 것이다. 보화의 관(棺)을 사준 임제는 미리 보화의 연극을 알고 있었다. 사전(事前)의 묵계였다. 비일상적 세계에 사는, 자유정신(自由精神)을 가진 사람은 하나의 교단이 성립될 때 필요하지 않다. 교단의 성립에 있어 그러한 인간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가 입적했다는 소식이 거리에 퍼지자 사람들은 그의 관 주변에 몰려든다. 사람들이 우왕좌왕 놀라고 있을 때 보화는 지상(地上)의 그림자를 거두어 은은한 방울소리를 허공에 남기면서 심법(心法)의 세계로 돌아간다. 임제의 견처대로「생사거주 탈착자유(生死去住脫著自由)」를 실현해 보이는 것이다. 보화와 헤어지고 난 뒤 임제는 그림자 없는 고목과 같은 선객(禪客)이었을 것이다. 지상의 시궁창 냄새가 말끔히 풍화(風化)되어 버린 빈 관과, 푸른 허공 속에 은은히 울리면서 멀어져 가는 방울소리, 그리고 전신(全身)의 해탈, 이런 것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禪)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꿈이다. 지금《임제록》의 독자는 보화와 같은 한 사람의 분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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