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상당8/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8. 29. 14:17
상당  8


4-1 할, 할, 할

上堂 有僧出禮拜어늘 師便喝한대 僧云, 老和尙 莫探頭好로다 師云, 儞道하라 落在什麽處 僧便喝하니라 又有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便喝한대 僧禮拜어늘 師云, 儞道하라 好喝也無 僧云, 草賊大敗로다 師云, 過在什麽處 僧云, 再犯不容이로다 師便喝하니라

임제스님이 법상에 오르니 한 스님이 나와서 절을 하였다.

임제스님이 곧 바로 “할”을 하였다.

그 스님이 말했다.

“노화상께서는 사람을 떠보지 마십시오.”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말해 보아라. “할”의 의도가 무엇인가?”

그 스님이 곧바로 “할”을 했다.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

임제스님이 문득 “할”을 하니, 그 스님은 예배를 하였다.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한번 말해봐. 이 할이 훌륭한 할인가.”

그 스님이 말했다.

“초야의 도적[草賊]이 크게 패했습니다”

임제스님이 말씀하셨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 스님이 말했다.

“두 번 잘못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임제스님이 곧 바로 “할”을 했다. .


강의 ; 임제스님은 역시 할이다.

예배를 드려도 할이요.

불교를 물어도 할이다.

나에게서 불교[無位眞人]외에 다른 것은 찾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가 만나 불법 외에 주고받을 일이 무엇이 또 있겠는가.

호사가들은 할에도 사람을 떠보는 할과 법을 바로 보이는 할과 상대를 제압하는 할 등등을 말한다.

여기 이 스님도 할의 진정한 뜻을 모르므로 “노화상께서는 사람을 떠보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래서 임제스님은 “그렇다면 할의 낙처가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보라.”고 하셨다.

그가 곧 바로 “할”로 답한 것은 잘한 일이다.

곧 이어서 또 한 스님이 나와 불교의 대의를 물었다.

임제스님은 또 “할”로 답하셨다.

그 스님은 “할”에 대한 대응을 예배로 했는데, 임제스님은 “이 할이 훌륭한 할인가.”하니까 이 스님은 임제스님을 초야의 도적으로 몰아놓고 초야의 도적이 크게 패하였다고 하였다.

임제스님의 “이 할이 훌륭한 할인가.”라는 말은 잘못되었다는 지적이다.

그랬더니 임제스님은 그의 뜻을 받아드려서 “내가 무엇을 잘못 했는가”라고 하였다.

그는 선문답에서 말이 딸릴 때 잘 쓰는 “두 번 잘못은 용서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고,

임제스님은 역시 “할”로써 마무리를 지었다.

“할”도 실은 부득이해서 하는 일이다.

그러나 도(道)를 표현하고, 법(法)을 표현하고, 불교를 표현하고,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가장 간단명료한 방법이다.

불교는 이렇게 간단명료하다.

먼지 하나 붙지 않은 자리다.

이 “할”에 무슨 이론이나 수행이나 깨달음이 붙을 수 있겠는가.

본래로 불교공부란 문자와 이론을 내세우지 않는다.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수행하고 증득하고 깨닫고 하는 것과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써 으뜸을 삼고 최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