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2
10-2 생사에 젖지 않는다 師乃云, 今時學佛法者는 且要求眞正見解니 若得眞正見解하면 生死不染하야 去住自由하야 不要求殊勝이나 殊勝自至니라 임제스님이 이어서 말씀하셨다. “요즘 불교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참되고 바른 견해[眞正見解]를 구하는 일이다. 만약 참되고 바른 견해만 얻는다면 나고 죽음에 물들지 않고 가고 머무름에 자유로워 수승함을 구하지 않아도 수승함이 저절로 온다.” 강의 ; 참되고 바른 견해는 임제스님이 자주 강조하는 말씀이다. 간절하게 가슴깊이 새겨주고 싶은 법문에 들어서면서 하신 첫 말씀이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살림에는 눈이 보배고 불교공부에는 바른 소견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불교를 공부하는 목적은 그동안 없었던 그 무엇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다. 부처와 조사를 강조하지만 참되고 바른 견해만 있으면 이미 우리들 자신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생사에 물들지 않고 영원히 해탈한 경지에서 대 자유를 누리는 일도 역시 우리들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참되고 바른 안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가장 훌륭한 삶, 최상의 인생,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인생이란 것도 달리 구하지 않아도 바르고 참된 견해만 갖추어지면 그 모든 것이 저절로 돌아온다. 道流야 祇如自古先德은 皆有出人底路니라 如山僧指示人處는 祇要儞不受人惑이니 要用便用하야 更莫遲疑하라 如今學者不得은 病在甚處오 病在不自信處니 儞若自信不及하면 卽便忙忙地하야 徇一切境轉하야 被他萬境回換하야 不得自由니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예부터 선지식들은 모두가 그들만의 특별한 교화의 방법[路]이 있었다. 예컨대 산승(山僧)이 사람들에게 지시하고 가르치는 것은 다만 그대들이 다른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는 것이다. 작용하게 되면 곧 작용할 뿐이다.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의심하지 말라.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그 병이 어디에 있는가? 병은 스스로를 믿지 않는 데 있다. 그대들이 만약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곧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일체 경계에 끌려 다닌다. 수만 가지 경계에 자신을 빼앗겨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강의 ; 선지식들마다 그들 나름대로 사람들을 교화하고 가르치는 독특한 가풍(家風)이 있다. 화엄경에서 선재동자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53 선지식들을 다 친견해 봐도 역시 모두 다르다. 일개 사찰을 운영하는 방식도, 한 집안을 이끌어 가는 방식도 모두가 다르다. 임제스님은 불수인혹(不受人惑)이라는 유명한 말씀으로 자신만의 특별한 교화방법을 삼았다. 즉, 다른 사람이 자신을 미혹하게 하고 헷갈리게 하는 일들을 받아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또 어떤 경계에도 속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훌륭한 법에도 속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작용하고 있는 것을 작용하게 되면 곧 작용할 뿐[要用便用]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할” 풀어서 자세히 설명하자면, 보게 되면 보고 듣게 되면 들어라. 손을 움직여 보고 걸음을 걸어 보라. 견문각지(見聞覺知)하고 시위동작(施爲動作)하는 사실 외에 달리 무엇이 있는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 외에 다른 것에는 미혹하거나 속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신통묘용이며 무량대복이다. 부처님 백 명을 한 곳에 모아놓은 일이다. 그 외에 어떤 불보살과 조사의 경계에도 끄달리지 말라. 자신이 작용하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의심하지 말라. 이것이 임제스님만이 사람들을 지시하고 가르치는 특별한 노하우다. 불교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또한 성불을 하기위해서 참선, 염불, 기도, 주력, 간경 등등을 하면서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무결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미 대 해탈인이요, 대 자유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가 없고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경전의 말씀과 어록의 말씀들과 그 외의 수많은 경계[수행방법]에 끌려 다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므로 부처님에게 속박 당하고, 조사들에게 속박 당하고, 일체 경계에 속박을 당하는 관계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끌려 다니는 노예나 다를 바 없다. 여기까지를 요약하면 진정견해(眞正見解), 불수인혹(不受人惑), 요용변용(要用便用)이다. 꼭 외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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