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일 없는 사람
儞若能歇得念念馳求心하면 便與祖佛不別이니라 儞欲得識祖佛麽아 祇儞面前聽法底是니 學人信不及하고 便向外馳求하며 設求得者라도 皆是文字勝相이요 終不得他活祖意니라 莫錯하라 諸禪德아 此時不遇하면 萬劫千生을 輪廻三界하야 徇好境掇去하야 驢牛肚裏生이로다
“그대들이 만약 능히 생각 생각에 찾아 헤매는 마음[馳求心]을 쉴 수 있다면 곧 할아버지인 부처님[祖佛]과 더불어 다름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할아버지인 부처님을 알고자 하는가?
다만 그대들이 내 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그 사람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철저하지 못하고 곧 자신 밖을 향해 내달리면서 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설사 밖에서 구하여 얻는다
하더라도 모두가 훌륭한 문자일 뿐이다.
마침내 살아있는 할아버지의 뜻은 얻지 못할 것이다.
착각하지 말라.
여러 선덕(禪德)들이여! 지금 이런 이치를 만나지 못하면 만겁천생을 삼계에 윤회하여 좋아하는 경계에 이끌려 다니느라 나귀나 소의 뱃속에 태어날 것이다.”
강의 ; 기억해야할 말이 또 나왔다.
헐득치구심(歇得馳求心)과 청법저인(聽法底人)이다.
보고 듣고 하는 자기 자신 외에 밖을 찾아 헤매는 마음만 쉬어 버리면 그대로가 할아버지 부처요,
그대로가 할아버지 스승[祖師]이다.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익숙한 말로 부처님이니 조사님이니 하는 사람들이란 무엇인가?
보고 듣고 할 줄 아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가.
자신 속에 무한한 생명과 한량없는 공덕과 신통묘용이 있어서 이렇게 보고 들을 줄 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밖을 향해 찾아 헤매지 않는 사람이다.
조사와 부처를 알고자 하는가?
내 면전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聽法底人].
부처가 되기 위해서 수행한다는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서 믿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 밖을 향해서 부단히 찾아 헤매고 있다.
실은 찾을수록 더욱 멀어진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해서 설사 밖에서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문자로 쓰인 아름답고 훌륭한 이름들뿐이다.
이를테면 석가모니·아미타불·미륵불·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관세음보살·지장보살 그리고 무슨 부처님,
무슨 보살님 천불(千佛) 만불(萬佛)등등 대단한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진정으로 살아서 피가 튀고 맥박이 뛰고, 웃고, 울고 할 줄 아는 그런 부처는 만나지 못한다.
임제스님이 특별히 여기에서 할아버지 부처님[祖佛]이라고 하는 이유는 경전상에서나 볼 수 있는 아득히 먼 부처님을 바로 곁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어릴 때 할아버지의 기억이 어떻든가?
바로 그렇게 우리들 마음에 쉽게 다가서는 그런 분이 부처님이다.
조사란 말도 이미 많이 멀어져 있다. 할아버지 스승님이라고 풀어서 불러야 쉽고 가깝게 가슴에 와 닿는다.
보고 듣고 하는 살아있는 사람 외에는 그 무엇도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에서 눈을 떼지 말라는 뜻이다.
이런 이치를 모르면 별의별 삶의 길로 흘러 다니게 된다.
하필 삼계윤회이겠는가.
그래서 나귀나 소가 되어 생각하는 것은 단지 욕심 채우는 일이다.
물과 풀, 그 외에는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으리라[但念水草 餘無所知].
사람으로서 사람의 자리에 있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사람의 모습을 한 체 축생의 삶이요,
아수라나 아귀나 곤충이나 미물의 삶이다. 법화경의 말이다.
道流야 約山僧見處인댄 與釋迦不別이라 今日多般用處가 欠少什麽오 六道神光이 未曾間歇이니 若能如是見得하면 祇是一生無事人이니라
도를 배우는 여러 벗들이여! 산승의 견해에 의지한다면 그대들도 석가와 더불어 다름이 없다.
오늘 여러 가지로 작용하는 곳에 모자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섯 갈레(眼․耳․鼻․舌․身․意)의 신령스런 빛이 잠시도 쉰 적이 없다.
만약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다만 한평생 일 없는 사람일 뿐이다[一生無事人].”
강의 ; 임제스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들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도 모두가 석가와 다르지 않다.
지금 이렇게 보고 듣고 하는 온갖 작용이 무엇이 부족한가?
석가보다 모자라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석가도 볼 줄 알고 그대들도 볼 줄 안다.
석가도 들을 주 알고 그대들도 들을 줄 안다.
석가도 피곤하면 자고 그대들도 피곤하면 잔다.
석가도 배고프면 먹을 줄 알고 그대들도 배고프면 먹을 줄 안다.
육근을 통해서 활발발하게 작용하는 이 무위진인은 한 순간도 쉰 적이 없다.
신통과 묘용이 어디 별것이랴.
육근을 통해서 보고 듣고 하는 이 작이다.
이 사실을 알면 단지 한평생 일없는 사람일 뿐 달리 부처다, 조사다. 라고 할 것이 없다. 인연을 따라 소일하면 된다. 구태여 애쓸 것이 없다[隨緣無作].
이것은 성불의 지름길이다.
불교의 지름길이다.
이것이 진짜 불교다.
순식간에 석가와 같지 아니한가.
이보다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간단한 길은 없다.
이보다 더 쉬운 불교가 어디 있는가?
임제록은 불교의 제1의 교재다.
임제록은 조계종의 제1의 소의경전이다.
불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지식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이렇게 가르칠 줄 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교를 꿰뚫어 보고, 사람을 꿰뚫어 보고, 부처와 조사를 꿰뚫어 본 임제만이 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꼭 외워야 할 말이 또 있다.
금일다반용처 흠소십마(今日多般用處 欠少什麽). 육도신광 미증간헐(六道神光 未曾間歇). 일생무사인(一生無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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