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밖에서 찾지 말라
大德아 三界無安이 猶如火宅이라 此不是儞久停住處니 無常殺鬼가 一刹那間에 不揀貴賤老少니라
“대덕아! 삼계가 불안한 것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다.
이곳은 그대들이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무상(無常)이라는 사람을 죽이는 귀신[殺鬼]이 한 찰나 사이에 귀한 사람, 천한 사람, 늙은이, 젊은이를 가리지 않는다.”
강의 ; 말씀이 좀 늘어지고 일반적이다.
소참법문답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매우 불안하여 마치 불타는 집에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은 법화경의 유명한 화택(火宅)의 비유를 인용한 것이다.
불교공부를 하게 되는 동기는 대개 세상과 인생에 대한 부정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세존이 늙고 병들고 죽은 모습을 보고 발심(發心)한 것이 그 모델이 된다.
세월이 빠르게 흐르고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세속적 부귀영화가 인생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게 한다.
빠르게 지나가는 인생무상은 그대로가 사람을 죽이는 귀신이다.
순식간에 죽음이 찾아온다.
누구도 어찌하지 못한다.
만금을 주고도 하루의 시간을 연장할 수가 없다.
특별한 사람만을 선택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과 빈부귀천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정말 공정하고 평등하다.
이런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긴다면 안이한 생각으로 세상을 살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인가 의미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발심(發心)이다.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불교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儞要與祖佛不別인댄 但莫外求어다 儞一念心上의 淸淨光은 是儞屋裏法身佛이며 儞一念心上의 無分別光은 是儞屋裏報身佛이요 儞一念心上의 無差別光은 是儞屋裏化身佛이니 此三種身은 是儞卽今目前聽法底人이라 祇爲不向外馳求하면 有此功用이니라
“그대들이 할아버지 부처님과 더불어 다르지 않고자 한다면 다만 밖으로 구하지 말라.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의 청정한 빛은 그대들 집안의 법신불(法身佛)이다.
그대들 한 생각 마음의 분별없는 빛은 그대들 집안의 보신불(報身佛)이다.
그대들 한 생각 마음의 차별 없는 빛은 그대 집안의 화신불(化身佛이다.
이 세 가지의 몸은 그대들이 지금 내 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다만 밖을 향해 헤매면서 찾지만 않으면 이런 공용(功用)이 있다.”
강의 ; 그대들 성불하고자 하는가? 별다른 공부가 없다.
다만 너 자신 밖에서만 찾지 말라.
너 자신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없다.
부처님에게는 세 가지의 몸이 있다고 경전에서는 설명을 하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그대들의 지금 이 순간 법문을 듣고 있는 그 사람이다.
그 외에 달리 법신이니 보신이니 화신이니 하는 것은 없다.
한 마음에서 이리 저리 나누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임제스님은 “한 마음 청정한 광명[작용]이 법신불,
한 마음 분별없는 광명[작용]이 보신불,
한 마음 차별 없이 평등한 광명[작용]이 화신불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나누어서 약간의 설명을 붙이자면,
청정한 광명이란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아서 허공과 같은 입장을 말한다.
적멸한 성품의 신령스런 광명이다.
분별없는 광명이란 하루 종일 수용하는 일이다.
보고 듣고 피곤하면 쉬고 배고프면 먹는 일,
추우면 옷을 더 입고 더우면 부채질을 하는 평상심의 작용이다.
차별 없는 광명이란 하루 중에 아무리 작용해도 끝이 없고 간단이 없고 차별이 없는 작용이다.
마치 하늘에 달이 떠 있으면 일 천강에 달빛이 모두 비치는 것과 같다.
또 “이 세 가지의 몸이라는 것도 그대들 지금 이 순간 내 앞에서 법문을 듣는 그 사람이다.
다만 밖을 향해서 쫓아다니며 구하지만 않는다면 법신, 보신, 화신불의 공덕 작용이 거기에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손이 필요하면 손을 쓰고 발이 필요하면 발을 쓴다.
이것이 법신, 보신, 화신의 공덕 작용이다. 무량공덕이다. 신통묘용이다. 무량대복이다.
이 능력을 천하를 준들 바꿀 수 있으랴.
황금으로 사람을 수미산 만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드라도 울고 웃을 줄 알까.
무슨 신통이 있겠는가.
과연 임제록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다.
인류역사상 최고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일개 나라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법신이니 보신이니 화신이니 하는 바싹 마른 언어들을 피가 돌고 맥박이 뛰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려 놓았다.
욕을 하며 화를 내고, 웃으며 즐거워하는 바로 그대 자신으로 바꿔놓았다.
바꿔놓은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바로 그대자신이었다.
보살, 나한, 조사, 도인이 모두 그대 자신이다.
그대 한 생각 일으켜 우주만유를 만들고, 그대 한 생각 잠재워 삼라만상을 없애버린다.
이보다 더 위대한 부처가 어디 있으랴.
이보다 더 뛰어난 신이 어디 있으랴.
그대는 모든 부처와 조사의 어머니며, 일체만유의 주인이며 창조자다.
다시 한번 기억할 말은, 조불불별 단막외구(祖佛不別 但莫外求).
즉금목전 청법저인(卽今目前 聽法底人).
據經論家하면 取三種身하야 爲極則이나 約山僧見處不然이니 此三種身은 是名言이며 亦是三種依니라 古人云, 身依義立이요 土據體論이라하니 法性身法性土는 明知是光影이니라
“경학을 공부하는 사람[經論家]에 의하면 이 세 가지 불신(佛身)을 취하여 궁극의 경지를 삼으나,
산승의 견해로는 그렇지 않다.
세 가지 불신이란 이름과 말이며 또한 세 가지 의지인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몸[佛身]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의하여 세운 것이고,
국토는 바탕에 의거하여 논한 것이다.
법성신 법성토는 이 빛의 그림자인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강의 ; 교리에서는 이 법신, 보신, 화신을 최고의 경지라고들 한다.
그러나 임제스님의 견해에서는 전혀 아니다.
앞의 단락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한 마음의 그림자다.
이 세 가지 몸이란 이름에 불과하다. 말에 불과하다.
그 이름에 의지하게 하는 일에 불과하다.
옛 사람도 말했다. “법신, 보신, 화신이란 의미에 따라서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삼신에는 각각 의지하는 국토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삼신의 본체인 마음에 의해서 논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성신(法性身)이니 법성토(法性土)니 하는 것은 모두가 마음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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