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청화큰스님] 불이일원론

通達無我法者 2007. 11. 23. 17:56

(청화 큰스님 2545년 2월 7일, 동안거 해제법문)

다만 공 같으면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공부하나마나 한 것이지요. 그러나 공의 알맹이, 공의 당체(當體)는 공이 아니라 진공(眞空)이라. 묘유(妙有)라. 진공묘유란 말입니다. 진공묘유란 것은 더 쉽게 말하면 그 자리가 바로 불성(佛性)자리입니다.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바로 불성자리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자성이라. 스스로 자(自)자 성품 성(性)자, 자성입니다.

저같은 사람은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 되어서 한가하니까 무료해서 심심풀이로 종교서적을 이것저것 보고 헤아려도 봅니다마는 육조단경(六祖壇經)에는 자성(自性)이라는 말이 몇 군데나 있는 것인가 한번 헤아려보니까 백(百)군데가 넘어요. 지성이란 말을 백번도 더 말했습니다. 얼마나 육조혜능慧能스님이 자성, 아까 말한바와 같이 불성을 역설하고자 하셨으면 조그만한 한 권 책속에 백번이상이나 말씀을 되풀이해서 하셨겠습니까.


왜 그렇게 했는가. 우리 중생들이 모두가 다 자성에 귀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자성(自性)은 바로 불성인데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우리 인간의 마음, 우리 인간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바로 자성이고 자성청정심입니다. 또한 우주의 본래 성품이 바로 자성입니다. 김씨 박씨 이씨나 모두가 다 자성차원에서는 하나란 말입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일체존재 모두가 다 본래성품이 자성이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성은 바로 불성(佛性)을 의미합니다. 또한 동시에 진여불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육조단경은 즉 말하자면 참선의 교과서(敎科書)같은 것입니다.

부처님이 그러하신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달마(達摩)스님을 거쳐서 육조혜능스님때에 와서 거의 완벽하게 다 체계화되었단 말입니다. 따라서 육조단경은 참선의 교과서 같은 것입니다. 그 책에서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자성이란 말이 백 군데가 넘는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중생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고 하면 자기의 본래면목을 몰라 가지고서 함부로 망동(妄動)하지 말고 본래의 자리 곧 자성자리로 귀향(歸鄕)해야 합니다. 염불(念佛)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염불은 부처를 생각한단 말입니다. 부처가 무엇인가. 부처가 바로 자기 자성입니다. 화두(話頭)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무엇을 의심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