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24 사념이 일어나기 전에 다스려라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7:07
24  사념이 일어나기 전에 다스려라  초당 선청(草堂善淸)스님 / 1057∼1142 
 

  1. 들판을 태우는 불도 반딧불만한 작은 불씨에서 발생하고, 산을 쓸어버리는 물도 졸졸 흐르는 물에서부터 샌다. 물이 적을 때는 한 움큼의 흙으로도 막을 수 있지만 크게 불어나면 나무와 돌을 쓸어내고 언덕을 덮어버리며, 불이 약할 땐 한 국자의 물로도 끌 수 있지만 활활 타오르게 되면 산과 마을까지 번지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저 물난리 같은 애욕이나 불길 같은 성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옛사람은 마음을 다스릴 때 감정과 사념이 일어나기 전에 막았다. 그러므로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두었다.
정념(情念)과 본성이 뒤섞여 애오(肯惡)의 감정이 서로 싸우는 데 이르면 자신의 삶을 망치고, 남의 인격까지도 망쳐 위태한 지경이 되니 그때가서는 어쩌지 못한다.

2. 주지하는 데는 별다른 묘수가 없다. 요컨대 대중의 마음을 살피고 상하를 두루 아는 데 있다. 인정(人情)을 살피면 안팎이 조화롭고 상하가 통하면 모든 일이 정리되니, 이것이 안정되게 주지하는 방법이다. 한편 대중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여 아랫사람의 마음이 위로 통하지 못하면 상하가 어긋나서 되는 일이 없으니 이것이 주지가 망하는 원인이다.
혹 주지가 총명한 자질은 지녔으되 편견을 고집하기 좋아하면 남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서 모든 사람의 의견을 버리고 자기의 권세만 지중히 여겨 공론(公論)을 폐지하고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게 된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선(善)으로 나아가는 길을 점점 막히게 하고, 대중을 책임지는 도를 더욱 약하게 하며, 자기가 아직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은 헐뜯고, 익숙하고 가리워진 데에 안주한다. 그러고서도 주지로서 크게 경영하고 멀리 전하려 한다면, 이는 뒷걸음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격으로 끝내 되지 못한다. 『여산당서(與山堂書)』

3. 납자라면 반드시 정당하게 처신하여 다른 사람들이 뒷공론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한번 구설수에 걸렸다 하면 죽을 때까지 뜻을 펴지 못한다. 
옛날 시자(侍者) 태양 평(太陽平)스님은 도학으로는 총림에서 추대받고 존중되었으나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식자들의 비난을 사, 드디어는 평생 곤란한 지경에 빠져 지내다가 죽을때 가서도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 납자에게 있어서일 뿐이랴. 어느 곳의 주지라면 더욱 행여하는 마음으로 조심해야 한다. 『여일서기서(與一書記書)』

4. 초당스님이 여(如)스님에게 말하였다.
회당선사(先師)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많은 대중 가운데서는 훌륭한 사람이나 어질지 못한 사람이나 줄지어 와서 교화의 문이 넓어진다. 그 사이에는 친소(親疏)가 용납되지 않으니 적잖이 인재를 엄격히 가려내야 한다. 
즉 재주와 덕이 인망(人望)에 부응하는 자라면 자기가 그에게 노(怒)할 일이 있다고 멀리해서는 안되며, 또 식견(識見)이 용렬하여 대중들에게 미움을 받는 자라도 자기가 그를 사랑한다고 친하게 해서도 안된다. 이렇게 하면 훌륭한 사람은 제대로 올라가고 못난 사람은 자연히 물러나 총림이 편안해진다.
주지하는 자가 사심 드러내기를 좋아하여 희노의 감정을 멋대로 하면서 남을 승진시키고 물러나게 할 경우, 현자는 입을 다물고 못난 사람이 다투어 승진하므로 기강이 문란해져 총림이 폐지된다.
이 두 가지야말로 주지의 대체(大體)이다. 실로 이를 살펴서 실천한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뻐하고 먼 데까지도 퍼진다. 그렇게 되면 도가 시행되지 않고 납자들이 흠모하며 찾아오지 않을까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소산석각(疎山石刻)』

5. 초당스님이 수좌(首座) 공(空)스님에게 말하였다.
"총림이 생긴 이래로 석두(石頭)·마조(馬祖)·설봉(雪峯)·운문(雲門)스님만큼 제대로 사람을 만난 경우는 없다. 근래에는 황룡(黃龍)·오조(五祖) 두 분 노덕만이 사방의 뛰어난 납자를 받아들여, 그릇과 도량의 정도나 타고난 재능의 가부를 따라 발탁해서 채용했을 뿐이다.
이를 비유하면 경쾌한 수레에 준마를 채우고 여섯 가닥 고삐 잡고 힘차게 채찍질하며 당겼다 놓았다 함이 눈짓하는 사이에 있는 것과도 같다. 이런 기세로라면 어딘들 못가겠는가." 『광록(廣錄)』

6. 주지하는 일은 별다른 것이 없다. 요는 편파적으로 듣고 자기 멋대로 하는 폐단을 조심하는 데 있으니, 먼저 받아들인 말에 신경쓰지 않는다면 소인이 아첨하면서 영합하려는 참소에 현혹되질 않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감정은 한결같지 못하고 지공(至公)한 의론은 드물기 때문에 모름지기 이로움과 병통을 보아서 가부를 살핀 뒤에 시행해야 하겠다. 『소산실록(疎山實錄)』

7. 초당스님이 산당스님에게 말하였다.
모든 일은 시비가 아직 밝혀지기 전에는 반드시 조심해야 하며, 시비가 밝혀지고 나면 이치로 해결하되 도가 있는 경우라면 의심치 말고 결단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간교한 사람이 현혹하지 못하고 어거지 변론으로 결단을 바꾸지도 못한다. 『청천기문(淸泉記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