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35 티끌 세속에서 불사를 짓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7:21
35  티끌 세속에서 불사를 짓다   밀암 함걸(密庵咸傑)스님 / 1118∼1186 
 

 1. 총림이 흥하고 쇠하는 것은 예법에 달려 있고, 납자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은 관습〔俗習〕에 달려 있다.
가령 옛사람들이 둥우리나 바위굴에 거처하면서 시냇물 마시고 나무열매 먹었던 생활을 이 시대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요즘 사람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과 맛있고 기름진 음식 먹는 것을 옛 시대로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무슨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익숙하고 익숙하지 못한 차이 때문일 뿐이다.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눈에 익은 것을 정상으로 여기며 반드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은 이렇게 되어야 마땅하다'라고.
그러니 하루아침에 그들을 다 잡아서 저것은 버리고 여기로 나아가라 한다면 의심을 내어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따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로써 관찰해 본다면 사람 마음은 익숙한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아직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깜짝 놀란다. 이는 인지상정인데 무얼 괴이하다 하겠는가. 『여시사간서(與施司¡書)』

2. 밀암스님이 수좌 오(悟)스님에게 말하였다.
"총림 가운데서 유독 절강인(浙江人)은 경솔하고 나약하여 도를 이룬 자가 적은데, 그대만은 재질이 크고 도량이 넓으며 지향하는 바가 바르고 확실하다. 더우기 안목마저 깊숙하니 그대의 앞날을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허명을 숨기고 바깥보다는 내실에 힘쓰며, 자취를 감추고 자기의 잘난 빛을 누그러뜨려 세속과 동화하는 가운데 언행이 모나게 해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기와를 구울 때 원형의 판을 네모로 잘라 내 사각기와를 만들고 떼어낸 네 곳을 합쳐 다시 원형을 만들듯 다 용납하는 태도여야 한다. 
중도를 지니고 세력과 이익엔 조금도 타협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구태여 티끌 같은 세상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불사(佛事)를 지으리라." 『여소암서(與笑庵書)』

3. 스승 응암(應庵)께서는 일찌기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한 사람과 못된 이는 서로 반대되므로 가리지 않으면 안된다. 훌륭한 사람은 도덕과 인의를 지니고 몸을 지키며, 어질지 못한 사람은 오로지 세력·이익과 속임수·아첨을 의지하여 일을 꾸민다.
훌륭한 사람이 목적을 이루면 반드시 그가 배웠던 것을 실천하지만, 어질지 못한 사람이 지위에 오르면 사심(私心)을 제멋대로 하며 덕있고 유능한 사람을 질투한다. 그리고는 욕심을 즐기고 재물에 구차하여 못할 짓 없이 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총림이 일어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채용하면 피폐하게 된다. 한 가지라도 여기에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조용하지 못하리라." 『견악화상서(見岳和尙書)』

4. 주지는 세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일이 번거로와도 두려워 말고, 일이 없다 해서 굳이 찾지도 말며, 시비분별을 말아야 한다.
주지하는 사람이 이 세 가지 일에 통달한다면 외물(外物)에 끄달리지 않으리라. 『혜시자기문(慧侍者記聞)』

5. 납자의 행실이 삿되고 바르지 못하여 평소에 착하지 못한 자취가 드러난 자는 총림에서 다 알고 있으므로 근심할 것이 못된다. 반면, 대중들이 그를 훌륭하다 말하나 실제는 안으로 어질지 못한 자가 진실로 걱정거리이다.

6. 밀암스님이 수암(水庵)스님에게 말하였다.
"나를 헐뜯고 욕하는 이가 있으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어찌 말만을 경솔하게 듣고 허망하게 좁은 소견을 내어서야 되겠는가.
대체로 민첩하게 아첨하는 데는 종류가 있고 삿되고 교묘함은 방법이 있다. 음험함을 품고 속이는 말을 하는 자는 사심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의심과 증오가 많은 자는 편파적으로 공론을 폐지한다. 이런 무리들은 추구하는 바가 좁고 소견은 어두워 고질적으로 자신의 특이함을 일반과 다르다 여기고, 공론을 막는 것을 뛰어나다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끝내 옳고 훼방은 상대방에 있으니 세월이 가면 저절로 밝혀지리라는 것을 알았으면 흑백을 구별하지 말라. 또한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다른 사람을 고자질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수행자에 가깝다 하리라." 『여수암서(與水庵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