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념처경(大念處經)

2-2. 몸의 동작에 대한 관찰

通達無我法者 2007. 12. 7. 10:22

2-2. 몸의 동작에 대한 관찰

 

다음에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가면 '나는 간다.'고 알아차리고 머물면 '나는 머문다.'고 알아차리고, 또한 앉으면 '나는 앉는다.'고 알아차리고, 누우면 '나는 눕는다.'고 알아차린다. 또한 이 몸이 어떤 상태에 놓였더라도 그와 같이 이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물며, 또한 밖으로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물며, 또한 안팎이 같이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혹은 몸에 대하여 생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몸에 대하여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몸에 대하여 생하고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문다.

또한 지식으로 안 것과 잊지 않고 기억되는 것을 대하면 이와 같이 '몸이 있다.'는 생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의지함이 없이 머물고 또한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해설
몸과 마음이 각각 달리 움직이면 몸의 움직임이 잘못되기 쉽고 마음대로 멋대로 움직이게 된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한 사람은 정신이 집중되지 않기 때문에 비틀거린다. 운동신경을 조절하는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떠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외부로부터 들어온 자극으로 인한 마음이 떠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외부로부터 들어온 자극으로 인한 마음이 중추신경을 자극하여 명령을 내려 몸을 움직이게 한다는 주장도 있고, 마음으로부터 외부의 자극이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하튼 몸이 먼저냐 마음이 먼저냐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마음이 몸의 움직임과 함께하지 않으면 그 움직임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몸의 움직임에 마음이 함께하는 수행을 쌓으면 드디어 몸과 마음이 함께하여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주체적인 행동이 이루어진다.

몸과 마음이 함께하면 몸과 마음이 둘이면서 하나가 된다. 이렇게 차별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면 몸의 움직임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삼매의 세계에 안주하게 할 수 있다. 또한 마음이 밖에 있는 다른 것으로 달려나가지 않고 몸의 움직임도 마음의 명령에 따르므로 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항상 순일한 행동과 순일한 심경을 유지할 수 있으니 이 세상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게 된다. 걸림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집착한다는 뜻으로 마음이 몸의 움직임을 떠났을 때에 생긴다. 몸과 마음의 조화, 움직임과 고요함의 조화야말로 우리를 생명의 근원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게 한다. 몸의 움직임 속에 고요히 함께하는 마음이 계속될 때 삼매가 이루어진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자연과도 하나가 되고, 생과 사도 하나가 되며, 일체가 나와 다르지 않게 된다. 여기에 이르면 일체의 고뇌가 사라지고 모든 행동이 법을 벗어나지 않는 정도(正道)를 얻으며 마음이 한결같이 고요해져 열반에 이르게 된다.

내가 갈 경우 '나는 간다.'고 알아차리면, 처음에는 '나'와 '간다'는 동작이 대립한다. 그러나 '간다'는 동작에 머물게 되면 둘은 대립하지 않고 하나가 된다. 그러면 오직 '간다'만 남게 되어 어떤 상념도 떠오르지 않으므로 가는 것이 힘들다거나 싫다는 생각이 없다. '나'라는 주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객관만 있다. '간다'는 객관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므로 가는 행위가 집착이 없는 청정한 상태에 있어 발걸음이 가볍고, 힘들다는 생각도 없다. 그러므로 고통이 없고 가야 할 곳까지 가서 자연스럽게 그친다. 즉 바른 도리를 얻은 것이다.

또한 '간다'는 생각까지도 없으니 가면서도 가는 것이 아니고, 가는 것이 아니면서도 가고 있는 것이다.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지식이나 잊혀지지 않는 기억 등 심리적인 현상이 떠오를 때에도, 그것에 마음을 두어 하나가 되면 지식이나 기억과 '나' 자신이 서로 대립하지 않으므로 집착하지 않게 되어 지식이나 기억만이 살아 움직인다. 이러한 지식이나 기억은 우리의 삶을 그르치지 않는다. 지식이나 기억아 나와 대립되어 있을 때만이 나를 괴롭게 하거나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몸의 움직임에 마음을 두어 관하는 이런 수행은 그 움직임을 부정하여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함이 아니다. 그대로 긍정 속에 부정이 있어서 부정과 긍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즉 절대 긍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