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대념처경(大念處經)

2-3. 모든 생활에 대한 관찰

通達無我法者 2007. 12. 7. 10:23

2-3. 모든 생활에 대한 관찰

 

다음에 또한 비구들이여, 비구는 가든지 오든지 올바른 지혜로써 행동한다. 굽히거나 펴거나 올바른 지혜로써 행동한다. 가사(袈裟)나 의발(衣鉢)을 취할 때에도 올바른 지혜로서 행하며,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에도 올바른 지혜로써 행한다.

이와 같이 혹은 안으로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밖으로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안과 밖으로 모두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혹은 몸에 대하여 생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는 몸에 대하여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또한 몸에 대하여 생하고 멸하는 법을 관찰하여 머문다.

또한 지식으로 안 것과 잊지 않고 기억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몸이 있다.'고 생각하여 머물면 의지함이 없이 머물러서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

비구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하여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해설
수행인은 길을 가든지 오든지, 앞을 모든지 뒤를 보든지, 몸을 굽히든지 펴든지, 옷을 입든지 벗든지, 음식을 먹든지 마시든지, 또는 대소변을 보든지 간에 올바른 법에 따라서 행해야 한다.

갈 때 가고, 볼 때 보고, 굽힐 때 굽히고, 펼 때 펴야 한다. 옷을 입고 벗는 데에도 절도가 있고, 음식을 먹을 때도 때와 장소를 정해 절도 있게 하며, 대소변을 볼 때에도 지혜롭게 행한다. 이와 같이 행(行)·주(住)·좌(坐)·와(臥)의 모든 행동을 지혜롭게 해야 하므로 그 행동 자체에 마음을 집중하여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행동이 인연에 따라 움직이고 법도에 맞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행동이란 인연법에 따라 행동 하나하나에 절도가 있는 그릇됨이 없는 행동이다. 마음과 함께하지 않는 행동은 제멋대로 움직여서 끝내는 후회를 가져오지만 마음과 함께하는 행동은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행동하되 도리를 벗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행동해도 마음과 함께하므로 무의식 속에 의식이 있다. 삼매를 떠나지 않은 의식적인 행동이 지혜로운 행동이다. 고요한 삼매를 떠나지 않고 사물을 관찰하여 그것과 함께하는 것이 관찰이다. 그러므로 지(止)에서 관(觀)으로 나아감으로써 사물을 올바르게 관찰할 수 있다. 

인연은 주어진 조건이다. 주어진 조건은 객관의 세계이다. 지혜는 주관이 객관을 떠나지 않고 그 객관을 살리는 것이다. 객관이 살아나면 주관도 살아난다. 주관이 항상 살아 있으면 그것이 바로 자재이다.

모든 행동에 마음이 따라 떠나지 않게 되려면 나와 행동 사이에 간격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내 마음과 행동이 밀착되어 일체가 되면 나는 곧 행동이요, 행동은 곧 내가 되므로 어떤 행동이 밀착되어 일체가 되면 나는 곧 행동이요, 행동은 곧 내가 되므로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나를 떠나지 않으니, 내 뜻대로 움직이면서도 도리에 맞게 지혜로워진다.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에도 올바른 지혜로써 하라.'는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먹는 데에 지나치게 애착을 갖거나 마시고 맛보는 데에 지나치게 욕심이 많으면, 그것은 먹고 마시고 맛보는 것이 아니다. 먹고 마시는 이유는 생명을 유지하고 삶을 보람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먹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다. 맛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은 맛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이상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쳐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된다. 지혜로움은 있는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것이므로 맛에 빠지거나 맛을 멀리하는 양 극단이 아니다.

음식을 먹을 때 씹으면서 '씹는다'고 생각하고 고소하면 '고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행동과 내가 하나가 되므로 마음의 혼란이 없어진다. 고소하거나 시고 단맛 등은 혀의 감수작용으로 인해 느껴지므로 인연에 의해서 감수되는 것을 주어진 인연 그대로 살리는 것이 지혜로움이다. 사물의 있는 그대로가 아닌 모습을 보고 마치 진실인양 생각하거나 그에 따라 행동하면 어리석은 것이다.

어리석음은 사물을 볼 때 마음이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지혜로움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용수(龍樹)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나가르주나Nagarjuna는 무명(無明)을 비여리작(非如理作)이라고 했다. 이치에 맞지 않게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뜻하니, 인연의 도리에 맞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어리석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