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조사선의 가풍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1:30

간명직절(簡明直截)

 

“분별없어 청정 평등한 마음”

 

‘3종 세간’의 삼라만상

중생마음 다르지 않아

 

제불의 도량은 동일한 해인삼매이고(十佛壇場一海印)

삼종세간은 모두 거기에 들어있다네(三種世間在焉)

가없는 성품바다 일미에 들어있는데(無盡性海合一味)

일미마저 쓸어버리는 것이 선이라네(一味相是我禪)

 

이 내용은 진정극문의 게송으로 알려져 있다. 진정극문(眞淨克文 1025~1102)은 임제종 황룡파 소속으로 속성은 정(鄭)씨이고 호는 운암(雲庵)이며, 그가 주석했던 곳의 지명을 따라 늑담극문(潭眞文) 및 보봉극문(寶峰克文)으로도 불리운다. 호북성 복주(復州)의 북탑사광(北塔思廣)의 설법을 듣고 그를 사사하여 극문(克文)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25세에 득도(得度)하여 처음에 교학을 익혔으나 후에 선법에 뜻을 두고 41세에 대위산에서 좌선수행을 하였다. 어느 승이 운문문언의 법어를 독송하는 소리를 듣고는 깨침을 얻었다.

 

어느 관리가 운문에게 물었다. “불법은 물 속에 비친 달 모습과 같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운문이 말했다. “맑은 물결속에는 비집고 들어갈 길이 없는 법이다.”

 

이에 적취(積翠)의 황룡혜남(黃龍慧南)에게 참하고 그 법을 이었다. 기봉(機鋒)이 뛰어나 문관서(文關西)라 불리웠다. 51세에 고안(高安)으로 가서 주석하였는데 그 곳의 태수 전공(錢公)의 청을 받아 동산선사(洞山禪寺)와 성수선사(聖壽禪寺)에 12년 동안 주석하였다. 후에 금릉에 나아가 서왕(舒王)의 귀의를 받아 보녕사(報寧寺)를 개산하였다. 그리고 진정대사(眞淨大師)라는 호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고안으로 돌아와 구봉(九峰) 아래에다 투로암(投老庵)을 짓고 그곳에 주석하였다. 그 6년 후에 여산의 귀종사(歸宗寺)에 주석하였으며 장상영(張商英)의 청을 받아 늑담(潭)에 주석하였다. 그리고는 운암(雲庵)으로 돌아가서 78세에 입적하였다. 〈운암진정선사어록〉 6권이 있다. 각범혜홍은 〈운암진정화상행장〉을 지었다.

 

여기에서는 당시에 교학을 대표하는 〈화엄경〉의 내용을 들어보이고 그것마저 일소해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 우리네 선문이라는 것은 강조하고 있다. 시방제불이 해인삼매에 들어보니 중생세간.지정각세간.기세간의 3종세간이 모두 그 속에 조금도 왜곡되지 않고 뚜렷이 드러나보인다. 그렇지만 3종세간의 다양한 삼라만상 및 온갖 중생의 갖가지 마음도 궁극적으로는 다름이 없다. 그것은 제불의 삼매속에서는 가없는 세상의 모습과 변화 및 일체중생의 숱한 업보조차 차별이 없다는 것이 마치 온갖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는 동일한 짠맛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 일미라는 것에조차 집착이 없고 분별이 없어 청정하고 평등한 마음을 추구하고 지니는 것이 진정 우리네 조사선의 가풍이라는 것이다. 언설을 통한 교학의 가르침은 곧 깨침을 향한 과정이고 수단이기 때문에 부득불 방편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지만 단적인 깨침을 터득하는 선의 입장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가 깨침이요 일상의 생활 그것이 곧 깨침의 작용이기 때문에 구태여 도량이다 삼매다 일미다 성품이다 하는 분별이 필요가 없다. 때문에 군더더기가 없다. 그것은 새가 허공을 날아가지만 허공에 흔적하나 남아있지 않고 물고기가 물 속을 헤엄쳐가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다. 흔적이란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고 따지며 헤아리는 것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그 자체를 그대로 인정해버리고나면 비교의 대상이 없어 흔적은커녕 그 그림자조차 남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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