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법의 교화방식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1:29

“제자가 깨달음 찾게 의표 찔러”

 

‘직지인심 방식’에 의거해

당사자 스스로 문제 해결

 

“모든 부처님은 활을 설법했고 모든 조사는 활줄을 설법했다. 활줄을 설했다는 것은 선문에서 정전해온 깊은 도리로서 언설을 초월해 있다는 것으로 곧바로 선종의 심체를 드러낸 것이 마치 활에 꿴 활줄과 같다고 가리킨 것이다. 이것을 교문에 배대하자면 일승은 곧은 길이고 삼승은 굽은 길로 곧바로 선종에서 심체를 언급하여 마음자리를 드러낸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일승의 교문에서 설법한 것은 사사무애의 법계가 원융한 것이다. 이 사사무애의 법계는 바야흐로 일미의 법계에 회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미법계의 흔적마저 없애버려야 비로소 조사들이 보여준 일심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교학은 곧지 못한 줄을 알 수가 있다.”

 

선문에는 수많은 선들이 있다. 수많은 선의 종류를 구분하는 데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가령 선의 종파를 그 기군으로 내세우면 임제선, 조동선, 법안선, 위앙선, 운문선, 우두선, 정중선 등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람을 기준으로 말하면 달마선, 혜능선, 대혜선 등을 말할 수 있다. 수행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하면 간화선, 묵조선, 위빠사나 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이들 몇 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는 스승이 제자를 제접하는 방식에 따라 나누는 방법이다. 그것이 곧 여래선, 조사선, 의리선, 격외선 등으로 불리우는 선의 종류이다.

 

위에서는 그 지도방식을 기준으로 삼아 삼세여래의 가르침의 방식은 활에다 비유하였고, 조사들의 가르침의 방식은 활에 꿴 활줄에다 비유하였다. 때문에 활이 훌륭하다 활줄이 훌륭하다는 비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설법을 하였고 어떤 기준에 의거하여 제자를 지도하였는가 하는 양상을 말한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은 석가여래가 49년 동안 숱한 세월 동안 다양한 근기를 지닌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여 여러가지 방식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자상하게 설법한 것으로부터 완곡하게 드러낸 설법이라는 의미에서 활에 비유한 것이다. 반면 선종의 조사들은 직지인심의 방식에 의거하여 곧바로 제자들의 의표를 찔러 직설적인 의미에서 활줄에 비유한 것이다.

 

이와 같은 설법하는 방식에 근거하여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이 가르침의 방식에 조차 집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조사선의 가르침이라는 입장에서 화엄교학의 일미법계를 예로들어 설명하였다. 곧 언설로 표현된 까닭에 언설이라는 그 자체마저도 초월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미법계라는 흔적마저 없애지 않으면 일심의 자취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내용을 언급하였다. 때문에 조사선법에서 제시하는 가르침의 방식은 그 성격으로 보자면 문자와 언설의 규격에 얽매이지 않는 격외선임을 말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설법의 형식과 문자와 언설을 통한 가르침의 성격은 의리선이라 하여 스승의 가르침이나 경전의 설법 등에 대하여 교학의 입장에서 선을 논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격외선은 교판이라든가 학설이라든가 하는 형식을 벗어나 있으며 고정된 소의경전이라든가 한 사람만의 가르침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세운 용어이다.

 

그것은 보리달마가 중국에 도래하기 이전에 이미 팔만사천 법문을 두루 열람하여 인도의 모든 불교종파의 사람들과 대로하여 굴복시켰다는 점과 중국에 도래하여 당시까지 번역된 경전을 두루 열람했다는 보리달마 자신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그러면서도 달마는 굳이 하나의 교학이나 경전이나 학설에 매이지 않고 부처님의 정법안정을 전승하려는 방식으로 후에 조사선이라 불리운 최상승선의 선법을 전파했다. 이것이야말로 선이 교학과 다름을 설명해준다. 그것은 이미 확고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던 교학불교의 틈새를 노려 선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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