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과 교의 차별 1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1:39

“수행시작과 깨침종착은 인과”

 

어설픈 깨침이 올바른 규범의 기틀이 되었고 잘못된 전승이 역대조사의 모범이 되었다. 그래서 혹 돈점의 문으로 정통 법맥을 삼았는가 하면 또 원돈의 가르침으로 종지를 삼기도 하였다. 이런 입장에서 성품 자체는 언설로 표현할 수 없고 본체의 모습은 본래부터 고요하지만 법계의 인을 닦음으로써 법계의 과를 증득하는 것이다.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과의 범위에서 보면 만약 종문에서 은밀하게 전승된 종지라 하더라도 본래 법계의 인도 없고 또 법계의 과도 없고, 또 지혜와 증득도 없고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도 없다. 본래 인이 없기 때문에 만행을 닦을 길도 없고 본래 과가 없기 때문에 과를 증득하는 방법도 없다.”

 

묻는다 : 만약 해인(海印)의 경우를 들어 말하면 그것이 곧 깨침 그 자체로서 인과 과를 벗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해인은 선문의 바른 종지인 심인과 어떻게 매치되는 것입니까.

 

답한다 : 해인과 심인은 언뜻 보기에 비슷하지만 정작 비슷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해인은 인과의 도리를 가지고 인과가 없는 도리에 귀착한 것이므로 인의 시작이라는 흔적이 있고 과의 끝이라는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적인 개념으로 논하자면 비록 인과가 없다지만 근본을 추구하면 인도 있고 과도 있다.

그런데 만약 선의 입장에 의하자면 본래부터 법계의 인이 없으므로 인을 없애는 것조차 없고 본래부터 법계의 과가 없으므로 과를 없애는 것조차 없다. 그러니 어찌 인을 없애고 과를 없앤 후에 인과가 없는 도리에 돌아가겠는가. 때문에 고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에서 역대조사들의 전심(傳心) 도리는 마치 새가 허공을 날아가는 것과 같고 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도 선과 교학의 차이점 내지 선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당시에 가장 보편적이었던 화엄의 교학을 내세워 그 입장을 서술하고 선문의 입장이 그와 다르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어설픈 깨침이란 교학적인 설명을 가미한 깨침의 도리를 말한다. 나아가서 그와 같은 도리가 정법안장의 전승규범으로 이어진 것을 잘못된 전승이라고 말한 것이다.

 

선문에서 내세우는 ‘심인’

수행과 깨침 터득도 초월

이에 구체적인 설명으로 화엄의 법계연기의 도리를 들어 “본래 법계의 인도 없고 또 법계의 과도 없고, 또 지혜와 증득도 없고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도 없다. 본래 인이 없기 때문에 만행을 닦을 길도 없고 본래 과가 없기 때문에 과를 증득하는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과 과의 근본이 연기의 도리에 근거하고 있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인과의 도리를 초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수행의 시작과 깨침의 종착이 곧 인과를 말미암은 것이므로 수증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선문에서 내세우는 심인의 입장은 수행을 시작한다는 것과 깨침을 터득한다는 것조차도 초월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 당대의 선종에서 소위 남종과 북종의 정통논쟁에서 의도적인 차별화를 강조했던 하택신회의 주장을 보는 듯 하다. 비교적 교학의 입장에 충실했던 북종에서의 수행과 깨침에 대한 입장은 곧 〈화엄경〉과 〈법화경〉과 〈사익경〉과 〈유마경〉과 〈기신론〉을 바탕으로 한 〈대승오방편문〉에 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단지 그와 같은 입장을 일괄적으로 교학으로 대치시켜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선의 입장은 본래부터 법계 및 법계의 인과 과를 벗어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교학에서 말하는 법계 및 법계의 인과 과를 없앤다는 행위야말로 조작적이고 유위적이며 공용적인 행위임에 비하여 선법의 심인은 철저한 무조작이고 무위이며 무공용의 종지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선법에서 전승된 심인의 종지는 마치 새가 허공을 날아가는 것처럼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마치 물고기가 물 속을 헤엄치는 것과 같이 몰종적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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