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인종법사의 깨침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3:57

“움직이는 것은 그대들 마음”

  마음 깨치고 선법으로 회향

  혜능 선배로 도반이며 선자

 

인종법사는 법성사에서 열반경을 강의하였다. 혜능대사가 법성사의 행랑채에서 잠시 쉬어가는 참이었다. 밤이 되어 부는 바람에 깃발이 움직였다. 두 승이 논쟁하는 소리를 듣자니 한 승은 바람이 움직인다 하고 다른 한 승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였다. 논쟁이 오갔지만 도리에는 맞지 않았다. 혜능은 곧장 ‘바람과 깃발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움직이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우연히 그 말을 엿듣게 된 인종은 깜짝 놀라며 기이하게 간주하였다. 다음 날 혜능을 조실로 맞아들여 바람과 깃발의 뜻을 물었다. 혜능이 그 이치를 설명하였다. 그러자 인종은 제자의 예를 취하여 선요를 청하였다.

 

중국 선종의 제5조 홍인은 스승이었던 도신의 가르침을 이어서 〈능가경〉을 의지하면서 나아가서 반야경 계통의 〈금강경〉과 〈열반경〉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홍인은 문하의 700명 대중에게 금강경반과 열반경반을 나누어 각각의 뜻을 터득할 것을 제시하였다. 후에 홍인이 혜능에게 의발을 전수하고 오래지 않아 입적하자 제자들은 각각 인연 닿는 곳을 따라 강호에 흩어졌다.


 

인종은 그 가운데 열반경을 공부하는 선자였다. 인종법사는 스승의 유지를 널리 펴기 위하여 남방으로 내려가 법성사에서 늘상 열반경을 강의하였다. 법성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사찰로서 제지사(制旨寺, 制止寺)라 불렸다. 이곳에서는 홍인의 유훈을 받들어 열반경 특히 대승열반경이 강석되는 곳이었는데 대승열반경은 불성의 개현을 주제로 하는 경전이었다.


이에 인종법사는 학인들에게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을 주제로 삼아 불성의 작용에 대하여 토론할 것을 제시하였다. 당시에는 사찰의 어귀에 높은 장대를 세우고 장대 끝에는 강의하는 경전의 제목을 써붙인 깃발을 내걸었는데 이것을 찰번(刹幡)이라 한다. 학인들은 불성의 작용에 대하여 그 찰번을 대상으로 논쟁을 벌였다. 마침 그곳에는 홍인으로부터 의발을 전수받은 후에 16년 동안 은둔생활을 했던 혜능이 객승으로 잠시 머물러 있던 참이었다.


그 옆의 대중방에서 학인들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하면서 밤새 난상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옆방에서 논쟁을 듣고 있었던 혜능은 답답하게 생각한 나머지 외람되게도 논쟁에 끼어들어 한 마디 거들었다.

‘본래 바람의 성품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깃발의 성품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바람과 깃발의 성품은 본래부터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들이 깃대에 매달린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마음은 본래성품에 대한 분별심일 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들 주장하는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 논쟁을 벌이고 있던 학인들은 혜능의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인종법사는 그 사실을 전해듣고는 깜짝 놀랐다. 불현듯 16년 전 홍인대사께서 의발을 전수한 행자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다음 날 조실로 객승을 불러놓고 조심스럽게 묻자 혜능은 그토록 오랫동안 숨기고 지냈던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었다. 이에 인종법사는 곧장 그 자리에서 제자의 예를 취하면서 홍인대사께서 전수하신 가르침과 의발을 청하였다. 모든 것이 확실해진 마당에 인종법사는 그로부터 계단을 설치하고 사방으로 대덕스님들을 청하여 여법하게 계를 설하고 혜능을 중국 선종의 제6조 대사로 등극케 하였다.
이 내용도 열반경을 강의하던 인종법사가 마침내 혜능으로부터 마음을 깨치고나서 선법으로 회향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종법사는 혜능보다 선배로서 지극히 용의주도한 도반이요 선자였다. 그러나 깨침을 중시하는 선문이었으므로 스승의 정법안장을 계승한 혜능을 스승으로 간주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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