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홍주법달의 깨침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3:59

“조계대사 한마디에 녹아버렸네”

경전 본래 뜻 알지 못하고

암송만 하면 안목 안 열려

 

홍주의 법달스님이 육조혜능을 참례하여 절을 하는데 머리가 땅에 닿지 않았다. 이에 육조가 꾸짖었다. “절을 하는데 머리가 땅에 닿지 않으면 절을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 그대의 마음속에 필시 무언가를 품고 있을 터인데 무슨 수행을 했던가.”

법달이 말했다. “법화경을 염송하였는데 삼 천독이 넘었습니다.” 육조가 말했다. “그대는 단지 염송에만 애썼구나. 그것으로 일과를 삼다니 어찌 야크가 꼬리를 아끼는 것과 다르겠는가. 내 게송을 들어 보라.

 

마음이 미혹하면 법화에 굴리고/

마음을 깨우치면 법화를 굴리네/

아무리 암송해도 깨치지 못하면/

본래 의미와 원수지간이 된다네//

무념으로 염송하면 정(正)에 기울고/

유념으로 염송하면 사(邪)에 기우네/

유념과 무념을 모두 벗어나야만/

마침내 백우거를 거느리게 되네//”

 

법달은 그 의미를 깨치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는 게송을 통해 “부처님이 출세한 뜻 알지 못하면 끝없는 생사의 윤회 어찌 멈추랴”라고 외면서 자기의 견해를 드러내었다.

 

경전을 삼 천 번이나 독송했건만/

조계대사의 한마디에 녹아버렸네/

부처님이 출세한 뜻 알지 못하면/

끝없는 생사의 윤회 어찌 멈추랴//

양 사슴 소의 수레는 방편설로서/

처음 중간 끝을 잘 드러내었건만/

누가 알겠는가 불타는 집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본래 법왕이란걸//

 

법달은 홍주의 풍성 사람으로 7세에 출가한 이후로 줄곧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구족계를 받은 이후에 육조를 참방하였다. 그런데 <법화경>에 통달했기 때문에 법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법달은 항상 <법화경>을 외워 7년이 되었다. 이를 보고 육조는 “법달아, 법을 제법 통달하였으나 너의 마음은 통달하지 못하였구나. 경(經) 자체는 의심이 없거늘 너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조단경>에는 육조혜능의 10대 제자 곧 법해.지성.지상.지통.지철.지도.법진.법여.신회.법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만큼 법달은 교학에 밝았기 때문에 누구한테도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였다.

 

육조를 참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혜능은 그가 <법화경>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에 빠져 있음을 간파하고서 그의 거만한 마음을 게송으로 물리쳐주었다. 이우(牛)는 특히 꼬리가 길고 참 아름다운 동물인 야크를 가리킨다. 야크는 자신의 꼬리만큼이나 암수가 서로 상대방의 꼬리를 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마치 법달이 <법화경>의 가르침에 대한 위신력을 믿고서 염송하는 것으로 능사를 삼는 것과도 같았다. 이에 혜능은 법달의 망집을 일깨워준다. 곧 <법화경>의 본래 뜻을 알지도 못하고 암송만 하는 것은 앵무새처럼 염송하는 복덕은 있을지라도 경전을 꿰뚫는 안목이 열리지 못한다는 것을 게송으로 충고해 주었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은 오히려 경전에 이끌려가지만 깨우친 사람은 반대로 경전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좋은 가르침일지라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이다. 법달은 역시 <법화경>에 해박한 사람이었다. 곧바로 혜능의 가르침을 <법화경>의 삼승은 방편이고 일승이 진실이라는 것을 터득하였다. 아울러 <법화경>의 서품에 등장하는 부처님이 설법처럼 처음도 좋게 중간도 좋게 그리고 끝도 좋게 설법한다는 진의를 스스로 알아차렸다.

 

나아가서 부처님에 세상에 출현한 인연과 유념이라든가 무념이라든가 하는 분별심으로 경전을 염송하는 것도 경전에 부림을 당한다는 도리를 깨우쳤다. 법달은 혜능의 가르침을 통해서 <법화경>의 통달자로부터 제법의 통달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엄원 계종화상의 깨침  (0) 2007.12.10
청량징관의 깨침  (0) 2007.12.10
무업의 깨침  (0) 2007.12.10
인종법사의 깨침  (0) 2007.12.10
태원부 좌주의 깨침  (0) 2007.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