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법의 도리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4:09

“삼계는 단지 마음속 경계일 뿐”

 

어떤 법사가 대의선사에게 물었다. “욕계에는 선이 없고, 선은 색계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에는 어떤 것에 의거하여 선을 내세우는 겁니까.” 선사가 말했다. “법사는 단지 욕계에 선이 없다는 줄만 알았지 선계에 욕망이 없는 줄은 모르고 있구만.” 법사가 물었다. “그러면 그 선이란 무엇입니까.” 선사가 손으로 허공에다 점을 찍어보였다. 그러자 법사는 대꾸하지 못했다.

 

법사는 일찍이 선에 관하여 몇 마디 설명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이에 대의선사를 찾아가서 그와 같은 선법에 대하여 궁금한 점을 물었다. 법사는 거기에서 은근히 선이야말로 전혀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하여 인도의 선법에서 흔히들 말하는 내용을 들어 질문을 하였다. “제가 경론을 통하여 알기로는 인도의 사선팔정의 선법에서는 욕계에는 선을 배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의 시작은 색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는 과연 욕계 아니면 색계 아니면 무색계 가운데 어떤 경지에 바탕하여 선을 내세우고 가르치는 것입니까.”

 

대의선사는 마조도일의 제자로서 아호대의(746~818)이다. 아호대의는 순종황제 때 입내설법을 하여 마조도일의 선법을 중앙에 전파하는데 크게 일조했던 인물이다. 법사가 제시한 욕계는 불교의 세계관으로서 중생의 삼계 가운데 하나이다. 욕계는 탐욕.성냄.어리석음.아만.의심 등의 번뇌가 치성한 세계로서 지옥.아귀.축생.천상.인간.수라의 육도세계이기도 하다. 때문에 욕계에서는 치성한 번뇌로 인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선이 있을 수 없다. 색계는 초선.제2선.제3선.제4선의 단계로서 자세하게는 18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무색계는 순수한 정신의 세계로서 식무변처.공무변처.무소유처.비상비비상처의 4무색정의 세계이다.

 

때문에 법사가 질문한 것은 우리가 깃들어 살고 있는 세계는 사바세계로서 욕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과연 선이 가능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의선사는 욕계에 대한 법사의 질문을 긍정하면서도 나아가서 선의 세계에는 욕계의 번뇌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대는 그와 같은 선의 세계를 경험해보았는가 하고 되묻는다. 말하자면 법사는 법사 스스로가 욕계에 살고 있는 중생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허공에 찍는 점 흔적 안 남듯

욕계.색계 구분자체가 무의미

 

이에 반하여 선의 세계에 살고 있는 선사는 그대와 같이 욕계의 중생이 어찌 색계 및 무색계의 세상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고 꾸짖는 것이다.

 

그리고는 선사 스스로 선의 세계에 대하여 설명이라도 하듯이 허공에다 손가락으로 점을 찍는 시늉을 해보였다. 허공과 허공에다 찍는 점은 모두 흔적이 없다. 또한 무엇이라 규정할 수도 없다. 이것은 곧 선의 세계는 법사와 같이 삼계를 분별하여 질문하는 마음으로는 결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제스처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자 수많은 경론을 강의하고 해설하면서 언설과 같이 명칭과 형상을 상대하는 법사로서는 그와 같은 도리를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법사는 눈만 꿈벅꿈벅할 뿐 뭐라 답변할 수가 없었다.

 

점은 그저 점일 뿐 허공이 점도 아니고 점이 허공도 아니다. 그런데 법사는 지금 왜 허공에다 점을 찍었는지, 점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왜 하필 손가락으로 점을 찍어보였는지 등에 대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의가 내세운 선의 도리는 그와는 다르다. 대단히 간명직절하다. 점이란 참으로 단순하듯이 선법의 도리가 그렇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그저 점으로만 받아들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 왜 점인가, 왜 허공인가, 왜 손가락인가 하는 분별심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머리 위에다 다시 머리를 얹어놓은 택이다. 마찬가지로 욕계에 있으면서도 욕계라는 분별이 없는 것이 선이다. 달리 욕계와 색계가 딱히 구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각자의 마음속의 경계를 삼계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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