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분별심이 생사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4:14

“생사의 업 없는 것이 곧 대열반”

 

“상대적 분별심은 번뇌의 씨앗”

가르침에 집착한 법사에 일침

 

어떤 법사가 물었다. “선사께서는 어떤 법을 설하여 사람을 제도하는 겁니까.”

선사가 말했다. “빈도는 일찍이 어떤 법으로도 사람을 제도한 적이 없습니다.”

법사가 물었다. “선사들의 경우는 모두 그런 식으로 답변을 하는 겁니까.”

그러자 선가가 물었다. “그러면 대덕은 어떤 법을 설하여 사람을 제도하는 겁니까.”

법사가 말했다. “저는 금강반야경을 강의합니다.”

선사가 물었다. “금강경은 누가 설한 겁니까.”

그러자 법사는 언성을 높여 말했다. “선사께서는 지금 농담하는 겁니까. 불설이란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오.”

선사가 말했다. “만약 여래가 설한 법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만약 금강경이 불설이 아니라면 그것은 경전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어디 대덕이 한번 설명해 보시오.”

법사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양구하고나서 다시 물었다. “어찌하면 대열반을 터득할 수 있는 겁니까.”

선사가 말했다. “생사의 업을 쌓지 않으면 됩니다.”

법사가 물었다. “생사의 업이란 무엇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대열반을 추구하는 것이 생사의 업입니다. 번뇌를 버리고 정토를 추구하는 것이 생사의 업입니다. 추구한다든가 깨친다든가 하는 것이 생사의 업입니다. 이처럼 상대적인 대치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생사의 업입니다.”

법사가 물었다. “그러면 어찌하면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겁니까.”

선사가 말했다. “본래 결박된 적이 없는데 어찌 해탈을 추구한단 말입니까. 그저 그대로 수행하고 그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법사가 말했다. “화상께서는 실로 보기 드문 분입니다.” 그리고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물러갔다.

 

본 내용은 금강경을 강의하는 법사가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종지로 하는 선법의 입장을 떠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교학에서는 부처님의 설법이라는 분명한 가르침이 있는데 깨침을 추구한다는 선문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인가를 묻는다. 이에 사람을 제도해본 적이 없다는 선사의 답변에 법사는 마치 자기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들었다는 듯이 의기양양하여 흔히 좌선을 통하여 깨침을 추구하는 선사들이란 모든 그런 식으로 밖에는 답변할 줄을 모르는 것인가 하고 핀잔을 준다.

 

그리고나서 법사는 은근히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물어보라는 듯이 기다리고 있다. 선사는 일찍이 금강경에 통달하고 있었기에 허허실실의 방법을 취하였다. 금강경을 강의한다는 법사에게 ‘여래는 일찍이 터득한 법도 없고 설한 법도 없다’는 대목을 들어 질문을 가한다.

 

부처님이 금강경을 설했다고 말하면 부처님의 말씀이 거짓이 될 것이고, 금강경을 설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금강경은 어떻게 출현한 것인가 라는 것이다. 그러자 법사는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열반의 가르침을 청한다. 이에 선사는 생사의 업을 짓지 않으면 그것이 곧 대열반임을 말한다.

 

그러나 법사는 아직도 선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해탈의 가르침을 청한다. 여기에서 선사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열반을 추구하거나 해탈을 추구하는 것은 분별심에 불과하다.

상대적인 분별심으로부터 온갖 번뇌가 일어난다. 단지 번뇌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알아차릴 뿐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번뇌는 실체가 없다.

때문에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줄을 일러주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흔히 망념이 일어나면 그것이 망념인 줄 알아차리고 나면 그 망념은 저절로 사라진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선사는 교학을 통하여 터득한 수많은 가르침에 대하여 집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법사에게 정문일침을 가하고 있다. 생사는 윤회의 원인이다.

때문에 생사를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대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정작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금강경을 통하여 무집착의 가르침을 일깨워주고 있다. 선사의 가르침처럼 수행과 깨침이라는 분별조차 없이 일상의 삶 그대로 수행하고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 곧 조사선의 평상심시도이고 즉심시불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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