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진여의 공성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4:15

진여는 불변할지라도 가치 변해

어떤 삼장법사가 물었다. “진여에 변역이 있는 겁니까.” 선사가 말했다. “변역이 있습니다.” “선사께서는 틀리셨습니다.” 그러자 선사가 물었다. “삼장법사께서는 진여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만약 변역이 없다면 삼장법사께서는 결정코 범부승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여에도 변역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진여에 변역이 있다고 집착하면 그것은 또 외도가 됩니다.” “선사께서는 아까전에 진여에 변역이 있다고 말했으면서 지금은 또 변역이 없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맞는 겁니까.” “만약 분명하게 견성한 경우라면 마니주의 색깔이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변역이 있다고 해도 맞고 변역이 없다고 해도 맞습니다. 그러나 만약 견성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라면 진여에 변역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변역한다는 견해에 집착하고 진여에 변역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변역하지 않는다는 말에 집착을 합니다.” 이에 삼장법사가 말했다. “이런 까닭에 남종에 대해서는 실로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군요.”

 

여기에서는 불법의 전체에 두루 달통했다는 삼장법사를 등장시켜서 선법의 도리와 어떤 점이 다른지를 설명한다. 말하자면 삼장법사의 경우 이것은 그렇다 저것은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불법의 도리를 터득하여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맹점이다. 진리를 어떤 기준에 맞추어 그것을 도그마화시켜 판단해버리는 우를 범한다.

불법에서는 흔히 유위법과 무위법을 말한다. 유위법은 무상하기 때문에 변한다. 그러나 무위법은 영원불멸하여 불변한다. 이 경우 진여라든가 열반이라든가 깨침 등은 소위 무위법의 범주에 속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삼장법사는 무위법은 불변하여 변역하지 않는다는 도리를 들먹여 질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선사의 경우는 다르다. 변역한다는 것은 공의 속성이다. 곧 어떤 모습으로든지 변하면서도 그 변한다는 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 자체는 불변하면서 모든 것을 변역의 관계성으로 만드는 속성이 있다.

 

영원은 영원으로 찰나는 찰나로

집착 자체가 석존 가르침 어긋나

예를 들어 수학에서 사용하는 0이라는 숫자는 제아무리 큰 숫자라 하더라도 자체를 곱하여 결국 0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0이라는 상태는 그대로이다. 또한 덧셈의 경우 0은 1의 앞에 위치하면 그대로 1이지만 1의 뒤에 위치하면 10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도 0 자신은 그대로이다. 그래서 0의 속성을 생각하면 공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안목으로 제법을 보는 것이 여기에 등장하는 선사의 경우이다.

 

이에 반하여 삼장법사의 안목은 경론이라는 언설을 통한 부동의 진리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기준으로 일체를 판별해버린다. 진여가 그처럼 불변의 속성이라면 삼장법사의 경우 스스로 자신이 진여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삼장법사는 영원히 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삼장법사의 경우 애초에 수행하기 전에는 범부의 신분으로 있다가 수행을 통하여 보살이 되었다는 말도 말짱 헛말이다. 왜냐하면 범부로서의 진여는 수행의 여부에 관계없이 언제까지나 범부여야 하고 보살은 또 언제까지나 보살이라는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불변이라는 진여가 품고 있는 자기모순일 뿐이다. 삼장법사는 진여라는 영원과 변역이라는 찰나에 대한 관계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영원은 영원으로만 이해하고 찰나는 찰나로만 이해하는 집착에 빠져 있다. 그와 같은 집착이야말로 석존이 극구 타파할 것을 강조한 영원불멸의 존재를 내세우고 주장하는 바라문교의 교의에 속한다. 선사의 입장은 당대에 등장한 소위 남종의 조사선법을 대변하고 있다. 남종의 조사선법이란 본래무일물의 입장이다. 본래무일물은 본래부터 부족함이 없이 갖추어진 그대로의 상태이기 때문에 굳이 집착 내지 분별할 것이 일개 반개도 없다는 뜻이다.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산행위의 깨침  (0) 2007.12.14
덕산의 회심  (0) 2007.12.10
분별심이 생사  (0) 2007.12.10
제 눈에 안경  (0) 2007.12.10
즉심시불의 도리  (0) 2007.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