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書狀)

서장대강좌29/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12. 28. 16:33
 

 

서장 대 강좌 7-3 강

 

 

적정의 방편. “좌선 방편이다.”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나왔고 “간화선”하는 데는 아주 기본이 되겠습니다만, 狗子無佛性(구자무불성)화두를 대혜스님이 부추밀 계신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p. 121

  당신이 나를 믿는다면 시험 삼아 시끄러운 곳을 향하여 ‘개가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參究(참구)할 일이지 깨닫고 깨닫지 못함을 말하지 마십시오.

정히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 넌지시 참구해 보십시오.

도리어 고요함을 압니까? 도리어 힘 얻음을 압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개가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라고 하는 구자무불성화두를 이 분이 일찍이 소개를 받았는데, 그 화두를 한번 들어보라.

이것이 제1 방편이지요.

간화선에서는 화두 드는 것이 방편입니다.

온갖 방편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화두 들고 공부하는 것을 제1 방편으로 삼습니다.

 

  만약 힘 얻음을 알았거든 문득 모름지기 놓아 버리지 말고, 고요히 앉을 때는 다만 한 개의 향을 피우고 고요히 앉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대혜스님도 앉고 싶으면 앉아서 해도 좋다는 말입니다.

앉을 때에 요컨대 昏沈(혼침) 하지 말며, 또한 掉擧(도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혼침은 그대로 졸음이 오는 것이고, 도거라는 것은 자꾸 들고 일어나는 것이니까 망상입니다.

 

망상이라는 것은 자꾸 생각이 무조건 들어와서 들고 일어나거든요.

“생각이 들고 일어난다.”고 해서 흔들 掉자. 들 擧자를 씁니다.

이것이 망상입니다.

대개 이 두 가지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실컷 졸다가 깨면 망상하고, 망상 어지간히 했다 싶으면 그때부터 또 졸고요.

그러다 보면 방선죽비 치고요. 하하하하하하~~~

참 하하하하하 웃으시는 것 보니까 많이 해보신 것 같네요.

공부 많이 해보신 모양입니다. 

 

  혼침과 도거는 옛 성인이 꾸짖은 것입니다.

조용히 앉았을 때 이 두 가지 병이 앞에 나타난 것을 알았거든 단지 ‘개가 불성이 없다’는 화두만 드십시오.

그러면 두 가지 병은 힘써 물리치지 않아도 당장에 고요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조금 힘 덜림을 아는 것이 문득 힘을 얻는 곳이 될 것입니다.

또한 고요한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다만 이것이 곧 공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화두를 들어서 결국 그 길로 어떤 경지에 오른다고 하는 것은, 대개 動中一如(동중일여). 열심히 치열하게 활동하는 가운데서도 일여 되고,

夢中一如(몽중일여). 꿈 가운데서도 한결 같아야 되고,

寤寐一如(오매일여)라는 최고의 경지에서 화두를 들면 가능하긴 합니다.

전번에 제가 그랬지요?

10억짜리 수표를 금방 옷 갈아입는다고 책상위에 얹어놓고 잠깐 옷을 갈아입고 돌아봤는데 없다 이겁니다.

아무도 문 열고 들어온 사람도 없어요.

바람도 안 불었어요.

그 방에는 쥐도 고양이도 없어요.

정말 환장할 노릇이지요.

그것이 출근이 되겠습니까? 세상에 무너진들 아랑곳 하겠습니까? 10억짜리 수표가 금방 사라졌는데 대통령이 어느 놈이 되든지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면 앞뒤가 딱 끊어지는 겁니다.

前後際斷(전후제단)입니다.

이쯤 화두가 딱 집중이 되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가?

조사스님들이 말씀하시기를 모기가 무쇠로 만든 소.

그러니까 무쇠를 녹여서 소를 만들었는데 그 소를 모기가 뚫고 무쇠소 속의 피를 빨아먹으려는 짓이라고 그랬습니다.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당치도 않은 일이라는 뜻 아닙니까?

우리가 화두를 드는데 ‘개가 불성이 없다’ 왜 없을까?

있는 것도 모르는데 없다는데 의심이 되겠습니까?

우리 깨놓고 이야기하자고요.

있는 것도 모르는데 없다는 말이...

이것이 있을 때 없다고 해야 의심이 되지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렇습니다.

 

   10억짜리 금방 잃어버리고 그것이 어떻게 됐는가?

숨도 멎어버리고 시간도 멎어버리고, 온갖 것이 다 올 스톱되어 버린 의식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말입니다.

불성이 있는 줄도 모르는데 없다는 말이 어떻게 의심이 그렇게 집중이 되겠습니까?

이것이 안 되는 겁니다.

모기가 쇠 철판을 뚫는 것과 똑 같다니까요.

예인선이나 가서 들이박으면 깨져서 뚫려질까 모기부리 지가 아무리 세다한들 손으로 밀어버리면 그냥 가루가 되어 버려요.

그냥 가루가 되어 버린다니까요.

그렇게 연약한 모기부리가 어떻게 쇠 철판을 뚫겠습니까?

고봉스님 선요에 그렇게 표현해놨습니다.

 

  그리고 80먹은 늙은이가 아주 급하게 흐르는 물길을 배를 몰고 올라가는데, 노가 아니고 삿대질로 올라가는 겁니다.

삿대는 바닥에 버티면서 밀어 올리는 거거든요.

중국에 가면 아주 작은 여울을 배로 건널 때는 그런 식으로 많이 건넙니다.

‘1미터를 올라가니까 10 미터를 내려오고, 1미터를 올라가니까 10 미터를 내려오는 격이다.’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화두를 들고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 말입니다.

선요에 그렇게 해놨습니다.

선요는 간화선 제2 지침서입니다.

제1 지침서는 이 서장이고요.

80먹은 늙은이가 거센 물길을 삿대질로 배를 끌어 올리는데, 1미터 올라가면 10 미터 내려오고, 1미터 올라가면 10 미터 내려오는 이것은 공부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겁니다.

아니하면 차라리 제자리에 있는데요.

하하하~~~ 이렇게 표현해놨습니다.

 

  그런 방법을 통해서 그런 과정을 전부 밟은 뒤에 설정한 그 목표에 도달한다고 하는 것.

지금 우리가 그런 식으로 하지 말아야 됩니다.

되지도 않을 것을 공연히 공부를 설정해놓고 계속 그렇게만 밀어붙인다면 한 사람도 그런 과정을 통과해서 일을 마쳤다는 소문이 한 번도 안 들려요.

일을 그렇게 하기로 하면 안 된다고요.

새로 시작해야 됩니다.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돼요.

선요에 그렇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놨습니다.

모기가 우리 손으로 비벼도 없어져버리는 부리로 쇠 철판을 뚫는 격이라고 분명히 그렇게 해놨는데요.

 

  그래도 이 방식이 송나라, 지금부터 8 ~ 900년 전에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방법으로 정신 집중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 신심이 지극하니까요.

수표 10억짜리 잃어버린 것은 별로 궁금해 하진 않아도, ‘개가 불성이 없다’는 것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아주 궁금해 하는 사람들입니다.

‘개가 불성이 없다’는 것은요.

이런 것들을 우리가 있는 대로 다 드러내놓고, 진지하게, 정말 진지하게 이 문제를 몇 달이 걸리고 몇 년이 걸려서라도 이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해서 재정립을 해야 됩니다. 공부에 대한 재정립을...

 

  정말 사심 없이, 자기의 주관 다 빼버리고, 어떤 자존심이니 我相(아상)이니 그런 것 다 빼버리고, 정말 진지하게 다 깨놓고 이야기를 해야 할 문제입니다.

주지해봤자 그까짓 것 별거 아닙니다.

그것은 어차피 속인 들이 하는 짓이니까 그것은 그대로 제쳐놓고, 정말 공부에,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공부에 불법이 있는 것이지, 그 외의 것은 불법이 아니니까요.

진짜 불법 문제만 가지고 진지하게 몇 년이 걸리든지 밤새워서 이야기해 봐야 될 문제라고 저는 제기하고 싶습니다.

이 메아리가 어디까지 울려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p. 126의 밑에 단락은 이참정하고의 이야기이고, 결국은 이 분들이 이참정하고도 아니까 공부에 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여기에 써 놨습니다.

그것은 생략하겠습니다.

p. 125

16. 이참정 한노에게 답하는 별도의 편지. 이것도 이참정에게 별도로 이야기를 해서 당신에게 부추밀이 연락이 오거든 이렇게 저렇게 지도 해주세요.

하는 이야기니까 이것은 볼 필요가 없고,

p. 126

  그 분과 더불어 만나거든 시험 삼아 그에게 답한 갈등을 한번 보고 그것으로서 방편을 써서 이 사람을 구하십시오.

이 보십시오.

이참정 하고는 지금 일이 끝났는데 부추밀을 구제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참정에게 간접적으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四攝法(사섭법) 가운데 同事攝(동사섭)을 최고로 여깁니다.

사섭법이 불교의 기본입니다.

布施攝(보시섭). 愛語攝(애어섭). 利行攝(이행섭). 同事攝(동사섭).

사람을 제도하고 끌어들이는 데는 4가지 섭수하는 방법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보시: 자꾸 주면, 이 세상에 주어서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하하하 주어서 싫어하는 사람 없다니까요.

뭐든지 줘요.

어디 절에 데려가려거든 차비 다 내주고, 회비도 대신 다 내주고, 인등회비 까지 다 내주고, 법당에 불전도 대신 내주고, 계속 그렇게 하면 감동해서 따라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당 현종하고 아주 유명한 재상하고 왕비하고 세 사람이, 국가에도 아무 일이 없고 정치가 아주 잘 돌아갈 때 편안한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우리 셋이 이렇게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놨는데, 우리 인간으로 돌아가서 정말 솔직한 이야기 한 마디씩 합시다.”그랬습니다.

왕은 그야말로 普天之下(보천지하)가 莫非王土(막비왕토).

온 천하가 왕의 국토 아닌 것이 없고, 전부 왕의 물건 아닌 것이 없고, 왕의 백성 아닌 것이 없고, 왕의 신하 아닌 것이 없어요.

옛날에 군주 국가에서는 그렇잖아요?

 

  그런데 내가 뭐든지 필요하다면 말 한 마디만 하면, 좀 웃기는 이야기로는 TV에 손가락으로 리모톤만 척 하면 나오는 식으로 왕이 말만 한 마디하면, 척 하면 뭐든지 다 듣는 그런 시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이 하는 소리가 전부 내 것이고 내가 뭐든지 필요하다면 다 금방 갖다 주지만, 저~ 시골 노인이 고구마를 캐서 다 떨어진 보자기에 싸서 들고 와서는 왕에게

“우리나라에서 난 토산품 인데 참 좋은 것입니다.”

하고 갖다 주면 그 사람이 예쁘더라는 겁니다.

왕이 무슨 고구마를 먹겠습니까?

그런데 그거라도 정성을 들여서 들고 와서 주는 그 사람이 예쁘더라는 겁니다. 천하가 내 것인데도 불구하고 갖다 주는 그 사람이 예쁘더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참 정말 진실한 이야기를 했지요.

왕으로서 무슨 체면 세우는 이야기입니까?

체면 다 떼놓고 이야기하기로 했으니까요.

마저 이야기할까요?

  재상이라면 위로 왕 하나뿐이잖아요? “이 세상에 왕만 놔두고 나머지는 전부 내가 다 알아서하지만, 가끔 한 번씩 왕의 자리가 넘겨다봐집니다.

” 옛날에 그런 소리는 입 밖에 나갔다면 완전히 그냥 반정음모입니다.

말 못하거든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는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니까 “왕의 자리가 한 번씩 넘겨다봐진다.” 고 했습니다.

참 얼마나 진실 합니까?

왕비는 “내가 얼마나 허망하게 사느냐?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뭐가 있느냐?

그런데 새파랗게 젊은 과거 급제한 젊은 선비가 과거 급제해서 멋지게 차려입고 국가에서 주는 어사화를 쓰고 왕과 왕비한테 와서 장원급제 했다고 인사를 척 드릴 때는 왕이고 뭐고 눈에 하나도 안 보인다.” 이겁니다.

그런 이야기가 역사에 그런 기록이 다 있어요. 

 

  요컨대 보시섭 이야기 하다가...

절에 데리고 다니며 회비도 내주고, 차비 내주고, 책도 사주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렇게 내가 한가하게 이야기 할 때가 아닌데...

어쨌든

애어: 사랑스러운 말.

이행: 그 사람에게 이롭게만 하는 겁니다.

뭐든지 이롭게만 하는 겁니다.

보시와 이행은 다릅니다. 비슷하면서 달라요.

동사: 같이 놀아주는 겁니다. 같이 놀아주다가 ‘완전히 나 하고 같은 수준이다.’ 믿어질 때, 그때 슬슬 끌어들이기 시작하는 겁니다.

여기 그랬어요.

 

동사섭이 최고다.

  당신이 마땅히 이 법문을 크게 열어서 그로 하여금 믿어 들어가게 하면 저의 힘을 반을 덜 뿐만이 아닙니다.

또한 그로 하여금 굳게 믿고 즐거이 옛 소굴을 떠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추밀을 말하자면 제도 하는데 당신이 그렇게 동사섭을 해주면

내 힘을 반을 덜어준다.

그랬습니다.

한 개 반개 이런 말이 아니고, 내 힘을 반을 덜어준다.

안 그렇겠어요.

대혜스님이 계속 편지를 해서 제도를 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도움을 주면 반은 덜어주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관심 있게 생각하는 일은, 정법 선양운동입니다.

정말 이 시대에 이렇게 알 만치 알고 정말 깨어있을 만치 깨어있는 이 시대에 살면서, 그런데 정법은 어디가 버리고 잘 없습니다.

정법을 좀 선양해야 되는데 정법을 선양 하는데 여러분들이 이런 인연이 되어서, 여러분이 함께 관심을 가져주고, 책이라도 나오면, 복사해 가라고 제가 붙여 놨습니다.

이것은 아주 한국 출판역사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책을 복제 복사하기를 환영합니다.

널리 법공양 하시면 공덕이 무량합니다.

” 그랬어요. 이것은 아주 세계 출판역사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전부 큰 스님 이름 걸고 뭐 하는, 구체적으로 이름은 못 대겠지만 “판권소유” 그러면 판권은 뭐가 판권이냐?

그리고 “무단 복제엄금”

책 보세요.

전부 그렇게 해놨습니다.

복제해서 좀 활용하면 어떻습니까?

아이고 세상에 그렇게 속 좁게 한다니까요.

아니, 속인들이 하는 것은 제가 말 아니합니다.

그것은 이해가 걸렸으니까요. 그런데 절 집안에서 큰 스님 법문. 부처님 법문을 널리 편다고 하면서, 도대체 “무단 복제엄금”이 뭐냐고요.

이렇게 통탄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연 것입니다.

야~ 이거 한 번 더 읽어 봐야 돼요.

작은 임제록.

저의 힘을 반을 덜었습니다.

박수 치신 분들은 일 좀 하셔야 됩니다.

무단 복제해서 널리 펴십시오.

제가 쓴 책인데도 읽어보니까 너무 좋아요.

제일 뒷장 넘겨볼래요?

작은 임제록. 132쪽.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부처란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삼승과 오승과 원능교의 자취마저도 모두다 그 때 그때의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이지 고정된 실다운 법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말로 표현하는 길거리의 광고 게시판이다.

문자를 알맞게 배열해 놓은 것이다.

임시로 이와 같이 이야기를 해본 것일 뿐이다. 

  그 밑에 강설이 건사해요.

굴림체로 쓴 것은 임제록 원문이고요.

 

  불교에는 입만 열면 부처님 보살님 성문 연각 아라한 도인 선지식  큰스님 10신 10주 10행 10회향 10지 등각 묘각 등등 별의별 명칭을 다 말합니다.

그리고 경전만 펼치면 그러한 명칭들이 있다.

그러나 부처니 보살이니 하는 말도 모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표현하는 말에 불과하다.

병에 따라 시설하는 약 방문일 뿐이다.

혹은 길거리에 내걸린 광고문에 불과하다.

만일 실제로 있는 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 하나를 두고 별의별 이름을 다 붙인 것이다.

진정 부처를 좋아하는가?

부처란 다만 부처를 좋아하고 있는 그 사람이다.

  캬~~ 기가 막히네요.

주로 이런 내용들입니다.

그래서 사실 불교가 여기의 대혜스님도 그렇고 우리나라의 태고 보우스님으로부터 일체 도인들이 전부 임제스님에게 줄을 서고 있습니다.

전부 “임제 몇 대손이다.” 하지, “석가모니 몇 대손이다.”아니합니다.

그래봐야 명함 별로 빛이 안 납니다.

“임제 몇 대손이다.”해야 빛이 납니다.

 

임제스님은 이런 분이라고요.

정말 파격적이고 기가 막힌 그야말로 부처님의 심장을 그대로 和盤托出(화반탁출).

다 꺼내서 세상에 펼쳐 보인 사람입니다.

그것이 임제라고요.

부처님의 심장과 간을 그냥 끌어내서 여러분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뜨끈뜨끈한 심장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 그런 임제입니다.

그래서 전부 임제 몇 대손이라고 그래요.

부처님 몇 대손이라고 안 한다고요. 

  사찰에 가시거든 비석들 한 번 보세요.

“임제 몇 대손”이렇게 해놨습니다.

부처님 몇 대손이라고 안했습니다. 

안목이 있는 사람들은 임제에 대해서 전부 그렇다니까요.

스님들이 열반하시면

速還娑婆(속환사바). 빨리 사바세계로 다시 오셔서 臨濟門中(임제문중) 永作人天之眼目(영작인천지안목). 임제문중에서 길이 인천의 인목이 되어 주십시오.

 이렇게 축원을 합니다.

신도들 축원하고 달라요.

스님들도 좀 꼬롬한데가 있어요. ㅎㅎㅎ

 

  신도들은 극락 잘 가시라고 그렇게 하고,

스님들은 사바세계로 다시 오시라고 그러고...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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