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중아함경(中阿含經)

중아함경 제 43 권

通達無我法者 2008. 1. 2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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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 제 43 권

 

 

  동진 계빈삼장 구담 승가제바 한역
  
13. 근본분별품 제 2 ②
  165) 온천림천경(溫泉林天經)1) 제 4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2) 園)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삼미제(三彌提)3)도 또한 왕사성에 노닐며 온천림(溫泉林)에 머물고 있었다. 존자 삼미제는 먼동이 트는 새벽에 방을 나와 온천으로 가서, 언덕 위에 옷을 벗어놓고 온천에 들어가 목욕한 뒤에 다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었다.
  그 때 몸이 지극히 아름답고 얼굴이 의젓한 어떤 한 하늘[有一天]4)이 있었다. 그는 먼동이 틀 무렵에 존자 삼미제가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 있었다. 그 하늘의 얼굴은 위엄스럽고 극히 아름다워 그 광명이 온천 언덕을 두루 비추었다. 그 하늘은 한쪽에 서서 존자 삼미제에게 여쭈었다.
  "비구여, 발지라제(跋地羅帝)5)의 게송을 받아 지니고 계십니까?"6)
  
1) 이 경의 이역본으로 서진(西晋) 시대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불설존상경(佛說尊上經) 』이 있다.
2) 명본(明本)에는 이 부분의 가란다(迦蘭哆)가 가란타(迦蘭)로 되어 있다.
3) 팔리어로는 Samiddhi이다.
4) 팔리어본에는 '어떤 한 천녀[某一天女, annatara devat ]로 되어 있다.
5) 발지라제는 음역어이다. 그 뜻은 '밤마다(또는 날마다) 한결같이 현명하고 착하게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6) 한역에는 수지(受持)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의역하면 '기억하다'라는 뜻이 된다. 즉 '외우고 계십니까?' 정도의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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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자 삼미제는 그 하늘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하늘에게 도로 물었다.
  "그대는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지니고 계십니까?"
  그 하늘이 대답하였다.
  "저도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존자 삼미제가 그 하늘에게 물었다.
  "그러면 누가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졌습니까?"
  하늘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이 왕사성에 노니시면서 죽림 가란타동산에 계시는데, 그분은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다. 비구여, 그대는 가서 세존에게 직접 발지라제의 게송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십시오. 왜냐 하면 발지라제의 게송은 법이 있고 뜻이 있어 범행(梵行)의 근본이 되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족성자로서 지극한 믿음이 있어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발지라제의 게송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해야 합니다."
  그 하늘은 이렇게 말한 뒤 존자 삼미제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세 번 돌고는 거기서 사라졌다.
  그 때 존자 삼미제는 하늘이 사라진 지 오래지 않아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오늘 먼동이 틀 무렵 방에서 나와 저 온천에 가서, 언덕 위에 옷을 벗어 놓고 온천에 들어가 목욕한 뒤에, 곧 언덕으로 나와 몸을 닦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몸이 지극히 아름답고 얼굴이 의젓한 어떤 하늘이 먼동이 트는 새벽에 저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섰습니다. 그 하늘은 얼굴이 위엄스럽고 지극히 아름다웠으며 그 광명은 온천 언덕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그 하늘은 물러나 한쪽에 서서 제게 물었습니다.
  '비구여,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지니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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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그 하늘에게 대답했습니다.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도로 그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졌습니까?.'
  그 하늘은 대답했습니다.
  '저도 또한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그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졌습니까?
  그 하늘은 대답했습니다.
  '세존께서 이 왕사성에 노니시면서 죽림 가란타동산에 계시는데, 그분은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셨습니다. 비구여, 그대는 가서 세존에게 직접 발지라제의 게송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십시오. 왜냐 하면 발지라제의 게송은 뜻이 있고 법이 있고 범행의 근본이 되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족성자로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발지라제의 게송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해야 합니다.'
  그 하늘은 이와 같이 말한 뒤 제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는 곧 거기서 사라졌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삼미제여, 너는 그 하늘이 어디서 왔으며, 그 하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그 하늘이 어디서 왔으며, 그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삼미제여, 그 천자의 이름은 정전(正殿)이며 33천 군대의 장수이니라."
  이에 존자 삼미제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善逝)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발지라제의 게송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비구들은 세존에게서 그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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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삼미제여,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존자 삼미제가 대답했다.
  "예."
  그 때 모든 비구들도 가르침을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法]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고요히 앉으셨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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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는니라.
  
  그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러분,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누가 자세히 분별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존자 대가전연은 언제나 세존 및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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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아까 세존께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다 같이 존자 대가전연에게 가서 그 뜻을 설명해 달라고 청합시다. 만일 존자 대가전연께서 설명해 주거든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잘 받아 가집시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에게 가서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존자 대가전연이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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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저희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누가 자세히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은 언제나 세존 및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원컨대 존자 대가전연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존자 대가전연이 말하였다.
  "여러분, 제가 비유로 말하리니 잘 들으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으면 곧 그 뜻을 잘 이해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나무 심[實]7)을 얻기 위해 도끼를 가지고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큰 나무가 뿌리와 줄기 마디 가지 잎 꽃 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뿌리와 줄기 마디 심은 건드리지 않고 가지와 잎만 건드렸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말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현재 계시는데 그 분을 버려 두고 내게 와서 그 뜻을 묻다니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여러분은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곧 눈이요 지혜며, 이치요 법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이십니다. 진리의 뜻을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심은 오직 세존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땅히 세존께 나아가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뜻을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거든 여러분은 마땅히 잘 받아 가지십시오."
  그 때 모든 비구들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여. 세존께서는 곧 눈이요 지혜며, 이치요 법
  
7) 팔리본에는 진수(眞髓, s va)로 되어 있다. 이는 나무의 심[樹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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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이십니다. 진리의 뜻을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심은 오직 세존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마땅히 세존께 나아가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뜻을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면 저희들은 마땅히 잘 받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존자 대가전연께서는 항상 세존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존자 대가전이시라면 능히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존자 대가전연이여. 저희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존자 대가전연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다 함께 제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기억[念]하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실로 눈[眼]이 있어서 좋아하는 빛깔[色]을 보고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빛깔을 사랑하며, 욕심과 상응(相應)하고, 마음으로 즐기며, 그 근본을 더듬어 보는데, 그 근본은 곧 과거입니다. 그리고 그의 식(識)은 과거에 대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합니다. 식(識)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고,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과거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실로 뜻[意]이 있어서 좋아하는 법(法)을 알고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법을 사랑하며, 욕심과 상응하고, 마음으로 즐기며, 그 근본을 더듬어 보는데, 그 근본은 곧 과거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대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합니다. 식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고,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과거를 기억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실로 눈이 있어서 좋아하는 빛깔을 보고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빛깔을 사랑하며, 욕심과 상응하고, 마음으로 즐기며, 그 근본을 더듬어 보는데, 그 근본은 곧 과거입니다. 그러나 그의 식은 과거에 대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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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지 않게 되고,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과거를 기억하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실로 뜻이 있어서 좋아하는 법을 알고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법을 사랑하며, 욕심과 상응하고, 마음으로 즐기며, 그 근본을 더듬어 보는데, 그 근본은 곧 과거입니다. 그러나 그의 식은 과거에 대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고,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과거를 기억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미래에 바라는 것이 있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미래의 눈[眼]과 빛깔[色]과 눈의 식[眼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얻게 되기를 마음으로 바랍니다. 그는 마음으로 바라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며,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미래에 바라는 것이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미래의 뜻[意]과 법(法)과 뜻의 식[意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얻게 되기를 마음으로 바랍니다. 그는 마음으로 바라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며,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미래에 바라는 것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 비구는 이와 같이 미래를 원하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미래에 바라는 것이 없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미래의 눈과 빛깔과 눈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지 않고 얻게 되기를 마음으로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며,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미래에 바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미래의 뜻과 법과 뜻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지 않고 얻게 되기를 마음으로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바라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며,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미래에 바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여러분, 비구는 이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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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미래에 바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현재의 눈과 빛깔과 눈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식(識)은 현재에 대해서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합니다. 식(識)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고,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현재의 법(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현재의 뜻과 법과 뜻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식은 현재에 대해서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합니다. 식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며,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현재 눈과 빛깔과 눈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식은 현재에 대해서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고,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현재의 법(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 코 혀 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현재의 뜻과 법과 뜻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식은 현재에 대해서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고,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세존께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간략히 말씀하시고 널리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1241 / 1738] 쪽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그것을 결코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이렇게 세존께서는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런 글귀와 글로써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여러분, 부처님께 나아가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신 이치와 같거든 여러분들은 마땅히 받아 가지십시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에게서 들은 말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대가전연을 세 번 돌고 떠났다. 그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아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이에 존자 대가전연이 이런 글귀와 글로써 그것을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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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별해 주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는 내 제자 중에서 눈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법이 있고 이치가 있는 사람이다. 무슨 까닭인가? 스승이 제자들에게 이 이치를 간략히 말하고 자세히 분별해 주지 않자, 그 제자는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것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전연 비구가 설명한 그대로를 너희들은 마땅히 받아 가져라. 왜냐 하면 이치를 살펴 설명한다면 응당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온천림천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580자이다.]
  166) 석중선실존경(釋中禪室尊經)8) 제 5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노이강기(盧夷强耆)9)는 석(釋)10)씨 중에 노닐면서 일이 없는 선실[無事禪室]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존자 노이강기는 먼동이 트는 새벽에 그 선실에서 나와, 선실 바깥 그늘에 있는 평상에 니사단(尼師檀)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 때 몸이 지극히 아름답고 얼굴이 의젓한 한 하늘이 있었다. 그 하늘은 먼동이 트는 새벽에 존자 노이강기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 있었다. 그 하늘의 얼굴은 위엄스럽고 지극히 아름다웠으며 광명이 그 선실을 두루 비추었다. 그 하늘은 한쪽에 서서 존자 노이강기에게 여쭈었다.
  
8)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서진(西晋)시대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불설존상경(佛說尊上經) 』 이 있다.
9) 팔리어로는 Lomasakangiya이다. 석가족의 왕족 출신이다.
10) 팔리어로는 Sakka이고 석가족을 말한다.
[1243 / 1738] 쪽
  "비구여, 발지라제(跋地羅帝)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까?"11)
  존자 노이강기가 그 하늘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하늘에게 도로 물었다.
  "그대는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졌습니까?"
  그 하늘이 대답했다.
  "저는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지만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존자 노이강기는 다시 그 하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으면서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까?"
  그 하늘이 대답하였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 가란타(迦蘭)동산에 계셨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발지라제의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法]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11) 원문은 '수지(受持)'이다. 이것을 의역하면 '기억하다 외우다' 정도의 뜻이다.
[1244 / 1738] 쪽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비구여, 저는 이와 같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졌지만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존자 노이강기는 다시 그 하늘에게 물었다.
  "누가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있습니까?"
  하늘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시는데, 그 분은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다. 비구여, 그대는 세존께 가서 세존에게 직접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잘 지니고 독송하십시오. 왜냐 하면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에는 이치가 있고 법이 있어 범행의 근본이 되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큰 족성의 아들로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잘 받아 가지고 독송해야 합니다."
  그 하늘은 이렇게 말한 뒤 존자 노이강기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세 번 돌고는 거기서 사라졌다.
  그 하늘이 사라진 지 오래지 않아 이에 존자 노이강기는 석가족이 사는 곳에 있으면서 여름 안거를 마쳤다. 그는 3개월을 지낸 뒤 옷을 기우고 나서, 옷과 발우를 챙겨 사위국을 향하였다. 그는 여러 곳을 거치며 앞으로 나아갔고 사위국에 이르러 승림급고독원에 머물렀다.
  그 때 존자 노이강기는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1245 / 1738] 쪽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느 때 석가족이 사는 곳에서 노닐며 일이 없는 선실(禪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먼동이 트는 새벽, 선실에서 나와 선실 바깥 그늘에 있는 평상에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몸은 지극히 아름답고 얼굴이 의젓한 어느 하늘이 먼동이 트는 새벽에 저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하늘은 얼굴이 위엄스럽고 지극히 아름다웠으며 그 광명은 선실을 두루 비쳤습니다. 그 하늘은 한쪽에 서서 제게 물었습니다.
  '비구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그 하늘에게 대답했습니다.
  '발지라제의 게송도 받지 못했고 그 뜻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도로 그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졌습니까?
  그 하늘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지만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그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으면서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까?'
  그 하늘은 제게 대답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 가란타(迦蘭)동산에 계셨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해 발지라제의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1246 / 1738] 쪽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비구여, 저는 이와 같이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지만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있습니까?'
  그 하늘은 제게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시는데, 그 분은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다. 비구여, 그대는 가서 세존에게 직접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십시오. 왜냐 하면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은 의미가 있고 법이 있어 범행의 근본이 되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큰 족성의 아들로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해야 합니다.'
  그 하늘은 이렇게 말한 뒤 제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세 번 돌고는 거기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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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노이강기에게 물으셨다.
  "너는 그 하늘이 어디서 왔으며, 그 하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그 하늘이 어디서 왔으며, 또 그 이름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강기여, 그 하늘 남자의 이름은 반나(般那)12)라 하며 33천 군사의 장수이니라."
  그 때 존자 노이강기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야말로 그 때입니다. 선서(善逝)시여, 지금이야말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강기여,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마땅히 너를 위하여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리라."
  존자 노이강기가 아뢰었다.
  "예, 분부대로 경청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12) 팔리어로는 Candana이고, 전단(栴檀)으로도 음역한다. 『존상경 』에는 반나말난(般那末難)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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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과거의 색(色)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과거의 각(覺)13) 상(想) 행(行) 식(識)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게 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과거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과거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미래를 원하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미래의 색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미래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미래를 원하게 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미래를 바라지 않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미래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미래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미래를 바라지 않게 되느니
  
13) 5온(蘊)의 수(受)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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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현재의 색을 즐겨하여 않아서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현재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현재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현재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노이강기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석중선실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36자이다.]
  167) 아난설경(阿難說經) 제 6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밤에 강당에 모여 발지라제(跋地羅帝)14)의 게송과 그 뜻을 설명하였다. 그 때 어떤 비구가 밤이 지나 이른 아침에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존자 아난이 모든 비구들을 위해 밤에 강당에 모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난 비구에게 가서 '아난아,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말하라".
  그 비구는 세존의 분부를 받들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14) 발지라제는 음역이고, '밤마다(날마다) 한결같이 현명하고 착하게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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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세 번 돌고 나서 떠났다. 그는 아난에게 가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존자 아난을 부르십니다."
  존자 아난은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섰다. 세존께서는 물으셨다.
  "아난아, 네가 정녕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밤에 강당에 모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설명하였느냐?"
  "예, 그렇습니다."
  "아난아, 너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어떻게 설명하였느냐?"
  존자 아난이 곧 말씀드렸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法]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1251 / 1738] 쪽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과거의 색(色)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루르며, 과거의 각(覺) 상(想) 행(行) 식(識)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서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과거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과거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미래를 원하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미래의 색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미래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미래를 원하게 됩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는 미래를 바라지 않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미래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미래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미래를 바라지 않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현재의 색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현재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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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현재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현재의 각 상 행 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밤에 강당에 모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내 제자는 안목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이치가 있고 법이 있다. 왜냐 하면 내 제자는 스승 앞에서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 이치를 자세하게 설명하였기 때문이니라. 진실로 아난 비구의 설명과 같다. 너희들은 마땅히 그와 같이 받아 가져라. 왜냐 하면 내가 이치를 살펴 설명한다고 해도 응당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아난설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772자이다.]
  168) 의행경(意行經) 제 7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설법하리라. 이 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이 경의 이름은 분별의행경(分別意行經)이고, 의행(意行)15)대로 태어나는 것을 설한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대로 경청하였다.
  
15) 팔리본에는 Sa kh ra로 되어 있다. 팔리어 장경의 영역본 설명에 따르면 Sa kh ra는 이 경에서 일반적인 의미와 좀 다르게 쓰였다고 한다. 즉 '의도적인 지적작용'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한역(漢譯)에서 Sa kh ra 를 행(行)으로 번역하지 않고 의행(意行)으로 번역한 것은 매우 타당하다. 영역에서는 열망 포부 열정 등의 뜻이 있는 aspiration으로 번역하였다.
[1253 / 1738] 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의행대로 태어나는 것인가? 혹 어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16)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定]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범신천(梵身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범신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범신천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고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범신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意行)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각과 관이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內靜] 한마음이 되어[一心],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제 2 선(第二禪)17)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황욱천(晃昱天)18)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황욱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제 2 선에
  
16)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인 초선(初禪)은 각(覺) 관(觀) 희(喜) 낙(樂) 일경성(一境性) 다섯 가지를 함유하고 있다.
17)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인 제 2 선은 내정(內靜) 희(喜) 낙(樂) 일심(一心) 네 가지를 함유하고 있다.
18) 황욱천(晃昱天, bhassar deva)은 곧 광음천(光音天)으로 색계 2선(禪)의 제 3 천이다.
[1254 / 1738] 쪽
  들어가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황욱천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황욱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意行)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기쁨의 욕심[喜欲]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저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 생각[念] 즐거움에 머묾[樂住] 공(空)19)이 있는 제 3 선(禪)20)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변정천(遍淨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변정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게 되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제 3 선에 들어가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게 되는데, 이 두 가지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음[無喜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변정천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변정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으며 평정[捨] 기억[念] 청정(淸淨)이 있는 제 4 선(禪)21)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과실천(果實天)에 태어나게 된다. 과실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
  
19) 고려대장경에 '실(室)'로 되어 있는데 『중아함경 』 제 1 권 세 번째 경인 성유경(城喩經)에 의거하여 '공(空)'으로 수정하였다.
20)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인 제 3 선은 사(捨) 염(念) 낙(樂) 혜(慧) 일심(一心) 다섯 가지를 함유하고 있다.
21)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인 제 4 선은 불고불락(不苦不樂) 사(捨) 염(念) 일심(一心) 네 가지를 함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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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즐거움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면서 제 4 선에 들어가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평정[捨]과 기억[念]과 청정의 즐거움[淸淨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과실천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과실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일체의 빛깔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약간의 생각[想]도 기억[念]하지 않는 한량없는 공(空)이 되고, 이 한량없는 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定]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무량공처천(無量空處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무량공처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공처의 생각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공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한량없는 공처의 생각[無量空處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공처천(空處天)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무량공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한량없는 공처를 벗어나 한량없는 식(識)이 되고, 이 한량없는 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무량식처천(無量識處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무량식처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식처의 생각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식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한량없는 식처의 생각[無量識處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식처천(識處天)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무량식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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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비구는 한량없는 식처를 벗어나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무소유처천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무소유처의 생각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무소유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무소유처의 생각[無所有處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무소유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일체 무소유처의 생각을 벗어나 비유상비무상이 되고, 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비유상비무상처천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비유상비무상처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비유상비무상처의 생각[非有想非無想處想]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비유상비무상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생각[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비유상비무상처천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비유상비무상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일체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상(想)과 지(知:受)가 멸한 촉(觸)을 성취하여 노닐고, 혜(慧)로 모든 번뇌가 사라진 지혜[諸漏盡斷智]를 본다. 저 모든 선정[定] 가운데서 이 선정을 가장 제일이요, 가장 위대하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묘하다고 말한다. 마치 소로 인해 젖이 있고, 젖으로 인해 낙(酪)이 있으며, 낙으로 인해 생소(生酥)가 있고, 생소로 인해 숙소(熟酥)가 있으며, 숙소로 인해 소정(酥精)22)이 있는데, 이 소정을 가장
  
22) 제호(醍醐)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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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이요 가장 위대하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묘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저 모든 선정 가운데서 이 선정을 가장 제일이요 가장 위대하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묘하다고 말한다. 이 선정을 얻어 이 선정에 의지하고 이 선정에 머무르고 나면 다시는 생 노 병 사의 괴로움을 받지 않나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의행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319자이다.]
  169) 구루수무쟁경(拘樓瘦無諍經)23) 제 8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기수(婆奇瘦)24)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 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그 이름은 분별무쟁경(分別無諍經)이니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극히 하천(下賤)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또한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苦行)도 구하지 말라. 이 두 가지 치우침을 여의면 곧 중도(中道)가 되나니, 그것은 눈을 이루고 지혜를 이루어 자재로이 선정[定]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또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꾸짖는 경우도 있으며,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도 있
  
23) 이 경의 참조가 될 경으로는 『장아함경 』 제32권 904번째 경이 있다.
24) 팔리어로는 Bhaggesu이고 '바기국(婆奇國)'의 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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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재(齊)를 결정하며, 결정된 사실을 안 뒤에는 언제나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라. 서로 끌어 들여 말하지 말고,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지도 말며, 절도 있게 말하고 절도 없이 말하진 말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지 말라. 이것이 분별무쟁경(分別無諍經)이니라.
  '지극히 하천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또한 지극히 괴롭기만 하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을 구하지 말라' 함은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지극히 하천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라' 함은 하나의 치우친 견해를 말한 것이고, '또한 지극히 괴롭기만 하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을 구하지 말라' 함은 또 다른 치우친 견해를 말한 것이다. '지극히 하천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또한 지극히 괴롭기만 하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을 구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이 두 가지 극단적 견해를 여의면 곧 중도로서,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자재로이 선정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8지성도(支聖道)가 있으니 바른 소견[正見]에서부터 나아가 바른 선정[正定]까지의 여덟 가지이다. '이 두 가지 극단적 견해를 여의면 곧 중도로서,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자재로이 선정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꾸짖는 경우도 있으며,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가?
  왜 칭찬하거나 꾸짖고 설법은 하지 않는가? 만일 탐욕과 서로 호응하고 기쁨 즐거움과 함께하여 지극히 하천한 업인 범부의 행을 짓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苦]이 있고 번민[煩]이 있으며, 흥분[熱]이 있고 걱정[憂]과 슬픔[]과 삿된 행[邪行]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란 무상(無常)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닳아 없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탐욕은 무상하므로 저들 모두에게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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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서로 호응하는 어떤 이치도 없는 자신의 고행(苦行)을 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저 사문 범지는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들이다. 그런데 저 사문 범지가 도리어 이 괴로움을 끌어안는다면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될 것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가령 유결(有結)25)이 다하지 않은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유결(有結)이 다하지 않으면 그 생명[有]도 또한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번민이 있고, 흥분이 있으며,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유결(有結)이 다한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고,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칭찬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유결이 다하면 그 생명[有]도 또한 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칭찬하는 것이니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자라면 또한 마음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25) 유결(有結, bhavasa yojana)의 유(有)는 생사(生死)의 과보를 말하고, 결(結)은 그 과보를 초래하는 번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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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칭찬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라면 그는 또한 마음도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칭찬한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칭찬하거나 꾸짖고 설법은 하지 않는다.
  칭찬하거나 꾸짖지 않고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가 있다. 왜 칭찬하거나 꾸짖지 않고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가? 만일 탐욕과 서로 호응하고 기쁨 즐거움과 함께하여 지극히 하천한 업인 범부의 행을 짓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왜냐 하면 '탐욕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으로서 닳아 없어지는 법이다'라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탐욕은 무상한 것이므로 저들 모두에게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여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서로 호응하는 어떤 이치도 없는 고행을 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왜냐 하면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서로 호응하는 어떤 이치도 없는 고행을 하면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므로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유결(有結)이 다하지 않은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왜냐 하면 '만일 유결이 다하지 않으면 그 생명[有]도 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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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는다. 따라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여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유결(有結)이 다한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유결이 다하면 그 생명[有]도 또한 다한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도 없고,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은 통달하지 못하고, 그저 괴로운 법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흥분이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면 그는 또한 마음을 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을 통달하지 못하여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면 그는 또한 마음도 구한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은 통달하지 못하고, 오직 괴로운 법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흥분이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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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거나 꾸짖지 않고 사람을 위해 설법하느니라.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꾸짖는 경우도 있으며,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도 있다'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제(齊)를 결정하고, 결정된 줄 안 뒤에는 언제나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며 병의 근본 등창의 근본 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食)26)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은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며, 욕심이 없는 즐거움 악을 여읜 즐거움 마음을 쉰 즐거움 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食)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며, 병의 근본 종기의 근본 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가 만일 5욕의 공덕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낸다면, 이 즐거움은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며 병의 근본 종기의 근본 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며 욕심이 없는 즐거움 악을 여읜 즐거움 마음을 쉰 즐거움 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한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 4 선을 얻게 되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 즐거움은 성인의 즐거움이며 욕심이 없는 즐거움 악을 여읜 즐거움 마음이 쉰 즐거움 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
  
26) 식(食)은 범어로 Ah ra이고 끌어들이다[牽引] 유지시키다[任持]는 뜻이다. 음식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증장시키는 것을 모두 식(食)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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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齊)를 결정하고, 결정된 줄 안 뒤에는 언제나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서로 끌어들여 말하지 말고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지도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은 진실하지 않고 허망하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고,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은 진실하고 허망하지는 않으나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며,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은 진실하고 허망하지 않으며 이치와 서로 호응한다.
  그 중에서 만일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지 않고 허망하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끝내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 중에서 만일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고 허망하지는 않지만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면 그것도 또한 배우기는 하되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 중에서 만일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이치와도 서로 호응하면 그는 때를 알아 바른 지혜와 바른 생각으로 그것을 성취시켜야 한다. 면전에서 칭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로 끌어들여 말하지 말고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지도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절도 있게 말하고 절도 없이 말하지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절도 없이 말하면 몸이 번거롭고 잊어버리기 쉬우며, 마음은 지극히 피로하고, 목소리가 쉬기도 하여, 지혜로 나아가는 사람이 자재하지 못하게 된다. 절도 있게 말하면 몸이 번거롭지 않고 쉽게 잊어버리지 않으며, 마음도 피로하지 않고, 목소리도 쉬지 않아서, 지혜로 나아가는 사람이 자재하게 되느니라. '절도 있게 말하고 절도 없이 말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혹은 옳다고 하고, 혹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혹은 발우라 말하며, 혹은 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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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말하고, 혹은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일에 대해서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라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고 또는 그르다고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르지 않고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다툼[諍]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다툼이 있는 법이며, 어떤 것이 다툼이 없는 법인가? 만일 탐욕과 서로 호응하고, 기쁨 즐거움과 함께하여 지극히 하천한 업(業)인 범부의 행을 지으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만일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는 고행을 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느니라.
  이 두 가지 치우침을 떠나면 곧 중도이다. 그것은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자재로이 선정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나니, 이 법은 다툼이 없다. 왜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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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유결(有結)이 다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유결이 다하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마음 속의 즐거움을 구하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즐거움이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라면, 그것은 병의 근본 종기의 근본 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은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즐거움이 성인의 즐거움이라면, 그것은 욕심이 없는 즐거움 악을 여읜 즐거움 마음을 쉰 즐거움 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그 중에서 만일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지 못하고 허망하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못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
[1266 / 1738] 쪽
  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는 않지만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못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이치와 서로 호응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절도 없이 말하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다. 절도 있게 말하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 하고 또는 그르다고 하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이것을 다투는 법[諍法]이라 하나니, 너희들은 마땅히 다툼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을 알라. 그리고 다툼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을 안 뒤에는 다툼이 있는 법은 버리고, 다툼이 없는 법만 닦아 익혀라. 너희들은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이렇게 큰 족성의 아들 수보리(須菩提)는 다툼이 없는 도로써 뒷날에 법을 법다이 알게 되었다.
[1267 / 1738] 쪽
  법을 진실 그대로 알아
  수보리는 게송을 읊었네.
  이 행은 진실한 공(空)이니라.
  이것을 버리고 푹 쉬어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구루수무쟁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016자이다. 『중아함경 』 제43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9,223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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