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通達無我法者 2008. 2. 19. 15:15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조주 종심 선사께 한 선승이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묻자

조주 선사께서 "없다."라고 대답하셨다.

 

趙州和尙 因僧問 拘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무문 선사 평창(評唱)

 

참선(參禪)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통달하는 데 뜻이 있고 오묘한 깨달음은 궁극에 마음 길이 끊어져야만 한다.

조사관을 꿰뚫지 못하고 마음 길을 끊지 못하면 이는 모두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와 같다.

말해 보라.

어떤 것이 조사관인가?

 

다만 이 '무(無)' 자 하나가 종문(宗門)의 한 관문(一關)이다.

이를 가리켜 선종 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 한다.

터득한 이는 친히 조주 선사를 볼 뿐만 아니라 역대 조사와 손잡고 같이 행하고, 눈썹을 맞대고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들으리니.

이 어찌 경쾌하지 않으랴.

관문을 꿰뚫고자 하는 이 있는가, 없는가?

 

삼백육십 골절(骨節)과 팔만사천의 털구멍 등 전신에 의단(疑端)을 일으켜 밤낮으로 이 '무(無)' 자를 들어 참구(參究)하되 허무한 알음알이를 짓지 말 것이며, 있다 없다는 알음알이도 짓지 말고 불타는 쇳덩이를 삼킨 것같이 토하고 토해도 나오지 않게 하여 종전의 모든 다른 생각이 없이 오래오래 두고 순숙(純熟)하면 자연히 안팎이 하나가 된다.

 

이 때는 마치 벙어리가 꿈을 꾸는 것처럼 혼자만 알다가 문득 깨달아 분명하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듯하여 관우장군이 대도(大刀)를 빼앗아 손에 쥔것과 같으니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 생사에 자유자재하며 육도사생(六道四生) 가운데 재미있게 노는 그대로가 삼매(三昧)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평생의 기력을 다하여 이 '무(無)' 자를 들되 만약 끊어지지 않게 되면 한 점 법의 촛불을 밝히기에 좋은 때이다.

 

無門曰 參禪 須透祖師關 妙悟 要窮心路絶 祖關不透 心路不絶 盡是依草附木精靈 且道 如何是祖師關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遂目之曰禪宗無門關 透得過者 非但親見趙州 便可與歷代祖師 把手共行 眉毛 結 同一眼見 同一耳聞 豈不慶快 莫有要透關底?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毫竅 通身起箇疑團 參箇無字 晝夜提 莫作虛無會 莫作有無會 如呑了箇熱鐵丸相似 吐又土不出 蕩盡從前惡知惡覺 久久純熟 自然內外 打成一片 如啞子得夢 只許自知 驀然打發 驚天動地 如奪得關將軍大刀入手 逢佛殺佛 逢祖殺祖 於生死竿頭 得大自在 向六道四生中 遊戱三昧 自作?生提 盡平生氣力 擧箇無字 若不間斷 好似法燭一點便著

 

무문 선사 송

 

개의 불성이여

온통 제시한 정령(正令)이라.

조금이라도 있다 없다에 머무르면

목숨까지 잃으리라.

 

拘子佛性

全提正令

裳涉有無

喪身失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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