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4칙 바랑을 옆구리에 끼고 법당에 오른 덕산〔德山挾複〕

通達無我法者 2008. 2. 29. 22:06
 

제4칙 바랑을 옆구리에 끼고 법당에 오른 덕산〔德山挾複〕


垂示

垂示云,靑天白日,不可更指東劃西.時節因緣,亦須應病與藥.且道,放行好.把定好.試擧看.


(수시)

청천백일에는 이리저리 발을 둘러대어 속일 수 없으며, 시절인연 또한 병에 따라 약을 쓸 뿐이다. 말해보라, 놓아주는 것〔放行〕이 좋은지, 잡아들이는 것〔把定〕이 좋은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덕산(782~865)스님이 위산(771--853)에 이르러, (擧.德山到潙山.)

-이 외골수야! 들여우 같은 놈.(擔板漢.野狐精.)


바랑을 멘 채로 법당에서,(挾複子於法堂上.)

-참으로 사람 어리둥절하게 만드는군. 실패했군.(不妨令人疑着,納敗缺.)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갔다하더니,(從東過西,從西過東.)

-참으로 선(禪)다운 기풍이 있기는 한데 어떻게 하려는지?(可煞有禪作什麽.)


뒤돌아보며 “없다, 없어!”말하고는 곧바로 나가버렸다.(顧視운, 無無,便出.)

-삼십 방망이를 쳐야 하리라. 참으로 기상이 하늘을 뚫는구나. 진짜 사자새끼가 훌륭하게 사자후를 하는구나.(好與三十棒.可煞氣衝天.眞獅子兒.善獅子吼.)

설두스님은 착어(著語)했다. “간파해버렸다.” (雪竇,着語云,勘破了也.)

-잘못되었다! 그러면 그렇게 점검했구나.(錯.果然.点.)


덕산스님이 문 앞에 이르러 말하였다. “경솔해서는 안 되지.” (德山至門首云,也不得草草.)

  -놓아주었다 잡아들이는군. 처음에는 지나치게 뽐내더니 끝에는 지나치게 굽실댄다. 허물을 알면 반드시 고쳐야 하는 법이나 그럴 사람이 몇이나 있을는지. (妨去收來.頭上太高生.末後太低生.知過必改.能有幾人.)


그러자 몸가짐을 가다듬고 다시 들어가 뵈었다.(便具威儀,再入相見.)

-여전히 이처럼 행동하는군. 벌써 거듭 실패했군. 위험! (依前作這去就.已是第二重敗缺.嶮.)


위산스님이 앉아있는데,(潙山坐次.)

-냉철한 눈으로 이 늙은이를 보라. 호랑이 수염을 만지려면 모름지기 이런 사람이라야 한다. (冷眼看這老漢.捋虎鬚,也須是這般人始得.)


덕산스님이 (절을 하려고) 좌구(坐具)를 들면서 “스님”하고 불렀다.(德山提起坐具云,和尙.)

- 그저 겉모습만 바뀌었네(이전과는 전연 다른 인간으로 재생한 것.),바람도 없는데 파도가 이는구나.( 改頭換面,無風起浪.)


위산스님이 불자(佛子)를 잡으려 하자. (潙山擬取拂子.)

-모름지기 저런 老漢이라야 된다. (張良처럼) 방안에서 모든 전략을 짰지만 어렵지 않게 앉아서 천하 사람의 혀를 꼼짝 못 하게 하는구나.

   ( 須是那漢始得.運籌帷幄之中.不妨坐斷天下人舌頭.)


덕산스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는 소맷자락을 떨치며 나가버렸다.(德山便喝,拂袖而出.)

-들여우 견해로다. 이 한 고함소리에는 방편도 있고 진실도 있으며, 관조함도 있고 활용함도 있다. 한결같이 (자유자재하기가 )마치 구름을 몰고 안개를 움켜쥐려는 자와 같은 사람 중에서 더더욱 기특하다. (野狐精見解.這一喝.也有權,也有實,也有照,也有用,一等是拏攫雲霧者,就中奇特.)


설두스님이 착어했다. “간파해버렸다.” (雪竇着語云,勘破了也.)

-잘못되었다! 그렇고말고. 점검했군!(錯.果然,点.)


덕산스님은 법당을 뒤로하며 짚신을 신고 곧바로 떠나버렸다.(德山背却法堂,着草鞋便行.)

-그의 풍모는 대견스럽지만 공안은 뚜렷하질 못하구나. 머리 위의 삿갓은 얻었지만 발밑의 신발을 잃어버렸다. 벌써 몸을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風光可愛,公案未圓.贏得項上笠.失却脚下鞋.已是喪身失命了也.)


위산스님이 저녁나절에 수좌에게 물었다. “아까 새로 찾아온 스님은 어디 있는가?”        

(潙山至晩問首座,適來新到在什麽處.)

- 동쪽에서 손해보고, 서쪽에서 본전을 뽑는다. 눈은 동남쪽을 보면서도 본뜻은 북쪽에 있다.

(東邊落節,西邊拔本.眼觀東南,意在西北.)


수좌가 말했다. “그 당시에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 떠나버렸습니다.”

  ( 首座云,當時背却法堂,着草鞋出去也.)

-신령한 거북이 자취를 남기는군. 삼십 방망이를 때려야 한다. 이런 놈은 뒤통수를 몇 대나 갈겨주어야 좋을는지? (靈龜曳尾.好與三十棒.這般漢腦後.合喫多少.)


위산이 말했다. “이 사람은 훗날 고봉정상(高峰頂上)에 암자를 짓고서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할 것이다.” (潙山云,此子.已後向高峰頂上盤結草庵,呵佛罵祖去在.)

-도적이 가버린 뒤에 활을 당기는군, 천하의 납승들이 (덕산스님을) 뛰어넘지 못하리라.

  (賊過後張弓.天下衲僧跳不出.)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로군.”(雪竇着語云,雪上加霜.)

-잘못되었다! 그렇고 말고. 점검했지! (錯,果然.点.)


(평창)

협산(夾山 : 圜悟스님의 자칭)이 세 번이나 “점검했다”했는데, 여러분은 이것을 아는가? 어느 때는 한 줄기의 풀로 장육금신(丈六金身)의 작용을 내기도 하고 어느 때는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의 풀의 작용을 내기도 한다.

덕산스님은 본디 강사스님으로서 서촉(西蜀) 땅에서 「금강경」을 강의하였다. 교학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금강유정(金剛喩定)을 얻고 후득지(後得智)를 활용하여 천겁 동안 부처님의 위의를 배우고 만겁 동안 부처님의 미세한 계행을 배운 뒤에 깨달을 수 있다 한다. 그런데, 남방의 마구니들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라고 한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분한 마음으로 「금강경」의 주석서를 짊어지고 바로 남방으로 찾아가 그 마구니 무리들을 부수어 버리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이처럼 발분한 것을 본다면 참으로 용맹스럽고 영리하다 하겠다.

처음 예주(澧州)에 도착하여, 길거리에서 기름에 튀긴 떡을 파는 노파를 만나,「금강경」의 주석서를 내려놓고 떡을 사서 점심(點心)을 하려고 하였는데 노파가 물었다.

“등에 지고 있던 것은 무엇이오?”

“「금강경」의 주석서요.”

“내가 한 가지 물을 게 있는데 만일 그대가 답한다면 이 기름에 튀긴 떡을 그냥 보시하여 점심을 드리겠지만, 대답하지 못할 경우엔 다른 곳을 찾아가 먹도록 하시오.”

“묻기만 하시오.”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도 얻지 못하며, 현재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미래의 마음도 얻지 못한다’하였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을 점검하려 합니까?” 덕산스님이 말을 못하자 노파는 용담(龍潭)스님을 찾아가라고 가르쳐주었다.

덕산스님은 문턱에 서자마자 물었다. “용담스님! 늘 흠모했었습니다. 헌데 와서 뵈오니 연못〔潭〕도 보이지 않고 용(龍) 또한 나타나질 않네요.”

용담스님이 병풍 뒤에 몸을 숨기고 말하였다.

“그대가 몸소 용담에 왔네.”

덕산스님이 이에 절을 올리고 물러 나왔다. 밤이 되자 용담스님의 방으로 들어가 옆에서 모시고 섰는데 밤이 깊어갔다. 용담스님이 말하기를,

“왜 너의 처소로 내려가지 않느냐?”

덕산스님이 드디어 “자 그럼”하고 인사를 드린 후 주렴을 걷고 나와 서려니 바깥이 칠흑처럼 캄캄하였다. 다시 돌아와 “문 밖이 어둡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용담스님은 종이에 불을 붙여서 덕산스님에게 건네주었다. 덕산스님이 이를 받아들려는 찰나에 용담이 ‘후’하며 바람을 불어 꺼버렸다. 이에 덕산스님이 활연하게 완전히 깨치고 절을 올리니, 용담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보았기에 갑자기 절을 하는가?”

“저는 지금 이후부터 다시는 천하 선사스님네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 이튿날 용담스님이 상당(上堂)하여 법문을 하였다.

“만일 이빨은 칼로 된 숲과 같고 입은 시뻘겋게 크게 벌리며 한 방망이 얻어맞고도 뒤도 안 돌아보는 놈이 있다면, 후일 그는 고봉정상에서 나의 도를 세울 것이다.” 덕산스님이 드디어 「금강경」주석서를 법당 앞에 가져다 놓고 횃불을 들고 말하였다.

“현묘한 변론을 다하여도 마치 넓은 허공에 하나의 털을 둔 것과 같고, 세간의 가장 중요한 것을 모두 갖추었다 해도 이는 큰 바다에 물 한 방울을 던지는 것과 같다.”말을 마치고 이를 태워 버렸다.

그후 위산스님의 교화가 성대하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위산스님을 찾아가 작가 선지식의 솜씨로 상대해보려 하였다. 이에 짐도 풀지 않고 곧장 법당으로 올라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왔다갔다하다가 돌아보면서 “없다, 없어!”하고서 곧 나가 버렸다. 말하보라, 그 뜻이 무엇인가를. 미친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잘못 이해하고 (덕산스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말씀 한 것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가 이처럼 한 것을 보면 꽤 기특하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이르기를 “무리 가운데에서 뛰어나려면 모름지기 영특한 놈이라 하며, 뛰어난 놈에게 필적할 만한 것이 바로 사자이다. 부처를 선발하는 데 이같은 안목이 없다면 설령 천 년을 지낸들 또한 무엇하랴!”고 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사방으로 통달한 도인〔作家〕이라야 비로소 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왜냐하면 불법에는 잡다한 것〔許多事〕이 없는데 어디에다가 정견(情見)을 붙일 수 있을까? 마음의 움직임〔心機〕에 허다한 번거로움이 있겠는가?

이 때문에 현사(玄沙)스님은 말하였다. “마치 가을 연못에 어린 달 그림자와 같고 고요한 밤에 울리는 종소리와 같아서, 두드리더라도 이지러짐이 없고 파도에 부딪쳐도 흩어짐이 없는 상태에 이를지라도, 이는 오히려 생사 언덕 위의 일이다” 이렇게 되면 또한 득실과 옳고 그름도 없으며, 기특함이나 현묘함도 없다. 이미 기특함도 현묘함도 없으니 그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왔다갔다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말해보라, 그 뜻이 무엇인가를.

위산의 늙은이 또한 그에게 말려들지 않았다. 만일 위산스님이 아니었더라면 그에게 한 차례 당했을 것이다. 위산의 노작가 선지식이 (덕산스님을) 상대한 것을 보면 그저 넌지시 성패(成敗)를 관찰했을 뿐이다. 만일 찾아온 상대의 근기를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이와 같을 수 있었겠는가?

설두스님이 착어하였다.

“勘破해 버렸다.”

마치 쇠말뚝 같구나. 대중들은 이를 일컬어 착어(著語)라 한다. 비록 양쪽에 걸쳐 있지만 양쪽에 얽매이지 않는다. “간파해 버렸다”는 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어디가 간파한 점인가? 말해보라. 덕산스님을 간파했는가, 위산스님을 간파했는가?

덕산스님이 문에 이르렀을 때 본전을 뽑으려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경솔해서는 안 되지 …….”이는 위산스님과 오장(五臟)을 드러내 놓고 한바탕 법담을 겨루려고〔法戰〕했던 것이다. 다시 위의를 갖추고 되돌아와 뵈었다. 위산스님이 앉아있는데 덕산스님은 (예를 올리려고) 좌구를 들면서 “스님”하고 부르자, 위산스님이 (인사 받을 준비로써) 불자(拂子)를 집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덕산스님이 소리를 지른 뒤 소매를 떨치면서 나가 버렸다. 참으로 기특하다 할 만하다.

대중들이 흔히들 “위산스님이 그에게 겁을 주었다”고들 말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 위산스님 또한 허둥대지 않았다. 그래서 옛말에 “새를 능가하는 지혜가 있어야 새를 잡을 수 있으며, 남보다 뛰어난 지혜가 있어야 남을 잡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선(禪)을 참구하면 온 누리 삼라만상 천당 지옥 풀잎 사람 축생이 일시에 소리를 외쳐도 그는 안중에 두지도 않는다. 선상(禪床)을 뒤엎고 큰 소리로 대중을 흩어버린다 해도 그는 되돌아보지도 않을 것이다. 높기는 하늘같고 두텁기는 땅 같았다. 위산스님이 천하 사람의 혀를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솜씨가 없었다면 그때에 덕산을 시험하기가 몸시 어려웠을 것이며, 1천5백 대중을 거느리는 선지식(善知識)이 아니었더라면 여기에 이르러 대꾸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위산스님은 (장량처럼) 방안에서 작전을 세워 천 리 밖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덕산스님이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은 채 곧바로 나가 버렸는데 말해보라, 그 뜻이 무엇인가를. 덕산스님이 이겼는가, 졌는가? 위산스님이 이렇게 한 것이 이긴 것인가, 진 것인가?

설두스님은 “간파해버렸다”고 착어하였다. 이는 그가 애써 고인의 어려운 말씀의 핵심을 꿰뚫어 보았기에 비로소 이처럼 기특할 수 있었다.

내〔訥堂〕가 말하건대, “설두스님이 두 번씩 ‘간파해버렸다’라고 착어하여 두 동강을 내어 이 공안을 밝혔으니, 이는 마치 곁에 있던 제삼자가 두 사람을 단안내려주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 뒤 위산스님이 느긋하게 석양 무렵에 이르러서야 수좌에게 “아까 새로 왔던 스님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하고 묻자, “그 당시에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서 나가 버렸습니다”라 답하니, 위산스님은 “그 사람은 후일 고봉정상에 암자를 짓고서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할 것이다”하였다. 말해보라, 그 뜻이 무엇인가를. 위산스님은 좋은 뜻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덕상스님이 그후로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기를 비바람 치듯 했으나, 여전히 그(위산스님)의 소굴에서 나오질 못하고 이 늙은이에게 여전히 그 (위산스님)의 소굴에서 나오질 못하고 이 늙은이에게 일상의 솜씨를 간파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위산스님이 그에게 수기(受記)를 주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연못〔潭〕이 넓어서 산(山)을 집어넣을 만하고 살쾡이가 표범을 굴복시켰다고 해야 할까? 만약 이와 같다면 좋아하고 있네! 아무런 관계가 없다.

설두스님은 이 공안의 핵심을 알았으므로 감히 덕산스님을 위하여 단안을 내려 다시 이를 “설상가상”이라 착어하여 거듭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만일 이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그대가 위산․덕산․설두스님과 함께 동참했다고 허락하겠지만, 알아차리질 못했다면 절대 허튼 알음알이를 내지 말도록 하라.

(송)

첫 번째 간파하고, (一勘破.)

- 말이 아직 귓전에 남아있네(어떻게 알고 있나?) 지나간 일이야! (言猶在耳.過.)


두 번째 간파함이여.(二勘破.)

- 이중 공안이로다. (兩重公案.)


설상가상이군. 위험할 뻔했다.(雪上加霜. 曾嶮墮.)

-이상의 세 착어가 모두 다르구나! 어디가 다른가? (三段不同.在什麽處.)


비기장군(飛騎將軍)이 오랑캐의 조정에 들어가니,(飛騎將軍入虜庭.)

-위험! 전투에 진 장수는 애써 목 벨 게 없다. 다 죽은 시체인걸.

  (嶮.敗軍之將,無勞再斬,喪身失命.)


다시 살아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在得完全能機箇.)

-간신히 살아서 돌아왔다.( 死中得活.)


급히 달아났지만,(急走過.)

-주위에 사람이 없는 듯이 구는군.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아 너의 신통술을 발휘한들 무슨 쓸모가 있는가?(傍若無人.三十六策.盡你神通.堪作何用.)


(위산스님이) 놓아주지 않으니,(不放過.)

-살쾡이가 표범을 굴복시킨다. 덜미〔鼻孔〕를 잡혔구나.(理能伏豹,穿却鼻孔.)


고봉정상 풀 속에 앉아 있도다.(高峰頂上草裏坐.)

-과연 그렇군. 덜미를 잡았다 하더라도 기특할 거 없구나. 무엇 때문에 풀 속에 앉아 있는가?

(果然,穿過鼻孔,也未爲奇特.爲什麽却在草裏坐.)


쯧쯧! (咄. )

-알았느냐? 두 칼날이 모두 상했구나. 두셋 짝을 지어 옛길을 가며 서로 함께 노래하며 박수치는구나. (원오스님은) 후려쳤다. (會麽.兩刀相傷.兩兩三三舊路行.唱拍相隨.便打.)



(평창)

설두스님이 공안 일백칙(一百則)을 송(頌)하면서 매칙마다 향을 올리고 이를 써냈다. 이 때문에 세상에 크게 유행하게 된 것이다. 그는 문장도 이해하고 공안을 꿰뚫고 더넓게 익힌 후(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것)에 붓을 들었다. 왜 이처럼 했을까? 용과 뱀은 분별하기 쉽지만 납승을 속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설두스님은 이 공안을 확철히 깨치고 마디마디 어려운 곳에 세 구절의 착어를 붙여 송하였다.

“설상가상이군. 하마터면 위험할 뻔했군.” 그렇다면 덕산스님은 어떤 사람인가? 이는 참으로 이광(李廣)을 닮았다. 이광은 타고난 천성이 활쏘기를 좋아하였는데, 천자〔漢 孝文帝〕가 그를 비기장군(飛騎將軍)에 봉하였다. 그는 오랑캐의 나라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선우(單于 : 匈奴族의 왕) 에게 사로잡혔다.

당시 이광은 상처를 입었으므로 두 마리 말을 묶어 누울 수 있게 마련한 후 그 사이에 누었다. 이광은 죽은 체하고 잇다가 그 곁에 훌륭한 말을 타고 가는 한 오랑캐를 엿보았다. 이에 몸을 솟구쳐 말에 오르는 순간 오랑캐를 밀쳐 떨어뜨리고 그의 활과 화살을 빼앗아 말을 채찍질하여 남쪽으로 달리면서 추격해오는 기마병을 활로 쏘아 격추시켰다. 그리하여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설두스님은 송에서 이를 인용하여 덕산스님을 다시 들어가 뵙고는 의연히 도망 나올 수 있게 된 것을 비유하였다.

저 옛사람(위산스님)을 살펴보면, 견처(見處)도 말도 수행도 용처(用處)도 참으로 영특하다고 하겠다. 사람을 죽이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솜씨가 있어야만이 비로소 그 자리에서 부처를 이룰 수 있으며, 그 자리에서 부처를 이룬 사람이어야 자연히 사람을 죽이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비로소 자유자재할 수 있는 경지가 있는 것이다.

요즈음 사람은 어떤 사람이 물으면 처음에는 마치 납승의 기개가 있는 듯하다가 살짝만 내질러도 허리가 동강나고 정강이가 끊어져 지리멸렬하여 조금도 지속성이라곤 없다. 이 때문에 옛날에 洞山良价(807--869)스님은 寶鏡三昧에서 “지속하기가 어렵다”고 말하였다. 덕산스님과 위산스님을 보니 이와 똑같았다. 어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단절되는 견해였겠는가.

“다시 살아나올 이가 몇이나 될까?” 급히 달아났지만, 덕산스님이 소리치고 바로 나와버렸던 것은 마치 이광이 사로잡힌 뒤에 꾀로써 한 발의 화살로 적장을 사살하고서 오랑캐의 나라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과 같다. 설두스님의 송은 여기에서는 상당히 기묘함이 있었다.

덕산스님이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서 떠나버렸으니 잘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은 이 늙은이 (위산스님)가 여전히 그가 머리를 내밀도록 버려두지 않았음을 모른 것이다. 그래서 설두스님이 “놓아주지 않으니”라고 말했던 것이다.

석양 무렵에 이르러 수좌에게 “아까 새로 찾아온 스님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수좌는 “그 당시에 법당을 등지고 짚신을 신고서 나가 버렸습니다”라고 하니, “그는 후일 고봉정상에 암자를 짓고서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리라”고 했으나, 이것이 어찌 놓아준 것이겠느냐! 참으로 기특하다.

그런데 설두스님은 무엇 때문에 “고봉정상 풀 속에 앉아 있도다.”라고 하며, 또다시 소리 치려는 것인가? 말해보라. 핵심이 어디에 있는가? 다시 30년을 참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