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추회요(冥樞會要)

127. 사념처가 없으면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4:43
 

사념처가 없으면

 

39-8-127 若不依宗鏡中 四念處行道 設有智解修行 皆成外道. 所以云 若無念慧 一切行法 皆非佛法 非行道人. 皆空剃頭 如放牧者 空著染衣 如木頭幡 雖執甁錫 如病人乞具 雖讀誦經書 如盲人誦賦 雖復禮拜 如碓上下 雖復興造 媒衒客作 種樹貨易 沈淪生死 蠶繭自纏 無解脫期. 捨身命財 但得名施 非波羅蜜. 雖復持戒 不免雞狗 雖復精進 精進無秀媚 雖復坐禪 如彼株杌.



만약 종경 가운데의 사념처에 의지하여 수행하지 않는다면 설사 지혜로 알아 수행함이 있더라도 모두 외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념처의 지혜가 없다면 일체 모든 수행법이 부처님의 법이 아니니, 부처님의 도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 부질없이 머리를 깎은 모습이 마치 소나 양을 치는 사람의 모습과 같고, 헛되게 가사와 장삼을 입은 모습이 마치 나무 막대기에 깃발을 걸쳐 놓은 모습과 같으며, 비록 물병과 석장을 들고 있더라도 병든 사람의 구걸하는 도구와 같고, 경서(經書)를 독송하더라도 장님이 글을 읽는 것과 같으며,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더라도 디딜방아가 위 아래로 움직이는 모습과 같고, 불사(佛事)를 왕성하게 일으키더라도 남한테 자랑삼아 부질없이 하는 일과 같으며, 나무를 심고 재물을 바꾸어 불사를 하더라도 생사에 빠짐이 누에가 스스로 얽혀 빠져나올 기약이 없는 것과 같고, 생명과 재물을 버리더라도 단지 명예를 얻기 위한 보시이니 참된 바라밀이 아니며, 비록 계율을 갖더라도 집 지키는 개나 새벽에 우는 닭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정진하더라도 특별히 빼어난 경지가 없으며, 좌선하더라도 나무 덩어리를 세워 놓음과 같을 것이다.

雖復知解 狂顚智慧 常在此岸 不到彼岸. 不降愛見 不破取相 不得入道品 非賢聖位. 問 此平等法性一乘妙心 一切衆生聲聞緣覺菩薩諸佛 悉皆共稟 云何於異生界等 此一靈性 念念處輪迴 於聲聞乘 同共一法中 而不得此事. 答 如黃石中金 以福德爐火因緣成就. 若大福人得金 中福人得銀 下福人得銅. 此亦如是 凡夫人唯得煩惱無明 聲聞人但證無常生滅 唯佛菩薩究竟常樂涅槃.



비록 이해한다 하더라도 미치광이 지혜일 뿐, 언제나 사바세계에 머물며 극락정토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애욕의 견해를 항복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집착하는 상을 타파하지도 못하였으며, 진정한 도에 들어갈 수도 없었으니 현자나 성인의 위치가 아니다.


문 : 이 평등한 법성과 일승(一乘)의 오묘한 마음은 일체중생과 성문․연각․보살과 모든 부처님이 다 함께 지닌 것인데, 어떻게 중생계에서는 이 하나의 신령스런 성품이 생각 하나하나가 있는 곳에서 윤회한다 하며, 성문의 가르침에서는 신령스런 성품이 똑같이 하나의 법 가운데 있는데도 이 일을 얻지 못한다 하십니까.

답 : 이것은 마치 누런 돌 속에 섞여 있는 금과 같으니, 이 금은 복덕에 비유할 수 있는 용광로 불이라는 인연을 만나야 온전한 금이 된다. 이 금광석을 녹이는 과정에서 만약 큰 복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을 얻을 것이나, 중간의 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은()을, 복이 없는 사람이라면 동()을 얻을 것이다. 질문한 내용도 이와 같아 범부는 오로지 번뇌인 무명을 얻고, 성문은 단지 무상한 생멸만을 증득하나, 오직 불보살만이 구경에 열반을 항상 즐기는 것이다.

如大集經云 如然燈器 金則黃光 銅則赤光 其色雖異 燈無差別.


이것은 ꡔ대집경ꡕ에서 “마치 등불을 밝히기 위한 도구가 금 등잔이면 황금 빛이 나고, 구리 등잔이면 적색 빛이 나는 것과 같다. 나타나는 빛의 색깔이 다르더라도 타오르는 등불에 차별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