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13. 용감히 물러선 두 스님 / 동양(東暘)스님과 초석(楚石)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7:54
 

 

 

13. 용감히 물러선 두 스님 / 동양(東暘)스님과 초석(楚石)스님


동양(東)스님이 도량사(道場寺)의 주지로 있을 때 낭승(廊僧:사원 외무를 관리하는 승려)의 무고로 선정원(宣政院)에 소송이 제기되는 일이 있었다. 선정원에서는 이 사건을 본각사(本覺寺) 주지 요암(了艤)스님에게 위임하여 그 고을 군수와 함께 그들의 잘잘못을 다스리도록 하자 요암스님은 말하기를,

”동양스님은 규율을 엄격히 지키고 대중을 엄숙히 다스리므로 그 아래에 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함부로 소송을 일으켜 그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들이 이제 우리 무리 속에 뒤섞여 있고 관리는 한가롭게 관아 위에 앉아 동양스님을 취조하려드니, 이 일을 내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하고서 곧장 남당사(南堂寺)로 물러가 버렸다.

초석(楚石)스님이 가흥(嘉興) 천령사(天寧寺)에 주지로 있을 때였다. 마침 관리가 관청을 중건하려는데 재목과 돌이 부족하여 스님들이 살지 않는 마을의 폐사(廢寺)를 헐어 필요한 물자를 충당하고자 여러 사원의 주지들과 의논하였다. 당시 초석스님은 안된다고 힘껏 말렸으나 관리가 받아들이지 않자 드디어 사퇴의 북을 두드리고 해염(海鹽) 천령사(天寧寺)로 돌아와 버렸다.

두 노스님은 모두 과감히 의리를 행하고자 높은 주지의 지위를 마치 헌신짝 보다도 더 가볍게 버렸다. 그러나 오늘날엔 자신이 화를 당하면서도 지위에 연연하여 차마 버리지를 못하니 이를 어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