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35. 전생 일을 깡그리 잊어버리다 / 말산(末山)스님과 서응(瑞應)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48
 

 

 

35. 전생 일을 깡그리 잊어버리다 / 말산(末山)스님과 서응(瑞應)스님


건령부(建寧府)에 한 승려가 있었는데 그의 법명은 말산(末山)이다. 후일 그의 일생을 점친 한 행의 시를 살펴보니 “한 그루의 나무를 잿마루 위에 옮겨심는다. [一木移來嶺上安]”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는 조물주가 그의 이름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일목(一木)'이란 끝 말(末:一+木)자를 의미하며 “영상(嶺上)'이란 산(山)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를 합하여 “말산(末山)'이라는 이름으로 본 것이다.


그는 좋은 인연 만들기를 즐겨하여 길을 닦고 교량을 놓아주는 등 수없이 많은 선행을 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 그 고을 추씨(鄒氏)의 꿈에 현몽하였고 태어날 때도 그의 친구가 같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자라나면서 그는 전신이 승려였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승려들과 사귀기를 싫어하고 목석처럼 어리석고 멍청했다.

한편 항주 천목산(天目山)의 의 단애(義斷崖)스님은 고봉(高峰)스님을 뵙고 깨달아 그에게 귀의한 자가 매우 많았다. 그가 죽어서는 오흥(吳興)의 가난한 집안에 현몽하여 다시 태어났으며 후일 승려가 되었는데 그의 법명은 서응(瑞應), 자는 보담(寶曇)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사람들의 예배와 공양을 받아보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내가 천계사(天界寺)에 있을 무렵 보담스님도 그곳에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그가 하는 일을 살펴보니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변변찮았고 때론 자신의 내력을 묻는 이가 있으면 오직 부끄러워하였다.

이 두 사람의 전신은 모두가 비범한 자들이었는데 어찌하여 전생에 익혔던 바를 이토록 깡그리 잊어버릴 수 있을까? 옛사람의 말에 의하면, 성문도 오히려 모태에서 나올 때 깜깜해지고 보살도 생을 바꾸면서 혼미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행인이 어찌 삼가하지 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