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본지풍광(本地風光) / 긍정치 않다

通達無我法者 2008. 3. 7. 13:41

 

 

 

본지풍광(本地風光) / 긍정치 않다

한번 주장자를 내려치고 말씀하되
“일, 이, 삼, 사 오로다.”
또 한번 내려치고
“오, 사, 삼, 이, 일이로다.”
주장자를 무릎 위에 가로 얹고 말씀하셨다.
수미산 꼭대기에서 흰 물결이 하늘에 치솟고
큰 바다 파도 속에서 붉은 티끌이 땅을 휩쓴다.

구봉스님*이 석상수좌*에게 물었다.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쉬어 가고 쉬어 가며, 한 생각이 만년까지 이어가며, 찬 재 마른 나무 같이 기며, 한 가닥 흰 실같이 뻗쳐 간다”하셨으니 말해 보라. 어떤 일을 밝히신 것인가?’

석상 경제라는 유명한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조실 스님을 누구로 모셔야 하느냐는 것이 산중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석상스님의 희하에 수좌 스님 한 분이 계셨는데. 요사이 말로 하면 부조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덕이 높고 지견이 아주 깊고 해서 산중 대중 스님들이 모두 다 이 스님을 조실로 모시자고 의논이 되었습니다. 그때 구봉스님이라는 이가 석상스님의 시자로 있었는데, ‘아무리 대중 스님들이 그렇게 말하지만은 나는 의견이 다르다. 내가 한번 법문을 물어 보고해야지 무조건 그렇게 할 수는 없다’하고 이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일색변사一色邊亊를 밝히신 것이니라’

일색변사란 ‘천상만상. 하나하나가 평등하다. 모든 것이 다 절대 평등하다’는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말하면 온 우주에 눈이 하얗게 와서 덮혀 있는 모습, 눈빛만으로 덮혀 있지 다른 빛은 볼 수 없는 그런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사의 뜻은 모르는 것이다.”

내 묻는 말에 그렇게 대답하면 큰스님의 말씀을 절대로 모르는 사람이니 조실 될 자격이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내가 나를 긍정치 않는단 말이냐? 그럼 향을 가져 오너라.”
수좌가 이에 향을 피우면서 말하였다.
“내가 만약 선사의 뜻을 알지 못했다면 향 연기 일어날 때 생사를 벗어나 죽지 못하리라.”

한 줄기 향이다 하기 전에 내가 곧 열반에 들 것이다. 그 안에 내가 좌탈하지 못한다면 선사의 도리를 모르는 것이 되고. 열반에 들면 그만치 나는 생사에 자유가 있으니 내가 선사의 뜻을 아는 것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에 향연기가 일어나자마자 바로 앉아서 곧 숨을 거두니 구봉스님이 그 수화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은 없지만 선사의 근본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이렇게 수좌 스님이 향을 꽂고 연기가 피어 오르자 합장을 하고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누가 보든지 참으로 생사에 다 자유자재한 실력이 있는 큰스님이라는 말입니다. 대중들이 웅성거리며 시자가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도덕이 높은 분을 잃게 되었다고 분위기가 험악해졌습니다. 그때 구봉스님이 수좌스님의 등을 어루만지며 앉아 가고 서서 죽는 것은 당신뿐이 아니라 생사에 대자유한 도력은 있지만 그대로 선사의 근본 뜻은 역시 몰랐다고 한 것입니다.

스님께서 이 법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착어하셨다.

이익이 있고 없고 간에 시장을 떠나지 않는다.

이 착어의 말을 알면 앞의 석상스님의 법문이나 수좌와 구봉스님의 법문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법문용 보통 피상적으로 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누가 보든지 좌탈입망 해도 선사의 도리는 모른다 했으니 수좌가 실제로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고 대개는 그렇게 많이 봅니다.
이 공안이 지극히 알기 어려우니 옛부터 법문이 많으나 그 뜻을 바로 아는 이 드물다.

천동 각선사가 송하였다.
석상의 한 종파를 친히 구봉에게 전하니
향 연기에 숨져 가도 바른 법맥을 통하기 어렵다.
달 속에 등우리 친 학은 천 년 꿈을 꾸고
눈 집 속에 사는 사람은 일색공一色空에 미迷했다.
시방을 앉아 끊어도 오히려 이마에 점이 찍히니
가만히 한 걸음 옮겨야 날으는 용을 보리라.

스님께서 이 법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착어하셨다.
억 !
이 여우새끼여, 캄캄해 모르니 옛사람을 비방하지 말아라.

천동 각선사도 철통 같은 그런 견해를 가지고 공연히 석상도 비방하고, 구봉도 비방하니 그래서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만이 이 석상의 도리를 알 수 있느냐, 다음 법문을 잘 들어 보시오.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초가을 늦여름에 형제들이 혹 동으로 가고 혹 서로 가거든 모름지기 만리 먼 길에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곧바로 가라.”

지금 해제를 하게 되는데 여름은 끝나 가고 가을은 다가오고 있다. 너희들이 혹 동으로 가고 서쪽으로 천리 만리를 가더라도 풀빛이 보이는 곳으로는 가지 말아라. 만일 풀을 찾아 볼 수 있고 풀잎이 보이는 곳으로 간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공부를 바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 말하였다.
“다만 만리 먼 길에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어떻게 가겠느냐?”
석상스님이 이 법문을 듣고 말하되,
“문을 나서면 문득 다 풀이니라”

그 당시 석상스님은 고행을 하실 때인데 이름을 숨기고 남의 집 머슴살이도 하며 파묻혀 살았습니다. 그때 어느 행각하는 스님을 만나 동산스님의 해제 때 하신 법문을 전해 듣고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석상스님은 동산스님과는 정반대로 말씀했습니다. 혹 말하기를 문에 들어가고 나가고 하면 그건 풀이 아니냐 이렇게 볼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 석상스님의 뜻을 근본적으로 모르는 것입니다.
너희가 볼 때는 얻어 먹는거지, 남의 일이나 해 주는 머슴같이 보일는지 모르지만 실지로는 일천오백 명이나 되는 큰 대중을 거느릴 수 있는 대선지식이라고 감탄하신 것입니다.

하니, 동산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하였다.
“ 이는 일천오백의 선지식 말이로다. 또 큰 당나라 안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이 법문에 대해서 스님께서 이렇게 착어하셨다.
아침에는 삼천이요, 저녁에는 팔백이라.
산문에서 합장하고 불전에서 향을 사룬다.

이것은 두 큰스님의 높고 깊은 법문이니 만일 투철하여 남음이 없으면 수좌와 구봉시자의 부질없는 갈등을 알거니와 혹 그렇지 못하면 옛 사람의 평론을 들어 보이리라.

화엄 각*선사가 말하였다.
“종사가 행하는 곳은 불이 얼음을 녹임과 같아서 시비의 관문을 뚫고 지나가고 모든 기틀에 득실이 없다. 모두 말하되 수좌는 일색에 머물러 있고 구봉시자는 지견이 스승을 뛰어난다 하니, 가히 체는 묘하나 그 종지를 잃었고 전혀 그 향배를 모른다 하리라. 참으로 수좌는 해오라기가 눈 속에 서 있으나 종류가 같지 않음과 같고, 구봉시자는 봉황이 붉은 하늘에 날더라도 금 그물에 걸리지 않음과 같음을 모른다. 한 사람은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서있고, 한 사람은 깊고 깊은 바다 밑을 가는 것이니, 각각 자기의 방위를 따와서 같아 구중궁궐에 모임이로다.
이제 이 두사람을 아는가?”
불자를 세우고 말하되,
“용이 푸른못에 누워 있으니 바람이 늠름하다.”
하고, 불자를 눕히고 말하였다.
“학이 하늘로 돌아옴에 등이 하늘을 스친다.”

스님께서 할을 하시고 착어하셨다.
억 !
삿된 법은 부지하기 어렵다.

원오선사가 송하였다.
죽음 가운데 삶을 얻는 사람은 무수하나
삶 가운데 죽음을 얻음은 옛부터 드물다.
마른 나무에 봄에 일찍 돌아옴만 알고
찬 재에서 다시 불꽃 일어나는 때를 모른다.
구봉시자여, 참으로 어리석으니
비록 선사의 뜻은 알았으나
온몸이 함정에 빠짐을 면치 못하느니라.

딴 사람이 볼 때는 수좌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고 건시자는 참말로 법을 아는 사람같이 보이지 않느냐. 그렇지만은 그것은 그렇지 않다. 보통사람이 볼 때는 수좌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고 구봉은 아는 사람인데, 원오스님은 어째서 구봉스님이 범 잡는 함정에 빠져 도리어 죽었다고 말하느냐? 이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스님께서 이 법문에 대해서 이렇게 착어하셨다.
보지 못하였는가. 만송스님*이 말하되, ‘집안의 시설은 구봉만 못하지마는 이치에 들어간 깊은 법문은 수좌가 오히려 백보나 앞섰다’고 하였다.
억!
사람을 모함하는 죄는 죄로서 처벌하느니라.

대중들이여, 이러하니 이 한 얽힘의 공안은 필경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는가?
한참 묵묵한 뒤에 말씀하였다.
산호 베개 위에 흐르는 두 줄기 눈물이여
한 줄기는 그대를 생각함이요, 한 줄기는 그대를 원망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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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도건九峰道虔/당말. 오대의 시람, 생물연대 미상. 석상경제石霜慶諸의 법사, 청원하 오세.
•일색변사一色邊亊/일색은 눈이 온 세계를 덮은 것같이 순일무잡 절대의 뜻, 차별 상대를 초월한 평등세계.
•석상경제石霜慶諸/ 807-888. 도오원지道吾圓知의 법사, 청원하 사세.
•화엄조각華嚴組覺 / 송대의 사람, 생물연대 미상. 임제종 앙기파, 원오극근의 법사, 남악하 십오세.
•만송행수萬松行秀/1166-1246. 조동종, 설암雪巖 만萬의 법사, 청원하 십칠세. 「天童百則頌古」를 비판한 「從容錄」은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