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본지풍광(本地風光) / 손과 주인

通達無我法者 2008. 3. 19. 11:21
본지풍광(本地風光)

손과 주인

임제대사는 사람만 보면 ‘할喝’을 하고
덕산 노인은 문에 들어서면 문득 때리니
곤륜산은 높은 허공 가운데 거꾸로 서 있고
큰 바다는 가는 티끌 속에 뒤집혀졌다.
우르릉 하는 봄 우뢰에 하늘 문이 활짝 열리고
산들산들 부는 훈풍에 땅이 널리 윤택하다.
다리 셋인 무쇠말은 바다 위를 급히 달리고
외눈박이 나무소는 불더미 속에서 편히 잠자니
살쾡이와 흰 암소는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놀며
옛 부처와 후세조사는 머리 부서지고 골이 찢어진다.
억 !
말해 보라, 이 할이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는가?

임제스님은 사람만 보면 소리를 질렀는데 그 뜻은 얘기할 수 없지만 말만은 좀 하겠습니다. 불교의 여러 종파에 있어서 불교의 생명을 가장 잘 전한 것이 선종이라고 말합니다. 선종에 있어서도 임제종이 으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임제종의 종조되는 임제스님은 법을 쓰되 어떤 법을 많이 썼나 하면 사람만 보면 고함을 쳤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반 보면 공연히 고함만 치는 그 뜻이 무엇인가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냥 헛고함만 치는 것이 아니니 그 뜻을 바로 알면 부처님이 샛별을 보고 도를 깨친 근본 입각처를 확실히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임제스님이 소리를 지르고 고함을 치는 것이 그냥 범상하게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고 불교의 근본 생명을 전한 아주 깊은 법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덕산스님은 사람이 앞에 보이기만 하면 몽둥이로 때려 주었습니다. 왜 사람이 눈에 어른거리면 때리기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참으로 부처님과 조사스님네의 근본법을 바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쓸데없이 사람만 보면 소리 지르고 몽둥이로 두드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임제스님이 소리 지르는 뜻. 덕산스님이 몽둥이로 사람 때리는 뜻 그것을 확실히 알면 일체 불법의 근본 뜻을 완전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화두를 열심히 해서 확철히 깨쳐야만 이 도리를 알지, 깨치기 전에는 누구도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곤륜산은 중국 동쪽에 있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조그마한 돌도 불구나무를 서지 못하는데, 곤륜산 같은 그렇게 높고 큰 산이 허공에 거꾸로 불구나무를 설 수 있나. 새빨간 거짓말 아닌가. 혹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임제스님이 소리를 지르고 덕산스님이 몽둥이로 때리는 뜻을 확실히 알면 곤륜산이 저 태허 공중에서 거꾸로 물구나무 선 도리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창명이란 큰 바다를 말하는데 바다가 그냥 다 뒤집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째서 조그마한 티끌 속에서 그 큰 바다가 뒤집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임제스님과 덕산스님의 법을 쓰는 용처用處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어떠하냐 하면 온 천지가 개벽하게 천둥을 치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문이 열리고 따뜻한 바람이 솔솔 부니 온 대지가 널리 윤택하더라. 그런데 다리 셋 가진 쇠로 만든 말은 바다 위로 달음박질한다. 무쇠로 만든 말은 땅 위로도 갈 수 없는 것인데 어째서 그리고 또 보통 말이라면 다리가 네 개인데 어째서 세 개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다 뜻이 있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잘 알아서 들으시오. 눈을 하나 가진 나무로 만든 소는 불더미 위에서 잠을 잔다고 하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무로 만든 소라면 불덩이 위에 오르면 당장 타 버릴 것인데 어째서 나무소가 불 위에서 점을 잘 수가 있나, 그것도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겠지만 내가 어찌 거짓말을 해서 대중을 속이겠습니까. 거기에 갚은 뜻이 있으니 그것을 알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 법을 씀에 있어서 살쾡이와 흰소 같은 짐승은 환희심 내어 좋아 춤을 추고 부처와 조사는 머리가 깨져 죽어 버리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참 묵묵한 뒤에 말씀하셨습니다.
二三千 곳곳마다 풍류놀이하는 누각이요.
四五百 거리마다 화류花柳의 마을이로다.

이삼천二三千은 숫자가 많은 것을 말하니 곳곳마다 가야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고 놀고. 봄이 오면 꽃이 피고 버들가지가 늘어져 온 대지가 봄소식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 게송의 뜻을 알면 앞 말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공부를 해서 깨쳐야 아는 것이지 사량복탁해서는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자명선사가 송頌하였다.
너희 깊은 진리에 통달한 이에게 말하노니
방棒과 할喝은 때를 따라 쓸 것이다.
만약 단적인 뜻을 밝게 알면
한밤중에 해가 빛나리라.

깊은 진리에 통달한 이란 자기 자성을 밝혀서 확철대오한 활달 무애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몽둥이로 때리든지 소리를 지르든지 하는 것은 그때그때 자기 마음대로 쓰다 만약 몽둥이로 때리고 소리를 지르는 뜻을 확실히 알고 보면 한밤중에 해가 뜬다. 그러면 이것도 거짓말이 아닌가, 달이 한밤중에 떴다면 모르지만 해가 어떻게 한밤중에 뜰 수 있는가. 그래 실제로 누구든지 확철대오하면 임제와 덕산의 근본 입지처를 바로 알아 밤중에 해 뜨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이 법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착어하셨습니다.
점 찍으면 오지 않느니라.

임제 회상會上에 *양당兩堂의 수좌首座가 어느 날 서로 보고 동시에 크게 할을 하니, 어떤 중이 임제스님에게 이 일을 물었다.
“앓지 못하겠습니다. 손과 주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손과 주인이 분명하니라.”

오늘 두 분 수좌스님이 서로 보고 동시에 같이 소리를 지르니 거기에 손님과 주인이 있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어떤 중이 임제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전당 수좌는 주인이고 후당 수좌는 손님이고 그렇지 아니하면 그 반대입니까 하는 식의 물음이 아니고 고함을 치는 데 있어서 주인과 손님이 그 내용에 포함되어 있나 없나 하는 깊은 법문이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임제스님이 손과 주인이 역연하다고 대답했지만 소리를 지르는데 어떻게 주인을 찾고 손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임제스님이 그걸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 소리 지르는 뜻을 바로 알면 손님과 주인이 역연한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이 법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착어하셨습니다.
원수가 아니면 머리를 모으지 않느니라.

원수 같으면 서로서로 피해 가는 것이 보통인데 편한 사람이라야 머리를 맞대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정다운 얘기를 하는 것이지만 원수는 보기 싫은 사람인데 서로서로 싸움을 빼고 하면 모르지만 서로 정답게 머리를 모을 수 있나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원수가 아닐 것 같으면 서로 머리를 모으지 못한다는 것이니 , 이 뜻을 알면 소리 지르는 뜻도 알 수 있고 손님과 주인이 역연한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자명선사가 송頌하였다.
한 할에 손과 주인이 나뉘어졌고, 조照와 용用을 일시에 쓴다.
이 속의 뜻을 알게 되면 한낮에 삼경을 치리라.

스님께서 이 법문에 대해서 다음과 겉이 착어하셨습니다.
오면 곧 점 찍지 않느니라.

광혜련선사가 이 법문을 들어 말하였다.
“여러분은 또한 말해 보라. 손과 주인이 있는가 없는가. 만약 손과 주인이 있다 하면 이는 눈먼 사람이요, 손 과 주인이 없다 하여도 이는 눈먼 사람이니.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음은 만리나 먼 *애주땅이다. 여기에서 바로 말하면 삼십방三十榜을 때릴 것이요. 바로 말하지 못하여도 또한 삼십방을 때릴 것이나, 도 닦는 이가 여기에 이르러서 어떻게 하여야 산승의 함정을 벗어나겠느냐.”
고함을 한번 치는데 있어서 손과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 언제 스님은 분명히 손님과 주인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 임제스님 말씀에도 손과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은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한 마디 하면 참으로 산 사람입니다. 출격장부出格文夫라도 이 법문 대해서 바로 대답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광혜선사가 그렇게 말해 놓고 만일 누구든지 임제스님이 손과 주인이 역연하다 하였다고 손과 주인이 있는 것으로 알 것 같으면 눈이 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만약 손님과 주인이 없다고 한다면, 역시 이 사람도 눈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되는 것일까.
그러면 손과 주인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이렇게 말한다면 임제스님 말씀과는 천리만리 아주 멀리 떨어져 버린다는 말입니다. 손님과 주인이 있다 해도 눈먼 놈이며, 없다고 하여도 눈먼 놈이며,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 해도 눈먼 놈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모든 것을 다 떠나서 한 마다 대답을 분명히 한다 하여도 그 사람은 분명히 아는 사람이 아니며, 설사 모든 것을 다 떠나서 한 마디 해도 30방망이는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사 한 마디 못한다 해도 30방망이는 맞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광혜스님 하시는 말씀은 손님과 주인이 있다 해도 눈먼 사람, 없다고 해도 눈먼 사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해도 눈먼 사람, 거기에 대해서 한 마디 분명히 말해도 눈먼 사람, 또 한 마디 분명히 이르지 못해도 눈먼 사람이라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할 수도 없고 저렇게 할 수도 없으니 참으로 확철대오한 출격장부가 아니고서는 여기에서 살아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한참 묵묵한 뒤에 밀하되 ,
“쓰라리고 쓰라리다.
개구리와 지렁이가 삼십삼천에 뛰어 올라가
수미산에 부딪쳐 가루가 되었네.”

이어 주장자를 잡고 말하였다.
“한 무리의 구멍없는 쇠망치들이여, 속히 물러서라 속히 물러서라.”
한 올의 붉은 실을 두 사함이 끄는구나.


·자명慈明/석상石霜 초원楚圓(987∼1040)의 시호임. 임제종, 분양汾陽 선소善昭의 법사. 남악하 십세. 법사 황룡黃龍 혜남慧南과 양기楊歧 방회方會가 나와 임제종이 황룡, 양기 앙파로 나누어 짐. 자명선사어록慈明禪師語錄(1권), 자명원선사어요慈明圓禪師語要(1권)있다.
·앙당수좌兩堂首座/양당은 동당東堂과 서당西堂. 수좌는 총림에서 방장스님을 보필하는 대 중의 우두머리되는 스님.
·광혜廣慧 원련元璉 /951∼1036. 임제종, 수산首山 성념省念의 법사. 남악하 구세.
*애주崖州 / 중국 광동성 해남도 서남쪽 끝에 있는 지명. 멀고 먼 곳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