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 해 제(解 題)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4:17

 

 

 

해 제(解 題)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은 불재세(佛在世)시대에서부터 명대(明代)에 이르기까지의

출가사문으로서 덕행(德行)있었던 분들의 행적을 모은 것으로

명말(明末)  항주(杭州)  운서사(雲棲寺)에 머무시던 주굉(祩宏)스님이 편찬한 것이다.

   주굉스님의 자는 불혜(佛慧), 호는 연지(蓮池)라 하였는데

운서사〔浙江省 杭州 五雲山〕에 머물렀기 때문에 운서(雲棲)라고도 불렀다.   

스님의 속명은 심(沈)씨이고, 항주 인화현(仁和縣)에서 가정(嘉靖)  14년(1535)  1월 22일에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유학을 배웠는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났다고 한다.  

‘생사사대(生死事大)’를 좌우명으로 삼고서 수양하다가 31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무상함이 문득 사무쳐 서산(西山)의 성천(性天) 스님을 찾아가 출가하고,

이어 무진(無塵)율사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위에 변융(辨融), 덕보(德寶) 두 스님을 참례하였고, 망루의 북소리를 듣고서 마침내 대오하였다.

   융경(隆慶) 5년(1571)  37세에 항주로 돌아와 운서산에 일대총림을 창설하여 종풍을 크게 떨쳤다.   

이밖에도 3대 사업이 있으니, 계율의 부흥과 정토법문(淨土法門)의 제창, 그리고 방생의 권장 등이다.   이리하여 그는 중국불교를 보다 민중생활에 접근시켰으며,

또 선림(禪林)에서는 계율엄정과 염불을 권하는 선정일치(禪淨一致)를 주장하여 후대의 총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님은 만력(萬歷)  43년(1615, 혹은 40년·1612)  7월 4일 입적하시니, 세수는 81세 법랍은 50세이다.

   스님의 저서로는 32종 300여권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선관책진(禪關策進)」「승훈일기(僧訓日記)」「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자지록(自知錄)」「죽창수필(竹窓隨筆)」「계살방생문(戒殺放生文)」등이 유명하다.

 

   치문숭행록은 권두에 편찬자인 주굉의 자서(自敍)가 있고, 권말에는 광분(廣)의 발문이 있으며, 내용은 총 10문(十門)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의 청소지행(淸素之行)에는 유송(劉宋) 승민(僧旻)스님의 「부작재회(不作齋會)」이하 15항,

제2장의 엄정지행(嚴正之行)에는 수(隋)나라 영유(靈裕)스님의 금거여니(禁拒女尼)이하 13항,

제3장의 존사지행(尊師之行)에는 진(晋)나라 도안(道安)스님의 역역전사(力役田舍)이하 10항,

제4장의 효친지행(孝親之行)에는 목련존자(目連尊者)의 난분승회(蘭盆勝會)이하 12항,

제5장의 충군지행(忠君之行)에는 오(吳)나라 승회(僧會)스님의 개진보응(開陳報應)이하 11항,

제6장의 자물지행(慈物之行)에는 한 비구의 인고호아(忍苦護鵝)이하 17항,

제7장의 고상지행(高尙之行)에는 진(晋)나라 도오(道悟)스님의 피총입산(避寵入山)이하 18항,

제8장의 지중지행(遲重之行)에는 당(唐)나라 6조대사의 전법구은(傳法久隱)이하 10항,

제9장의 간고지행(艱苦之行)에는 대가섭(大迦葉)의 연로두타(年老頭陀)이하 15항,

제10장의 감응지행(感應之行)에는 진(晋)나라 도진(道進)의 정성감계(精誠感戒)이하 15항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각 장마다 끝에는 주굉이 스스로 총평〔總論〕을 하였고,

또 각 항의 곳곳에서 그 덕행에 대해서 찬(贊)을 붙이고 있다.

   이중에 제7장 고상지행(高尙之行)에서는 신라 자장스님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이 처음 저술되기는 그 서문에 의하면 만력(萬歷) 13년(1585) 스님이 50세 때 일이다.  

이 번역의 저본으로는 광서(光緖) 24년(1898) 금릉각경처간(金陵刻經處刊)을 사용하였다.

   끝으로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을 소개한다.

 

 

     二十年前事可疑    三千里外遇何奇

     焚香擲戟渾如夢    魔佛空爭是與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