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서(緇門崇行錄敍)
어떤 스님이 나에게 질문하였다.
“사문(沙門)은 어떤 일을 합니까?”
“도를 일삼는다.”
“도 닦는 데는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덕을 실천함이 근본이다.”
그 스님은 말하였다.
“스님은 꼭 막힌 사람이군요. 영리한 사람은 지혜로써 도에 들어가고, 둔한 사람이나 복을 닦습니다. 사문이 지혜면 되었지 덕은 닦아 무엇하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한 옛분들도 ‘덕을 실천하는 것이 근본이다’, ‘원대한 경지에 이르려는 선비는 도량과 식견을 우선해야 한다’고 하셨다. 더구나 위없는 보리인 오묘한 도를 알맞는 근기가 아니고서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자의 젖은 유리병에 저장하지 않으면 변하고, 만 근 되는 솥을 조각배에다 실으면 뒤집혀서 빠지지 않을 자가 드물 것이다.
요즈음 사문들은 약간 재주가 영리하면 훈고학(訓詁學)을 전공하고 문필(文筆)을 업으로 하기를 마치 유생(儒生)처럼 한다. 한 수 더하여 고덕(古德)의 깨닫게 된 동기〔機緣〕를 있는 대로 주워 모아 그 메아리를 좇고 그림자나 잡으려 하여 눈 밝은 사람의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불조(佛祖)보다 앞서나 행동을 살펴보면 용렬한 범부보다 뒤지니, 이는 말법시대의 폐단이 극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을 두려워하여 옛분들의 선행(善行)을 수집하고 요점을 기록하여 이를 10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그 10가지는 어떤 것인가.
더러운 세속을 떠난 것을 승(僧)이라 하니, 그러므로 ‘청정하고 소박한 행〔淸素之行〕’을 맨 첫 번째에 두었다.
그런데 청정.소박하기만 하고 근엄하지 않으면 뜻만 고원한 선비의 청정 · 소박일 뿐이다. 신(身) . 구(口) . 의(意) 3업(三業)을 다 포함함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므로 엄숙하고 바른 행〔嚴正之行〕을 그 다음에 두었다.
다음으로 엄정(嚴正)은 스승의 훈계를 말미암아 성취되고, 스승은 모든 사람에게 모범을 보이므로 ‘스승을 존중하는 행〔尊師之行〕’으로 받았다.
어버이가 낳아 준 후에야 스승이 교육을 시키나니, 그 어버이를 잊으면 이는 근본을 망각하는 것이다. 계율에 비록 만행(萬行)이 있으나 효도로써 으뜸을 삼으니, 그러므로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행〔孝親之行〕’으로 받았다.
충과 효는 두 이치가 아니다. 어버이만 알고 임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사사로운 마음이다. 임금 한 사람에게 기쁨이 있는 덕분에 우리가 산에서 여유롭게 노닐 수 있으니 임금의 은혜보다 큰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임금에게 충성하는 행〔忠君之行〕’으로 받았다.
위로 충성하는 데는 극진하면서 아래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 인색하다면 모두를 구제한다는 도가 이지러지게 된다. 그러므로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행〔慈物之行〕’으로 받았다.
자비는 사랑〔愛〕에 가깝고 사랑은 애착을 일으키므로, 세간을 벗어나는 데 장애가 된다. 그러므로 ‘고상한 행〔高尙之行〕’으로 받았다.
고상한 행이란 자기 몸만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버리고 영원히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닦은 뒤에 도를 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중한 행〔遲重之行〕으로 받았다.
지중하다고 하여 단정하게 거처하면서 하는 일이 없다면 역시 안된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든행〔艱苦之行〕’으로 받았다.
수고롭기만 하고 애쓴 보람이 없다면 고생스러워서 물러나게 되는데, 인과는 헛되지 않기 때문에 ‘감응의 행〔感應之行〕’으로 받고 여기서 끝을 맺었다.
이상 10가지 행을 닦아 덕이 갖추어지면 비로소 법을 감당할만한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토양이 기름진 뒤에야 좋은 종자를 뿌리듯, 마음이 순수한 이후에야 지극한 법문이 들어가니, 그래야 위없는 보리를 바랄 수 있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인륜을 완전히 하지 못하고 어떻게 불도(佛道)를 알겠는가? 영리한 근기는 지혜가 많으나 지혜가 많으면 많을수록 장애는 더욱 무거워지니 그런 지혜가 있다 한들 어디에 쓰겠는가?
그 스님이 또 질문하였다.
“우리 불법은 한 티끌도 세우지 않는데, 말씀하신 10행(十行)은 어디에 쓰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5온(五蘊)이 분분하고 4대(四大)가 겹겹인데 어떻게 티끌이 없다 하는가?”
“4대는 본래 공(空)하고 5온은 본래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나는 한 대 치면서 말하였다.
“말만 배우는 부류들은 삼〔麻〕대나 쌀알처럼 많다. 더 할말이 남았느냐?”
그 스님은 대꾸가 없더니 불끈 화를 내며 일어나버렸다. 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얼굴은 티끌과 때가 범벅인데 그대는 왜 닦아내지도 않는가? 조심할지어다. 높은 데에 오르고자 하면 낮은 곳에서부터 하지 않으면 안되니, 함부로 반야를 담론하여 재앙과 허물을 스스로 초래하지 말 것이며, 헛된 명예에 현혹됨이 없도록 하라.
덕을 닦되 정성을 다하고 도에 온 힘을 쏟으라. 노력이 극치에 이르러 마음이 통한 뒤에는 만행(萬行)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종일 공(空)이 아니면서 종일 유(有)도 아님을 알 것이니, 이를 진실한 지혜〔眞慧〕라고 말한다. 원컨대 그대는 마음을 다하여라."
나는 도(道)를 듣지 못했고 게다가 덕(德)도 박하다. 지금 이 책을 만드는 것은 시대의 폐단을 구제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힘쓰는 것일 뿐이다.
총명하게 통달한 인재라면 사람 때문에 말까지 버리지 말고, 계속해서 널리 참선하는 이들에게 고해 주기 바란다.
만력(萬歷) 13년(1585) 중동일(仲冬日)에
항주 사문 주굉(祩宏)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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